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31
30화-첫 담당 (08)
낯설면서도 어딘가에서 들어본 듯한 목소리였다.
“제발 좀 그만해!”
화가 잔뜩 섞인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그리고 뒤이어 무언가가 넘어졌는지 쿵 하는 소리가 복도까지 울렸다.
쿤은 서둘러 소리가 난 곳을 향해 달렸다.
혹시 싸움이 난 건가 싶던 그때, 반쯤 열린 병실 문이 보였다.
저도 모르게 걸음이 멈췄다. 새하얀 병실에 보보와 그의 동생인 티아문이 있었다. 발치에 쓰러진 의자가 힘없이 굴러갔다.
티아문은 침대에 앉아 있는 보보를 향해 울분을 토해냈다.
“이제 진짜 지겨워. 내가 대체 어디까지 이해해야 해? 내가 형 다쳤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무슨 심정인지 알아?”
티아문이 두 주먹을 꽉 쥐며 소리쳤다.
“나 이제 형 걱정하기 싫어!”
“…미안해.”
“미안하단 소리 말고 그냥 그만두면 안 돼?”
“티아문…….”
“형 제발… 우리 좀 평범하게 살자. 왜 매일 심장 졸이면서 살아야 하는 건데. 나 진짜… 형까지 잃고 싶지 않아.”
절규에 가깝던 목소리가 울음을 머금었다. 너무나 애절해서 듣는 이가 다 아플 정도였다.
보보는 길게 숨을 내쉬며 마른세수를 했다.
티아문의 처절함만큼이나 보보의 참담함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는 다시 한번 숨을 고르더니 동생을 향해 태연히 말했다.
“미안해. 이제 이런 일 없을 거야.”
“형.”
“나 이제 진짜 괜찮으니까, 너도 어서 학교 가.”
“형!”
“티아문.”
“…….”
티아문이 분을 참듯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움켜쥔 주먹이 잘게 떨렸다.
그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미처 숨지 못한 쿤은 병실을 나오는 티아문과 딱 마주치고 말았다.
아이의 눈이 크게 떠지더니 이내 매섭게 노려봤다. 소리가 들리진 않았으나, 작은 입이 욕을 내뱉었단 건 알 수 있었다. 그것이 저를 향한 것인지 상황을 향한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티아문은 그대로 쿤을 스쳐 지나갔다.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이걸 어째야 하나 고민되던 와중에 쿤을 발견한 보보가 침대에서 일어났다.
“쿤 씨?”
“…….”
망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점심 지나서 올걸.
“음… 죄송해요. 일부러 엿들으려 한 건 아니고요, 싸움이 난 줄 알고 왔다가… 정말 우연히… 죄송합니다.”
쿤의 목소리가 점점 기어 들어가더니 이내 사라졌다. 보보는 아니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아요. 그보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병문안 왔어요.”
“아… 병문안은 오래간만이네요. 감사합니다.”
마치 들어오라는 듯한 태도에, 쿤이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병실 안으로 들어서자 깨끗하고 환한 내부가 보였다. 보보의 취향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삭막하리만큼 휑한 병실이었다.
쿤은 탁상에 병문안 선물을 올려두며 물었다.
“팔은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부러진 곳도 없고, 어깨도 놀란 게 다래요.”
붕대를 칭칭 감아놔서 그렇지, 심한 상태는 아니란 말에 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열흘은 못 움직인다고 하셔서 놀랐어요.”
“아, 그거 마법 반동 때문이에요.”
쿤이 고갤 갸웃거렸다. 보보는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싶어 잠깐 생각을 골랐다.
“흡혈 마법이란 게 따지고 보면 능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리는 거거든요. 그래서 마법이 풀리면 근육통부터 시작해서 몸 이곳저곳이 아파요. 심할 때는 아예 못 움직이고요.”
“아… 여러모로 힘든 마법이네요.”
“그렇죠. 조건도 까다롭고, 후유증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쿤 씨 피랑은 상성이 잘 맞아서 다행이에요. 안 맞으면 더 아프거든요. 은이 씨 피는 아예 삼키지도 못했어요.”
그렇구나. 흡혈 마법이라기에 피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인제 보니 피에 따라 다른 모양이다.
어쨌든 다행이었다. 제 피와 상성이 잘 맞다면 필요할 때마다 제 피를 내어주면 되니 말이다.
