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21
20화-오즈벨의 판테테 (07)
그것은 흔히 연극이나 무도회 때 쓰는 반가면과는 모양과 느낌이 전혀 달랐다.
우선 가면의 밑이 양 뺨을 반 정도 가릴 정도였고, 뺨 부근에는 새빨간 곤지가 그려져 있었다. 눈구멍은 초승달을 뉘어놓은 것 같았는데, 한편으론 즐겁다는 듯 활짝 웃는 것 같았다.
하지만 드러난 남자의 입이 조금도 웃지 않아서일까. 가면의 익살스러움이 기괴함과 오싹함이 되어 쿤을 덮쳤다.
“오래간만이군.”
키리기스가 헤라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처음 듣는 그의 목소리는 분위기만큼이나 묵직하고 낮은 저음이었다.
“본부엔 잘 다녀오셨어요?”
“평소와 똑같았어. 우리가 없는 사이 위험한 일이 있었다고 들었는데 다친 곳은 없나?”
남자는 헤라를 위해 친근한 어투로 말을 걸었으나, 중간중간 드러나는 본래의 어투를 숨길 순 없었다.
헤라는 키리기스를 향해 웃어 보였다.
“저도 평소처럼 멀쩡해요.”
“의욕이 넘치는 것도 좋지만, 안전 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 앞으론 아무 일에나 끼어들지 않도록 해. 이번은 정말 운이 좋았던 거니까. 알고 있지?”
“조심할게요.”
“그래. 그럼 쿤.”
그의 부름에 쿤이 화들짝 놀랐다.
혜성도 루도 은이도 사강도 다 제 이름을 불렀지만, 키리기스가 부르는 제 이름만큼 어색한 건 또 없었다.
“아, 안녕하세요. 키리기스… 님.”
쿤의 대답에 남자의 입꼬리가 유려하게 말렸다.
“편하게 부르도록 해. 딱히 호칭에 신경쓰는 성격은 아니니까.”
“알겠습니다.”
“놀라게 해서 미안하네. 원래는 느긋하게 기다리려 했는데 일이 생겨서 말이야.”
그는 그리 말하며 천천히 쿤을 향해 걸어왔다.
“서류 자체는 급하지 않지만, 얼굴을 보라고 만든 자리니 이렇게 직접 인사를 하는 게 맞을 것 같아 마차를 보냈는데, 불쾌했다면 사과하지.”
“아뇨, 전혀요. 덕분에 편하게 왔어요.”
키리기스는 다섯 걸음 정도를 사이에 두고 멈춰 섰다.
크다는 건 알았지만, 가까이서 본 그는 훨씬 더 키가 크고 체격이 좋았다.
190㎝… 아니, 그보단 조금 더 커 보였다.
키리기스가 손을 내밀자 쿤은 눈치 빠르게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그에게 건넸다.
“내용물이 뭔지는 알고 있나?”
“아뇨.”
“궁금하진 않았어?”
“전혀요. 제게 아니잖아요. 내용을 확인해 보라는 말도 없으셨고요.”
“착하군.”
“…….”
이게 착한 건가? 남의 물건에 손 안 대는 건 기본 아냐?
쿤은 좀처럼 이해할 수 없단 얼굴로 키리기스를 올려다보다 시선을 내렸다. 이런 곳에서 사는 귀족이란 걸 알아서 그런지 껄끄러움이 영 가시질 않았다.
키리기스는 서류를 집사에게 건넸다.
“고생 많았어. 나는 일이 있어 이만 가보겠네. 식사를 준비해 뒀으니 온 김에 들고 가도록 해. 단원들 만난다고 종일 걷지 않았나.”
“예? 아뇨, 괜찮아요. 저희도 그냥 갈게요.”
“먹고 가. 모처럼 준비해 둔 것이니까.”
“…….”
눈이 보이지 않아서일까. 당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그가 내비치는 친절이 고압적으로 다가오는 걸 수도 있었다.
쿤이 바라보자 헤라가 먹고 가자며 고개를 끄덕였다.
헤라가 불편해하면 어떻게서든 핑계를 대고 나오려 했는데, 그런 기색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감사히 먹고 갈게요.”
“잘 생각했어.”
그는 집사에게 쿤과 헤라를 극진히 모시라 명한 뒤, 서류를 챙겨 응접실을 빠져나갔다.
집사는 두 사람을 식당으로 안내했다.
미리 준비해 놨다는 말이 그냥 한 말은 아니었는지, 자리에 앉기 무섭게 음식이 세팅되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나 먹을 법한 훌륭한 코스요리였다. 거기에 마치 제 고향을 알고 그런 것처럼 익숙한 음식들도 함께 나왔다.
