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68
67화-돌아가지 못한 자들 (07)
“뭐, 뭐야?!”
“우악!”
은과 쿤이 놀라 소리쳤다. 도사는 둘을 보며 피식 웃었다.
주변이 하얗게 변하더니 어느새 울창한 산으로 바뀌었다.
주변엔 나무가 우거졌고, 바로 옆에선 엄청난 높이의 폭포가 있었다.
시원한 폭포 소리와 자욱한 물안개. 그리고 안개 위에 그려진 무지개를 보며 쿤은 천천히 숨을 골랐다.
고개를 돌리자 낯선 남자가 서 있었다.
쿤보다 족히 한 뼘은 더 커 보이는 건장한 사내로, 꽤나 수려한 외모를 자랑했다.
쿤의 시선이 남자의 인상착의를 살폈다.
새하얀 도포와 배꼽까지 내려온 칠흑의 머리칼.
“…설마 도사님?”
쿤이 조심히 물었다. 긴장을 여실히 드러내듯 목소리가 바싹 갈라졌다.
천호는 쿤을 향해 미소 지었다.
“내 산에 온 것을 환영하네.”
그간 들어왔던 귀여운 목소리가 아니라, 키리기스만큼이나 낮고 중후한 톤이었다.
“진짜 도사님이셨어요? 이게 다 뭐예요?”
설마 순간이동이라도 한 건가 싶던 그때 은이 말했다.
“환각.”
“역시 낭자는 감이 좋아.”
“피차일반이지.”
“이게 환각이라고요?”
쿤은 좀처럼 믿을 수 없었다. 환각이라기엔 피부에 닿는 감촉이 지나치게 생생했다.
폭포 밑에 있다 보니 물이 튀는 것도 느껴졌고, 숨을 들이켜면 물 내음과 산 특유의 녹음도 맡아졌다. 손에 닿는 흙바닥의 감촉 역시 실제와 같았다.
혹시 모른단 생각에 주변을 거닐었으나, 역시나 가짜란 생각이 안 들었다.
“맛도 나나?”
쿤이 호기심을 못 참고 산딸기 하나를 먹었다. 그러자 시큼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오만상을 찌푸리자 천호가 낮게 웃었다.
“도령은 참 별나군.”
“윽. 이거 왜 이렇게 시어요?”
“아직 덜 익어서 그러네.”
“무슨 환각이 그렇게 구체적이에요. 이왕이면 맛있는 게 좋잖아요.”
“옆의 검푸른 녀석은 달 게야.”
“정말요?”
쿤이 검푸른 열매를 따 먹는 사이, 은은 폭포 밑에 고인 계곡물을 바라봤다.
물이 어찌나 깨끗한지 물고기가 움직이는 게 다 보였다.
손을 뻗어 물고기를 잡자 물의 감촉부터 시작해 물고기 특유의 미끄덩거림까지 다 느껴졌다.
“도사 굉장하다. 이렇게 잘 만든 환각 처음 봐.”
판테테 본부에서 환각 마법사들을 보긴 했지만, 천호처럼 오감이 완벽한 건 처음이었다.
“500년 내공의 힘인가.”
“좋게 봐주니 고맙군.”
천호가 자리에 앉았다. 한쪽 무릎을 세운 채, 팔을 걸친 그의 모습은 수려하다 못해 우아해 보일 정도였다.
“둘 다 서 있지 말고 앉게.”
쿤이 먼저 자리에 앉았다. 차가운 흙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다.
“낭자 역시 앉지.”
“은 씨도 앉으세요.”
둘의 재촉에 은이 마지못해 앉았다.
“에휴. 알았어. 쉴게. 쉬면 되잖아. 대신 10분 만이다.”
“그게 어떻게 쉬는 거예요.”
“10분이면 충분해.”
“낭자, 낭자가 제대로 쉬어야 도령도 쉴 수 있는 거라네.”
“어? 그냥 쉬어도 돼.”
“세상 어느 사제가 사형이 일하는 데 쉴 수 있겠나.”
“아… 그것도 그러네.”
은은 잠깐 고민하다 모자를 벗었다. 그리고 모자를 베개 삼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좋아. 한 시간만 쉬자.”
은의 피로를 생각하면 넉넉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쿤과 천호는 그게 어디냐는 심정으로 고갤 끄덕였다.