“아, 키리기스 씨가 제 눈에 대해 물어봤다면서요? 모른 척해주셨다고도 들었어요. 오즈벨 지부 판테테 분들은 저에 대해 다 알고 계셔서 말해도 괜찮아요.”
쿤은 머쓱하니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그런 것 같긴 했는데, 그냥 아무 말 안 했어요.”
“왜요?”
“약속했잖아요. 그럼 상대방이 알든 모르든 안 하는 게 맞죠.”
보보의 눈이 살짝 커졌다.
“쿤 씨는 참… 독특한 분 같아요.”
보보가 여전히 모호한 화법을 꺼냈다. 그러나 이번엔 무슨 뜻인지 확실히 알 것 같았다.
“감사합니다.”
쿤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리고 이에 맞춰 보보 역시 작게 웃어 보였다.
보보랑 만난 이래 처음으로 편한 분위기가 풍겼다. 어제까지 따라붙던 불편함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제가 보보의 비밀을 알아서겠지. 어쩌면 함께 고생한 게 있어 그런 걸지도 모른다.
답이 뭐든 쿤은 보보와 친해졌단 사실이 기뻤다.
“그보다 앞으론 어쩌죠? 혜성 씨께 여쭤보니까, 보보 씨가 퇴원할 때까지 대기하거나 다른 분으로 담당 선배를 교체한다더라고요. 보보 씨는 어떤 게 편하세요?”
쿤은 내심 그가 저를 붙잡아주길 바랐다. 하지만 삽시간에 굳어진 보보의 표정이 쿤의 바람과 정반대, 아니, 가장 싫은 방향으로 흘러감을 알려주었다.
“죄송하지만, 전 아직도 쿤 씨가 판테테가 되지 않았으면 해요.”
훈훈했던 분위기가 삽시간에 찬물 끼얹은 것처럼 가라앉았다.
쿤은 길게 숨을 뱉으며 불안으로 쿵쿵거리는 심장을 진정시켰다.
“보보 씨가 계속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제가 낙하산이라서 그런 건가요?”
“아뇨, 전혀 아니에요. 쿤 씨가 낙하산이라 생각한 적도 없고요.”
“그럼 왜 저를 계속 밀어내셨던 거죠?”
“그건…….”
보보는 입술을 달싹이다 입매를 굳혔다. 생각을 고르는지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그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초조해지는 건 쿤이었다. 쿤은 두 주먹을 꽉 쥐며 초조함을 견뎠다.
잠시 후, 보보가 긴 침묵을 깼다.
“일단 사과부터 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떤 이유가 있든 옳지 못한 행동이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선 다시 사과드릴게요.”
“제가 듣고 싶은 건 사과가 아니에요. 그 이유라고요.”
쿤이 강하게 말했다. 가까스로 억누른 평정 아래로 희미한 분노가 엿보였다.
보보가 숨을 골랐다.
“사실 처음부터 쿤 씨를 믿지 못했습니다.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았거든요. 하지만 단장님이 데려온 사람이고, 제가 맡게 됐으니까 어떻게든 가르치려 했어요. 그런데 그때, 쿤 씨가 제게 가족 이야기를 해줬을 때… 쿤 씨는 판테테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쿤 씨한텐… 무슨 일이 생기면 슬퍼할 사람이 너무 많으니까요.”
가장 많이 들었던 말. 동시에 가장 듣기 싫은 말이 들려왔다.
쿤은 기가 막혔다.
“제가 그 정도 각오 없이……!”
“단순히 죽을 각오를 말하는 게 아니에요!”
보보가 처음으로 쿤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보보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차원문이 얼마나 위험한지는 어린애도 압니다. 몇 번이나 시험을 치른 쿤 씨가 그걸 모를 리 없죠. 하지만 쿤 씨, 차원문은 세상에 알려진 것보다 훨씬 더 잔인하고 끔찍해요. 차원이동자한테 산 채로 잡아먹히는 사람도 있고, 사지가 찢어지는 사람도 있고, 뼈째… 녹아 사라지는 사람도 있어요.”
보보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그만큼 차원문에 의한 죽음은 처참했다. 이는 전쟁의 비참함과는 차원이 달랐다.
