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38
37화-별거 아닌 게 별거가 되는 순간 (06)
30분 정도가 지나자 보보가 필요한 물건들을 사왔다.
쿤은 미리 불을 피운 화덕에 솥을 올렸다. 그리고 숫돌에 칼을 갈며 동선을 계산했다.
칼과 솥을 비롯한 재료들도 부탁했기에 그럴 거란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쿤의 모습에 보보는 조금 당황했다.
“차원이동자한테 밥 해주려는 거예요?”
“네, 아무래도 보오보가 향수병이 온 거 같아서요.”
“제가요?”
“아뇨, 보보 씨 말고 보오보요.”
“보오보……?”
“아, 저 친구를 말하는 거예요.”
라며 쿤이 아직도 누워 있는 차원이동자를 가리켰다.
“저 친구 이름이에요.”
“…….”
보보는 아주 조금 기분이 미묘해졌다. 마치 친구네 강아지 이름이 저와 같을 때, 딱 그때의 느낌이었다.
“그, 그렇군요.”
“어쨌든 그래서 맛있는 거나 만들어주려고요.”
향수병을 극복하는 데 가장 좋은 건 고향의 정취나 좋아하는 이를 만나는 거였다. 하지만 둘 다 무리였다. 그래서 쿤은 제 경험에 기인하기로 했다.
“저희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요, 형이랑 누나들은 할아버지랑 살고, 저 혼자 할머니 손에 맡겨진 적이 있거든요.”
당시 쿤의 조모는 속세를 떠나 산속에서 혼자 살았다. 가뜩이나 가족들과 떨어졌는데, 주변에 사람도 없자 쿤은 금방 향수병에 빠지고 말았다.
“그때 제가 가족들을 너무 보고 싶어 하니까 할머니가 종종 달걀 수프를 끓여주셨어요.”
할머니가 요리사인 할아버지보다 유일하게 잘하는 음식이 바로 달걀 수프였다. 동시에 모친이 유일하게 할머니에게 배운 요리기도 했다.
“뭐, 엄마가 생각나서 슬프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거 먹고 기운 차렸거든요. 그래서 보오보한테도 뭐라도 해줄까 했던 거예요.”
“하지만 차원이동자가 뭘 먹었는지 모르잖아요.”
“고향의 맛을 재현하는 건 무리죠. 근데 뭘 좋아하는지는 알 수 있어요.”
입맛이란 건 보기보다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친숙하고 좋아하는 맛이 있다면 원래도 그런 음식을 먹었을 가능성이 컸다.
다행인 건 쿤이 그릇과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입맛을 알아내는 데 도가 텄다는 것이다.
더욱이 보오보의 경우는 이곳에 온 첫날 온갖 음식재료를 가져와 먹을 수 있는 걸 골라냈기 때문에 뭘 좋아하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보니까 채식을 주로 했는지 육류는 잘 안 먹더라고요. 단걸 좋아하고, 식감도 부드러운 걸 선호했어요. 아, 맞다. 찬 것보단 따뜻한 걸 좋아해요.”
불에 구워주는 음식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 걸 보면 저쪽에서도 조리가 있는 게 분명했다.
“여태는 여건이 마땅찮아서 생과일만 줬지만, 이렇게 된 거 원 없이 먹으라고 호박 수프나 잔뜩 끓이게요.”
그냥 쪄서 줄까 하는 생각도 하긴 했으나, 이왕 하는 거 제대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보오보가 맛있게 먹었으면 좋겠네요.”
쿤은 그리 말하며 호박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척 보기에도 두꺼운 껍질이 쿤의 손에서 손쉽게 잘려 나갔다.
보보는 그런 쿤을 가만히 구경했다. 특이한 사람이라곤 생각했지만, 설마 요리까지 할 줄은 몰랐다.
“차원이동자한테 이렇게 요리해 주는 사람 처음 봤어요.”
“보통 다 하지 않아요?”
“아뇨, 보통은 굶기죠.”
“아…….”
차원이동자가 이곳의 음식을 먹다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기에 규정상에도 어지간하면 아무것도 주지 말라고 되어 있었다.
하지만 쿤은 누군가가 굶는 꼴을 볼 수가 없었다. 공부 할 때에도 매번 욕했던 부분이었다.
“그래도 밥은 먹여야죠. 사람이 아무리 매정해도 밥은 줘야 한다고요.”
“그런가요?”
“그리고 보오보가 울고 있는데 어떻게 가만있어요. 뭐라도 해야죠. 가뜩이나 무능력한데 가만있으면 진짜 최악인 거잖아요.”
쿤이 음울하게 말하면서도 호박 껍질을 계속 벗겨나갔다. 호박 껍질이 옆에 수북이 쌓였다.
보오보는 눈물을 멈추고 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봤다.
