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45
44화-사자가 새끼를 키우는 법 (05)
“재밌어서.”
“…….”
쿤의 뇌가 일시 정지했다 다시 움직였다.
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재미요?”
“응. 이 귀찮은 짓을 하는데, 나도 뭐 하는 재밌어야 하지 않겠니?”
“…….”
쿤은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루를 살폈다.
농담을 하나 싶었으나 루의 얼굴에 그런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그니까… 제가 고생하는 게 재밌어서 그랬단 거예요?”
“응.”
“진짜……?”
“어.”
“…욕해도 돼요?”
“나 이길 수 있으면 해도 돼.”
“…….”
쿤은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움켜쥔 두 손이 파들파들 떨렸다.
내가 꼭 죽어라 훈련하고 만다. 그래서 이 인간을 이기고, 어떻게든 복수하고 만다.
“내가 진짜… 가만 안 둘 거야…….”
“그래. 기대할게.”
“으…….”
루는 키득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코트에 묻은 흙먼지를 털었다.
졸지에 앉아 있던 쿤의 머리 위로 흙먼지가 내려앉았다.
“인제 그만 쉬고 짐 챙겨.”
“짐은 왜요?”
“왜긴 왜야.”
루는 쿤의 머리칼을 가볍게 털어주며 말했다.
“하산해야지.”
‘드디어 목욕할 수 있다!’ 라는 마음으로 기쁘게 하산한 쿤의 마음이 절벽 아래로 곤두박질쳤다.
루가 첫날 갔던 그 절벽으로 저를 데려갔기 때문이었다.
“루 씨, 시급한 설명이 필요합니다.”
“뭐가.”
“왜 여기에 온 건지 너무나 궁금합니다.”
“왜긴 왜야. 처음이랑 얼마큼 달라졌는지 확인해야지.”
루는 빼앗아뒀던 쿤의 시계를 돌려주었다.
그리고 제 시계를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그때랑 똑같은 조건으로 하려면 일단 피로부터…….”
거기까지 말하던 루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강이 씨 깨우는 거 깜빡했다.”
“헉. 저도 잊고 있었어요.”
쿤과 루는 텐트 안에 강이를 두고 왔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짐을 챙길 때, 워낙 곤히 자고 있어서 나중에 깨우자 했는데, 그만 잊고 그냥 내려오고 만 것이다.
“어떡해요? 연락이라도 할까요?”
“아냐, 그냥 이대로 두자.”
“그래도 돼요?”
“이렇게라도 엿 먹여야지.”
루가 세상 진지하게 말했다.
쿤 역시 세상 진지하게 말했다.
“루 씨는 부용 씨랑 보보 씨가 담당 선배로 좋은 본보기가 아니라고 했는데, 제가 봤을 때 루 씨도 그닥 좋은 선배는 아닌 거 같아요.”
“난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거지, 일은 잘 가르쳐 주잖아.”
“…진짜 여러 의미로 존경스럽네요.”
“고맙다. 그보다 너 뭐해.”
“뭐가요?”
“왜 여기 있어?”
“예?”
“빨리 안 내려가?”
루는 그대로 쿤의 팔을 잡았다.
“자, 잠깐-!”
쿤은 저항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힘을 줬다. 그러나 루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대로 허공에 내던져진 쿤은 저번에 그랬던 것처럼 루에게 온갖 욕을 퍼부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때보다 욕에 더 많은 감정이 담겼단 거였다.
‘내가 진짜 복수한다!!’
쿤은 이를 꽉 깨물고, 착지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모래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순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당혹감에 눈을 깜빡이던 쿤은 절벽 아래에 검은 구체가 없음을 깨닫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그게 없음에도 안전하게 착지한 저 자신에게 또 한 번 더 놀랐다.
쿤은 멍하니 제 몸을 내려다봤다. 그때 머리 위에서 루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 안 올라오냐?”
퍼뜩 고개를 들자 루가 시계를 톡톡 두드리는 게 보였다.
지금은 시간이 없었기에, 쿤은 생각은 나중에 하고 먼저 절벽을 오르기로 했다.
또 다른 이상을 깨달은 건 절벽을 반쯤 올랐을 때였다.
전처럼 어렵지도 않았고, 전처럼 힘들지도 않았다.
절벽 위까지 빠르게 올라온 쿤은 그대로 주저앉아 얼떨떨한 얼굴을 했다.
“3분 걸렸네.”
“…이게 가능해요?”
쿤은 제게 일어난 일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제가 일주일 동안 개고생을 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 정도로 달라져요?”
