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6
5화-안녕하세요, 신참입니다(01)
유달리 화창한 날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식구들을 거실로 불러모은 쿤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해맑은 얼굴로 말했다.
“나 판테테 합격했어.”
짧지 않은 한마디에 모두가 행동을 멈췄다. 그러나 그도 잠시,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후… 어제 잠을 설쳐서 그런지 좀 피곤하네.”
“가게에서 양고기 가져왔는데, 그거나 구워 먹을까?”
“오~ 좋아. 역시 고기는 아침에 먹어야 한다니까.”
제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고, 저들만의 대화에 빠진 누나, 형을 보며 쿤이 버럭 소릴 질렀다.
“나 판테테 합격했다니까!”
“합격은 개뿔. 너 불합격인 거 우리 다 봤거든?”
“아, 정확히는 합격이 아니라 스카우트 받았어.”
“꿈에서?”
“현실에서!”
쿤이 윗옷 주머니에 보관해 놨던 판테테 배지를 꺼내 보이자 장난이 아님을 깨달은 남매가 표정을 굳혔다.
마치 종말이라도 겪은 것처럼 심각한 얼굴이건만 오늘 한정으로 눈치를 엿 바꿔먹은 쿤은 헤실헤실 웃으며 입을 열었다.
“어제 차원문 나타났잖아. 그때 오즈벨 지부 판테테 단장이랑 만났거든. 배지를 선물로 주면서 오라고 그랬어.”
쿤은 어제저녁의 상황을 덧붙여 설명했다.
이야기가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남매의 얼굴에 충격과 경악이 내려앉았다.
쿤의 모든 이야기가 끝났을 때, 큰 누나 ‘라일라’가 물었다.
“그, 그니까 그 혜성인지 뭔지 하는 사람이 너를 자기 지부로 스카우트했다고?”
“응.”
“세상에…….”
라일라가 크게 휘청였다. 로건과 작은 누나인 ‘리나’ 또한 하얗게 질린 얼굴로 입만 틀어막았다.
어제 차원문이 나타났다는 건 로비츠 영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판테테가 이 일을 잘 처리했다는 것도 들었다. 하지만 설마 그 속에 제 동생이 껴 있을 거라곤 꿈에도 상상 못 했다.
로건은 정신을 차리려는 듯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그러나 들이닥친 충격은 좀처럼 가시질 않았다. 그리고 그건 곧 분노로 변했다.
“미치겠네. 그 새끼 누구야. 지가 뭔데 왜 남의 동생을 사지로 끌고 가냐고!”
리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쿤의 어깨를 붙잡았다.
“쿤, 가지마. 스카우트라고 꼭 가야 하는 건 아니잖아. 너 그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 줄 몰라?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
쿤은 제 어깨에 얹어진 누나의 손을 조심스레 뗐다.
“누나랑 형이 뭘 걱정하는지 알아. 나도 판테테가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근데 간다고?!”
“응. 갈 거야. 내가 얼마나 판테테가 되고 싶어 했는지 잘 알잖아.”
“야!”
“쿤!”
로건과 리나가 정색하며 말렸으나, 쿤의 완고한 각오를 꺾을 순 없었다.
남매는 계속 입씨름을 이어갔다. ‘간다’와 ‘가면 안 된다’가 계속 부딪히던 그때, 유일하게 차분함을 유지하던 장녀 라일라가 소리쳤다.
“셋 다 조용!”
“…….”
거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라일라는 길게 숨을 내쉰 뒤, 쿤을 향해 물었다.
“쿤, 우리가 무슨 말을 해도 갈 거지?”
“응.”
“언제 출발할 거니?”
“언니!”
“누나!”
“둘 다 그만해. 쿤 이제 애 아니야.”
“그렇다고 냅다 가라 그래?”
“우리가 쿤의 선택에 왈가왈부할 자격 없어. 그리고 우리는 언제 어른 말 들었니?”
라일라의 말대로 쿤네 오 남매는 어른 말 안 듣기로 유명했다. 로건만 해도 할아버지 레스토랑을 물려받기 위해 단식투쟁까지 했었다.
하지만 리나는 이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거랑 이거랑 같아?! 이건 목숨이 걸린 일이잖아!”
“맞아!”
로건도 그걸 말이라고 하냐며 반박했으나 라일라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대신 쿤에게 상상도 못 할 말을 꺼냈다.
“쿤, 네가 가고 싶다면 가도 좋아. 단, 조건이 하나 있어.”
“조건?”
“그래. 만약 네가 이 조건을 안 지키면, 누난 평생 너 안 볼 거야.”
집안의 장녀로 어느 때고 듬직하게 남매들을 보살폈던 라일라였기에 그녀가 내뱉는 의절은 비록 엄포일지라도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자랑했다.
