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5
4화-칠전팔기(04)
“하아…….”
쿤은 오슬오슬 떨며 제 손바닥에 입김을 불었다.
따뜻한 온기가 닿자 그제야 추위가 조금 가시는 것 같았다.
얼음으로 된 가시나무는 아직도 그 크기를 키우다 하늘을 완벽히 덮었을 때에야 성장을 멈췄다.
유리처럼 투명한 얼음이어서 그런 걸까. 노을빛이 나뭇가지를 투과하며 오색찬란한 무지개와 수많은 빛의 비를 만들었다.
겨울과 빛의 세계.
‘예쁘다…….’
쿤은 시선을 돌렸다.
남자가 만든 겨울은 땅뿐만 아니라 차원이동자의 두 다리까지 얼려 버렸다.
차원이동자는 빠져나오기 위해 끙끙거렸으나, 마치 무거운 족쇄를 단 것처럼 옴짝달싹도 못 했다.
아주 조금이지만 남자가 말했던 ‘강압적인 안전’이 뭔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역시 이론과 현실은 다르구나…….”
자신은 왜 그렇게 설득에 집중했을까.
남자의 말대로 외모도 상식도 언어도 다른 곳에서 잠깐의 설명만으로 안정을 찾을 리 만무한데.
거기다 쿤은 남자가 무기를 꺼냈을 때 당연히 차원이동자를 처리할 거라 생각했다. 리란티아에 해를 가할 경우 그래도 된다는 법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설마 속박하려던 걸 줄이야…….
자신의 얄팍한 편견과 설득이 옳고, 공격은 나쁘다는 이분법적인 사고가 하마터면 일을 그르칠 뻔했다.
‘이래서 계속 시험에 떨어지는 걸까?’
어쩌면 남자의 말대로 부족한 창의력이 원인일지도 모른다.
근데 창의력은 어떻게 공부하지?
쿤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돌렸다.
남자는 손으로 검신을 한 번 쓸더니 차원이동자 쪽으로 걸어왔다.
반듯한 걸음걸이와 화려한 외모, 그리고 환상처럼 몽환적인 풍경까지.
잘생긴 거야 처음부터 알고 있었지만, 거기에 능력까지 더해지니 아까와 사람이 달라 보였다.
‘뭔가 멋잇…….’
퍽.
“켁!”
“엑?”
차원이동자와 쿤이 동시에 비명을 뱉었다.
남자는 검날로 다시 한번 차원이동자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퍼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차원이동자의 몸이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쿤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남자는 마치 한여름에 찬물로 샤워한 것처럼 개운한 표정을 했다.
“아, 아니, 왜 또 갑자기……!”
“기절시켜야 데려가기 편하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대뜸 후려치면 어떡해요! 잘못되면 어쩌려고! 좀 더 안전한 방법은 모르는 거예요?”
“뭐 어때. 내가 맞는 것도 아닌데.”
남자가 태연히 말했다.
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뭔가 조금 전과는 다른 의미로 남자가 달라 보였다.
그렇구나. 이 사람은 완벽한 보호를 위해 검을 든 게 아니었어. 정말 귀찮아서 빨리 처리하려고 했던 거야.
“혹시 싶어 묻는 건데요, 모든 판테테가 당신 같은 건 아니죠?”
“그럴 리가.”
“아, 다행이…….”
“나보다 더한 놈도 수두룩해.”
“…….”
“솔직히 나 정도면 꽤 양호한 편이지.”
남자는 왠지 뿌듯한 어투로 말했다.
쿤은 입을 다물었다. 판테테를 꿈꿔온 16년 만에 처음으로 회의감이 들었다.
순간 묵직한 굉음이 얼음 나무를 깨트렸다.
콰아앙-!
쿤은 반사적으로 차원이동자 앞에 서 얼음 파편을 막았다. 거센 바람과 함께 날카로운 얼음조각이 피부를 스쳤다.
조용해진 주변에 슬쩍 눈을 뜨니 둥글게 뚫린 입구가 보였다. 곧이어 검은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로 높이 올려 묶은 갈색 머리칼과 판테테 특유의 흑색 전투복. 거기에 긴 재킷을 입은 남자가 이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곧이어 그를 따라 한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귀밑까지 내려오는 짧은 단발이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여자였다.
두 사람은 안을 살피더니 남자를 발견하곤 잠시 멈칫했다.
“혜성 씨?”
‘혜성?’
쿤의 시선이 자연스레 남자, 아니, ‘혜성’에게 향했다.
처음으로 듣게 된 남자의 이름은 그의 외모만큼이나 특이했다.
용사의 등장 이후 왕도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 유행했던 ‘한국식’ 이름. 아무래도 혜성 또한 해당 유행에 편승한 지역 출신인 모양이다.
‘셋이 아는 사이인가?’
