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22
21화-오즈벨의 판테테 (08)
맡겨만 달라던 쿤의 기세는 뒷마당을 본 순간 파스슥 사라지고 말았다.
쿤은 마치 현대미술이라도 한 것처럼 기괴한 나무판자 조형에 미간을 좁혔다.
“혹시나 싶어 여쭙는 건데요, 이게 만드셨다던 개집인가요?”
“맞아.”
맞다고? 진짜?
쿤은 다시 한 번 나무판자 조형을 내려다봤다.
육면체를 만들기 위해 열심히 힘을 쓴 것 같으나 모퉁이가 하나도 맞지 않고, 지붕 대신 얹어놓은 합판은 뒤틀려 악어 입처럼 쩍쩍 벌어져 있었다.
가장 아이러니한 건 톱으로 뚫어 놓은 문인데 그 모양이 어찌나 독특한지 개가 게처럼 옆으로 걷던가? 하는 때아닌 의문을 심어주었다.
‘진짜 손재주가 없으시구나…….’
제 둘째 누나도 저세상 손재주를 자랑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거기다 녹턴은 단순하게 뭔가를 만드는 쪽에만 재능이 없는 게 아니었다. 그녀는 청소나 정리정돈에도 재능이 없는지 뒷마당 전체가 정리한 것 같으면서도 난장판인 아이러니한 광경을 연출했다.
‘동물도 많은데 이래도 돼?’
강아지나 고양이들이 다치는 게 아닐까 싶어 살펴보니, 그래도 위험한 물건은 따로 정리해 크게 다칠 것 같진 않았다.
하지만 돼지우리나 다름없는 공간이 안전한 건 또 아니었기에 쿤은 개집을 만들기 전에 뒷마당 청소를 해야만 했다.
“보보 씨네는 잔디도 키가 똑같던데, 여기는 같은 나무판자도 제각기 놓여 있네.”
쿤이 중얼거리며 판자들을 모으자 옆에서 이를 돕던 헤라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서 이모는 보보 오빠가 오는 걸 싫어해요. 오면 잔소리한다고요.”
“보보 씨도 여기 오는 걸 싫어하지 않을까.”
“어… 생각해 보니 그러네요.”
“근데 이 정도면 그냥 개집을 하나 사는 게 더 낫지 않아?”
쿤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시중에서 파는 게 마냥 부실한 것도 아니고, 목공을 좋아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왜 굳이 만들려는지 모르겠다.
비싸서 그런가 싶을 때 헤라가 말했다.
“그런 건 아니고요. 이모가 집에 사람 오는 걸 엄청 싫어해서 그래요. 개집같이 큰 물건은 보통 배달해 주잖아요. 설치해 주는 곳도 있고요. 그래서 싫대요.”
“아…….”
“반대로 동물병원에 가거나 나가서 직접 사와야 하는 것들은 다 단장님 이름으로 달아놔요.”
“어째 좀 비효율적이네. 그리고 배송 같은 건 다른 분한테 가져다 달라 부탁하면 되지 않아? 마차를 타고 오거나.”
“아, 이모 마차 못 타요. 멀미가 엄청 심해서 잠깐 타도 토하거든요. 그리고 다른 분들한테는 성가셔져서 부탁 안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냥 해도 되지 않을까 싶던 쿤은 오늘 만났던 이들을 떠올리곤 절로 고갤 끄덕였다.
제가 생각해도 부탁이 부탁으로 끝날 위인들은 아니었다.
“내가 많이 도와드려야겠다.”
“그래 주면 저야 감사하죠.”
쿤은 헤라를 위해서라도 녹턴에게 더 잘하기로 마음먹었다.
약 삼십 분이 지나고, 얼추 정리를 끝낸 쿤은 개집 만들기에 돌입했다.
쿤은 순식간에 새로운 도면을 만들고 공구질을 해댔다. 큰누나를 도와 무대 장치를 만들던 게 빛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그사이 헤라와 녹턴은 강아지와 고양이들이 쿤 곁에 가지 못하도록 열심히 장난감을 흔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좀 더 흘러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갈 즈음, 쿤은 목장갑을 벗고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훔쳤다.
두 채에 달하는 큼직한 개집과 고양이들이 쉴 수 있는 제 키 높이의 계단 타워 하나가 완성됐다. 모서리까지 매끄럽게 다듬어 애들이 다치거나 할 일은 없어 보였다.
“오늘은 이 정도만 하고, 다음에 몇 채 더 만들어 드릴게요.”
“고마워.”
녹턴이 아까에 비해 한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저녁이라도 대접하면 좋은데 집에 음식이 하나도 없네.”
