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69
68화-돌아가지 못한 자들 (08)
“뭐, 어디든 잘 있으면 된 거겠지. 어쨌든 그런 이유에서 오동촌을 돌보는 거니까, 자꾸 쉬라고 하지 마. 오히려 더 신경 쓰인단 말이야.”
은이 뚱하니 말했다.
이렇게까지 말하니 더는 일하지 말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알겠어요. 대신 앞으론 저랑 같이해요. 혼자 하지는 마시고요. 저도 같이해 봐야 일이 손에 익을 거 아니에요.”
“알겠어. 앞으론 그럴게.”
은이 그리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쿤과 천호는 눈짓을 교환했다. 아무래도 은의 휴식은 이것으로 끝난 것 같았다.
쿤은 아주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순간 이상한 느낌이 손끝에 닿았다.
쿤은 제 손을 내려다봤다. 갑자기 저리며 아프기 시작했다.
“쿤, 왜 그래?”
“아뇨, 손이 좀 아파서요.”
“진짜?”
은이 쿤 앞에 앉아 손을 살폈다. 그러나 특별히 이상한 건 없었다.
“왜 아프지? 뭐 했어?”
은이 천호를 보며 물었다.
“아니, 아무 짓도 안 했네.”
“그럼 제 몸에 무슨 일 생긴 걸까요?”
지금은 환각 속이니 밖에 있는 제 몸에 무슨 일이 생긴 걸 수도 있다.
혹시 몰라 이를 묻자 천호가 아니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우리 주변엔 아무도 없네. 만일 있었다면 낭자가 먼저 눈치챘겠지.”
완벽하게 환술에 빠진 쿤과 달리 은은 반 정도밖에 안 걸린 상태였다.
“그리고 도령은 지금 내 환술에 걸리지 않았나. 무슨 일이 생겨도 알 수 없다네.”
천호가 건 환술은 본체의 감각을 완전히 분리한다.
환술에 빠져 있을 땐, 누가 제 본체의 심장에 칼을 찔러 넣어도 눈치채지 못한단 소리였다.
“그럼 환각에 취한 건가?”
“그랬다면 더더욱 아픔을 못 느끼고, 내가 주는 감각만 느껴야지.”
“음… 그것도 그런데.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환각 풀어줘.”
“정 뭐하면 낭자가 풀지 그러나. 낭자의 힘이면 순식간에 풀 수 있을 거 아닌가.”
“그랬다가 도사가 다치면 어떡해.”
마법의 상쇄는 힘이 약한 쪽에 무리가 갈 수 있다.
은이 루의 결계를 깰 수 있으면서도 깨줄 때까지 기다리는 게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물론 도사의 경우는 마법이 아니었기에 다를 수도 있지만, 확실한 것 역시 아니기에 선뜻 제멋대로 할 수 없었다.
“낭자는 정말 우리에겐 친절하군.”
천호는 환각을 풀었다. 몽환적이던 숲이 사라지고, 대신 익숙한 들판이 나타났다. 천호의 모습 역시 작아져 있었다.
쿤은 제 손을 내려다봤다. 그러나 마치 제 착각이었다는 듯 따끔하던 감각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괜찮아?”
“네, 괜찮아요. 제가 착각한 거였나 봐요.”
쿤은 정말로 괜찮다며 제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요란스러운 소리가 들린 건 그다음이었다.
우당탕탕탕.
굉음과 함께 복작복작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
은은 뒤집어진 테이블을 보며 이마를 짚었다.
저들이 환술에 빠진 사이 무슨 짓을 벌인 건지 파티장이 개판이 되어 있었다.
저들 딴에는 재밌다며 웃고 있지만, 치워야 할 은은 죽을 맛이었다.
“저걸 언제 다 치워…….”
직접 치우게 해도 되련만, 은은 그걸 못 참고 테이블 쪽으로 달려갔다.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차원이동자들을 돌보는 은을 보니, 문뜩 제 큰 누나가 생각났다.
“저희 누나도 엄청난 극성이었는데, 은이 씨는 더 하네요.”
“그러게나 말이야.”
천호는 그리 말하다 불쑥 드는 생각에 턱을 짚었다.
“갑자기 걱정되는군. 지금만으로도 저러는데 아이가 태어나면 어쩌지?”
“아이요?”
“메이와 펠이 혼인했으니, 둘 사이에 아이가 태어날 수도 있지 않나.”
은의 성격이라면 종일 업고 다닐지도 모른다.
천호가 이를 걱정하자 쿤이 쓰게 웃어 보였다.
“괜찮아요, 그거 불가능해요.”
“불가능하다니?”
