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23
22화-오즈벨의 판테테 (09)
“뭐… 확실히 단장님이 그런 심부름을 안 시키긴 하지.”
헤라의 수긍에 티아문의 목소리가 살짝 낮아졌다.
“줄 게 있어도 가지러 오라는 사람이야. 개미집 밖으로 자료가 나가는 것도 싫어하는 인간이 그런 심부름을 시키는 데 넌 하나도 안 이상해?”
“응. 안 이상해.”
“안 이상하다고?”
“응.”
헤라는 피식 웃으며 팔짱을 꼈다.
“애초에 그 심부름은 핑계야. 그냥 인사시켜 주려고 없는 심부름 만든 거라고.”
티아문이 미간을 좁혔으나 헤라는 일을 무시하고 마저 말을 이었다.
“쿤 오빠는 아직 오즈벨에 대해 모르잖아. 다른 분들하고 제대로 된 인사도 못 했고.”
차원이동자를 돌려보내고 난 다음 날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암묵적인 휴일이었다.
단원들이 개미집에 올 일도 없기에 쿤이 모두를 만나려면 직접 돌아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모두 어디 사는지 알아놔야 하니까. 인사도 시켜줄 겸 길 외우라 그런 거겠지. 그게 아니면 뭐하러 나한테 안내까지 시켜.”
“…….”
“그리고 쿤 오빠 나쁜 사람 아니야.”
헤라는 오늘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보보의 기피나 루가 보인 제멋대로인 행동에 쿤은 둘을 탓하고 기분 상해하기보단 제가 뭔가 실수했나를 먼저 생각했다.
사강이나 은, 키리기스를 만났을 때도 비슷했다. 호기심이 무례를 넘지 않았고, 배려의 선을 지켰다. 녹턴과 있던 건 두말할 것도 없었다.
“쿤 오빠가 애매한 시기에 온데다 단장님이 안 하던 심부름을 시켜서 네가 의심하는 건 이해하는데, 진짜 이상한 거 없어. 네가 과민하게 반응하는 거야.”
“확실해?”
“내 감으론 확실해. 그리고 만에 하나 다른 이유나 어떤 비밀이 있다 해도 다들 알아서 잘 해결하지 않을까?”
헤라가 신뢰를 가득 담아 말했다. 하지만 티아문에겐 모든 게 탐탁찮을 뿐이었다.
“인간방패 공무원이 뭐가 좋다 그러는지…… 넌 다 별로인데 그 믿음이 제일 별로야.”
“야, 보보 오빠도 판테테거든? 네가 판테테를 욕하는 건 보보 오빠를 욕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누가 몰라? 그래서 지금 형 사표 쓰게 하려고 박 터지게 고민하는 거잖아.”
보보가 판테테를 그만둘 확률은 0에 가까웠지만, 헤라는 굳이 그 이야길 입 밖으로 꺼내 티아문을 화나게 하지 않았다.
티아문은 다시 담장 위로 올랐다. 높이가 꽤 있는 담이었음에도 그의 움직임은 한 마리의 고양이처럼 가벼웠다.
“어쨌든 판테테를 너무 믿지 마.”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티아문이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리란티아에서 거기만큼 썩은 곳도 없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순식간에 사라진 티아문을 보며, 헤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쟤는 대체 언제 철 들려나.”
헤라는 몸을 돌려 골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향했다.
* * *
판테테 지부 지하 자료실. 푹신한 소파에 기대 책을 읽던 혜성은 탁상에 빼놓은 귀걸이가 진동하는 것을 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책을 내려놓고 걸음을 옮겼다.
리란티아에 있는 모든 판테테 지부 밑에는 지하 공간이 따로 있었다.
판테테 과학과 기술의 집합지. 그리고 해당 지부의 판테테들만이 이용할 수 있는 비밀 공간. 혜성은 지하의 문이 아닌 옆의 벽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그의 손을 중심으로 황금색 빛이 거미줄을 그리듯 뻗어나갔다.
쿠우웅.
육중한 소리와 함께 벽이 갈라지며 숨겨져 있던 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쿤은 물론, 헤라도 알지 못하는 지하의 또 다른 공간이었다.
혜성은 쓰고 있던 독서용 안경을 셔츠 앞주머니에 넣은 후, 어둑한 복도를 따라 걸었다. 중간중간 여러 갈래의 갈림길과 정체 모를 방이 방향을 어지럽혔지만, 마치 지도를 보고 걷는 사람처럼 막힘없었다.
그렇게 한참 더 걷자 작은 문이 하나 나왔다.
혜성은 문을 열었다. 새하얀 빛과 함께 커다란 원형 테이블에 둘러 앉아 있는 단원들이 보였다. 사강의 연구실, 녹턴의 집, 근처 산, 그 외 마을 곳곳에 자리한 비밀 통로를 타고 온 거였다.
“은이는 없네.”
혜성의 혼잣말에 사강이 턱을 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걔가 네가 있는데 오겠냐.”
