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66
65화-돌아가지 못한 자들 (05)
정신이 번쩍 뜨이며 순식간에 잠이 달아났다.
‘뭐지, 이 두근두근한 대화는?’
쿤은 귀를 쫑긋 세웠다.
대체 언제 이런 사이가 된 걸까. 친해지면서 자연스레 좋아진 걸까? 아니면 첫눈에?
답이 뭐든 흥미진진한 건 똑같았다.
쿤은 눈을 꼭 감고 자는 척했다. 다행히도 둘은 대화에 빠져 눈썹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나도 도사랑 같은 생각이야. 싫어할 이유가 없지.”
헉! 쿤은 비명을 지를 뻔한 걸 꾹 참았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큰누나의 극단 일을 도우면서 얼마나 많은 로맨스 극을 봤던가. 그러나 그 모든 걸 다 합쳐도 지금 은과 천호의 대화만큼 설레지는 않았다.
“일단 결혼식부터 올려야겠지?”
엑? 자, 잠깐. 식을 올린다고? 벌써 그 단계까지 간 거야?
만난 지 며칠 안 됐으면서 벌써 결혼 생각을 하다니. 대체 얼마나 깊은 사랑에 빠진 걸까.
‘청춘이네~ 청춘이야.’
500살을 넘긴 천호에게 하기엔 참으로 맞지 않는 단어였으나, 쿤은 계속 그리 생각하며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가까스로 억눌렀다.
“근데 이게 쉬운 문제가 아니라 걱정이네……. 어느 쪽 결혼 방식으로 할지도 문제고.”
“흠… 공평하게 리란티아 식으로 하는 게 어떤가.”
“그건 너무 길어. 리란티아의 결혼식은 사흘이나 하거든.”
“……길군.”
“오즈벨은 좀 짧더라. 차원문이 워낙 많이 나타나서 그런가 봐. 근데 그래도 최소 하루야. 도사네는 어때?”
“우리는 신분에 따라 다르네. 도사들의 경우는 아주 약소하게 올리지.”
“굳이 따지자면 그쪽이 더 내 취향이네.”
“식은 오동촌에서 올릴 건가?”
“여기서 올려야지 그럼 어디서 올리는데.”
“이런. 지금보다 훨씬 바빠지겠군.”
“됐어. 그리고 도사도 도와줄 거잖아.”
“당연한 소릴 하는군.”
쿤은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동시에 리란티아 결혼식을 하게 된다면 꼭 사회는 저에게 맡겨주었으면 했다.
쿤은 머릿속으로 은과 천호의 결혼식을 촤르륵 그려나갔다.
그때 은이 입을 열었다.
“고생할 거 생각하면 막막한데, 그래도 그 둘 행복하게 잘살았으면 좋겠다.”
저도 은이 씨랑 천호 씨가 행복하게… 응?
“잠깐, 지금 누구 이야기하는 거예요?”
쿤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과 천호가 화들짝 놀랐다.
“안 자고 있었어?”
“도령, 깨어 있었나?”
“눈도 뜨고 있었어요.”
물론 중간엔 감았지만.
“그보다 이게 다 무슨 소리예요?”
“아~ 메이랑 펠 알지?”
메이는 미옐처럼 머리에 나무로 된 뿔이 있는 차원이동자였고, 펠은 몸을 철갑으로 두른 차원이동자였다. 타고난 심성이 고운데다 쿤이 올 때마다 상냥하게 맞이해 줘 쿤 역시 좋아하는 이들이었다.
“둘이 결혼하고 싶대.”
“헉. 진짜요?”
어쩐지 매번 올 때마다 같이 있더라.
차원이동자는 중성도 많고, 연애나 결혼이란 개념 자체가 없는 경우도 많았기에 쿤은 저도 모르게 그들의 관계를 우정으로 치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은 사랑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던 모양이다.
“축하할 일이네요.”
쿤이 물개박수를 쳤다. 그러나 이내 실망한 듯 어깨를 축 늘어트렸다.
“갑자기 왜 그래?”
“아뇨, 실은 저 은이 씨랑 도사님 이야기인 줄 알았거든요.”
쿤이 시무룩하니 답했다. 은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럴 리가 없잖아. 나랑 도사는 친구야.”
“둘도 없는 벗이 되었지.”
“그리고 리란티아인과 차원이동자의 혼인은 예외 없이 사형이야.”
“아, 맞다!”
쿤은 뒤늦게 리란티아 법을 기억해 냈다.
은의 말대로 법적으로 리란티아인과 차원이동자의 혼인은 금기되어 있다.
그리고 이를 어기면 설령 왕족이라 해도 예외 없이 처형당했다. 차원이동자도 마찬가지였다.