쿤은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고민했다.
“차원문이 막 나타났을 초기에 왕국 주도하에 차원이동자와 리란티아인의 혼혈, 그리고 차원이동자간의 혼혈을 실험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어요.”
황제가 죽고도 저주가 풀리지 않아 다른 차원의 피가 섞이면 될지도 모른단 생각에 이런 실험을 자행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고, 무고한 피해자만 생겼다.
“그래서 지금은 법으로 금지하고 있어요. 부끄러운 역사죠. 반복되면 안 될 일이고요. 어쨌든 펠이랑 메이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날 일은 없어요. 어쩌면 그래서 차원이동자간의 결혼이 가능한 건지도 모르겠네요.”
새로운 종이 태어나 리란티아를 어지럽힐 일은 없으니 말이다.
“쿤-! 와서 도와줘!”
혼자 수습하기엔 일이 큰 걸까. 아니면 같이하자던 제 말을 기억한 걸까.
은이 쿤을 불렀다.
“네, 지금 가요.”
쿤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은이 있는 쪽으로 달려갔다.
천호는 그런 둘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의 얼굴에 드물게 당혹이 어렸다.
“불가하다고? 그럼 내가 느낀 건…….”
천호의 황망한 목소리가 바람에 묻혀 사라졌다.
행복한 결혼식 이후, 평범한 일상이 다시 찾아왔다.
쿤은 여전히 바빴고, 은도 여전히 바빴으며, 혜성은 여전히 신문만 읽었다.
모처럼 만의 한가로운 주말, 쿤은 새벽부터 일어나 주방에 들렀다 충격적인 사실을 깨달았다.
제가 밥을 안 하면서부터 혜성 역시 별다른 식사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쓰레기통 역시 그대로였고, 나와 있는 거라곤 커피 컵이 전부였다.
“아니, 내가 엄마야? 왜 밥을 안 챙겨주면 먹지를 않는 건데. 자기가 차원이동자야 뭐야, 왜 밥을 안 먹어서 사람 신경 쓰이게 만드냐고.”
쿤은 마치 마늘이 혜성이라도 되는 것처럼 열심히 다졌다.
커피를 마시러 들어왔던 혜성은 쿤의 살벌한 모습에 저도 모르게 주춤하고 말았다. 단 한 번도 무섭지 않던 동생이 무섭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어라, 일어나셨어요?”
“……좋은 아침.”
“잠은 좀 주무셨어요?”
“어째 내가 할 질문을 빼앗긴 거 같군.”
“전 잘 잤어요. 거기다 어제 은이 씨가 피로회복제 줬거든요. 그거 마시니 정신이 말똥해졌어요.”
쿤은 약빨이 아주 잘 받는 인간이었다. 감기약도 한 번 먹으면 바로 감기가 떨어졌다.
거기다 은이가 가진 피로회복제는 정말 성분을 검사하고 싶을 만큼 효과가 좋았다.
“그나저나 혜성 씨는 왜 식사를 안 하신 거예요.”
“먹었어.”
“하. 제가 식창고 봤거든요?”
내가 주방 관리한 게 몇 년인데, 누굴 속이려고.
“제가 이번에 확실히 깨달았어요. 오즈벨에는 절대 믿으면 안 되는 세 가지 말이 있다고요.”
“그게 뭔데?”
“보보 씨의 ‘괜찮아요’, 은이 씨의 ‘나 충분히 잤어’, 혜성 씨의 ‘밥 먹었어’. 이 세 말은 절대 믿으면 안 돼요. 이건 진짜 오즈벨 지부 3대뻥으로 후대에 계속 남겨야 해요. 아니, 근데 왜 이중 둘이 27라인인 거야. 생각해 보니 사강 씨도 만만찮게 뻥 잘 치잖아! 맨날 아닌 척하면서 사고 다 치고 패악 부리고. 대체 그 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뭘 해야 골치 아픈 셋이 한 번에 태어나는 거냐구요.”
“하하하하.”
“웃지 마요. 저 지금 화내는 중이라고요.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네. 왜 밥을 안 먹어요! 리란티아인은 밥심으로 사는 건데!”
쿤의 감정을 대변하듯 칼질이 좀 더 빠르고 정교해졌다. 쿤이 저러는 걸 보니 일상이 돌아온 것 같았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밥은 먹었어. 대충 먹긴 했지만.”
“정말요?”
“그리고 네 요리가 없어서 밥을 안 먹은 건 아니야. 요즘 좀 바빠서 밥해 먹을 시간이 없었거든.”
“바쁘셨어요?”
“일이 있었어.”
“혜성 씨가 일을 해요?!”
