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65
64화-돌아가지 못한 자들 (04)
“귀엽다.”
“그러게.”
팔랑이는 나뭇잎에 휘날리는 도포 자락과 머리카락, 그리고 동그란 얼굴에 앙증맞은 눈, 코, 입까지.
500살 어르신이 왜 이렇게 귀여운 건지.
“요정이 따로 없네요.”
“응.”
두 사람이 감탄하는 사이 천호가 코앞까지 다가왔다.
쿤이 손바닥을 내밀자 도사가 나뭇잎에서 뛰어내렸다.
“무슨 일 있으세요?”
“별일 없네. 그저 그대들이 보고 싶어 왔지.”
“……말하는 것도 귀엽네.”
“그러게요.”
쿤과 은의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 도사는 멋쩍었다.
“그대들은 걸핏하면 나더러 귀엽다고 하는군. 내 몸이 작아서 그런가.”
천호가 제 몸을 내려다봤다.
“하지만 그대들이 모르는 게 있네. 실제 내 모습은 이러지 않아. 그저 기를 보존하기 위해 이렇게 작은 모습을 유지하는 거라네.”
“본모습은 어떤데요?”
“당연히 그대들처럼 크네.”
쿤은 천호의 큰 모습을 상상했다. 그러나 떠오르는 거라곤 이 모습 그대로 배율만 늘린 모습이 다였다.
‘그것도 그거대로 귀여운데?’
은 역시 비슷한 상상을 했다.
둘이 말도 뚫어지라 쳐다보자 천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어째, 둘 다 엉뚱한 상상을 하는 것 같군.”
“하하하.”
“도사, 명상은 다 한 거야?”
천호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은은 어깨를 툭툭 가리켰다. 그러자 천호가 쿤의 팔을 타고 올라 어깨에 앉았다.
“그럼 이제 주민들하고 인사하러 가자.”
“지금?”
“응. 어차피 이거 주러 가야 하거든.”
은이 제 손에 들린 채소 바구니를 들어 보이자 천호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그런데 벗들이 과연 나를 좋아할지 모르겠군.”
“좋아할 거야. 오동촌 주민들이 제일 좋아하는 건 말이 통하는 대상이거든.”
거기다 천호는 생긴 것도 귀엽고, 여러 도술을 아는 데다 지능도 높아 단체 생활을 하는데 무리가 없었다.
“쿤도 소개해 줄게. 쿤은 친구보단 보호자 입장이니까 얼굴이랑 특징 잘 외워야 해.”
“네.”
은은 쿤과 천호를 데리고 오동촌을 돌아다녔다.
쿤과 천호가 처음 만난 건 어제 가장 먼저 봤던 둘이었다.
악어와 뱀은 인근 주민이었는데, 항상 집 사이에 있는 늪을 두고 싸웠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한바탕하던 둘은 은이 오자 싸움을 멈췄다.
그리고 서로 억울하다며 은을 끌어안고 매달렸다.
차원이동자 둘과 인간의 따뜻한 포옹.
문장만 보자면 참으로 아름다웠으나 현실은 조금 무서웠다. 거대한 악어와 뱀이 제 반절만 한 인간을 끌어안은 거니 말이다.
“잡아먹히기 1초 전 같네요.”
“나는 오히려 저 둘이 낭자에게 잡아먹힐까 걱정이군.”
“은이 씨는 루 씨처럼 다혈질이 아니라 괜찮…….”
“악! 달라붙지 마!”
은이 둘을 늪지에 내던졌다. 첨벙, 되직한 흙탕물이 사방에 튀었다.
“……지 않네요.”
“죽이지는 않았군.”
“안 죽여. 잡아먹지도 않고. 그리고 다혈질은… 맞으니 인정.”
깔끔하게 자신이 다혈질임을 인정한 은은 모자를 고쳐 쓰며 두 차원이동자에게 쿤과 천호를 소개해 주었다.
늪에 내던져진 둘은 늪에 빠진 그대로 인사를 나누었다.
말은 하나도 통하지 않았지만, 쿤의 옷차림과 천호의 외향으로 상황을 대충 이해한 듯했다.
은은 바로 다음 차원이동자에게 갔다.
다양한 차원이동자가 모여 있는 곳답게 만나는 차원이동자 하나하나가 쿤의 상상을 초월했다.