연애는 따로 법이 없었으나 결혼의 엄격한 제재를 보면 불가하다 보는 게 맞았다.
이 중요한 걸 잊고 있었다니. 잠이 깬 줄 알았는데, 아직 제정신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그게 무슨 소리지? 차원이동자와 이곳 사람이 혼인하면 처형까지 당하는 건가?”
“네.”
“이상한 법이군.”
“그치? 나도 그렇게 생각해.”
은이 차분히 눈을 내리깔았다. 차갑게 가라앉은 잿빛 눈동자 너머로 고요한 분노가 엿보였다.
“뭐, 어쨌든 그런 거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 그리고 설령 법이 없다 해도, 연애 같은 거 할 여유 없어.”
“확실히 낭자가 갚아야 할 빚을 생각하면 여유가 있는 게 이상하겠군.”
은이 입을 다물었다.
쿤은 조금 놀랐다. 은한테 빚이 있는 거야 오즈벨 사람 전부가 다 아는 사실이지만, 설마 천호까지 이를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잠시 후 은이 피식 웃어 보였다.
“도사랑은 무슨 말을 못 하겠네. 사람 속을 왜 이렇게 잘 아는 거야.”
“내 나이쯤 되면 타인의 업보쯤은 쉽게 볼 수 있다네.”
“나도 수련하면 볼 수 있으려나?”
“글쎄. 낭자하기 나름이겠지.”
쿤은 둘의 대화를 들으며 저 멀리 있는 펠의 집을 쳐다봤다.
“근데 차원이동자촌에서 결혼도 하네요.”
판테테가 되기 전부터 차원이동자촌이 정말로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생겼을지 고민해 봤지만, 결혼까지는 생각 못 했다.
생각해보면 지금 겪는 모든 게 상상과 달랐다.
적어도 쿤의 머릿속에 차원이동자촌은 좀 더 동화 같았다. 농사나 분쟁, 월동준비 같은 현실적인 건 없었다. 재판은 더더욱 없었고.
“역시 현실은 상상과는 많이 다르네요.”
“너만이 아니야. 다들 그렇게 생각해. 보통 사람들에게 차원이동자는 괴물 아니면 동화 속에서나 볼 법한 신기한 생명체잖아.”
“그렇죠.”
“그러다 보니 리란티아인과 똑같다는 걸 생각 못 하는 거야. 비슷하게 생긴 지구인만 봐도 다르다고 생각하잖아.”
“확실히 그러네요.”
“우리나 얘들이나 똑같은 생명체고, 하나의 생태계에서 살다 왔는데 다르다고 선을 긋는 거야. 세상에 이보다 멍청한 차별이 어디 있어.”
“…….”
말 곳곳에 뾰족한 가시가 숨겨져 있었다.
쿤이 은과 붙어 다니며 알게 된 것이 하나 있다.
은은 차원이동자에게 무척이나 각별한 마음을 가졌고, 이를 돌보는 데 제 몸을 아끼지 않았다.
겉으로 보기엔 부용과 비슷했다. 그러나 조금 더 지켜보면 이 둘이 전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부용의 애정은 범성애적이었다. 차원이동자도 리란티아도 사랑했고, 그들 모두가 행복하길 바랐다.
반면 은의 애정 속엔 리란티아인에 대한 미움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묘하리만큼 차원이동자를 가엽게 여겼다. 한편으론 자신이 꼭 도와줘야 한다는 책임의식을 느끼는 것 같았다.
불현듯 은이 전에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내가 엄청 좋아하는 사람이 한국에서 왔거든.”
“근데 내가 아는 사람은 반송 차원문을 못 탔어. 그래서 꽤 오랫동안 같이 지냈고.”
혹시 그 사람과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래서 은이 차원이동자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는 걸까?
오동촌에 한국인 차원이동자는 없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어디 있는 걸까.
다른 구역의 차원이동자 촌에 있는 걸까? 그도 아니면 원래의 세계로 돌아간 걸까?
* * *
펠과 메이의 결혼식은 빠르게 준비되었다.
펠의 세계에는 결혼식이란 것 자체가 없었고, 메이의 세계에선 달밤에 성수를 나눠 마시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맹세한다 했기에 메이네 방식과 오즈벨 식을 살짝 섞게 되었다.
하객은 오동촌 식구와 관리자 넷, 그러나 혜성과 키리기스는 안 올 게 뻔했기에 실상 외부 손님은 저와 은 둘이 전부였다.
그리고 결혼식을 준비해야 하는 것 역시 둘이 전부였다.
“…대체 혜성 씨랑 키리기스 씨는 왜 안 오는 거예요?”