보보 역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보보는 요리는 잘 못하지만, 그래도 자주 주방에 들어간 편이었다. 그래서 호박 껍질이 얼마나 벗기기 힘든지 안다. 그런데 쿤은 마치 종이를 자르는 것처럼 쉽게 껍질을 벗겨냈다.
요리를 잘하는 거야 이 많은 양을 태연하게 주문할 때부터 짐작했다. 하지만 그의 칼질은 단순히 잘한다기엔 그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쿤 씨, 칼질을 잘하시네요.”
“감사합니다. 그래도 이왕이면 식칼보다 판테테 검을 더 잘 다뤘으면 좋겠어요.”
쿤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면서도 손은 쉼 없이 움직였다. 칼이 마치 쿤의 신체 일부인 것 같았다.
보보는 이거야말로 엄청난 재능이 아닐까 싶었다. 적어도 오즈벨에서 저렇게 작은 칼을 잘 다루는 이는 없었으니 말이다.
물론 식칼이랑 단도는 사용법도 목적도 달랐다. 하지만 쿤의 행동을 보니 가르치면 금방 배울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묘한 재주가 많았지…….’
판테테 감옥 문도 쉽게 땄고, 감정적인 것 같은데 쉽게 이성을 찾았다. 저와 일을 할 때도 그랬다.
보보는 마냥 피했던 전과 달리, 처음으로 그를 냉정하게 보기로 마음먹었다.
인간적이지만 마냥 감성적이지 않은 성격. 묘하게 꼼꼼하고, 관찰력이 좋은 타입. 무엇보다 가장 큰 장점은 부지런하단 거였다.
지금이야 경험이 부족해서 그러지, 만일 경험이 쌓이면 우리 중 가장 다각적인 시야를 가지지 않을까?
‘…….’
보보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만약이란 단어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 * *
“애벌레야?”
불쑥 들려온 목소리에 부용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일으켰다. 뒤를 돌아보니 루가 팔짱을 낀 채 뚱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보오보의 거처인 절벽 위, 챙겨온 침낭에 들어가 아래를 구경하던 부용은 루의 얼굴을 확인하곤 가슴을 쓸어내렸다.
“놀랐잖아.”
부용은 침낭에서 나와 방석처럼 깔고 앉았다. 루 역시 그 옆에 앉았다.
“그렇게 불안하면 그냥 같이 있지 그래.”
“으음… 그건 그런데, 이것 말곤 답이 없는 것 같아서.”
부용은 그리 말하며 쿤을 내려다봤다.
쿤에겐 보고서 때문에 못 온다 했지만, 이는 거짓이었다.
문제가 생긴 것 자체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워낙 인망이 높은 부용이었기에 바쁜 건 상대 영지고 부용은 간단한 진위 확인만 하면 됐다.
그런데도 부용이 거짓말을 하며 자리를 피한 건, 쿤 때문이었다.
“자꾸 내 눈치를 보더라고. 뭘 해도 소극적이고. 처음 만났을 때보다 말수도 줄어들었어. 아무래도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거 같아.”
“그래?”
“왜 그러는지는 대충 알 것 같아.”
오즈벨은 타 지부에 비해 판테테 수준이 높았다. 마법사라 해도 실력 차를 느끼는데, 비마법사인 쿤은 어떻겠는가.
설상가상 보보가 쿤에게 좋지 못한 이야기를 했다고 들었다.
자기객관화가 잘 되는데다 이성적인 쿤에게 그 말은 그 무게보다 더 크게 다가왔을 것이다.
마음이 혼란스럽고 복잡할 것도 십분 이해가 갔다.
“그래서 애 혼자 두고 온 거야?”
“응. 저럴 땐 아무 말도 안 들리거든. 아무리 위로하고 응원해도 그게 전해지지 않으면 소용없잖아. 그니까 현실로 내던져야지.”
한가하게 상념 할 시간도 없고, 의지할 사람도 없는 상황에 내몰려야 불필요한 생각을 줄이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낼 것이다.
“그러다 자포자기라도 하면?”
“그럴 애였으면 진작 도망쳤을 거야. 그리고 고민이 깊다는 건 판테테에 그만큼 진지했단 거잖아. 그런 애가 아무것도 안 할 리 없지.”
실제로도 그랬다. 쿤은 자포자기하기보단 어떻게든 할 일을 찾았다.
부용이 놀란 건, 쿤이 다른 사람이 한 걸 따라 한 게 아니라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냈단 거였다. 그리고 그 기저엔 냉정한 판단이 깔려 있었다.
쿤이 준비한 식재료는 보오보가 다 먹어보고 안전하다 판단된 거였고, 하고 있는 요리 역시 보오보에게 낯설지 않은 조리법이었다.
“왜 본인이 재능 있다는 걸 모르는 걸까. 눈치도 빠르고, 판단력도 좋은데.”