“…넌 진짜 내가 단장이라는 걸 잊은 것 같다.”
“아뇨, 기억해요. 매일 신문만 읽는 잉여 단장이잖아요.”
“이건 칭찬으로도 못 듣겠네.”
어이가 없는지 혜성이 실없이 웃었다.
“어쨌든 한동안은 계속 바쁠 거야. 이제 곧 판테테 총 회의도 있고 말이야.”
판테테 총회의. 칼질을 하던 쿤의 손이 멈췄다.
“그거 저번에 하지 않았어요?”
쿤과 로비츠 영지에서 만났을 때, 그때도 본부 회의를 가는 중이라고 했다.
쿤은 그걸 또 하는 거냐 물었다. 그러자 혜성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왕도 총본부에서 한 회의고, 이건 6구역 본부에서 하는 회의야. 6구역 영지 판테테들은 전원 참여. 다른 구역은 개중 한 영지에서만 대표로 오면 돼.”
“아~ 언제 가는데요?”
“3주 후, 근데 차원문이 나타나면 미뤄질 수도 있어.”
“음. 그렇구나.”
보통 본부 회의는 간부들만 간다 했으니 이번에도 높은 확률로 혜성과 키리기스 은이 가겠구나 싶었다.
은이가 없는 동안 걱정하지 않도록 오동촌을 더 잘 봐야겠다.
그리 생각할 때, 은이 주방 안으로 들어왔다.
“은이 씨, 좋은 아침이에요.”
“좋은 아침.”
은은 늘어지게 하품하며 식탁 의자에 앉았다.
후드 티에 반바지, 팔에 걸친 판테테 재킷. 평소 은이 입고 다니던 차림새 그대로였지만, 쓰고 있던 모자가 바뀌었다.
귀여운 고양이 모자 대신 악마 날개가 달린 검은 모자였다.
“못 보던 모자네요.”
“이거? 강이가 사줬어. 나한텐 악마 주고, 지는 천사 날개 달린 걸로 샀더라.”
“천사한테 사과하라 그래야겠네요.”
은은 피식 웃으며 혜성의 앞에 작은 상자를 밀었다.
혜성도 쿤도 멍하니 상자만 바라봤다.
“이게 뭐야?”
“성수 답례.”
“…사과는 안 받겠다는 거야?”
“어, 안 받아. 그건 네가 백번 잘못한 거니까, 죽을 때까지 안 받을 거야.”
“하아…….”
혜성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의 안색이 이렇게 빨리 어두워질 수 있나 싶을 정도였다.
혜성은 뭔가 말하고 싶은 사람처럼 한참이나 입을 달싹였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건, 예상외로 알겠단 대답이었다.
볼일을 끝내자마자 은이 재킷을 걸쳤다.
“은이 씨, 식사하고 가세요.”
“미안. 나 아르바이트 있어서 바로 나가봐야 해.”
은은 쿤과 혜성이 붙잡기도 전에 몸을 돌려 나갔다.
모처럼 은이 좋아하는 쌀 요리였는데.
쿤은 칼을 든 자세 그대로 아쉬워했다.
그사이 혜성은 은이 준 상자를 열어봤다. 순간 그가 왼쪽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아… 하은 진짜…….”
대체 뭐기에 저러는 걸까.
쿤은 상자 안을 들여다봤다. 그러자 혜성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주 귀엽고 작은 컵케이크가 있었다.
“혜성 씨, 케이크 좋아하셨어요?”
“좋아한다기보단, 시험 기간이나 머리 써야 할 때 많이 먹었지. 이거 먹으면 당 채워져서 집중이 잘됐거든.”
“…….”
쿤은 케이크와 혜성, 그리고 은이 나간 문을 번갈아 봤다.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상상은 쿤의 심장을 두근두근하게 만들었다. 달콤한 쪽이 아니라 살벌한 쪽으로 말이다.
‘생각하지 말자. 이건 알면 안 될 거 같아. 음, 그래. 이건 모른 척하자.’
제가 아무리 호기심과 오지랖이 넘쳐도 이것만은 알면 안 됐다.
쿤은 열심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제 머릿속에 든 상상을 지우려 애썼다. 그때 불쑥 쿤의 시야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주방 한구석에 걸어둔 달력이었다.
“…….”
쿤은 칼을 내던지고 제 수첩을 꺼냈다. 그리고 그곳에 체크 해둔 일정을 확인했다.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이번엔 확실하게 행복한 쪽으로.
정확히 모래 날짜에 표시된 동그라미와 별표. 그리고 그 아래로 쿤이 두 달간 기다려 왔던 글이 적혀 있었다.
‘봉급날’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