“것도 그러네. 아, 다들 우리 신입하곤 인사 잘했어?”
혜성이 자리에 앉으며 물었다. 단원들의 반응은 천차만별이었다. 보보는 쿤을 문앞에서 보냈단 사실에 괜히 찔려 했고, 루는 내키지 않았다는 듯 이맛살을 찌푸렸다.
반면 녹턴은 답지 않게 편안한 얼굴로 고갤 끄덕였으며, 사강은 뭐 좋은 일이라도 있었는지 신나게 떠들었다.
“야. 걔 보는 눈이 있더라. 물건 볼 줄도 알고. 머리털 나는 약은 부작용만 없으면 의학계가 발칵 뒤집힐 거라며 칭찬하더라고. 골리는 재미도 있어서 한동안 심심하진 않겠어.”
“그래?”
“근데 그거 물어보려고 모은 거냐? 난 가짜 심부름까지 만들어서 애 인사시키기에 오늘은 소집 안 할 줄 알았는데.”
사강의 말대로 혜성이 쿤에게 시킨 심부름은 가짜였다. 봉투 안에도 텅 빈 백지밖에 들어 있지 않았다.
“이럴 거면 애 뺑뺑이 돌리지 말고 그냥 지금 인사시키지 그랬냐.”
“그러게나 말이야. 나도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애를 수고스럽게 돌리지 않았을 텐데.”
혜성이 그리 말하며 싱긋 웃어 보였다.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와 달리 속을 알 수 없는 시선이 키리기스를 향했다. 사강은 그제야 오늘 소집이 누구로 인해 이뤄진 건지 깨달았다.
“뭐야. 선생이 모이라 한 거야? 혜성이가 모이라고 했다며.”
“직접적으로 말은 하지 않았지. 하지만 그게 그거 아닌가 싶군.”
키리기스는 그리 말하며 서류 봉투 하나를 책상에 던지듯 내려놓았다. 쿤이 몸소 돌며 배달하고 다녔던 봉투와는 달리 고급지로 만들어진 값비싼 봉투였다.
“이건 또 뭔데.”
“답안지.”
“답안지?”
사강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봉투를 열었다. 그러자 최근 3년간 치렀던 판테테 시험의 답안지가 우수수 쏟아졌다.
“오래간만에 보내. 근데 이건 왜… 잠깐, 내가 지금 뭘 본 거야?”
답안지를 살펴보던 사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혹시 모른단 생각에 다시 답안지들을 살폈다. 그러나 그가 본 게 잘못이 아니듯 88, 91, 92, 95, 93, 97이란 점수가 연달아 찍혀 있었다.
믿기지 않을 만큼 높은 고득점에 사강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판테테는 인력난이 심하다 보니 1차 시험의 합격점이 타 기사 시험에 비해 낮은 편이었다. 최소 합격점도 40점밖에 되지 않았고, 문제도 쉬웠다.
하지만 반대로 100점을 받기 힘든 것이 또 판테테 시험이었는데, 그건 끝자락에 나오는 십여 개의 문제가 극악의 난도를 자랑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 문제는 판테테를 뽑는다기보단 본부의 판테테를 뽑기 위한 시험이었다. 그니까 본부에서 일할 엘리트들을 판별하기 위한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 문제를 맞히는 사람은 손에 꼽았기에, 90점을 넘긴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근데 그 점수가 눈앞에 있었다. 심지어 뒤늦게 발견한 가장 최근 답안지는 99점짜리였다.
“어떤 미친놈이 이렇게까지 공부를 했대? 설마 루 네 거야?”
“아뇨.”
“그럼 뽀… 는 아니지. 넌 턱걸이로 붙었으니까. 녹턴은 다른 시험을 봤고. 진짜 누구 거야?”
키리기스는 대답 대신 손가락으로 답안지의 윗부분을 가리켰다. 사강을 비롯해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답안지의 가장 우측상단. 응시생의 성격을 알 수 있듯 정갈하게 힘줘 쓴 글씨가 이름 칸에 적혀 있었다.
순간 모두의 시선이 딱딱하게 굳었다.
사강은 저도 모르게 그 이름을 따라 읽었다.
“……쿤?”
사강은 제가 잘못 봤나 싶어 또다시 답안지를 봤다. 하지만 정말로 쿤 한 글자가 힘줘 쓰여 있었다.
“쿤이면 여우 닮은 걔 맞지?”
“맞아요.”
루는 그리 답하며 답안지 하나를 주워 들었다. 아주 잠깐이긴 하지만 차원이동자의 가방을 회수하고 쿤의 짐이 맞는지 확인할 때 루는 쿤의 수첩에 적힌 이름을 보았었다.
그런데 그때와 같은 필체가 답안지에 적혀 있었다. 겨우 한 글자였지만 혜성 못지않게 정갈한 필체라 또렷하게 기억한다.
“진짜 쿤 거네요.”
“이 점수를 받은 애가 왜 여길 와?”