“그래?”
“응. 잘 가르쳐 주면 진짜 크게 될 거 같지 않아? 차원이동자 돌보는 것도 나보다 잘하게 될 거 같아.”
“…….”
루는 가만히 부용을 쳐다봤다. 심드렁한 표정 뒤로 약간의 불만이 엿보였다.
“왜 그렇게 쳐다봐?”
“아냐. 근데 보보는 왜 보낸 거야? 네가 보보한테 쿤 혼자 있다고 말 한 거 아니야?”
“맞아.”
보보의 소심한 성격을 생각할 때, 쿤이 혼자 있다는 걸 알면 곧바로 절벽 아래로 올 게 뻔했다. 부용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럼 쿤이 혼자 있는 게 아니잖아.”
모순을 짚자 부용이 헤헤 웃어 보였다.
“그렇다고 애를 진짜 밤까지 혼자 둘 순 없잖아. 그리고 보보도 쿤하고 풀어야 앞으로 같이 일하지.”
뭣보다 부용은 임시고, 진짜 담당 선배는 보보였다. 그 타이틀을 달았으면 적어도 한 번은 후배를 제대로 가르쳐야 하는 게 맞지 않겠는가.
“흐음…….”
루는 다시 침음을 삼키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부용의 계획은 보보가 쿤을 가르치며 도와주는 거였겠지만, 어째서인지 상황이 반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루는 낑낑거리며 호박수프를 열심히 젓는 보보를 살짝 측은하게 쳐다봤다.
“그래서 언제 내려갈 건데?”
“해 떨어지기 전엔 가야지.”
“그때까지 계속 여기 있겠다고? 그냥 지금 내려가면 안 돼?”
“왜?”
“냄새가 좋아. 저거 맛있을 거 같아.”
루가 호박수프를 빤히 쳐다봤다. 세상 진지한 표정에 부용은 입매를 굳혔다.
“왜 그런 눈으로 쳐다봐?”
“난 네가 이럴 때마다 너무 신기해.”
“난 항상 네가 신기해.”
“그래도 내려가는 건 안 돼. 저녁에 갈 거야. 너도 가면 안 돼. 알고 있지?”
“쳇.”
루가 혀를 찼다. 부용은 나중에 쿤에게 만들어달라 할 테니 절대 내려가면 안 된다며 루를 거듭 막아 세웠다.
* * *
호박수프를 다 끓인 쿤은 보오보가 먹기 좋을 정도로 식힌 후, 솥째 건넸다.
보오보는 킁킁거리며 향을 맡더니 이내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그리고 순식간에 꿀떡꿀떡 마셨다. 보오보의 얼굴에 행복이 가득했다.
“다행이다. 맛있나 봐.”
보오보는 훌쩍이면서도 솥을 내려놓지 않았다. 맛있게 먹어주는 걸 보니 열심히 만든 보람이 느껴졌다.
“보보 씨, 보오보의 기분이 풀렸나 봐요.”
“…….”
“보보 씨?”
쿤이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아주 심각한 표정으로 그릇을 뚫어지라 쳐다보는 보보가 보였다.
어느새 한 그릇을 말끔하게 비운 보보는 지난번 차원이동자가 본 모습을 드러냈을 때보다 더 얼어붙어 있었다.
혹시 입에 안 맞았나? 싶던 그때 보보가 말했다.
“쿤 씨… 혹시 왕실 요리사나, 호텔 조리장 뭐 그런 거셨어요?”
“…아뇨. 그냥 평범한 판테테 지망생이었는데요.”
말도 안 돼. 이게 어떻게 평범한 지망생이 만든 음식이야.
쿤이 한 호박수프는 호박과 고구마밖에 들어간 게 없음에도 어떻게 이런 맛이 나지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아니, 맛있다는 말도 부족했다. 너무 충격적이라 제가 여태까지 먹었던 음식들이 과연 음식이 맞나 의심될 정도였다.
“남은 거 챙겨 드릴까요?”
쿤이 호박수프가 든 냄비를 들며 묻자 보보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붕붕 끄덕였다.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격렬한 반응이었다.
보보는 그 뒤로도 한 그릇을 더 얻어먹은 뒤, 쿤과 함께 뒷정리를 하고 호박수프가 담긴 냄비를 챙겨 돌아갔다.
혼자 남은 쿤은 보오보와 시간을 보냈다. 맛있는 걸 먹고 기분이 풀렸는지 보오보는 첫날처럼 명랑하게 쿤과 놀다 해가 질 즈음에야 이른 잠자리에 들었다.
쿤은 보오보의 발에 이불을 덮어주었다.
“쿤.”
저를 부르는 목소리에 쿤이 뒤를 돌아봤다. 작은 가방을 든 부용이 쿤을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다녀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