하지만 자리가 워낙 불편해서일까.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길었던 식사가 끝나고, 마차까지 얻어 타게 된 쿤은 최고급 가시방석에 앉아 마지막 도착지인 녹턴네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뭐라도 마실까요?”
마차에서 내리기 무섭게 헤라가 물어왔다.
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좀 마시자. 이왕이면 당 충전되는 녀석으로.”
“제대로 못 드시는 것 같은데, 음식 별로였어요?”
“아니, 맛있었어. 근데 좀 불편해서……. 넌 괜찮았어?”
“전 괜찮았어요.”
“의외네. 너도 거기 불편해하는 거 같았는데.”
마차에서도 그랬고, 저택에서도 내내 조용하지 않았던가.
쿤이 이 부분을 말하자 헤라가 머쓱하니 웃었다.
“당연히 불편하죠. 근데 오늘은 좀 괜찮았어요. 키리기스 아저씨랑 같이 밥을 먹은 게 아니잖아요.”
“아, 그러네.”
“평소였으면 식사 예법이니, 귀족 예법이니 엄청 눈치 봤을 걸요. 뭐 아저씨는 별로 신경 안 쓰시는 것 같지만 그게 그런다고 안 써지는 건 아니잖아요.”
“그치… 근데 이런 일이 잦아? 뭔가 다들 익숙해 보여서.”
집사도 그렇고, 주방장도 그렇고, 그 외 하인들도 그렇고 손님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게 무척 자연스러워 보였다.
“손님이 오면 무조건 밥 먹이는 게 아저씨의 철칙 중 하나래요.”
“…거긴 두 번 다시 가지 말아야겠다.”
“근데 밥이 맛있어서 루 언니는 가끔 아저씨네 외식하러 가요.”
“그건 외식이 아니잖아……. 어? 근데 루 씨는 귀찮아서 집 밖으로 잘 안 나간다지 않았어?”
“마차가 데리러 오니까요.”
“…….”
“데리러 오고, 밥 차려주고, 다시 집까지 바래다주고. 어떨 땐 자고까지 와요.”
“…존경스럽다.”
헤라 역시 비슷하게 생각했는지 고개를 붕붕 끄덕였다.
근처 카페에 도착한 쿤은 달콤한 과일 주스 두 잔을 주문했다. 그리고 야외 벤치에 앉아 피곤한 몸과 정신을 쉬었다.
달달한 게 들어가서 그런지 지쳤던 몸이 회복되는 것 같았다.
시선을 돌리자 오즈벨의 자랑인 푸른 바다가 보였다.
쿤과 헤라는 그곳에서 잠깐의 휴식을 취한 후, 녹턴의 집을 향했다.
녹턴의 집은 어제 차원이동자를 돌려보냈던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등줄기 산의 끝자락이자 초승달의 꼬리에 해당하는 곳. 낮은 절벽을 곁에 둔 작은 오두막 한 채가 바로 그녀의 보금자리였다.
“키리기스 씨네 집은 대저택. 녹턴 씨네는 오두막. 너무 극과 극이어서 그런지 둘 다 현실감이 없네.”
쿤의 감상에 헤라가 십분 공감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부도 그래요. 아저씨 집은 번쩍번쩍한데, 여긴 정말 가구도 없거든요.”
거기다 키리기스넨 화려하고 정교하게 꾸며진 정원이 있다면, 녹턴네는 근처에 작고 아담한 텃밭을 두고 있었다.
“집에 큰 창이 있는 것만 똑같네요. 이모네 집에 고양이가 많아서 창 하나는 진짜 넓거든요.”
“동물 키우셔?”
“정확히는 길고양이들이에요. 길고양이 길강아지들을 돌보고 있거든요. 집에 들어오면 그냥 재워주기도 하고요.”
“멋지다. 근데 이런 데 혼자 살면 위험하지 않을까?”
경치는 좋지만, 절벽과 바다를 바로 곁에 두고 있었고,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길도 아니었다. 남자 혼자 살기에도 좋아 보이지 않는데 여자 혼자서 괜찮을까 싶어 걱정을 내비치자 헤라가 피식 웃어 보였다.
“이모가 아무리 전투에 약하다 해도 판테테예요. 그리고 태풍이나 폭우가 오면 숙소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니 괜찮아요.”
“그럼 다행이고. 아, 헤라는 녹턴 씨의 조카인 거지?”
“네.”
어제부터 이모라고 불렀던 것 같아 정말 친족 사이인지 그냥 호칭인지 궁금했는데, 친족이 맞는 모양이다.
“이모, 나 왔어.”
헤라가 그리 말하며 문을 두드렸다. 얼마 안 있어 문이 열리더니 다소 퀭한 눈을 한 녹턴이 얼굴을 내밀었다.
