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202
201화 – 행운이 행복이 될 때 (10)
녹턴은 가만히 제 머리칼을 만지작거렸다.
눈을 가릴 만큼 긴 앞머리라 조금만 주의를 차렸다면 바로 색이 변했단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쿤이 말해줄 때까지 전혀 몰랐다.
흡사 지금 제 마음 같았다.
오즈벨이 좋아지고, 가족, 단원들과 함께하는 삶을 바랄 만큼 세상에 스며들었는데, 정작 저 자신은 몰랐던 것처럼.
“하…….”
녹턴은 제 변화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그녀에게 제 마법은 공허의 씨앗이 아니었다.
바라는 삶을 도와주는 힘이자, ‘행운’ 그 자체였다.
“너를 만나고, 새 가족이 생기고, 혜성이한테 판테테를 권유받은 것도 다 행운이었던 거구나.”
모든 변화의 계기, 시작, 그리고 앞으로 바라는 것까지.
이제 행운 마법은 녹턴이 바라는 행복을 도와줄 것이다.
“…기분이 진짜 이상해…….”
“차차 익숙해질 거야.”
“그러겠지?”
“모쪼록 너에게 이런 변화가 많았으면 좋겠군.”
“…응. 그랬으면 좋겠어.”
키리기스와 녹턴이 미소를 주고받았다.
참으로 훈훈하고 따스한 장면이었다.
그리고 이런 둘을 보며 쿤은 크게 감동했다.
특히 녹턴을 대하는 키리기스의 태도와 생각에 놀랐다.
사실 쿤에게 그는 조금 불편하고 어색한 사람이었다
거기다 묘하게 무섭고 위압적이라 내심 그에게 마음의 벽을 세워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보니 키리기스의 말대로 제가 정말 그를 잘못 알고 있었나 싶었다.
“키리기스 씨… 참 따뜻한 분이셨군요!”
쿤의 감격스러운 목소리에 키리기스와 녹턴이 멈칫했다.
“…갑자기 왜 그래?”
“…여우군은 오늘 여러모로 날 당황하게 하는군.”
두 사람의 목소리에서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쿤은 해맑기만 했다.
“저 지금 굉장히 행복해졌어요. 거기다 이제 곧 혜성 씨랑 은이 씨도 돌아올 거잖아요.”
“음. 하긴, 두 사람도 슬슬 올 때가 됐지.”
심지어 그 둘은 그림자를 타고 오니 키리기스처럼 긴 시간이 걸릴 일도 없다.
“이제 곧 오즈벨 판테테가 다 모이는 거예요.”
그래. 전부 다 모이는 것이다. 그리고 전처럼 다시 함께 일할 수 있겠지.
혜성 씨랑 아침밥을 먹는 것도, 은이 씨와 오동촌을 돌보는 것도 할 수 있다.
쿤은 모두가 빨리 모였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이런 그의 마음이 하늘에 닿았던 걸까.
날이 풀리며 얼었던 길이 녹아내렸다.
길 역시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사람들도 마차를 모는 말도 다 최상의 컨디션을 보였다.
덕분에 그들은 갈 때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귀환길을 달릴 수 있었다.
그렇게 다음 날 아침. 밝은 여명을 맞으며 쿤 일행을 태운 마차가 오즈벨 숙소 앞에 섰다.
“드디어 돌아왔다-!”
쿤이 마차에서 내리며 소리쳤다.
“여행 다녀온 느낌이네.”
“그렇군.”
녹턴과 키리기스 역시 짧은 감상과 함께 마차에서 내렸다.
키리기스는 하인들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고급스럽게 포장된 종이 상자 몇 개를 들었다. 왕도에서 사온 단원들 선물이었다.
그사이 쿤은 한달음에 현관까지 달려가 문을 열었다.
“저희 왔어요!”
그 어느 때보다 경쾌한 목소리가 거실을 울렸다.
