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201
200화 – 행운이 행복이 될 때 (09)
키리기스와 그의 하인들, 그리고 쿤과 녹턴은 차원이동자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조금 더 있자 감지 마법으로 차원이동자를 추적한 티르가 도착했다.
그는 차원동자가 키리기스와 함께 있단 것에 놀라는 것도 잠시, 뭔가를 깨달은 듯 표정을 일그러트렸다.
“설마… 산사태를 이 녀석 도움으로 빠져나온 건 아니겠죠?”
“그 설마가 사실이네만.”
“…그 새끼들이 무능해서 선생님을 못 찾는 게 아니었네요.”
티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별도로 설명하지 않았음에도 그는 키리기스가 의도한 대로 생각하고 판단했다.
“뭐, 어쨌든 감사합니다. 덕분에 차원이동자를 잘 숨겼어요. 이번 일은… 좀 짜증 나지만 저희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마차는 바로 준비해 둘 테니까, 그거 타고 오즈벨로 빨리 돌아가세요.”
“친절한 건지 불친절한 건지 모르겠군.”
“나름 최선을 다해 친절하게 해드리는 겁니다. 이 일 때문에 기사단이 저희를 엄청 귀찮게 굴 거 같거든요.”
그는 자신들이 키리기스 대신 이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는 것도, 기사단과의 마찰을 겪어야 한다는 것도 파악했다.
하지만 기사단, 더 나아가선 영주에게 차원이동자를 놓쳤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기에 키리기스의 수에 놀아나기로 했다.
“산사태를 일으킨 녀석들은 어쩌실 겁니까?”
“아무 짓도 안 하고 그대로 놔둘 생각이야.”
키리기스는 이미 누가 습격자인지 정확하게 파악했다. 누가 이를 사주했는지 역시 알고 있고.
하지만 잡지 않을 생각이었다.
“때론 적을 곁에 두는 게 더 안전할 때가 있지.”
거기다 아무것도 안 하는 자신을 보며 더욱 혼란스러워 할 것이다.
키리기스는 그 꼴이 보고 싶었다.
“예나 지금이나 취향이 참… 변태 같으시네요.”
“자네야말로 예나 지금이나 혓바닥 관리를 참 못 하는군.”
“윽… 시정하겠습니다.”
티르가 하얗게 질겁하며 제 입을 가렸다.
“차원이동자는 알아서 돌아갈 거야.”
마법을 써서 얌전히 돌려보내겠다는 말에 티르가 감사를 표했다. 이로써 켈카르타닌 판테테들을 괴롭혔던 차원이동자 사건이 해결되었다.
“그럼 잠시 통신 좀 하고 오겠습니다.”
티르는 조금 떨어진 곳으로 걸어가 단원들에게 통신했다.
쿤은 가만히 그를 쳐다보다 고갤 갸웃거렸다.
저희에겐 반말에, 기본적인 예도 안 지켰던 그가 키리기스 앞에선 깍듯한 것이 좀 신기했다.
거기다 선생님이라니.
“혹시 티르 씨도 키리기스 씨한테 교육받았어요?”
“그럴 리가. 그랬다면 진작 저 혓바닥을 잘랐겠지.”
“…비유죠?”
“글쎄.”
키리기스가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쿤은 마른침을 삼켰다. 새삼 그에게 교육받았던 판테테들이 불쌍해졌다.
“그럼……?”
“내 친구의 제자였네.”
“예?! 키리기스 씨한테도 친구가 있었어요?”
“…여우군은 정말로 나를 잘못 알고 있군.”
“헉, 죄송해요.”
쿤은 제 입을 가렸다. 까딱하다간 제 혓바닥도 잘릴 뻔했다.
“혜성이 그렇듯 나에게도 친한 친구가 둘 있어. 개중 한 명은 총본부에 있고, 다른 한 명은 여우군도 아는 사람이네.”
“제가 아는 사람이요?”
“그래. 아직 얼굴은 못 봤지만 말이야.”
그 말인즉슨 제가 그 사람의 이름, 혹은 신분을 알고 있단 소리가 아니던가.
대체 누구지?
쿤은 제가 알 만한 이들 중, 키리기스의 친구라 할 만한 사람을 떠올렸다.
하지만 좀처럼 그럴 만한 이가 떠오르지 않았다.
