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57
56화-고목에 꽃이 피는 순간 (03)
“미옐은 꽃봉오리 안 생겼어?”
사강이 불쑥 물었다.
미옐이 흠칫 떨며 고개를 떨궜다.
[아뇨, 전…….]“아, 몸이 안 좋다고 했지. 혹시 뿔이 아픈 거야?”
[…….]미옐이 우물쭈물 입을 달싹이다 말을 삼켰다.
티오는 미옐의 눈치를 보다 조심스레 다른 화제로 돌렸다.
[저희 여기서 자면 되나요?]“응? 응.”
사강은 의자 등받이를 끌어안고 앉았다. 그리고 태연히 말했다.
“근데 둘이 따로 잘 거야.”
티오는 당황했다. 쿤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차원이동자는 한 방에서 보호했다. 앞선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꿍꿍이인 거야.’
쿤은 이유를 묻고 싶었지만, 일단은 가만히 눈치를 살폈다.
그사이 티오와 사강이 대화를 이어나갔다.
[꼭 혼자 자야 하나요? 좀 불안해서요…….]“아, 걱정하지 마. 얘랑 내가 곁에 있을 거야.”
[그래도 좀…….]티오는 잔뜩 위축된 사람처럼 어깨를 움츠렸다.
“흐음. 티오는 미옐이랑 같은 방을 쓰고 싶다는 거지? 미옐도 그래?”
[네? 어… 전…….]미옐은 아까처럼 우물쭈물하다 입을 다물었다.
티오는 그런 미옐의 손등을 토닥였다.
그제야 미옐이 각오한 듯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저도 혼자는 좀 불안해서…….]“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여기서 같이 지내자.”
[정말요?]“둘 다 혼자는 불안하다며. 어쩔 수 없지.”
[다행이다. 감사합니다.]티오가 활짝 웃었다. 그리고 잘됐다며 미옐과 어깨동무를 했다.
사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쿤, 우리 밥 먹고 오자.”
평소엔 여기서 잘만 먹는 인간이 또 왜 저래?
“…….”
쿤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사강을 흘기다 그를 따라나섰다.
그리고 방을 나오기 무섭게 물었다.
“왜 나온 거예요?”
“밥 먹으러 가자니까.”
“정말요?”
“진짜라니까. 왜 사람 말을 못 믿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잖아요. 차원이동자 두고 자리 비우는 것도 그렇고, 나가서 밥 먹자는 것도 그렇고, 둘이 따로 재운다는 것도 원래는 하면 안 되잖아요.”
“원래 하면 안 되는 게 어딨어. 그리고 어떻게 72시간 내내 감시하냐. 우리도 쟤들도 자유가 있어야 할 거 아냐.”
“그러다 도망치면요.”
“그 발론 절대 멀리 못 가.”
티오와 미옐의 발은 평발인데다 잔뿌리가 뭉친 것처럼 생겼다.
흙에선 모르겠지만, 돌길이나 시멘트에선 오래 걷기 힘들었다.
“미옐은 삐쩍 말라서 서 있는 것도 힘들어 보이더라.”
“그래 보이긴 했죠. 음… 생각해 보니 좀 다행이네요.”
“그치? 그니까 느긋하게 밥 먹고 와도 돼.”
“그거 말고요. 미옐이고 티오고 혼자 넘어왔으면 많이 힘들었을 거 아니에요.”
“뭐, 어떤 사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친구면 확실히 든든하긴 하지.”
“근데 진짜 다른 이유 없는 거죠?”
“없어. 나무 앞에서 불 켜고 요리하기 뭐해서 데리고 나온 거야.”
“요리는 왜 해요? 도시락 있잖아요.”
“무슨 소리야. 네 손이 있는데 왜 도시락을 먹어.”
사강은 마치 못 들을 말을 사람처럼 경악했다.
쿤은 잠깐 고민했다.
“제가 밥해준다고 했었나요?”
“저번에 나중에 해준다고 했잖아.”
“그 나중이 오늘은 아닌데요.”
“…….”
“저 오늘 도시락 먹을 거예요.”
“진짜? 나 재료도 잔뜩 사왔는데…….”
사강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혔다.
사강은 고전연극의 소녀처럼 양 주먹을 턱에 붙인 후 애처롭게 올려다봤다.
“진짜 안 해줄꼬야?”
‘…이 인간이 어디서 개수작을.’
누가 봐도 명백한 개수작이었다.
쿤은 당장에라도 사강을 내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쉽게 포기할 인간이 아니었다.
오히려 해줄 때까지 패악질을 부리겠지.
‘루 씨가 왜 매번 사강 씨한테 휘둘리는지 알 것 같다.’
결국, 쿤은 제 정신과 안녕을 위해 밥을 하기로 했다.
“알겠어요. 해드릴게요.”
“야호!”
쿤은 사강과 함께 주방으로 갔다.