하지만 이런 쿤을 맞이한 건, 텅 빈 공간과 차갑게 식은 벽난로였다.
“…엥?”
쿤의 머리 위로 커다란 물음표가 그려졌다.
다들 어디 간 건가?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릴 때, 현관으로 들어온 녹턴이 물었다.
“애들 없어?”
“안에 안 계시는데요?”
“설마 차원문이 나타났나?”
“헉. 진짜 그런 건 아니겠죠?”
쿤은 통신을 걸기 위해 제 귀를 만졌다.
그때 저 멀리서 저 멀리서 누군가가 싸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쿤과 녹턴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밖으로 나왔다.
소란은 정확히 별채, 즉 감옥에서 들려왔다.
“아무래도 저기 있는 것 같군.”
키리기스는 쿤에게 종이 상자를 건넨 뒤, 별채로 걸어갔다.
문을 열자 복도를 타고 단원들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내보내 달라고! 결계도 빨리 풀어!”
“안 된다고 했어요.”
“안 열면 어떻게든 부수고 나갈 거야!”
“하? 지금 검 빼 든 거예요? 진짜 누군 무기 없는 줄 아나!”
“루, 진정해! 선배도 좀 진정하세요!”
“지금 싸우실 때가 아니잖아요!”
사강과 루의 다툼, 거기에 이를 말리는 녹턴과 보보의 목소리까지.
자못 심각해 보이는 분위기에 키리기스의 입매가 굳었다. 그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쿤과 녹턴 역시 서둘러 뒤를 따랐다.
얼마 안 가자 감옥 안에 갇힌 사강과 밖에 서 있는 세 사람이 보였다.
“이게 무슨 소란이지?”
키리기스의 질문에 모두가 이쪽을 쳐다봤다.
서로에게 열을 올리느라 세 사람이 오는 것도 몰랐던 그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선생님……!”
“무사하셨군요. 다행이에요.”
키리기스는 보보와 부용에게 대충 눈짓한 뒤, 곧바로 루 앞에 섰다.
“상황 설명해.”
순간 루가 미간을 찌푸렸다.
“…모르시는 거예요?”
“뭘 말이지?”
“은이 언니랑 보스 일이요.”
“혜성이랑 하은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키리기스의 반문에 루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정보에 능통한 사람이니 당연히 뭐든 알고 있을 거란 생각으로 그만 기다렸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니.
“맙소사…….”
루가 짤막한 탄식을 터트렸다.
동시에 키리기스의 턱이 딱딱하게 굳었다.
평소였다면 무슨 일이든 즉각 알았겠지만, 요 며칠은 산속에 숨어 있느라 모든 정보가 끊기고 말았다.
오즈벨로 올 때도 내내 쿤과 녹턴이 붙어 있어 정보책과 만나지 못했다. 오즈벨이나 왕도의 상황을 아는 하인도 없었고 말이다.
정보의 부재는 키리기스에게 심히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그는 불쾌함을 숨기지 않고 다시 물었다.
“루, 상황 설명하라고 했어.”
루는 한숨을 내쉬며 상황을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사강이 소리쳤다.
“선생, 나 좀 풀어줘! 애들 찾으러 가야 해!”
“애들이라니.”
“은이가 역차원문을 탔대!”
예상 못 한 사실에 쿤과 녹턴이 숨을 들이켰다.
특히 쿤의 경우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은이 지금도 역차원문을 탄다는 건 혜성과 키리기스, 그리고 저만 아는 비밀이었으니 말이다.
좀처럼 영문을 모르겠어 혼란스러워하는 쿤과 달리 키리기스는 알고 있는 듯 태연하게 답했다.
“역차원문 조사단과 함께 탐사를 나간 건 들었어. 근데 그게 무슨 문제지? 은이 과거 역차원문 조사단이었던 건 너도 아는 사실이잖아. 설마 혜성을 홀로 두고 역차원문을 타서 그런 건가?”