어쨌든 그의 친구니 못해도 귀족, 혹은 판테테 단장 급일 것이다.
‘아니다. 의외로 평민일 수 있어. 혹시 헤라네 엄만가?’
쿤은 턱까지 짚어가며 열심히 고민했다.
이 와중에 녹턴은 말을 쓰다듬고 있었다.
말에 타고 있는 마부가 중간중간 대화를 시도했지만, 녹턴은 동물을 쓰다듬기 바빴다.
키리기스는 쿤과 녹턴을 번갈아 보더니 피식 웃었다.
잠시 후, 티르가 돌아왔다.
그는 쿤 일행을 데리고 기사단과 합류했다. 그리고 우연히 키리기스를 찾아 구조한 것처럼 굴었다.
물론 기사단은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갑자기 사라진 판테테들과 돌변한 태도. 거기에 뭔가 미심쩍은 키리기스의 행적.
무엇보다 자신들이 그렇게 고생했는데도 못 찾은 키리기스를 티르가 너무 쉽게 찾은 걸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들은 곧장 키리기스를 조사하려 했다. 인위적으로 터진 산사태였으니, 그를 보호한다는 명목까지 더해 말이다.
이에 쿤과 함께 수색하러 온 키리기스의 하인들이 반발했으나 그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여긴 켈카르타닌이니 이곳의 규칙을 따라야 한다며 몰아붙였다.
그렇게 그들은 다소 고압적인 태도로 모두를 데리고 산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이런 그들을 막아서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켈카르타닌의 판테테였다.
티르에게 연락을 받고 온 판테테들은 마차와 함께 산 입구를 막고 기사단과 대치했다.
심지어 그들은 각 영주님들의 특별 지시로 빨리 쿤 일행을 오즈벨로 보내야 한다며 공문까지 들이밀었다.
덕분에 쿤 일행은 쫓겨나듯 자릴 벗어나 오즈벨로 향하게 되었다.
“…순식간에 끝났네요.”
쿤이 가는 눈을 끔뻑였다. 상황이 이렇게 끝나서 그런 걸까. 좀 얼떨떨했다.
녹턴 역시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빨리 끝나서 다행인데, 좀 허무하네.”
“그러게요. 수색도 애매해, 습격자도 못 잡아, 차원이동자 찾아주는 것도 이상하게 끝나. 기껏 나왔는데 뭐 하나 얻은 게 없는 거 같아요.”
어쩐지 키리기스와 엮이는 사건들은 다 이렇게 애매한 거 같았다.
처음 넘어온 광석 차원이동자를 처리할 때에도, 바닷속에 들어간 용이를 잡으려 할 때에도 그러지 않았던가.
‘물론 둘 다 사건은 깔끔하게 처리되었지만. 그래서 더 묘하달까.’
쿤은 그리 생각하며 창밖을 쳐다봤다. 마차를 타고 오즈벨로 가고 있음에도 신기하게 현실감이 없었다.
그때 키리기스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런가. 오히려 난 얻은 게 있어서 좀 즐거웠네.”
“예? 뭘요? 습격자의 정체요?”
“그건 이미 얼추 알고 있었어.”
“그럼요?”
키리기스의 시선이 녹턴에게 향했다.
“네가 스스로 오즈벨 밖으로 나오지 않았나.”
“…….”
“…….”
예상 못한 대답에 쿤과 녹턴의 눈이 크게 떠졌다.
특히 녹턴의 경우는 상상 못한 말을 들은 것처럼 당혹과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나온 게 그렇게 중요해?”
“엄밀하겐 나왔다는 것보다, 행동을 취했다는 게 중요한 거겠지.”
녹턴의 삶은 공허 그 자체였다. 심지어 그녀는 양부가 죽은 후에도 아무것도 바라는 것 없이 허무하게 살았다.
세상에 이보다 딱한 삶이 어디 있을까.
적어도 키리기스에게 무망(無望)은 가장 끔찍한 불행이었다.
그래서 그는 계속 그녀에게 뭔가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네게 메를린 부부와 헤라를 소개해 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어.”
사람이 뭔가를 바란다는 건 저마다의 이유가 있단 거고, 개중 가족은 가장 기본적인 동기가 됐다.