쿤은 물론 내내 미쳤냐며 라일라를 타박하던 로건과 리나의 눈이 호두알만 해졌다.
꿀꺽.
누구의 것인지 모를 마른침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쿤은 파들파들 떨며 누나의 눈치를 살폈다.
“뭐, 뭔데?”
합격통지서를 뜯을 때보다 더한 긴장감이 덮쳤다.
곧이어 라일라가 답했다.
“못 해도 주에 한 번은 꼭 편지 써.”
“……어?”
“어떻게 지내는지 편지 쓰라고.”
쿤은 멍하니 입만 벌렸다.
라일라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아프거나 다치면 바로 연락하고, 밥 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고, 청소도 꼼꼼히 하고, 특히 귀찮다고 병원 안 가는 짓 좀 하지 마.”
“어, 어… 알았어.”
“월급 받으면 생각 없이 다 쓰지 말고 꼭 저축해.”
“으응…….”
“인사는 사회생활의 기본인 거 알지? 누굴 만나도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해. 너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경력이 짧아도 하대하지 말고. 위험한 일을 하는 거니까 지금보다 배는 조심하고.”
잔소리인지 조건인지 잘 모르겠는 말이 계속 이어졌다. 심지어 하나도 아니었다.
여우처럼 길게 찢어진 눈꼬리가 아래로 축 늘어졌다.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거.”
이제는 대답하는 것도 지쳐 연신 고개만 끄덕일 때, 라일라가 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쿤은 홀린 듯 고개를 들었다.
친숙하면서도 다정한 목소리가 귓가를 파고들었다.
“네가 선택한 일이니까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책임져야 해. 알겠지?”
“…….”
갑자기 눈가가 시큰거리며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처음으로 받는 가족의 응원은 세상 그 무엇보다 벅찬 감동을 선물했다.
“응, 누나. 약속한 대로 편지 꼭 쓸 게. 포기도 안 하고 열심히 할게.”
쿤은 라일라의 손을 꼭 잡으며 약속하고 또 약속했다.
이틀 후, 쿤은 식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떠났다.
리나와 로건은 끝까지 내키지 않았지만, 그러면서도 용돈을 챙겨주거나 짐을 살피는 걸 잊지 않았다.
동쪽으로 가는 기차에 오르며 쿤은 또 한 번 식구들과의 약속을 곱씹었다.
절대 다치지 않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고. 꼭 제 꿈을 끝까지 관철할 거라고.
그리고 그로부터 엿새가 지난 9월의 첫날.
쿤은 어째서인지 산속을 헤매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대체 여기가 어디야…….”
쿤은 우두커니 서서 주변을 둘러봤다. 앞이고, 뒤고, 옆이고 다 나무밖에 없는 것이 어디가 어디인지 하나도 알 수 없었다.
쿤이 산속에서 길을 잃게 된 건, 아니, 더 정확히 산속으로 들어오게 된 건 지금으로부터 약 여섯 시간 전의 일이었다.
오즈벨은 내륙지역이었지만, 섬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립된 환경을 자랑했다.
가는 길 또한 옆 영지와 이어지는 커다란 산 밑 터널이 유일했다.
문제는 바로 그 터널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그것도 쿤이 도착하기 이틀 전에!
아니,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로비츠 영지에서 오즈벨 영지까지는 그 거리가 꽤 되었기에 쿤은 기차로 나흘, 그리고 마차로 또 이틀을 더 이동해야만 했다.
도합 엿새 동안 쉬지도 않고 달려온 것이다. 근데 그 결과가 터널 붕괴라니……!
더 당혹스러운 건 복구공사가 언제 시작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여기가 원래 잘 무너져. 그래도 전에는 바로바로 고쳤는데, 이제는 다들 그러려니 하고 미적거리더라고. 다친 사람도 없고, 사람들이 자주 오가지도 않으니 신경을 안 쓰는 거겠지.”
쿤과 같은 마차를 타고 왔던 보부상이 말했다.
“그래도 보름은 안 넘기니까, 좀 기다려 봐.”
제 딴에는 위로랍시고 한 말이었지만, 이딴 말이 위로가 될 리 없었다.
거기다 잘 무너진다니!
보통 이런 건 더는 안 무너지게 방책을 세워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아니면 아예 다른 길을 만들던지.
솔직히 말해 인명피해가 없었다는 게 놀랄 정도였다.
대체 오즈벨 영주는 세금으로 뭐 하냐며 구시렁거릴 때, 보부상이 짐을 챙겨 다시 마차에 올랐다.
이렇게 된 거 인근 마을에 들러 며칠 쉬겠다는 게 그 이유였다.
하지만 쿤은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이 터널만 지나면 오즈벨인데……!
이 터널만 지나면 판테테가 되는 건데……!
