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61
60화-고목에 꽃이 피는 순간 (07)
“안 믿기지.”
“네, 전혀요.”
“근데 진짜 그랬어.”
대화가 길어질 걸 직감했는지, 사강이 근처 벤치에 앉았다.
“너도 알다시피 내가 반쪽짜리 힐러잖냐.”
사실 힐러라 하기도 뭐했다. 치유도 아니고, 상처를 옮기는 게 전부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이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사강이 어떤 병이든 고칠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사강의 인생이 피곤해진 것도 이 즈음부터였다.
‘불치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아이가 있다’라는 게 알려지자 온갖 사람이 사강을 찾아왔다.
개중 대다수는 돈 좀 있는 사람들이었다.
“항상 똑같아. 오른손엔 돈, 왼손엔 대타로 쓸 인간.”
그러곤 하나같이 말했다. 돈을 줄 테니 제 병을 이 사람에게 옮겨달라고.
“싫다 했지. 말이 옮기는 거지, 멀쩡한 사람 다치게 하란 거잖아. 그래서 안 하고 버텼더니 방법이 바뀌더라고.”
회유, 납치, 협박 등등.
덕분에 사강은 살인을 제한 모든 범죄를 다 겪고 목격했다.
끔찍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개중 사강을 가장 힘겹게 한 건 가족이었다.
집에 돈이 쌓이기 시작하면서, 가족들의 태도가 바뀐 것이다.
“난 내 가족을 지키려고 이를 악물고 멀쩡한 사람을 병신 만들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가족이 나한테 그걸 시키고 있더라고. 심지어 그 사람들도 다 돈 받고 상처받는 건데 뭐가 문제냐더라.”
부모는 물론 일가친척 전부가 사강을 장사에 이용했다.
사강이 거절하면 남보다 더 닦달하며 괴롭혔다. 폭력도 서슴없었다.
“그때 내 주변의 인간은 딱 두 종류였어. 나를 이용하거나, 나를 비난하거나.”
“비난요?”
“당연하지. 돈 받고 사람한테 병 옮기는데, 누가 나를 좋게 보냐.”
있는 놈들한테는 어떤 병이든 고쳐 주는 힐러. 그 외에겐 돈을 받고 남에게 병과 상처를 옮기는 악마.
“그렇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지다 만나게 혜성이랑 하은이였지.”
학교를 다니고 있지만, 사강에게 친구라 할 만한 사람은 없었다.
이미 소문이 나 아무도 제게 다가오지 않았던 것이다.
거기다 조금이라도 친해졌다간 인질의 대상이 됐기에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사강을 꺼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은과 혜성은 그러지 않았다.
“걔네는 소문을 전혀 신경 안 쓰더라고. 그렇다고 엄청 친했던 건 아니고, 그냥 같은 반 친구 정도?”
솔직히 불편했다. 괜히 저 때문에 피해 볼까 걱정됐고, 한편으론 왜 저러나 싶었다.
가족의 변절을 겪으면서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된 사강이었다. 그랬기에 은과 혜성의 태도 역시 ‘나한테 원하는 게 있나?’ 하는 의심만 심어주었다.
“그러다 아주 거지같은 일이 터졌어.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귀족이 대타로 여자애를 하나 데려왔는데, 알고 보니 하녀 딸을 납치한 거더라고.”
“미친 거 아니에요?”
“더 미친 거 말해줄까? 그 여자애가 나보다 두 살 어렸다. 그니까 열세 살짜리를 납치해 온 거야.”
“허…….”
“기가 막히지? 그래서 세상이 두 쪽 나도 댁 병은 안 옮겨줄 거니까 꺼지라고 했어. 그랬더니 보복으로 은이랑 혜성이를 납치하더라고.”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뭐가 어떻게 돼. 망했지.”
“예?”
“은이가 화가 나서 저택을 다 때려 부쉈어. 선생 집만 한 저택이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터만 남았더라고. 근데 걔도 굉장해. 그 와중에 사람은 또 한 명도 안 죽였더라.”
“와…….”
“혜성이 녀석도 가만 안 있었어. 금고란 금고는 다 털었는데, 그때 비밀 장부가 하나 나왔거든? 그걸 언론에 퍼트리는 바람에 영지가 발칵 뒤집혔지. 결국, 그 가문 사람들 전 재산 몰수에 다 잡혀 들어갔어.”