쿤이 의아함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때, 혜성이 여유롭게 손을 들어 보였다.
“오래간만이야, 라팜. 그리고 히피오라였나?”
“오래간만… 이 아니라, 왜 여기 계신 거예요?”
“본부로 가던 중에 가방을 잃어버려서 말이야. 경비를 모으고 있었어.”
“가방? 잠깐 설마 이 가방이 당신 거였어요?”
라팜이라 불린 남자는 제 허리춤에 고정해 놨던 손바닥만 한 작은 가방을 들어 보였다. 정말로 혜성의 것인지 그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게 왜 너한테 있어?”
“기사가 줬어요. 주웠는데 판테테 배지가 들어 있다면서요. 대체 누구 건가 했는데…….”
라팜은 당당하게 손을 내미는 혜성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물건 좀 잘 챙기고 다니세요.”
“원래는 잘 챙겨.”
“말이나 못 하면.”
라팜이 혜성에게 가방을 건넸다.
쿤은 가만히 두 사람의 눈치만 살폈다. 격 없는 어투 하며 대하는 태도까지 묘하게 친해 보였다.
“친구예요?”
쿤이 다가가 묻자 라팜과 히피오라가 대놓고 인상을 찌푸렸다.
“…초면에 악담이 심하시네요.”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칼 맞으니까.”
“네?”
아니,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두 사람의 살기 흉흉한 눈빛에 쿤은 쭈뼛거리며 혜성의 뒤에 몸을 숨겼다.
라팜은 한참 동안 쿤을 노려보다 혜성에게 시선을 돌렸다.
“근데 저 친구는 누굽니까?”
“아는 동생.”
혜성이 태연히 말했다.
자신이 언제부터 아는 동생이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자세하게 설명하기도 뭐했기에 쿤은 동의의 의미로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라팜과 히피오라가 동시에 측은하다는 듯 쳐다봤다.
“이런… 고생이 많으시네요.”
“멀쩡해 보이는데 어쩌다…….”
“…….”
대체 무슨 의미인 걸까…….
어쨌든 이거 하난 알겠다. 조금 전 혜성이 말했던 ‘솔직히 나 정도면 꽤 양호한 편이지’란 말이 거짓이라는 걸.
히피오라는 혜성과 쿤을 향해 머릴 숙여 인사했다.
“차원이동자 건은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일이 쉬워졌어요.”
“정 고마우면 너희가 잡은 걸로 처리해. 괜히 보고서에 내 이름 올리지 말고.”
“알겠습니다.”
혜성은 가방 속 내용물을 다 확인했는지 허리춤에 매달았다. 그리고 쿤에게 턱짓했다.
“그럼 우리는 이만 돌아갈까?”
쿤은 뻣뻣한 고갤 끄덕였다.
* * *
뛰어서 갔던 처음과 달리 돌아오는 길은 산책하는 것처럼 여유롭고 느긋했다.
처음으로 지도의 역할을 한 쿤은 혜성을 안내하며 전나무 숲을 빠져나왔다.
길었던 하루를 증명하듯 파랗던 하늘이 검푸른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하늘에 총총 박힌 별을 보며 쿤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내 가게 일을 돕다 와서 그런가. 한 것도 없는데 철갑을 두른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뭔가 피곤하네요.”
“종일 내달렸으니까. 아, 넌 식당일까지 하다 왔으니 더 했겠군.”
“그러고 보니, 아까 요리에 재능있네 뭐네 하셨잖아요. 혹시 전부터 저를 알고 있었어요?”
“너희 가게에 들른 적 있어. 그때 네가 한 음식을 먹었지.”
“아…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할 때, 혜성이 불쑥 말을 걸었다.
“어땠어?”
“뭐가요?”
“예행연습 말이야.”
쿤은 짧게 고민하다 답했다.
“잘 모르겠어요.”
처음엔 설레었다. 그러나 막상 상황이 닥치니 설렘이고 나발이고 혼란만 가득했다. 거기다 제 부족함만 잔뜩 깨달은 것 같아 위염이 온 것처럼 속이 아팠다.
물론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번 일을 경험 삼아서 더 힘내야지. 창의력 공부도 하고.’
쿤은 스스로를 다독이며 앞날을 계획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혜성의 말에 모든 생각이 멈추고 말았다.
“혹시 몰라 덧붙이는데, 오늘 있었던 일은 정말 쉬운 편에 속해. 판테테 일을 하면서 다치지 않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거든.”
차원이동자가 안전하고 아니고를 떠나, 항상 예측할 수 없는 위험 속에 있는 게 판테테였다.
“그래도 계속 하고 싶어?”
남자의 질문에 쿤이 걸음을 멈췄다.
이상했다.
분명 16년간 수도 없이 들어온 질문인데 혜성이 한 질문은 꼭꼭 담아두었던 속내를 건드렸다. 점쟁이인 척했을 때에도, 판테테인 걸 안 지금에도.