어떤 차원이동자는 사람과 무척 흡사하게 생겼고, 어떤 차원이동자는 동물을 닮았으며, 어떤 차원이동자는 생전 처음 보는 형태의 모습이었다.
무섭게 생긴 이도 있었다. 특히 한 차원이동자는 저번에 보았던 광석 모양의 차원이동자랑 무척 닮아 저도 모르게 움찔할 정도였다.
물론 아주 귀엽게 생긴 차원이동자도 있었다. 하지만 외형과 성격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듯 차원이동자들은 생긴 것과 따로 놀았다.
“집들도 다 제각각이군.”
“그러게요. 나무에 구덩이를 파서 만든 집도 있었어요.”
“다들 여기서 하루이틀 지내는 게 아니니까. 점점 자기한테 맞는 집을 짓는 거지.”
혼자 넘어온 이가 있다면, 여럿이 넘어온 이들도 있다.
솜뭉치처럼 생긴 차원이동자는 6남매가 한꺼번에 넘어와 이곳에 터를 잡게 되었다고 한다.
“근데 의외로 다들 리란티아어를 알아듣네요.”
말이 통하는 차원이동자는 단둘밖에 없었으나, 대부분의 차원이동자가 리란티아어를 알아들었다.
일부는 어눌한 발음으로 몇몇 단어를 말하기도 했다.
“자주 들었으니까 눈치로 짐작하는 거야. 그리고 알아듣는 것 같아도 아닐 때가 있으니까 잘 확인해야 해.”
은은 거기까지 말하다 천호를 보고 작게 웃었다.
“그래도 이제는 도사가 있어서 그럴 일 없겠다.”
천호는 차원이동자를 만날 때마다 도술을 이용했다. 모두와 소통이 되는 건 아니었으나 그래도 반 절 이상은 대화고 통했다.
은은 그 후로도 한참 동안 오동촌을 돌며 모두를 소개해 주었다.
* * *
천호가 리란티아에 정착한 지도 어느새 열흘이 지났다.
오동촌의 관리자가 되었지만, 다른 일도 해야 했기에 쿤은 판테테 일과 오동촌 관리를 병행했다.
새로운 차원문, 돌봐야 하는 차원이동자, 보고서, 훈련 그 외 등등.
원래만으로도 충분히 바빴던 쿤의 일과는 오동촌이 들어가면서 더욱 바빠졌다. 쉬는 시간은 물론이고 잘 시간조차 없었다.
쿤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간의 고생을 보여주듯 눈그늘이 턱까지 내려왔다.
“와… 얘 얼굴 봐. 조만간 관 짜고 들어가겠네.”
“루 씨, 말을 해도 꼭……!”
루의 말에 보보가 핀잔을 줬다. 쿤 역시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반박하고 싶었으나 말할 힘이 없었다.
지금 쿤의 모든 체력은 눈꺼풀을 들어올리는 데 사용되고 있었다.
“쿤 씨, 여기 커피요. 이거라도 드세요.”
보보가 안쓰러운 얼굴로 갓 내린 커피를 건넸다.
쿤은 힘겹게 커피잔을 받았다. 그리고 아주 느릿하고 천천히 마셨다.
“감사합니다.”
“쯧. 차원이동자도 잘 돌려보냈으니까 올라가서 좀 자.”
“오동촌 가야 해요.”
“또? 너 어제도 갔잖아.”
“그래도 가야 해요. 진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단 말이에요.”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많았다.
중재는 기본이고, 밭일에 보수공사, 다친 차원이동자 치료, 거기에 가을이 다 가기 전에 주택 보수공사를 끝내야 한다는 말을 하자 루와 보보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두 사람은 피곤에 찌든 후배를 딱하게 보면서도 절대 도와준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오동촌에 가보지는 못했지만, 판테테 교육 때 차원이동자촌이 어떤지는 충분히 배워 알고 있다. 그리고 담당자들이 얼마나 죽어나는지도 봤다.
그래서 농담으로라도 도와준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러게 왜 하겠다고 했냐. 하여간 별나. 남들 다 싫다고 피하는 거, 왜 자진해서 하는 건데.”
“일 자체는 괜찮아요. 나름 재밌고요.”
“…그게 재밌다고?”
“네. 재밌어요. 차원이동자 분들도 다 착해서 좋아요. 아, 이제 오동촌 식구들도 다 제 이름 외웠어요. 어제 가니까 이름 부르면서 뽀뽀해 주더라고요. 하하.”