“물론 모든 가족이 긍정적인 동기가 된다 할 순 없겠지. 박쥐 군과 하은이 가족에 묶여 있는 것처럼 말이야.”
녹턴만 해도 양부가 공허의 씨앗이자 결과였다.
“하지만 지금은 긍정적인 힘이 되었어. 너를 산에서 내려오게 했고, 사람들과 살게 만들었으니까. 난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생각했네. 그런데 넌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갔어.”
“무슨 의미야?”
“녹턴, 넌 무슨 생각으로 날 찾으러 온 거지?”
“그거야 네가 무사한지…….”
“정말로 그 이유가 다야? 너라면 내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텐데.”
“…….”
맞다. 녹턴은 혜성 다음으로 키리기스가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다.
그의 전투를 목격한 적도 많고, 제가 사는 산으로 도망쳤던 위험군 차원이동자 역시 순식간에 처리했으니까.
심지어 그는 마법도 강했다.
그는 녹턴에게 자유를 줄 때, 단순히 사망 처리만 한 게 아니었다.
그녀를 잘 아는 사람부터 우연으로라도 스쳤던 사람 전부를 찾아내 그들의 기억을 교묘하게 비틀었다.
그들이 기억하는 사람이 녹턴이 아니게끔. 대놓고 얼굴을 보여주며 사실을 말해도 모르게끔.
덕분에 녹턴은 15년 가까이 알고 지내던 도박장의 직원이 저를 마주쳤음에도 알아보지 못했던 기이한 경험을 한 적 있다.
“넌 내가 무사한 걸 알고 있었잖아.”
“…확실히 네가 강한 거 알아. 하지만 내 마법이 사라지면 위험 역시 커져. 넌 네가 행운 마법에 좌지우지 안 한다 했지만, 상황은 어떻게 될지 모르고, 어쩌면 그게 너를 너머 모두에게…….”
거기까지 말하던 녹턴이 말끝을 흐렸다.
마치 누군가가 뒤통수를 후려친 것처럼 충격이 덮쳤다.
“…내가 언제부터 내 마법을 이렇게 바랐지?”
녹턴에게 행운 마법은 그 무엇 하나 주지 않는 불행이었다. 그리고 이게 사라졌을 때에는 더 큰 비극이었고.
하지만 지금은 제 마법을 간절히 바랐다. 그래야 모두가 안전하고 무사하니까.
그제야 녹턴은 키리기스가 뭘 말하는지 깨달았다.
그녀가 여기까지 온 건 단순히 그를 수색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른 애들이 고생했으니 이번엔 제가 대신하고 싶단 배려, 키리기스가 잘 있는지 확인.
하지만 그녀가 진정으로 온 이유는 키리기스를 오즈벨로 무사히 데려가는 거였다.
“나는 우리 모두가 함께 있길 바랐구나…….”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던 녹턴에게 처음으로 원하는 일상, 누리고 싶은 세계가 만들어졌다.
모두가 오즈벨에서 다 함께 안전하고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녹턴은 그토록 싫어하는 낯선 사회로 발을 내디뎠다.
“…기분이 이상해.”
“뭐가 말이지?”
“내 삶은 나를 공허하게 만들었어. 그런데 겨우 1년 반 만에… 이렇게 빨리 바뀌면…….”
마음이 술렁였다. 억울함과 허무함. 거기에 좀처럼 알 수 없는 감정까지 더해졌다.
그때였다.
내내 가만히 있던 쿤이 입을 열었다.
“어… 빨리면 더 좋은 거 아닌가요?”
녹턴의 시선이 쿤에게 향했다.
“녹턴 씨가 그걸 바란다는 건, 모두와 함께하는 삶이 즐겁고 행복하다는 거잖아요.”
쿤은 녹턴을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그리고 녹턴 씨 마법은 그 바람을 지키는 행운이 되는 거고요.”
“…….”
녹턴이 입을 다물었다.
쿤은 그녀가 마음과 생각을 정리하길 기다렸다.
문뜩 그의 시선이 후드 사이로 삐져나온 녹턴의 머리칼로 향했다.
“어? 녹턴 씨, 마법이 돌아왔어요.”
쿤의 말에 녹턴이 내내 쓰고 있던 후드를 벗었다.
그러자 새하얀 머리가 분홍빛으로 물든 게 보였다. 마치 꽃이 활짝 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