쿤은 강아지와 고양이들에게 둘러싸인 녹턴을 보며 작게 웃었다.
“괜찮아요. 점심 푸짐하게 먹고 와서 아직 든든해요.”
“내가 나중에 밥 한번 살게.”
그럴 필요까진 없었지만, 여기서마저 사양하면 녹턴이 불편해할 것 같았기에 쿤은 알겠다며 고갤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뒷정리까지 깔끔하게 해준 쿤은 조만간 숙소에서 보자는 말을 끝으로 녹턴의 집을 나왔다.
길을 따라 걷자 헤라가 기다렸다는 듯 물어왔다.
“좀 더 쉬다 오지, 왜 이렇게 빨리 나오신 거예요?”
“어? 헤라, 녹턴 씨랑 있고 싶었어? 그럼 그래도 돼. 나 여긴 길 알아서 혼자 갈 수 있어.”
“그게 아니라 혹시 이모가 불편하게 했나 싶어 그래요.”
그러면서 슬쩍 눈치를 살피는 것이 녹턴이 무언가 실수를 해서 쿤의 기분이 상한 게 아닐까 걱정하는 듯했다.
“그런 거 아니야. 녹턴 씨 엄청 상냥하셨어.”
“그럼요?”
“녹턴 씨 집에 사람 들이는 거 싫어하신다며. 불편하지 않게 자릴 피해준 거야.”
쿤은 녹턴과 만난 지 이제 겨우 하루 됐다. 같은 단원이긴 하지만, 남 못지않게 불편할 것이다.
아마 헤라가 함께 있기에 들인 거겠지. 그 긴 시간 불편을 참은 것도 헤라와 개집 때문일 테고.
“사실 더 빨리 만들어주고 나오려고 했는데, 오래간만에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어.”
“…….”
“왜 그렇게 쳐다봐?”
“충격받았어요. 이모도 착하고 보보 오빠도 착한데, 오빠만큼은 아니거든요. 진짜 부용 언니 봤을 때만큼의 충격이에요.”
“그 정도는 아닌데. 나 보기보다 이기적인 편이야.”
쿤이 민망함에 뒷머리를 긁적이자 헤라가 드물게 정색했다.
“오빠가 이기적이면 오즈벨은 악의 소굴이고 단장님은 마왕보다 더한 악의 보스일 거예요.”
어… 그래도 그건 좀 너무 간 비유 아닌가? 혜성 씨가 좀 특이하긴 해도 나라를 말아먹을 정돈 아니잖아.
쿤은 작게 웅얼거렸지만, 헤라는 이를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결국 쿤은 식은땀을 흘리며 화제를 돌려야만 했다.
“그, 그보다 오늘 나 때문에 괜한 고생 했네.”
“고생은요. 진짜 재밌었어요. 모처럼 평화로워서 좋았고요.”
그러고 보니 오늘은 차원문도 안 나타났고, 큰 문제도 없었구나.
로비츠 영지에선 이런 게 일상이다 보니 자각하지 못했는데 오즈벨에선 드문 평화가 맞았다. 판테테 입장에선 더더욱 말이다.
쿤은 고개를 돌렸다. 해안가 도로에 접어든 것과 동시에 시야가 확 트이며 바다의 전경이 고스란히 들어왔다.
새벽과는 판이하게 다른 붉은 바다가 마치 길었던 심부름의 끝을 축하하는 것 같았다.
“오빠는 오늘 어땠어요? 부용 언니 말곤 다 만나봤잖아요.”
헤라는 쿤의 앞에 서서 뒷걸음질로 걸었다.
쿤은 헤라에 맞춰 보폭을 좁히고 걸음을 천천히 했다.
“음… 사실 잘 모르겠어. 사람 성격이라는 게 한 번 본다고 파악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솔직히 다들 하나같이 독특하고 내가 겪어왔던 인간군상하고 달라서 잘 지낼 수 있을지 좀 걱정되네.”
쿤이 어깨를 으쓱이며 쓰게 웃어 보이자 헤라가 기운을 실어주듯 힘차게 말했다.
“괜찮아요. 쿤 오빠라면 잘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다들 보기보다 착해요. 분명 오빠도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거예요.”
“그렇겠지?”
“그럼요. 혹시 누가 괴롭히면 말하세요. 제가 다 혼내줄게요.”
헤라의 호언장담에 쿤이 소릴 내어 웃었다. 불안했던 자신감이 다시 채워지는 것 같았다.
쿤이 헤라에게 저녁을 사주고 숙소로 돌아왔을 땐, 이미 날이 저문 후였다.