“그래서가 아니야!”
오랜 친구인 만큼 사강은 둘의 성격을 잘 알고 있다.
은이 역차원문을 타고, 혜성이 그를 가만히 두었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단 게 분명했다.
사강 역시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은이가 반송 차원문을 못 탔어!”
사강은 철창을 움켜쥐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여섯 명이 넘어갔는데, 단둘만 돌아오고 은이랑 다른 셋은 실종됐대!”
툭.
쿤의 손에서 종이 상자가 떨어졌다.
그는 물건이 떨어졌단 사실도 인지하지 못한 채, 철창으로 다가갔다.
“그,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은이 씨가 왜요?”
심하게 동요하는 목소리에 루가 다시금 한숨을 내쉬며 쿤의 어깨를 붙잡았다.
“쿤, 진정해.”
“어떻게 진정해요!”
“멍청아, 넌 이 말을 그대로 믿어? 언니가 그렇게 쉽게 죽을 리 없잖아!”
“그래. 하은이 죽는 건 내가 눈사태에 휩쓸리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야.”
무엇보다 키리기스는 앞선 두 번의 조사 결과와 역차원문 조사단의 생태를 알고 있다.
만일 그 세계에 은이를 죽일 만큼 위험한 게 존재했다면, 다른 둘 역시 못 돌아왔어야 맞다.
즉, 은과 실종자 셋이 반송 차원문을 못 탄 건, 죽음이 아니라 다른 모종의 이유가 있었단 소리였다.
키리기스는 긴 숨을 내쉬며 물었다.
“혜성은 지금 어디 있지?”
“…….”
일순 감옥 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것은 그 어떤 대답보다 쿤을 두렵게 만들었다.
“뭐예요… 혜성 씨한테도 무슨 일이 일어난 거예요?”
“…….”
“무슨 일이 있는 건데요!”
쿤의 재촉에 루가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몰라.”
“…네?”
“언니가 반송 차원문을 못 탔다는 이야기를 듣고 곧장 어딘가로 가버렸대. 그 이후론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고.”
그것은 은이 반송 차원문을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만큼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쿤은 철창을 꽉 움켜쥐었다.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 그럼… 혜성 씨도…….”
그때였다. 키리기스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 당분간 혜성과 은의 일은 잊는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평소처럼 굴어.”
한 지부의 단장과 간부가 실종됐다. 이 정보는 금세 각 곳에 전해질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미 알고 있을지 모른다.
혜성을 끌어내리고 싶어 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오즈벨을 노리는 이들 역시 적지 않다.
그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들 것이다.
그러니 더더욱 평소와 같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 불안 역시 숨겨야 했다.
그래야만 혜성과 은의 자리도, 지금의 오즈벨도 지킬 수 있다.
“허점이 보이는 순간 잡아먹힌다.”
“…….”
무거운 정적이 내려앉았다.
쿤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키리기스의 말이 백번 옳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이 이를 따라주지 않았다.
다른 단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사강의 경우는 어떻게 그 둘을 모른 척 하냐며 소리쳤다.
유일하게 루만이 침착을 되찾았다.
“알겠어요. 쿤, 나가자.”
“…….”
쿤은 루를 가만히 쳐다봤다. 그러다 이내 체념한 듯 어깨를 늘어트렸다.
그는 긴 숨을 뱉으며 마음을 달랬다.
일행은 키리기스의 주도하에 빠르게 역할을 정했다.
그간 있었던 일은 부용이 그에게 보고하기로 했으며, 쿤과 루, 보보는 영지 순찰, 그리고 녹턴은 사강을 진정시키는 일을 맡게 되었다.
할 일이 배정되자 단원들은 빠르게 제 일을 하러 나갔다.
쿤은 여느 때처럼 차원문 경보기를 확인하고, 영지 곳곳을 돌며 무슨 일이 없는지를 확인했다.