쿤이 커피를 홀짝이며 웃었다.
“…천직이네요.”
보보가 작게 중얼거렸다. 루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부용이 말고 천직이 또 있었네.”
“감사합니다. 근데 진짜 천직은 저 말고 은이 씨 같아요.”
“은이 언니가 왜?”
“하루도 안 거르고 오동촌을 가세요.”
쿤은 여태 부용보다 일을 많이 하는 판테테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동촌을 다니며 제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은은 그 많은 아르바이트와 판테테를 하면서도 오동촌 가는 걸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심지어 하루에 몇 번씩 갈 때도 있었다.
“주무시긴 하는 걸까요?”
“은이 언니는 모르겠고, 넌 확실히 자야 할 거 같다. 너 지금 눈 감겼어.”
“예? 진짜요?”
쿤은 뒤늦게야 제가 눈을 감고 있음을 깨닫고 정신을 차렸다.
그사이 보보가 루에게 조용히 말했다.
“루 씨, 쿤 씨 눈 뜬 거랑 감은 거랑 구분하시네요.”
“잘 보면 잘 때랑 아닐 때랑 눈썹 모양이 달라.”
“눈이 아니라 눈썹을 보고 구분하는 거예요?”
“눈으론 구별 못 하지.”
“…사람 면전에서 무슨 말들을 하는 거예요.”
이 인간들이 보자 보자 하니까, 아주 제 얼굴을 가지고 놀고 있다.
쿤은 빈 커피잔을 내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에잇, 저 오동촌이나 다녀올게요.”
“조심해서 다녀와.”
“루 씨, 이번 보고서는…….”
“네가 해.”
“봐주는 건 없는 거예요?”
“없어. 사회는 냉정하다.”
“에휴…….”
쿤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따질 기운도 받아칠 힘도 없었다.
“그래요, 그래. 내가 다 할게요.”
쿤은 은이 준 여우 모자를 쓰고, 가방을 멨다. 그리고 힘없이 터덜터덜 숙소를 나섰다.
오동촌에 오니 역시나 은이 먼저 와 있었다.
은은 차원이동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뭔진 모르겠지만, 싸움 소리와 은의 잔소리가 함께 들리는 걸 보니 차원이동자 둘이 또 싸우다 걸린 모양이었다.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네.’
쿤은 주변의 들판에 앉았다. 아직 차원이동자를 중재할 능력이 안 되었기에 이럴 때 쿤은 얌전히 뒤에 있었다. 대신 차원이동자들의 특징을 살펴두었다.
‘도사님도 은이 씨랑 같이 계신가?’
그러고 보니 둘이 요즘 부쩍 친해진 것 같았다.
자주 있는 시간도 많고.
‘그나저나 진짜 졸립다. 근데 나 왜 누워 있냐?’
분명 앉아 있었는데 정신을 차리니 어느새 누워 있었다.
정신이 몽롱했다. 꼭 등줄기 산에서 훈련할 때가 생각났다.
잠깐만 잘까, 싶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령이 왔군.”
천호가 쿤의 가슴팍에 올라와 앉았다.
“이런. 완전히 곯아떨어졌구려.”
안 자요. 나 눈 뜨고 있다고요. 물론 반쯤 감기긴 했지만, 완전 감은 거 아니라고요.
쿤은 울컥함에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등장한 은으로 인해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피곤했을 거야. 그냥 자게 놔둬.”
은은 쿤의 옆에 앉아 뻐근한 어깨를 주물렀다.
“낭자도 한숨 자게. 아침부터 여즉 일하지 않았나. 어째 첫날 말곤 쉬는 걸 본 적이 없군.”
“괜찮아. 해야 할 일도 많고, 그렇게 안 피곤해.”
“흐음…….”
천호는 은의 말을 별로 믿는 것 같지 않았다. 쿤 역시 그랬다. 아무리 은이 대단하다 해도 인간이었다. 저렇게 일하다간 몸이 무너질 것이다.
지금이라도 일어나서 은을 쉬게 할까 말까 고민할 때, 천호가 불쑥 말을 꺼냈다.
“그때 내가 한 말은 생각해 봤나?”
“어떤 거?”
천호가 은의 무릎으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정인이 되고 싶다던 그 말 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