긴 앞머리에 가려진 눈동자가 방문자의 얼굴을 확인하듯 천천히 움직였다.
그는 쿤과 헤라의 얼굴을 확인한 뒤에야 문밖으로 나왔다. 편안한 티셔츠에 면바지를 보며 헤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태 자고 있었어?”
“아… 어제 좀 늦게 자서.”
“몇 시에 잤는데?”
“7시.”
“설마 오늘 아침 7시?”
“응.”
“그럼 어제가 아니잖아, 늦게 잔 정도도 아니고.”
헤라는 그렇게 생활하면 몸 망가진다는 둥, 밥은 제때 먹으라는 둥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녹턴은 고개를 끄덕였다. 싫은 기색은 없었으나 제대로 듣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때 열린 문틈에서 작은 개 한 마리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개는 손님을 발견하곤 꼬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동그란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쿤의 얼굴이 환해졌다.
“녹턴 씨 강아지예요?”
“아니, 길강아지. 얘들한텐 우리 집이 아지트거든.”
헤라가 옆에서 아예 눌러앉은 애들도 많다며 덧붙였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강아지가 녹턴의 곁에 딱 달라붙어서 그런 걸까. 쿤은 어쩐지 어렵고 어색했던 그녀가 조금 친근하게 느껴졌다.
“인사해도 되나요?”
“그래.”
쿤은 천천히 자리에 쭈그려 앉았다. 그리고 개가 놀라지 않도록 작은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
마치 어린아이한테 하듯 조곤조곤한 목소리였다. 그렇게 가만있자 호기심이 동한 것인지 개가 다가와 쿤의 손에 코를 박았다.
쿤은 행복에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윽. 너무 귀여워. 심장에 안 좋아.”
“개 좋아해?”
“동물들은 다 좋아해요.”
“사강이랑 비슷하네.”
“그래요?”
워낙 이상한 걸 많이 만드는 데다 기계 속에 파묻혀 살아서 동물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는데 아무래도 제 선입견이었나 보다.
“식물도 좋아하고 동물도 좋아해. 근데 걔 털 알러지가 있거든. 그래서 매번 멀리서 지켜보기만 해.”
“안타깝네요.”
한참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던 개는 쿤이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 판단했는지 쓰다듬어 달라며 머릴 내밀었다.
“엄청 순하네요. 이름이 뭐예요?”
“너구리.”
…진짜?
쿤은 녹턴을 올려다봤다. 정말인지. 혹여 농담은 아닌지. 그러나 그녀의 표정에선 조금도 농담 같지 않았다. 앞머리 사이로 엿 비친 눈 또한 한없이 진지했다.
“…참 멋진 이름이네요.”
헤라가 진심이냔 시선을 보내왔다. 쿤은 아무것도 모른 척 이를 외면했다.
“근데 둘 다 무슨 일이야?”
“혜성 씨가 심부름을 시키셨어요.”
쿤은 개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서류 봉투를 녹턴에게 건넸다.
문뜩 쿤의 시선이 녹턴의 손에 꽂혔다. 가늘고 긴 손에 어제까지만 해도 없던 반창고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다치셨어요?”
쿤의 질문에 헤라 또한 뒤늦게 상처투성이의 손을 발견하곤 화들짝 놀랐다.
“이모, 손이 왜 그래?!”
“아…… 애들 집 좀 만들다 다쳤어.”
“으~ 내가 못 살아. 나중에 시간 날 때 만들자니까.”
“내일 비 온다잖아. 미리미리 만들어야지.”
“손재주도 없으면서. 내가 도와줘? 나 오늘 일없어.”
“너 망치질 못 하잖아. 손 다치면 어쩌려고.”
“이모보단 잘해. 그리고 이모가 만드는 건 집 기능을 못 하잖아.”
“…….”
정말인지 녹턴에 입을 꾹 다물었다. 쿤은 가만히 이를 보다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기, 저 큰누나 때문에 망치질 배웠는데 집 만드는 거 도와드릴까요?”
“그럴 필요까진…….”
“정말요? 그럼 같이 만들고 가요.”
헤라가 쿤의 손을 잡으며 초롱초롱 눈을 빛냈다. 그리고 이모 혼자 두다간 손가락이 남아나질 않을 거라는 둥, 애먼 재료만 버릴 거라는 둥 쉼 없이 조잘거렸다.
잔소리인지 핀잔인지 걱정인지 알 수 없는 말에 결국 녹턴이 한숨을 푹 내쉬며 항복을 외쳤다.
“미안하지만, 부탁 좀 할게.”
쿤은 활짝 웃으며 호언장담했다.
“맡겨만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