그리고 아주 뻔뻔하게 코스 요리를 주문하는 그를 보며, 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사강과 함께 일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다음 날, 쿤과 사강은 두 아이를 데리고 지상으로 올라왔다.
사강의 예상대로 미옐과 티오 둘 다 시멘트와 돌길이 익숙지 않은지 벽을 짚고 천천히 올라왔다.
[으~ 좀 쌀쌀하네요.]“담요라도 가져다 드릴까요?”
[괜찮아요.]티오는 두 팔을 활짝 벌리며 햇빛을 만끽했다.
고개를 돌리니 미옐 역시 조용히 앉아 일광욕을 즐겼다.
볕이 좋아서 그런가. 나뭇잎이 반짝이는 거 같았다.
“와. 광합성 한다.”
“그러게요.”
“우리도 광합성 할까?”
“일광욕이 아니라요?”
“일광욕이면 선베드랑 선글라스를 챙겨야 할 것 같잖아.”
“그러던가요.”
“…….”
“…농담이에요. 진짜로 하진 마세요.”
“쳇.”
사강이 아쉬움의 혀를 찼다.
그때 대문이 열리며 루가 돌아왔다.
밤새 영지를 뒤진 건지 루의 눈 밑에 눈그늘이 가득했다.
“좀비다.”
“그보단 세상에 찌든 가장 같지 않아요?”
“둘 다 들려.”
하하. 쿤과 사강이 웃어 보였다.
“그보다 숙소엔 어쩐 일이세요?”
“피곤해서 잠깐 쉬러 왔어.”
“아, 맞다. 아침에 끓인 스튜 남았어요.”
“진짜?”
루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목소리도 한껏 상냥해졌다.
먹고 가야지. 루가 입맛을 다셨다.
“근데 쟤들은 왜 나와 있어?”
“햇빛이 필요하다 해서 데리고 나왔어요.”
“음…….”
루는 티오와 미옐을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뛰는 건 잘 못하겠네.”
“그치? 그러게 우리랑 같이하지 그랬냐. 일도 쉽고 쿤이 해준 밥도 먹고 얼마나 좋아.”
“됐어요.”
쿤의 밥은 혹하지만, 사강과는 함께 일하고 싶지 않았다.
“반송 차원문 나타날 때까지 찾아야 하는 거죠?”
“어.”
지금 루와 녹턴이 맡는 차원문 같은 경우는 반송 차원문이 나타날 때까지만 집중 수색했고, 그 후엔 상황 따라 달라졌다.
“반송 차원문 나타나는 시간이…….”
“모래, 오후 2시 32분. 그니까 그때까지 보고서… 응?”
루가 쿤 너머를 쳐다봤다.
왜 그러나 싶어 뒤를 돌아보니 미옐이 이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내 얼굴에 뭐 묻었냐?”
“전혀요.”
“근데 왜 저렇게 쳐다봐.”
“처음 보는 얼굴이라 그런 거 아니에요?”
“예뻐서 쳐다보나 보지. 네가 다른 건 몰라도 얼굴 하난 진짜 예쁘잖아.”
“그런 말은 저 말고 보스한테 해주세요.”
“걘 얼굴 말고 하등 쓸모가 없고.”
“그건 그렇죠.”
루와 사강이 정말 쓸모없는 대화를 나눌 때, 티오가 이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쿤 아저씨.]티오는 루를 흘끔 쳐다봤다.
[이쪽 분도 직장 동료신가요?]“제 선배예요.”
[아~ 처음 뵀어요. 혹시 사강 아저씨 친구…….]“죽고 싶니?”
[는 아니시군요.]미옐이 빠르게 말을 정정했다.
[직장 동료가 참 많네요. 차원문이 생각보다 많이 나타나나 봐요.]“그런 편이죠.”
[근데 반송 차원문을 놓치면 어떻게 돼요?]쿤과 루가 멈칫했다.
판테테에게 있어 가장 어려운 질문이 뭐냐 묻는다면 대다수가 바로 지금 이 질문을 답할 것이다.
대답 여하에 따라 차원이동자의 행동이 바뀌기 때문이다.
어떨 때에는 호기심으로, 어떨 때에는 비관으로, 어떨 때에는 변심으로.
심지어 예상 답안도 없었다.
차원이동자가 워낙 다양한 성격을 가지다 보니, 같은 답을 해도 결과가 달랐다.
‘어물쩍 넘기는 것도 안 좋은데…….’
쿤과 루는 이걸 어떻게 대답하나 고민했다.
그때 사강이 불쑥 말했다.
“죽어.”
짧은 한마디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정말요?]“응.”
사강이 태연하게 말했다.
“그니까 돌아가는 게 가장 좋다고 하는 거야. 죽는 것도 서글픈데, 고향에 묻히지도 못하는 거잖아.”
[그렇죠…….]티오의 어깨가 축 가라앉았다.
분위기가 금세 숙연해졌다.