쿤은 은을 따라 벌러덩 드러누웠다. 멍하니 위를 올려다보자 새파란 하늘이 보였다.
“와.”
감탄이 절로 튀어나왔다.
우거진 나무와 뭉게구름. 길게 뻗은 나뭇가지들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꼭 나무라는 거대한 액자에 걸린 그림 같았다.
거기에 물안개와 은은한 무지갯빛이 걸치니 세상에서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절경이 펼쳐졌다.
“도사님네 하늘 엄청 예쁘네요.”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군.”
“저 여기서라면 계속 특훈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등줄기 산에서 했던 고된 훈련도 달갑게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말하자, 은이 옵션을 둘 붙여주었다.
“루나 사강이가 있어도?”
“…….”
“거기에 시말서까지 써야 해.”
“저 사표 써도 돼요?”
“하하하하.”
은은 한참 웃어 재끼다 숨을 골랐다.
“너 진짜 왜 이렇게 귀엽냐.”
귀엽다고? 어디가?
쿤은 아주 진지하게 은의 취향을 의심했다.
“귀여운 건 저보다 도사님 아니에요?”
“맞아. 미니 버전 도사는 귀여워. 큰 버전은 아니지만.”
“이런. 그거 안타깝군.”
천호는 은의 머리칼에 붙은 풀잎을 떼어주었다.
체구 차가 많이 나서 그런 걸까, 아니면 천호의 손길이 퍽이나 다정해서 그런 걸까.
하늘보다 이쪽이 더 절경 같았다.
“둘이 잘 어울리는 거 같아요.”
“얘 아직도 소설 쓴다.”
“도령은 정말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는군.”
“풍경 이야기하는 거였어요. 도사님이랑 은이 씨가 지금 이 산이랑 잘 어울린다고요.”
은과 천호가 동시에 웃었다. 쿤의 말도 안 되는 변명이 귀여운 듯했다.
은은 기지개를 쭉 켰다.
“어울리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는데, 산은 진짜 멋있다. 꼭 다른 차원에 온 것 같아. 아니다. 다른 차원 맞구나.”
비록 환각이긴 하나 리란티아에는 없는 곳이었다.
은은 그것이 정말로 마음에 드는지 한결 편해진 얼굴을 했다.
“도사, 나중에 부용이랑 보보한테도 여기 보여줘. 걔네 이런 곳 좋아해서, 오면 좋아할 거야.”
“그리하지.”
쿤은 가만히 은을 쳐다봤다.
“전부터 생각한 건데, 은이 씨는 저희를 참 좋아하는 거 같아요.”
“당연하지- 보보도 루도 부용이도 녹턴도 사강… 음. 강이는 빼고, 어쨌든 다들 귀엽고 사랑스럽잖아.”
사랑스럽고 귀엽다고?
쿤은 제 동료들을 떠올렸다. 열심히 귀엽고 사랑스러운 점을 찾아보려 했으나, 저를 무시하고, 절벽에서 내던지고, 말도 안 되는 말로 괴롭힌 것만 떠올랐다.
“부용 씨는 몰라도 나머지는 아닌 거 같아요.”
“그래?”
“어쨌든 은이 씨가 모두를 사랑하는 건 알겠어요. 오동촌이랑 차원이동자도 그렇고요.”
“오동촌 식구들도 귀엽지. 근데 오동촌은 안 좋아해.”
“진짜요?”
오동촌의 일이 워낙 많고, 바쁘긴 했지만, 그래도 은은 애정을 가지고 이곳을 가꾸었다. 그래서 이런 말을 듣는 것이 무척이나 의외였다.
“왜요?”
“여기가 있다는 건 돌아가지 못한 차원이동자들이 있단 소리잖아. 없는 게 가장 이상적인 거지.”
“아…….”
생각지도 못한 걸 들은 느낌이었다.
여태 쿤에게 있어 오동촌은 차원이동자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보호소 같은 장소였다.
그러나 오동촌이 존재한다는 건, 반송 차원문을 못 탄 차원이동자가 존재한다는 걸 뜻했다. 그리고 오동촌의 일이 끝나지 않는다는 건, 그들이 계속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는 걸 의미했다.
단순한 보호소라 생각하기엔 품고 있는 슬픔이 너무 컸다.
‘조금 창피하다…….’
쿤은 어쩐지 차원이동자촌에 갈 수 있다고 좋아한 제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저에겐 호기심이었던 일이 누군가에겐 비극이었으니 말이다.