“정상적이면 불가능하지. 근데 등줄기 산의 마법 때문에 가능해. 거기서 하는 훈련은 곱절의 효과를 얻을 수 있거든.”
“그것도 은이 씨 마법이에요?”
“아니, 등줄기 산 고유의 마법이야. 왜 가끔 있잖아. 특정 지역이나 건물에 마법이 생긴 경우.”
실제로도 그런 장소들이 몇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왕도에 있는 성역이었다.
이곳에 들어가면 병이 회복되고, 노화가 늦춰졌다.
이런 곳은 누가 마법을 건 게 아니라,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거였기에 과거 황제의 저주에서도 빗겨 나갔다.
“한 10년 전쯤이었나? 등줄기 산에 마법이 생겼대. 근데 이게 알려지면 왕국이 감시하거나, 영주가 바뀌거나, 더 심하면 영주민들이 쫓겨나잖아. 그래서 영주님이 자기 마법으로 억누른 거야. 우리 영주님 마법이 봉인 마법이거든.”
“아…….”
“그러다 은이 언니의 훈련용 마법이 발동되면 자동으로 봉인이 풀려.”
이 두 마법은 마치 시소처럼 하나가 발동하면 하나가 잠들었다.
마법의 힘은 은이 더 셌기에 주도권은 은의 마법이 가지고 있었다.
루는 반으로 쪼갰던 검은 동전을 다시 이었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동전이 동그란 제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림자 산의 음침한 울림 역시 사라졌다.
“참고로 이건 우리랑 영주님 직속 기사단만 아는 비밀이니까 다른 곳에 말하면 안 된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 정도 눈치는 있어요.”
“그리고 자주 하면 부작용 생긴다니까, 등줄기 산에서의 특훈은 꼭 일정을 맞추고 해야 해. 모르겠으면 그냥 보스한테 일정 짜달라고 해.”
“네.”
“좋아. 이제 남은 훈련 하러 가자.”
“어? 30초 못 끊었는데 괜찮아요?”
“뭔 소리야. 일주일 안에 30초대로 줄이는 게 가능할 리 없잖아.”
“…….”
“3분으로 줄인 것도 기적이야.”
아니, 그럼 처음에 그렇게 절벽으로 내던진 건 왜였는데. 설마 그것도 재미 때문이었냐?
쿤의 머릿속이 또 한 번 불만으로 가득찼다.
그러나 쿤은 제 안녕한 미래를 위해 이번 역시 묻지 않았다.
“훈련도 좋은데 그전에 목욕부터 할래요.”
“그러던지.”
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루와 함께 숙소로 돌아갔다.
남은 훈련은 지하 훈련실에서 진행됐다.
지상에 제 방이 있었지만, 쿤은 산에서 그랬던 것처럼 훈련실에 텐트를 치고 지내게 되었다.
일과도 비슷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상황 훈련이 대련으로 바뀌었단 것이다.
루는 쿤을 조금도 봐주지 않았고, 쿤 역시 항상 진심으로 대했다.
덕분에 쿤의 검술은 본인 스스로가 느낄 만큼 확연하게 늘어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열흘째가 되었다.
루는 자정까지 쿤에게 이것저것 가르치다 정확히 자정이 된 순간 짐을 챙겼다.
“열흘 동안 고생 많았다.”
“이걸로 특훈은 끝인가요?”
“응. 내일부턴 평범하게 일하면 돼.”
“질문 금지도 끝이네요!”
“…그건 앞으로도 평생 금지야.”
“하하하하.”
쿤이 호탕하게 웃어 보였다.
루는 눈을 가늘게 떴다. 묘하게 확답을 주지 않는 것이 영 불안했다.
“루 씨, 열흘 동안 감사했어요.”
특훈 때문에 열흘간 쿤 못지않게 고생한 루였다.
귀찮다던가 재미로 그랬다는 말을 하긴 했지만, 그녀가 얼마나 열심히 저를 대했는지는 쿤이 제일 잘 안다.
“너도 고생 많았어.”
쿤은 자리에서 일어나 루에게 머릴 숙였다. 그리고 또 한 번 감사 인사를 전했다.
다음 날 아침, 쿤은 누나에게 보낼 편지를 부치고 장에 들렀다 숙소로 돌아왔다.
요 며칠 고생했으니까 오늘은 몸보신이나 해야겠다, 란 생각을 하며 들어서자 거실에 있는 혜성이 보였다.
“오래간만이네.”