“…….”
쿤이 입을 턱 벌렸다.
당시의 사강도 지금의 쿤 못지않게 놀랐었다.
그러나 정말 놀라운 건 그다음이었다. 두 사람이 아무 일 없다는 듯 등교해 말을 건 것이다.
“넌 괜찮냐?”
사강은 아직도 그 짧은 질문을 잊지 못한다.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제 인생에서 완전히 사라진 질문이, 저 때문에 피해를 본 둘의 입에서 나왔을 때의 충격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때 깨달았지. 아~ 얘들이랑은 친해져도 아무 일 안 생기는구나. 얘들도 나도 변하지 않겠구나, 하고.”
그때부터 쫓아다녔다.
귀찮다고 해도 따라다녔고, 욕을 해도 절대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자 셋이 있는 게 자연스럽게 굳어졌다.
사강의 인생도 많이 바뀌었다.
두 사람이 사강을 지켜줬기에 싫은 일을 억지로 하지 않아도 됐다.
원래부터 강하기로 소문난 둘인데다 그때의 일도 있어, 귀족들은 쉽사리 둘을 건드리지 못했다.
물론 그 압박이 가족으로 넘어갔지만, 사강에게 가족은 의미를 잃은 지 오래였다.
그의 저울에 이제 가족은 올라가지 않았다. 그저 두 친구만 있을 뿐.
“가장 좋은 건, 걔들이 내 가치관을 바꿔준 거였어. 그때까지만 해도 나한테 마법은 약점이고 이용 대상이었거든. 왜 있으나 마나 한 그런 거 있잖아.”
“차라리 없었으면 하는 거요?”
“어, 맞아. 딱 그랬어. 분명 이게 내 마법인데 칼날이 나를 향하고 있는 거야. 근데 걔들이 칼날의 방향을 바꿔줬지.”
“어떻게요?”
“자꾸 괴롭히면, 오히려 병 옮겨 버릴 거라고 협박하래.”
“아…….”
“생각해 보니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싶더라고. 그래서 그날 사람들한테 나 자꾸 귀찮게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불치병 옮겨 버릴 거라고 선포했어. 그랬더니 아무도 안 오더라.”
사강은 그렇게 마법이란 칼자루를 쥐게 되었다.
“뭐, 덕분에 소문은 극악으로 치달았지만, 인생은 편해졌지.”
사강이 하하 웃었다. 정말로 편하고 개운하단 얼굴이었다.
쿤은 이제야 사강이 왜 중간다리를 자처하면서까지 두 사람과 함께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왜 친구란 단어에 민감한지도 깨달았다.
사강에게 은과 혜성은 단순한 친구가 아니었다.
가장 편한 보금자리인 동시에, 무슨 짓을 해도 무너지지 않을 지지대였다.
둘이 있는 곳이라면 설령 그곳이 지옥이라 해도 사강에겐 천국보다 더 좋으리라.
“근데 사강 씨. 사강 씨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때 은이 씨랑 혜성 씨는 사이가 좋았던 거 같은데 맞아요?”
“응, 맞아. 걔네 나랑 만나기 전부터 친했어.”
“근데 왜 이렇게 된 거예요?”
쿤은 나흘 전에 던졌던 질문을 다시 건넸다. 다행히도 사강은 귀찮다며 피하지 않았다.
“자세한 것까지는 말 못 해주고, 그냥 혜성이가 은이한테 너무 큰 잘못을 저질렀어. 그래서 더는 친구일 수 없게 됐어.”
“화해할 순 없는 거예요?”
사강이 쓰게 웃었다.
“막내야, 화해란 건 싸웠을 때나 가능한 거야. 한쪽이 일방적으로 잘못했는데 화해가 어딨어. 이런 경우는 사과랑 용서만 있는 거야. 근데 혜성이가 한 짓은 선을 너무 넘었어. 그래서 은이가 용서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 거야.”
“…….”
피해를 본 당사자가 용서하고 싶어도 용서할 수 없는 일.
이 모순적인 말이 너무나 무겁게 다가왔다.