쿤이 꽃 장식을 만들며 말했다.
보고서가 계속 밀리고 있는데도 꽃 장식을 만드는 저를 보니, 이 자리에 없는 둘이 미치도록 원망스러웠다.
“그 새끼들은 여기 잘 안 와. 일 많을 땐 더 안 오고. 그래서 만날 나 혼자 했어.”
“저 욕 해도 돼요?”
“해.”
“욕욕욕욕.”
“욕을 하랬더니 진짜 욕을 말하고 있네. 그게 욕이야?”
“애들도 있는데 심한 말 할 순 없잖아요.”
쿤이 제 옆에 있는 차원이동자 둘을 쳐다봤다. 꽃 만드는 걸 도와주겠다며 온 이들이었다.
둘 다 리란티아어는 하지 못했지만, 신기하게도 욕 하나만큼은 기똥차게 알아들었다. 심지어 종종 비슷한 발음을 내기도 했다.
“그나저나 은이 씨, 주무시긴 한 거예요?”
자신이야 틈틈이 자기도 하고, 종종 졸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은은 자지를 않았다.
쉬는 것도 어딘가에 기대앉는 게 전부였다.
하루의 반절 이상이 아르바이트. 그 외에는 오동촌. 은이 엄청난 마법사인 건 알지만, 이런 걸 볼 때마다 저러다 과로사로 죽는 게 아닌가 싶었다.
“잔다니까 왜 너도 도사도 내 말을 안 믿는 거야. 잔소리할 거면 너 가.”
“이거 다 만들고 갈게요.”
쿤은 남은 종이와 만들어진 꽃 장식을 봤다.
분명 네 명이 매달려 만들고 있는데, 셋이 합친 것보다 은이 혼자 만든 게 더 많았다. 심지어 훨씬 예뻤다.
“은이 씨 손재주가 좋으시네요.”
“엄마가 공예사라 어릴 때부터 이것저것 만들었거든. 꿈이 예술가기도 했고.”
“진짜요? 근데 어쩌다 판테테가 되신 거예요?”
“예술가는 돈이 안 되잖아. 당장 빚 갚을 돈도 없는데, 무슨 예술이야.”
“음… 씁쓸한 이유네요.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그러기엔 은이 씨 재주가 너무 아까워요. 뭣보다 꽃 만드는 은이 씨가 너무 행복해 보여서, 좋아하는 거 하면서 더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겠어요.”
“…….”
은의 손이 뚝 멈췄다. 표정 역시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아, 제가 너무 주제넘었죠. 죄송해요.”
이런. 이런 건 조심스럽게 건드렸어야 했는데, 그만 판테테 준비생일 때가 생각나 오지랖을 부렸다.
쿤은 미안함과 멋쩍음에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자 은이 다시 종이꽃을 만들며 피식 웃었다.
“괜찮아. 화 안 났어. 그냥 그런 말을 듣는 게 오래간만이라서 좀 놀라서 그래.”
“전에도 누가 이런 말을 했어요?”
“응. 했어. 그때도 이런 거 만들고 있었는데 행복해 보인다더라고.”
“누가요?”
“있어, 그런 애. 그보다 너 빨리 가. 이제 11시야. 언제 퇴근하고 언제 잘래.”
“하지만…….”
“하지만 할 시간에 가. 그리고 내일 나 대신 새벽에 잠깐 들러줘. 나 내일 알바 있어서 오전에는 여기 못 오거든.”
“…쉬어야 할 사람은 제가 아니라 은이 씨 같지만, 일단 알겠어요.”
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못 만든 꽃이 걸렸지만, 내일 새벽에 나오려면 지금 가서 자야 했다.
쿤은 거기 있는 모두에게 이만 가보겠단 말을 한 뒤, 숙소로 돌아갔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 안으로 들어가자 혜성이 거실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는 게 보였다.
저놈의 신문은 안 읽는 날이 없네.
같은 신문을 종일 보는 건지, 아니면 종류별로 바꿔보는 건지.
“다녀왔습니다.”
“고생 많았어. 재킷에 뭐 묻었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재킷 하단부에 묻은 종이조각이 보였다. 다 털고 온 줄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다.
“뭐 만들었어?”
“은이 씨랑 결혼식 때 쓸 꽃 장식 만들고 있었어요.”
“적당히 해. 그러다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렇게 걱정되면 좀 도와주세요. 어째 한 번을 안 오세요.”
“내가 가면 은이 기분 잡칠걸. 오래간만에 행복한 일 하는데 내가 가서 초 칠 수 없잖아.”
…어라?
기분 탓일까. 이상한 기시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