“그게 문제가 아니에요. 그 녀석 일곱 번이나 낙방했다고 그랬어요.”
“나도 들었어. 그러다 혜성이한테 스카우트받았다 그랬고.”
“하지만 이 점수는 아무리 봐도 낙방할 점수가 아니네요…….”
보보는 그리 말하며 키리기스를 쳐다봤다. 해답을 요하는 시선에 그가 입을 열었다.
“일곱 번이나 낙방했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야. 본부의 점수 합산지를 보면 여우 군의 점수는 30점대로 기재되어 있으니 말이야.”
“그게 뭐야. 그니까 누가 일부러 성적을 조작해서 떨어트렸단 거야?”
“그래.”
“왜?”
“성적을 조작해서 붙이거나 떨어트리는 이유는 여럿이 있지. 하지만 개중 그 어디에도 여우 군이 속하지 않아.”
보통 판테테의 성적을 조작해 떨어트리는 경우는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다른 누군가를 합격시키기 위해 만만한 이를 떨어트리는 것.
둘째. 원한이나 정치적인 이유로 판테테가 되는 걸 막기 위해 떨어트리는 것.
셋째. 위험한 판테테가 되지 않길 바라는 귀족가나 부호가 돈을 써 몰래 떨어트리는 것.
가장 대표적인 건 1번이나 판테테 1차 시험은 1급 판테테 시험과 달리 절대평가에다 합격자 수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 해당되지 않는다.
2번 역시 그랬다. 쿤의 인생은 판테테를 꿈꾼다는 걸 제하곤 평탄과 무난 그 자체였고, 그의 가족들 역시 원한을 살 이들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지금으로썬 3번이 가장 유력했다.
“하지만 여우 군은 평민이야. 친인척도 없고, 귀족이나 판테테와는 연 자체가 없지. 비마법사이기에 마법 단체와도 관련이 없네.”
그래, 쿤은 물론 그 주변 역시 평범이란 말이 부족할 만큼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판테테의 수뇌부들은 이렇게 평범한 이들에게 로비를 받지 않는다.
오히려 쿤의 특징이 마법사에게 적대적인 과학자나 비마법사들에게 잘 먹힌다는 걸 알고 정치적이나 선전용으로 써먹으려 혈안이 됐을 것이다.
“근데도 떨어트렸어. 아무리 생각해도 여우 군을 일곱 번이나 불합격시킬 이유가 없는데 말이야.”
“그래도 조작한 사람이 있을 거 아냐.”
“그게 내 가장 큰 의문이야.”
키리기스는 천천히 다리를 꼬며 말을 이었다.
“여우 군의 조작 사실은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금방 알아낼 수 있었어. 답안지 역시 손쉽게 얻어냈지. 하지만 이를 조작한 사람은 알아낼 수 없었어. 이 내가 말이야.”
혜성을 제한 모두의 눈이 호두알만 해졌다. 제아무리 대단한 귀족가라도 손쉽게 탈탈 털어내는 것이 바로 그 아니던가. 그만큼 그의 정보력은 리란티아 내에서도 손꼽혔다.
그런데 그런 키리기스가 아무리 뒤져도 누가 이 조작을 실행했는지 알아낼 수 없었다.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하지만 개중 가장 아이러니한 건 그런 여우 군을 보기 좋게 스카우트한 우리의 보스겠지.”
“내가 조작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글쎄. 하지만 네가 아무 이유 없이 데려오진 않았겠지.”
“이런. 실망시켜 미안하지만, 쿤을 데려온 건 정말 순수한 호의였어. 거기에 날 도와준 약간의 보답이 더해진 거지.”
“늘 그랬듯 의심은 우리 몫이라 이거군.”
“사실을 말해도 믿지 않네.”
혜성은 서운하다 말했지만, 그의 말과 표정 어디에서도 서운한 기색을 읽을 수 없었다. 키리기스가 밝힌 내용 역시 알고 있던 사람 같았다.
“그보다 이제 다른 이야기 좀 할까? 이왕 모인 거 쿤을 누가 맡을지 좀 정했으면 하는데.”
“난 사양하겠어. 누구 때문에 조사해야 할 일이 늘어서 말이야.”
“아쉽네. 그럼 누구 적합한 사람 없을까?”
다들 조용히 눈치를 살폈다.
귀찮고, 번거로운 신참 관리. 무엇보다 지금 막 들은 이야기 탓에 마음이 영 내키지 않았다.
누구 하나 반기지 않는 일이 발생했을 때, 집단이 하는 일은 의외로 뻔했다. 가장 만만한, 동시에 가장 거절하기 힘든 이에게 떠맡기는 것.
사회생활의 좋지 않은 예를 보여주듯 모두의 시선이 보보를 향했다.
“그럼 보보가 하는 걸로 할까?”
혜성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보보는 아무 답도 하지 못했다. 그저 마른침과 함께 내뱉지 못할 불만을 함께 삼킬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