“은이 씨가 오동촌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음… 그런 것도 있고, 내가 아는 사람 생각나서 그러는 것도 있어.”
“저번에 말했던 한국인이요?”
“응.”
은은 고개를 들어 더 높은 하늘을 쳐다봤다. 시리도록 예쁜 가짜 구름이 가짜 하늘 위를 둥둥 떠다녔다.
“그 사람도 반송 차원문을 놓쳐서 계속 리란티아에서 지냈거든. 근데 그 사람이 넘어왔던 30년 전에는 지금처럼 차원이동자촌이란 게 없었어.”
차원이동자촌이 법으로 지정된 건 지금으로부터 약 11년 전이었다.
그전에는 영지나 구역 재량에 따라 달라졌다. 어느 곳은 지금처럼 차원이동자를 따로 보호했고, 어느 곳은 본부의 감옥으로 보냈으며, 어느 곳은 그냥 처리했다.
“우리 구역은 처리하는 쪽이라 그 사람 평생 숨어 살아야 했어.”
겪어보지 않으면 상상도 못 할 만큼 막막하고 답답한 삶을 기약 없이 살아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한국인은 리란티아인이랑 외모가 비슷해서, 가짜 신분을 얻을 수 있단 거였어.”
그래서 가짜 신분을 가지고 리란티아인인 척하면서 살았다.
하지만 그래도 많은 것이 힘들었다. 위장은 완벽하지 않고, 언제고 들킬 수 있었기에 평생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살아야 했다.
제가 좋아하는 일은 고사하고 남들이 다 하는 평범한 외출조차 할 수 없었다. 장을 볼 때조차 항상 눈치를 보며 조용히 다녀왔다.
은은 그걸 어릴 때부터 봐왔다. 그게 이상하단 걸 모를 때부터, 법이 생길 때까지 말이다.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니야. 이웃 주민들은 차원이동자인 걸 다 알았거든. 근데 그래도 마음을 터놓을 수 없었어.”
“배신할까 봐?”
“그런 것도 있는데, 그보단 걱정이 더 컸어. 차원이동자란 게 걸리면 숨겨준 주변 사람도 같이 처벌받았거든. 그래서 더 무서웠던 걸지도 몰라.”
하지만 그때 그 사람이 가장 무서워했던 건, 자신의 생사를 고향에 알릴 수 없단 거였다.
그때 그 사람이 종종 그런 말을 했었다.
“차라리 죽어서 넘어온 거면 좋았을 텐데. 실종이면 엄마 아빠는 평생 나를 찾을 거 아니야. 제대로 된 효도 한번 못 했는데, 어떻게 평생을 지옥에서 살게 해.”
은은 그때의 목소리와 표정을 아직도 뚜렷하게 기억한다.
그리고 지금은 그 지옥이 뭔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생각했어. 만약 차원이동자가 반송 차원문을 놓치게 된다면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행복할 수 있게 도와주자. 단 한 명이라도 덜 외롭고 덜 힘들게 힘이 되어주자고.”
그게 은이 이렇게 오동촌을 필사적으로 살피는 이유였다.
쿤은 고개를 위로 했다. 천호 역시 입매를 굳혔다.
세 사람 사이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잠시 후, 천호가 물었다.
“…그 사람은 원래의 세계로 돌아갔나?”
조심스러운 질문에 은이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붉은 머리칼이 흘러내려 얼굴을 가렸다.
“글쎄…….”
“모르는 건가.”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리란티아엔 없어. 있다면 내 그림자가 못 찾을 리 없으니까.”
고개를 푹 숙인데다 머리칼까지 있어 천호는 은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누워 있던 쿤은 은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무엇을 해도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얼굴이 처음으로 울 것처럼 일그러졌다.
쿤은 이제야 은이 느끼는 부채감이 어디서 오는지 알 것 같았다.
어릴 때의 자신이 절대 해줄 수 없던 것, 그 시절의 판테테와 리란티아가 해주지 못했던 것을 지금이라도 해주려는 거였다.
그 사람처럼 고통받는 차원이동자가 조금이라도 줄어들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어쩌면 은에게 오동촌에 있는 차원이동자는 그녀가 알고 있다던 차원이동자의 대신일지도 모른다.
“후…….”
은은 감정을 추스르듯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슬픔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평소의 하은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