“우리의 관계는 미옐의 뿔처럼 되돌릴 수 없어.”
사강이 저 멀리 있는 등줄기 산을 쳐다봤다. 눈에 애잔함과 그리움, 그리고 미련이 스쳤다.
“에휴. 이제 우울한 이야기 그만하고, 집으로 돌아가자.”
“네.”
“그리고 너희도 이제 튀어나와.”
“예?”
사강이 턱짓했다.
쿤은 뒤를 돌아봤다. 그러자 벤치 뒤에 쭈그려 앉아 있던 녹턴과 루가 주섬주섬 일어났다.
“우악! 왜 여기 계신 거예요?”
루와 녹턴은 옷에 묻은 먼지를 털었다.
“주변 정리하러 왔다가 재밌는 이야길 하고 있기에.”
“나도.”
“아니, 왔으면 말을 하지……!”
쿤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더 어이없는 건 사강의 다음 말이었다.
“얘들 처음부터 있었어.”
“진짜요?!”
“너 훈련 더 해야겠다. 어떻게 바로 뒤에 사람이 있는데도 모르냐.”
“작정하고 숨었는데 제가 어떻게 알아요.”
“난 눈치챘잖아.”
“그러게요. 참 대단하시네요.”
“훗. 내가 한 대단하지.”
사강이 어깨를 으쓱였다. 조금 전의 진지함과 애잔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평소의 철딱서니 없는 모습으로 돌아왔다.
사강은 가방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진짜 정리하고 가자.”
그리고 세 사람과 함께 주변 정리를 시작했다.
네 사람이 함께해서 그런지 뒷정리는 순식간에 끝났다.
통제를 풀자 사람들은 금세 거리를 채웠고, 차원문이 나타났던 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기존의 활기를 되찾았다.
사강은 잠시 들를 곳이 있다며 세 사람을 두고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차원이동자를 찾느라 72시간 가까이 고생한 루와 녹턴 역시 쉬고 싶다며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혼자 남은 쿤은 짐을 챙겨 지하 자료실로 향했다.
문을 열자 쿤이 아침까지 작성했던 호수의 차원이동자의 보고서가 보였다.
원래는 이것만 하면 되는 거였으나,
“이야기 들려줬으니까 나무 인간 보고서는 네가 써. 나한테 연락하지 말고.”
라는 사강의 뻔뻔한 태도에 새로운 일을 얻게 되었다.
시말서 다음엔 한국인 차원이동자. 그거 겨우 끝내나 했더니 새로운 보고서.
“서류 지옥이 따로 없네…….”
보고서가 익숙하지 않아서 이렇게 막막한 건지, 아니면 남들도 다 그런 건지.
쿤은 한숨을 푹 내쉬며 보고서를 마무리 지었다.
이상한 소리가 들린 건, 새로운 보고서 작성을 위해 미옐과 티오의 특징을 정리해 둘 때였다.
누군가가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혹시 밖에 누가 있나 나가봤지만, 복도나 옆 방에서 나는 소리는 아니었다.
쿤은 다시 자료실로 돌아왔다. 그러자 다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
“……뭐지?”
쿤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순간 그가 흠칫 떨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쿤은 양쪽 주머니를 뒤졌다. 그러자 무언가가 꿈틀거리는 게 만져졌다.
“뭐, 뭐야!”
화들짝 놀란 쿤은 저도 모르게 주머니 속 물건을 내던졌다. 그러자 작은 덩어리가 책상 위를 구르다 멈췄다.
쿤의 눈이 크게 뜨였다.
쿤이 작성하고 있던 자료 위로 10㎝ 좀 안 되는 작은 인간이 서 있었다.
“@#$@%~!!%^^”
작은 인간은 쿤을 향해 무언가를 열심히 말했다. 그러나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작은 인간 역시 이를 눈치챘는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허공에 그림을 그린 후, 무언가를 열심히 중얼거렸다.
분명 실내인데 갑자기 바람이 분 것처럼 작은 인간의 머리카락이 나풀거렸다.
작은 인간은 흘러내린 흑색 머리칼을 뒤로 넘겼다. 그리고 소매를 정리한 후 단정한 자세로 물었다.
“이제 내 말이 들리오?”
쿤은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충격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