영지는 쿤이 켈카르타닌으로 가기 전처럼 평화로웠다. 신년장 뒷정리를 하는 사람들, 뛰어노는 아이들. 따스한 햇볕을 즐기는 어르신들.
평소였다면 저 역시 이 한가로움을 즐겼겠지만, 지금만은 그럴 수 없었다.
셋은 자연스럽게 번화가를 거쳐 숲 쪽으로 향했다.
“오동촌에도 들러야 하죠?”
보보의 질문에 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 맞다. 도사는 오동촌으로 돌아갔어.”
“그렇군요…….”
“건이랑 곤이도 같이 갔고. 네가 올 때까지 도사랑 있겠대.”
“…다행이네요.”
사실 건곤이랑 도사의 존재도 잊고 있었다.
쿤은 제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좀처럼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분명 아침까지만 해도 모두 다 모일 수 있다는 희망에 들떴었는데, 지금은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했다.
“죄송해요. 빨리 정신 차려야 하는데…….”
“뭐가 죄송해. 그리고 너만 심란한 거 아냐.”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루와 보보도 속이 말이 아니었다.
다른 단원들도 그랬다.
부용은 이 소식을 들은 후부터 지금까지 한숨도 자지 못했고, 사강은 계속 왕도로 가겠다며 발악했다.
그가 감옥에 있던 것 역시 진정이 안 되자 루와 보보가 그를 기절시켜 가둔 거였다.
“보스는 선생님께서 찾아봐 주실 거야. 언니는 무사할 거고. 거기다 반송 차원문이 딱 한 번만 나타나는 건 아니잖아. 언니라면 알아서 잘 탈 거야.”
72시간 법칙에 따라 나타나는 반송 차원문 말고, 무작위로 나타나는 것도 있다.
하지만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데다 그 확률이 무척이나 희박해 사실상 타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셋은 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입을 다물었고, 긴 침묵이 이어졌다.
그렇게 숲을 지나 오동촌의 입구로 향할 때였다.
불현듯 이상한 기분이 셋을 덮쳤다.
그들은 얼마 안 있어 기이함의 정체를 깨달았다. 분명 바람이 멎었는데도 발밑의 풀들이 계속 한쪽으로 휘날린 것이다.
이윽고 거대한 괘종소리가 귀를 울렸다.
데엥-
마치 바로 옆에서 울리는 듯한 소리에 셋이 흠칫 떨었다.
“벌써 정각이에요?”
“그럴 리가. 조금 전에 울렸잖아요.”
“그보다 어쩐지 평소랑 소리가 다르지 않아요?”
확실히 내내 들었던 소리보다 좀 더 맑은소리였다.
“뭐지……?”
쿤이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였다. 환한 빛과 함께 바닥이 가로로 길게 갈라졌다.
쿤이 오즈벨에서 두 번째로 보는 역차원문이었다.
루와 보보의 바로 뒤에서 생겨난 역차원문. 이에 두 사람의 몸이 뒤로 기울었다. 흡사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 같았다.
“루 씨! 보보 씨!”
쿤은 빠르게 팔을 뻗어 루를 낚아챘다. 그리고 그대로 밖으로 내던졌다.
루의 몸이 풀밭으로 던져지는 것과 동시에 쿤이 보보를 잡았다. 하지만 그까지 내던지기엔 이미 너무 늦은 후였다. 엄청난 압력이 둘을 끌어당겼기 때문이었다.
“윽!”
“젠장!”
역차원문은 순식간에 보보와 쿤을 삼켜 버렸다. 그리고 제 소명을 다한 것처럼 모습을 감추었다.
홀로 남게 된 루의 얼굴에 경악이 번졌다.
“…쿤? 보보?”
그녀의 황망한 목소리가 숲을 울렸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마냥 멀쩡한 풀밭과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겨울바람.
매서운 바람에 굽이진 긴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1부 완(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