“그러게요.”
일주일은 산에 있었고, 그 외에는 지하 훈련실에 있어 딱 열흘 만에 얼굴을 보는 거였다.
“그간 별일 없으셨죠?”
“뭐, 평소랑 똑같지.”
“아침 드셨어요? 안 드셨으면 혜성 씨 것도 같이하고요.”
“…아니, 괜찮아.”
혜성이 힘없이 답했다.
아쉬움이 가득한 얼굴로 뭐가 괜찮다는 건지.
의아함에 고갤 갸웃거리던 쿤은 열흘 전의 일을 떠올리고 손가락을 튕겼다.
“혹시 그때 사강 씨가 했던 말 때문에 그러세요?”
뜨끔했는지 혜성이 시선을 슬쩍 피했다.
아무래도 사강이 했던 식모 취급이란 말이 그에겐 꽤 충격이었던 모양이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은 사람이 열흘 가까이 이를 신경썼을 걸 생각하자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루 씨도 그러더니, 혜성 씨도 의외의 면이 있네요. 괜찮아요. 저 요리하는 거 좋아해요. 맛있단 말 듣는 것도 좋아하고요.”
“…….”
“이번엔 왜 또 그렇게 쳐다보세요?”
“표정이 많이 편해진 거 같아서.”
“그래요?”
혜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 한 달간 근심과 우울로 굳었던 표정이 이제야 제대로 돌아온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어제가 열흘째였네.”
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는 정했어?”
그 질문에 쿤이 작게 웃어 보였다.
고갯짓을 하거나 말을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확실한 대답에 혜성 역시 따라 웃어 보였다.
애초에 물어볼 것도 없었다.
뭐가 가장 현명한지는 쿤이 가장 잘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혜성과 식사를 마친 쿤은 9시에 맞춰 지하 훈련장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수납장 위에 걸터앉은 루가 보였다.
어제, 둘 사이에 ‘내일 보자’는 인사는 없었다.
그럼에도 쿤과 루 둘 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 이곳으로 모였다.
아까 혜성이 담당 선배를 누구로 할지 정했냐고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미 사흘 전에 정해졌다.
그때, 루가 그랬었다.
“난 이 이상의 뒤치다꺼리는 사양이야. 귀찮다고. 그걸 할 바엔 차라리 내가 제대로 가르치는 게 나.”
쿤은 이 말에 큰 모순을 느꼈다.
정말로 귀찮다면, 뒤치다꺼리 자체를 안 해도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루는 그러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진심으로 그들을 걱정하니까.
그들이 다치지 않길 바라니까.
그래서 직접 나선 것이다.
루가 쿤을 가르친 이유 역시 같았다.
그 안에 쿤을 향한 걱정이 없었다면, 이 귀찮은 일을 열흘 동안 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루야말로 진정으로 타인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보보처럼 어떤 트라우마가 있는 것도 아니고, 부용처럼 그 일을 좋아하는 것이 아님에도 남을 위해 제 귀찮음과 짜증을 감내하는 거니 말이다.
거기다 루는 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었다.
마냥 보호하는 것도, 그대로 떠먹여 주는 것도 아니었다.
‘누가 가장 맞는 스승인지는 볼 것도 없지.’
쿤은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밥은 먹었냐?”
“네. 든든하게 먹고 왔어요.”
“잘했네.”
“다음엔 루 씨도 같이 먹어요. 제가 식사 대접할게요.”
“네가 만드는 거야?”
“네.”
“흐음. 그래.”
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큰둥해 보이는 태도 너머로 약간의 기대와 호기심이 엿보였다.
“오늘부턴 뭘 하나요?”
“뭐 하긴. 일해야지.”
“훈련은 끝난 거예요?”
“그럴 리가. 훈련장 일정 짜면 다시 시작할 거야.”
루는 거기까지 말하다 피식 웃었다.
“야, 근데 너 진짜 괜찮겠냐. 앞으로 족히 1년은 내 밑에 붙어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감사하죠. 저 배울 수 있는 거 다 배울 거예요.”
“나 보기보다 가차 없다. 내 일도 너한테 막 떠넘길 거야.”
“그건 재미로 절 굴렸다고 했을 때부터 각오했어요. 마냥 당하는 성격도 아니고, 화려한 복수를 꿈꾸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루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좋아.”
루가 수납장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쿤에게 걸어왔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가늘고 새하얀 손이 내밀어졌다.
쿤은 루가 건넨 손을 맞잡으며 명랑하게 답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