쿤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둘러댈 거면 그럴듯하게 하던가, 왜 이렇게 극단적인 답을 내놓는 걸까.
루 역시 짜증을 감추지 못했다.
“진짜 말을 해도 꼭…….”
“왜. 내가 못 할 말 한 건 아니잖아.”
“그게 아니라… 아휴. 난 몰라. 네가 수습해.”
루가 손을 휘휘 내저으며 후배에게 모든 걸 떠넘겼다.
쿤은 억울해졌다.
“저한테 넘기면 어떡해요.”
“네 일이잖아.”
“배신자!”
“난 일하러 간다.”
“양아치!”
“힘내라.”
루는 정말로 더는 엮이고 싶지 않은지, 쉬는 것과 먹는 것도 포기한 채, 마당을 나섰다.
쿤은 그런 루를 원망스럽게 쳐다보다 티오의 부름에 정신을 차렸다.
[제가 뭐 실수했나요?]“예? 아뇨, 아니에요. 그니까… 좀 무거운 내용이어서 그래요.”
[그렇죠…….]“그래도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저희가 어떻게든 안전하게 돌려보내 드릴게요.”
쿤이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제야 티오가 안심한 듯 웃어 보였다. 싱그러운 녹음의 향이 느껴졌다.
미옐이 이쪽을 빤히 쳐다봤기에 쿤은 그 역시 안심시켜 주었다.
미옐은 무언가를 생각하는지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저…….]“네, 말씀하세요.”
[이제 방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괜찮을까요?]미옐의 목소리가 점점 기어 들어갔다. 잎사귀는 물론 어깨까지 축 늘어졌다.
쿤은 미옐에게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괜찮아요. 제가 모셔다드릴게요. 티오는 어떻게 할래요?”
[…….]“티오?”
티오가 화들짝 놀라며 고갤 들었다.
[네? 아, 전 여기서 좀 더 있을래요.]“그럴래요? 가요, 미옐.”
“잠깐만, 쿤. 내가 갈 테니까 너가 티오랑 있어.”
“사강 씨가요?”
쿤은 조금 미심쩍었지만 무슨 일이 있겠나 싶어 고갤 끄덕였다.
“알겠어요.”
미옐이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느릿하게 걸어나갔다.
티오는 심란한 눈으로 미옐을 쫓다 그가 숙소로 들어가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티오의 몸이 축 늘어졌다.
[마음이 불편하네요.]“왜요?”
[미옐이 혹시 아직도 아픈 건가 해서요. 실은 일주일 전에 저희 터에 작은 불이 났는데, 그때 미옐의 뿔에 불씨가 옮겨붙었거든요.]“으… 아팠겠다.”
미옐의 뿔이 몸보다 더 짙은 검은 색이기에 원래 그런 건가 했는데, 불에 그슬린 걸 줄이야.
“잠깐, 그럼 평화는요?”
티오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느릿하게 가로저었다.
[뿔이 죽어서 피어나지 못해요.]“…….”
쿤의 시선이 미옐이 들어간 문으로 향했다.
티오네 세계에서 평화는 목숨보다 중요한 꽃이자 자랑이고 자부심이라고 했다.
근데 그게 불행한 사고로 피우지 못하게 되었다.
불과 일주일 전의 사고로.
무슨 말도 미옐에게 위로가 될 수 없기에, 쿤은 그저 입술만 깨물었다.
* * *
“혼자 있을 수 있지?”
사강이 미옐을 침대에 앉히며 물었다.
티옐은 고개를 끄덕였다.
날이 추워서 그런지, 아니면 못 돌아가면 죽는다는 말이 무서웠던 건지 손끝이 잘게 떨렸다.
“추워? 불 켜줄까?”
사강이 서랍을 뒤적이다 성냥을 꺼냈다. 불을 붙이자 미옐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몸을 뒤로 물렸다.
“아이고. 너희가 나무인 거 잊고 있었다.”
사강은 그제야 그 사실을 기억해 낸 사람처럼 성냥불을 껐다. 그리고 성냥갑을 다시 서랍에 집어넣었다.
“미안미안~ 대신 내가 깨끗한 물 가져다줄게.”
[……괜찮아요.]“나 이제 가볼게. 혹시 뭐 필요한 거 있으면 저기 있는 종 울려. 알겠지?”
[네…….]사강은 미옐에게 손을 흔든 뒤 방을 나섰다.
철컥 소리와 함께 문이 잠겼다.
미옐은 그 자리에 앉아 문만 쳐다보다 성냥갑이 든 서랍을 노려봤다.
[…….]미옐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다 타서 죽어버린 제 뿔과 함께 조금 전 사강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죽어. 그니까 돌아가는 게 가장 좋다고 하는 거야. 죽는 것도 서글픈데, 고향에 묻히지도 못하는 거잖아.”
미옐은 제 뿔을 만졌다. 손끝에 검은 재가 묻어났다.
그는 한참 동안 제 손을 내려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