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72
71화-역 차원문 (01)
눈이 부셨다.
쿤은 미간을 찌푸렸다. 지난밤에 커튼을 치고 자는 걸 깜빡했는지 눈에 계속 햇볕이 내리쬐는 것 같았다.
빛을 피하려 몸을 돌려봤지만, 좀처럼 편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ㅋ… ㅜ…….”
누구지? 누가 날 부르는 거야.
피곤해서 모든 걸 외면하고 그냥 자려 할 때, 목소리가 벼락처럼 꽂혔다.
“쿤!”
쿤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이… 윽.”
동시에 입안에서 깔깔한 모래알갱이가 느껴졌다.
쿤은 한참 동안 이를 뱉어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입이고 얼굴이고 할 것 없이 모래 범벅이었다.
“괜찮아?”
“이게 무슨…….”
쿤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가까스로 눈을 떴다.
순간 그의 눈이 크게 떠졌다.
새하얀 모래, 새하얀 하늘. 마치 백색으로 이뤄진 듯한 세계가 눈앞에 있었다.
“…….”
쿤은 뒤를 돌아봤다. 뒤쪽 역시 같은 풍경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심장이 불안으로 쿵쾅거렸다.
“은이 씨, 이거 설마…….”
“맞아.”
은이 후드를 눌러 쓰며 말했다.
“역 차원문이야.”
심장이 쿵 소릴 내며 떨어졌다.
역 차원문.
말 그대로 반대 방향의 차원문이었다. 모든 성질과 특징은 기존의 차원문과 같으나 오직 단 하나, 방향만이 달랐다.
그렇다. 리란티아의 생명을 다른 세계로 빨아들이는 차원문인 거였다.
일반적으로 한 번 볼까 말까 한 희귀 차원문, 오즈벨에서도 채 열 번이 관측되지 않은 녀석이었다.
그런데 그걸 타다니.
“하… 말도 안 돼…….”
쿤의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
심장은 계속 터질 것처럼 쿵쾅거렸고, 열기가 무색할 만큼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머릿속은 혼란으로 핑글핑글 돌았다.
쿤은 가까스로 냉정을 찾았다. 그러나 그러기 무섭게 새로운 충격이 쿤을 덮쳤다.
쿤은 그대로 철퍼덕 엎드렸다.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은이 화들짝 놀랐다.
“왜 그래, 어디 아파?”
은이 무릎까지 꿇고 앉아 쿤의 상태를 살폈다.
“은이 씨…….”
“어, 말해.”
“저 오늘 첫 봉급 탔어요…….”
“……어?”
“근데 써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역 차원문 타는 게 말이 되느냐고요!”
쿤이 울분을 담아 소리쳤다.
돈을 만져 보기라도 했음 덜 억울하지, 제가 한 거라곤 숫자 보고 놀라고, 사강한테 설명 듣고, 은이의 화려한 발길질을 구경한 게 전부 아니던가.
“내가 월급 타면 하려고 리스트까지 뽑아놨는데……! 적금도 들고, 옷도 사고, 책도 사고 도사님이랑 맛있는 것도 사 먹으려 했는데!”
쿤의 얼굴이 우는 것처럼 일그러졌다. 아니, 진짜로 울고 있었다.
모래를 움켜쥔 채, 연신 울분을 토하는 제 후배를 보며, 은은 그가 왜 이렇게 좌절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동시에 아주 깊이, 정말로 깊이 동정했다.
“힘내, 쿤. 돌아갈 수 있을 거야.”
“흐으으윽……!”
“근데 너도 좀 대단하다. 보통 이런 상황에 월급 생각 못 하는데, 그걸 하고 있네.”
빚더미에 올라 세상 누구보다 돈에 민감한 은도 월급 생각은 못 하고 있었다.
그러나 쿤은 아니었다. 그는 지금 이 상황이 누구보다 슬프고 억울했다. 그리고 그건 역 차원문을 탄 충격을 이겨 버렸다.
“저 오늘 쇼핑하려고 휴가까지 냈단 말이에요!!”
“아…….”
은이 짧게 탄식했다.
차원문이 예고하고 나타나는 건 아니지만, 이번엔 차원문이 크게 잘못한 것 같았다.
왜 하필 나타나도 이런 날 쿤 앞에 나타난 걸까.
“차원문 누가 만든 거야. 쉬는 날 정도는 지켜줘야 할 거 아냐.”
정말로 억울한 쿤은 저번에 했던 욕이란 단어 대신 진짜 욕을 해대며 억울함을 토했다.
발음은 또 어찌나 정확한지 누가 들으면 사전이 욕을 하는 것 같았다.
은은 열심히 쿤의 등을 토닥였다. 그리고 계속 힘내란 말을 되풀이했다.
쿤은 한참을 더 그러다 조용히 은을 불렀다.
“은이 씨…….”
“응.”
“근데 저 얼마나 기절해 있던 거예요? 차원문 위치 찾아야 하는데…….”
은은 필사적으로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참았다. 이 와중에도 판테테는 판테테라고 차원문 위치부터 찾고 있다.
“걱정하지 마.”
은이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
쿤은 고개를 들었다. 눈물로 얼룩진 시야 너머로 점점 흐릿해지는 차원문이 보였다.
“차원문 바로 앞이고, 이제 5분 지났어.”