판테테의 죽음은 시신이라도 온전히 거두면 다행이고, 리란티아를 지키느라 애도를 할 시간조차 없었다. 추모 따위는 사치가 된 지 오래였다.
“가장 끔찍한 건 이 모든 비극이 너무나 쉽게 발생하고 쉽게 잊힌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비통은 유족이 감내해야 하죠.”
보보는 잠시 숨을 골랐다.
“판테테들이 가져야 하는 각오는 죽을 용기 따위가 아닙니다. 소중한 이들에게 내 죽음을 주어도 괜찮은지에 대한 각오죠.”
보보의 마지막 말이 쿤의 뇌리에 박혔다.
“전 쿤 씨가 이런 세계에 살지 않았으면 해요.”
어떤 정신으로 병실을 나섰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저 정신을 차렸을 때 쿤은 병원 입구에 있었다. 대화의 여파는 생각보다 꽤 셌다. 차라리 보보가 저를 낙하산이라서 싫어하는 게 나을 정도였다.
무거운 다리를 끌고 걸어갈 때, 병원 구석 벤치에 앉은 티아문이 보였다.
소년의 어깨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등을 보인 채 앉아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티아문이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알 것 같았다.
쿤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티아문이 눈치채기 전에 서둘러 자리를 피해줬다.
보보와 나누었던 대화, 거기에 병원 벤치에서 울고 있던 티아문.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 두통이 일 정도였다.
쿤은 한숨을 푹 내쉬며 숙소 현관문을 열었다. 몇 번이나 열었던 문인데 오늘따라 유독 무겁게 느껴졌다.
“다녀왔어?”
실내화로 갈아 신고 안으로 들어가니 혜성이 인사를 건넸다.
“다녀왔습니다.”
“보보는 어때?”
“잘은 모르겠지만, 괜찮으신 거 같았어요.”
쿤이 쓰게 웃어 보였다.
혜성은 들고 있던 신문을 접어 탁상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쿤을 빤히 쳐다봤다. 여우처럼 올라가 있던 쿤의 눈꼬리가 아래로 축 처진 것이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쿤.”
혜성이 제 옆자리 소파를 가리켰다.
누가 봐도 와서 앉으라는 손짓에 쿤이 한숨을 내쉬며 자릴 잡았다.
“무슨 일 있었어?”
“아뇨, 아무 일 없었어요.”
“그럼 표정도 아무 일 없는 표정을 지어야지.”
“…….”
“보보랑 티아문이 싸우는 거라도 봤어?”
쿤이 반사적으로 혜성을 쳐다봤다. 그가 다리를 꼬며 등받이에 몸을 묻었다.
“보보가 입원했다 하면 일어나는 일이거든. 그래서 다들 보보 병문안은 잘 안 가. 근데 그거 때문에 이렇게 시무룩한 거 같진 않고…….”
“…….”
쿤이 입을 다물었다.
혜성은 채근하지 않았다. 쿤이 복잡한 속내를 정리해서 말하든, 아니면 그대로 삼키든 그 선택을 존중할 생각이었다.
짧지 않은 침묵 후 쿤이 조심스레 질문을 건넸다.
“혜성 씨는 판테테 일을 하다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가족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해 본 적 있나요?”
복잡한 심경이 여실히 드러난 질문이었다.
혜성은 쿤이 보보에게 어떤 말을 들었는지 알 것 같았다. 애초에 그런 이유로 보보가 쿤을 밀어내고 있단 걸 눈치챘기에 크게 놀라울 것도 없었다.
“글쎄. 난 가족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 그리고 내 경우는 사랑하는 사람 시체를 보느니 내 시체를 보여주자 파라 썩 도움이 되진 않을 거야.”
“그런가요…….”
“보보가 그런 말을 했나 보지?”
“제 시신을 가족들에게 보여줄 각오가 되어 있냐고 하셨어요…….”
역시나.
혜성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선을 좀 넘긴 했지만 네가 싫어서 그런 건 아닐 거야. 본인이 절감한 게 있어서 너는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거겠지. 우리 중에 양쪽 다 겪은 건 걔밖에 없으니까.”
“그게 무슨…….”
순간 보보와 티아문이 병실에서 나누던 대화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설마…….”
“맞아, 보보 녀석 차원문 사태의 유족이야.”
심장이 쿵 소릴 내며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