“다녀왔습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쿤은 어둠이 내려앉은 집안에 고갤 갸웃거렸다.
“아무도 없나?”
조심스럽게 이동에 불을 켜니 텅 빈 거실이 시야에 들어왔다.
혹시 몰라 혜성과 은의 저녁거리를 포장해 왔는데 그런 노력이 무색할 만큼 빈집 특유의 서늘함이 가득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올 걸 했다. 아니면 재료를 사와 저가 해주던가.
“부엌에 두면 드시려나?”
멋쩍게 거실을 가로질러 가던 쿤은 거실 소파 테이블에 놓여진 종이 한 장을 보곤 걸음을 멈췄다. 활자를 찍은 것처럼 유려하면서도 정교한 필체가 새하얀 종이 위에 적혀 있었다.
오늘 안 들어올 거야. 저녁은 다음에 같이 먹자. -혜성.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밥은 각자 먹는다는 둥, 남의 생활에 신경쓰지 않는다는 둥 하시기에 제가 어떻게 지내든 신경 안 쓸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쿤은 재킷 안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내 종이 밑에 짧은 글을 남겼다.
네, 기대할게요. -쿤.
그리고 음식을 주방에 둔 뒤, 제 방으로 올라갔다.
* * *
헤라는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집으로 향했다.
판테테 체험생으로 여러 일을 해왔지만, 오늘처럼 즐거운 적은 드문 것 같았다. 가장 좋은 건 새로 온 판테테가 무척이나 상냥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부용 언니도 그렇고, 쿤 오빠도 그렇고. 비마법사 판테테들은 다 착한가?”
아니면 착한 비마법사 판테테만 골라서 오즈벨에 오는 걸까?
답이 뭐든 제 주변에 좋은 사람이 많아지는 건 기쁜 일이었다.
연신 흥얼거리며 걸어갈 때,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담벼락을 타고 걷는 게 보였다. 헤라는 서둘러 모퉁이를 돌았다. 그러자 그러기 무섭게 익숙한 목소리가 헤라를 불러 세웠다.
“야.”
삽시간에 즐거웠던 기분이 착 가라앉았다.
마음 같아서야 이대로 무시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저를 달달 볶을 게 안 봐도 뻔했기에 헤라는 한숨을 푹 내쉬며 몸을 돌렸다.
“왜.”
헤라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담벼락 위에 있던 티아문이 뛰어내렸다.
“나 참. 어째 오늘은 얌전히 넘어가나 했다.”
티아문은 헤라가 판테테 지부에 다녀올 때마다 이렇게 몰래 찾아왔다.
데려다주겠다는 쿤의 제안을 거절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마음 같아서야 확 무시하고 싶지만, 그랬다간 더 귀찮게 굴겠지.
“뭔데. 오늘은 또 뭐가 궁금해서 이러는데.”
헤라는 짜증을 담아 말을 뾰족하게 세웠으나, 티아문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아까 그 아저씨 정체가 뭐야?”
“쿤 오빠 말하는 거야?”
“그럼 그 인간 말고 또 있냐?”
톡 쏘듯 까칠한 어투에 헤라가 얼굴을 구겼다. 보보는 상냥하고 다정하기 그지없는데 어째서 티아문은 저렇게 재수 없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새로 온 판테테라니까. 그리고 아저씨는 아니지. 보보 오빠보다 한 살이나 어린데.”
“미성년자한테 오빠 소리 듣고 싶어 하는 놈이면 다 아저씨지.”
“내가 오빠라 부른다 했거든. 그리고 그 논리면 보보 오빠도 아저씨고.”
“우리 형은 아니지. 일단 얼굴부터 아저씨가 아니잖아.”
얼씨구. 그럼 쿤 오빠는 얼굴이 아저씨게?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헤라였지만, 더는 티아문과 입씨름하고 싶지 않았기에 대충 손을 휘저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이상한 사람 아닌 거 확실해? 구린 게 있는 거 아냐? 그게 아니면 왜 이 시기에 오즈벨에 와.”
“오빠 말론 단장님한테 스카우트받았다던데?”
“그럼 더 이상하잖아. 단장 새끼가 아무나 스카우트하냐고. 거기다 오늘 그 심부름. 너도 알다시피 단장 새끼가 그런 심부름을 시킬 인간이 아니잖아.”
티아문의 질문에 헤라가 허릴 짚었다.
그 말대로였다. 혜성은 물건을 전달하라는 심부름 따위는 절대 시키지 않았다. 서류의 경우는 더더욱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