가라앉은 밤공기가 머리는 물론 마음까지 차게 식혔다.
“왜 다들 저한테 그걸 묻는 걸까요?”
그건 쿤이 처음으로 내뱉는 반문이었다.
“저는 계속 판테테가 꿈이라고 말하는데, 판테테 하나만 보고 계속 노력하는데, 왜 다들 저한테 꼭 하고 싶냐고 묻는 거죠?”
모두가 그랬다.
조금의 빈말도 해주지 않고, 위험하다거나 박봉이라는 이유로 그걸 꿈꾸는 자신을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했다.
쿤은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위험하면 하면 안 돼요? 박봉이면 생각조차 하면 안 되나요? 그도 아니면 판테테가 되고 싶은 이유가 단순해서 그래요?”
쿤이 판테테가 되고 싶은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하는 일이 멋있기 때문이었다.
아무도 돕지 않으려는 이들을 돕는 일이니까.
누군가에게 평온과 일상을 되찾아주는 일이니까.
하지만 이 말을 하면 십중팔구가 철딱서니 없다며 타박한다.
“꿈이 꼭 현실적이어야 해요? 아니면 능력도 재능도 없는 사람은 노력하고 꿈을 꿀 권리조차 없는 거예요?”
쿤은 정말로 알 수 없었다.
“왜 아무도 저한테 할 수 있다고 말해주지 않는 거죠?”
쿤이 물었다.
혜성은 아무 말 없이 쿤을 응시했다.
한참 후 그가 입을 열었다.
“네 말대로 위험하거나 박봉이란 게 꿈을 꾸지 말아야 할 이유가 되는 건 아니야. 하물며 네가 한 노력에 왈가왈부할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지.”
차분하면서도 단정한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네 꿈과 노력은 틀리지 않아.”
혜성은 쿤을 지나쳐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신전과 마을을 잇는 길목에서 걸음을 멈췄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판테테를 추천하지 않을 거야.”
“왜요?”
“판테테는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정의롭지 않으니까.”
그건 혜성이 낮에 했던 말과 똑같은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때와는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만약 이것이 시험이라면 합격선 점수를 가까스로 채울 수 있는 마지막 질문 같았다.
“그래도 하고 싶어?”
정말로 이어진 질문에 쿤은 저도 모르게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하고 싶어요.”
“그래?”
혜성은 가방에서 판테테 배지를 꺼냈다. 은백색의 배지가 달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거 알아? 시험은 판테테가 되는 가장 쉬운 방법이지만, 빠른 방법은 아니란 걸.”
아리송한 말과 함께 혜성이 배지를 튕겼다. 은백색의 배지가 긴 호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쿤은 반사적으로 배지를 잡았다.
두 번째였다, 이것을 제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건.
영문을 알 수 없어 멍하니 있자 남자가 희미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단정한 목소리가 쿤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오즈벨 지부 판테테 단장 혜성이다. 단장 특별 권한으로 주는 선물이니, 그거 들고 오즈벨 지부로 와.”
“……자, 잠깐만요. 그니까 이거…….”
“스카우트하겠다고, 너.”
스카우트.
그 네 음절이 머릿속에 메아리쳤다.
쿤은 멍하니 제 손에 들린 배지를 바라봤다.
순간 뜨거운 무언가가 목 끝까지 차올랐다.
이윽고 울컥한 감정과 함께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흐윽… 흑… 흐어어엉…….”
한심하리만큼 멍청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억눌러 왔던 온갖 감정이 눈물과 함께 흘러나왔다.
아이처럼 엉엉 우는 쿤을 보며 혜성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게 그렇게 좋아?”
“당연하죠. 내가 이게 갖고 싶어서 16년 동안. 히끅, 얼마나 고생했는데… 시험도 일곱 번이나 떨어지고… 흐윽… 사람 팔자 진짜… 흐으으으윽…….”
쿤이 눈물 콧물 다 흘려가며 말했다.
혜성은 윗옷 안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쿤의 엉망이 된 얼굴을 닦아주었다. 눈물을 흘려 붉게 부은 여우 눈이 보였다.
“진짜 여우 닮았네.”
“아씨, 이럴 때 외모 가지고 놀리기 있어요?”
“놀리는 게 아니라 진짜 닮아서 하는 말이야.”
“그게 더 기분 나빠!”
쿤은 손수건을 받아 눈물을 훔쳤다. 정신없이 얼굴을 닦으면서도 배지에 뭐라도 묻을까 싶어 조심하자, 그 꼴이 웃겼는지 혜성이 또 한 번 웃음을 터트렸다.
16년 동안 품어온 꿈. 일곱 번의 시험과 낙방.
쿤의 길면서도 힘겨웠던 노력에 처음으로 합격 도장을 받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