길었던 엿새도 겨우 참았던 쿤에게 언제 시작할지도 모르는 보수공사를 기다린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조급함을 참지 못한 쿤은 결국 산을 넘기로 결심했다.
물론 이는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었다.
터널이 있는 등줄기 산은 원래부터 험준하기로 유명했고, 등산로 같은 것도 없었다. 진입 금지 팻말도 1m 간격으로 세워져 있었다.
하지만 조급함과 잔뜩 쌓인 여독으로 판단력을 잃은 쿤은 별 도움도 되지 않는 만용을 뽐내며 산을 올랐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지금이었다.
산속의 미아.
조금 더 과장하자면 슬슬 아사가 걱정되는 거지.
“배고프다…….”
쿤은 주린 배를 움켜쥐었다.
여섯 시간 내리 쉬지도 않고 걸은 탓에 몸이 천근처럼 무거웠다.
길은 모르겠고, 배는 고프고, 이 와중에 졸리기까지 했다. 정말이지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산바람은 또 왜 이렇게 추운 거야…….”
지대가 높아서 그런 걸까. 바람이 불 때마다 서늘한 한기가 팔을 쓸었다. 모닥불 앞에서 쉬었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불을 피우는 건 무리겠지……. 산불 위험도 있고.’
솔직히 무서워서 쉬지 못하는 것도 있었다. 등줄기 산에는 곰처럼 위험한 야생 동물이 서식한다 했으니 말이다.
‘……대체 무슨 배짱으로 산을 탄 거지?’
스스로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형과 누나들이 애 취급을 해도 할 말이 없는 순간이었다.
쿤은 한심함에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그때 그의 눈에 1m 정도 되어 보이는 얇은 나무기둥이 들어왔다.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가자 나무 끝자락에 ‘은-153’이라는 글자가 적힌 게 보였다.
마치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꽂아둔 것 같았다.
‘어? 저쪽에도 있네?’
인제 보니 이 근방을 시작으로 비슷한 막대기들이 사방에 꽂혀 있었다. 글도 적혀 있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조금씩 달랐는데, 앞의 은이란 글은 같았으나 숫자가 하나씩 줄어들거나 늘어났다.
‘혹시… 표식인가?’
저처럼 산을 오가는 사람들을 대비해 길을 표시해 둔 걸지도 모른다. 그도 아니면 위험 지역을 나타내거나.
쿤은 짧게 고민하다 가방을 고쳐 들었다.
어차피 가만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반의 확률을 믿고 움직이는 게 낫겠지. 쿤은 그리 결론지으며 막대기와 적힌 숫자를 길잡이 삼았다.
호기롭게 출발한 것과 달리 출구를 찾는 건 쉽지 않았다. 분명 막대기를 따라 산에서 내려가곤 있는데 이상하게 빙글빙글 도는 느낌도 들었다.
덕분에 쿤은 그 후로도 한참 동안 산길을 걸어야 했다.
산길이 얼마나 험난했는지 쿤의 꼴은 말도 아니었다. 단정한 갈색 머리는 거지꼴마냥 이리저리 뻗쳤고, 깔끔했던 옷에도 흙먼지가 잔뜩 묻었다. 나뭇가지에 스쳐 뺨과 손등엔 작은 생채기까지 났다.
이대로 지쳐 죽는 게 아닐까 싶던 그때, 나무 기둥 틈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오는 게 보였다.
‘설마!’
쿤은 정신없이 그쪽으로 달려갔다.
엉망이 된 몰골과 가뿐 숨소리,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지만 혹시 모른다는 기대가 쿤을 달리게 했다.
곧이어 시야가 확 트이더니 길게 뻗은 수평선이 보였다.
“……와.”
쿤은 저도 모르게 감탄을 터트렸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도시와 바다를 품은 초승달 모양의 땅이 두 눈 가득 들어찼다.
쿤은 고개를 돌렸다. 덩굴에 둘러싸인 나무 간판에 ‘오즈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쿤은 짐가방을 내던진 채 두 손을 깍지껴 잡았다.
길게 찢어진 눈에서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오즈벨에 도착했다.
울컥한 감정과 함께 그간의 고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곳에 오기까지 얼마나 고생했던가. 하지만 이젠 고생도 끝이었다. 판테테가 되어 제 꿈을 펼치는 것만 남은 것이다.
쿤은 기쁜 마음으로 내던졌던 가방을 챙겼다. 그리고 의욕을 가득 담아 한 발 내디뎠다.
그때였다.
퍽-!
묵직한 통증이 뒤통수를 가격했다.
“컥.”
짤막한 비명과 함께 몸이 앞으로 무너졌다.
등 뒤에서 들리는 거친 숨소리와 점점 흐려지는 의식.
곧이어 세상에 검게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