“그건 다행이네요. 흐으윽…….”
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역 차원문도 일반 차원문처럼 72시간 후에 반송 차원문이 나타났다. 위치 역시 같았기에 장소와 시간을 기억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쿤은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차원문의 모양을 기록했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무리 슬퍼도 할 건 다 하는 쿤의 모습에 결국 은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하하. 내가 진짜 너 때문에 미친다.”
“웃지 마요! 전 심각하다고요!!”
“미안해. 근데 네가 심각한 게 더 웃겨.”
하하하하.
은의 명랑한 웃음소리가 하얀 세계에 퍼졌다.
한참이나 들썩이던 은은 가까스로 숨을 고르며 눈가를 훔쳤다.
“아, 눈물 나왔어. 이제 진정하고, 시간 표시하자.”
쿤은 고개를 끄덕이며 소매를 걷었다. 오른손에 찬 판테테 시계가 드러났다.
판테테 전용 시계엔 일반 시계에는 없는 두 번째 초침이 있었다.
72시간을 알려주는 초침으로, 버튼을 누르면 70시간 후부터 72시간이 될 때까지 10분 간격으로 진동이 울렸다.
쿤은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초침이 째깍이며 움직였다.
“은이 씨는 기절 안 한 거예요?”
“응.”
“보통은 기절한다던데, 굉장하시네요.”
“내가 하도 그림자를 많이 타서 그런 거 아닐까? 그리고 도사도 기절 안 했잖아.”
“도사님은 500살이나 사셨잖아요.”
“음. 그것도 그러네.”
“좀 이상한 말이지만, 그래도 은이 씨랑 같이 와서 다행이에요. 만약 사강 씨랑 넘어왔다면 세상에서 제일 슬픈 날이 될 뻔했어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은은 자리에서 일어난 후, 쿤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문제는 여기서 72시간을 버티는 건데…….”
“여기서 기다려야 하는 거죠?”
쿤이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봤다. 먹고 마시는 건 물론이고, 쉴 만한 곳 하나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거기다 어찌나 더운지, 이대로 있다간 하루도 못 가 쓰러질 것 같았다.
“일단 주변을 좀 둘러보자.”
은은 제 그림자를 떼어 긴 막대기를 만든 후, 차원문이 나타난 자리에 꽂았다. 그리고 쿤과 함께 주변을 둘러봤다.
뭐가 나올지 알 수 없었기에 두 사람은 최대한 조심히 움직였다.
천천히 범위를 넓혀나가며 주변을 둘러봤지만, 아무리 걸어도 나오는 건 사막뿐이었고, 쉴 곳은커녕 작은 돌조차 보이지 않았다.
“하아…….”
쿤이 숨을 토하며 머리를 쓸어넘겼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세상이 온통 하얗다 보니 눈이 너무 아팠다. 거기다 모든 풍경이 똑같아 어디가 어디인지 구분이 하나도 되지 않았다.
분명 앞으로 걷고 있는데, 제자리를 걷는 느낌. 지금이 딱 그랬다.
“차원이동자들도 이렇게 막막했을까요.”
“그래도 이거보단 나을 거야. 사막도 아니고, 판테테도 있잖아.”
은은 허리를 짚었다. 그러다 저도 모르게 움찔하고 말았다.
쿤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아까 사강 씨한테 옮겨 받은 상처죠.”
“이런, 들켰네.”
“많이 아픈 거예요?”
“그건 아니고, 멍이 들었는지 좀 욱신거리네. 이럴 줄 알았으면 나중에 옮겨 받을 걸 그랬어.”
쿤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부용 씨도 그렇고, 보보 씨도 그렇고, 은이 씨도 그렇고, 왜들 그렇게 자기 몸을 안 챙기는 거예요.”
“너도 그러잖아.”
“전 그 정도는… 맞네요.”
생각해 보니 저도 만만찮게 나댔다.
어떤 의미로 보자면 가장 최악이었다. 없는 실력으로 객기를 부린 거니 말이다.
‘그래도 요즘은 좀 많이 늘었으니까, 0.2인분 정도는 할 수 있을 거야.’
쿤은 이제 객기는 아니라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크흠, 어쨌든 앞으로는 그러지 마세요. 사강 씨도 별로 안 좋아할 거예요.”
“내가 낸 상처잖아.”
“그냥 상처만 내세요.”
“때리지 말란 말은 안 하는구나.”
“아, 그러네요. 근데 강이 씨면 한 대… 아니, 두 대 정도는 괜찮을 거 같은데… 아닌가? 좀 더 때려도 되나?
쿤이 진지하게 고민하자 은이 다시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대체 뭐가 그리 웃긴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제 말이 은의 유머코드를 건드리는 모양이다. 그도 아니면 원체 웃음 장벽이 낮거나.
쿤과 은은 기운을 내서 주변을 좀 더 둘러보기로 했다.
그로부터 얼마나 걸었을까.
바람을 등지며 천천히 나아갈 때, 두 사람의 눈에 무언가가 들어왔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쪽으로 달려나갔다.
가까이서 보니 새하얀 기둥이 모래밭 위에 듬성듬성 꽂혀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엔 부러진 기둥의 잔해로 보이는 원형 돌기둥이 모래에 파묻혀 있었다.
“건물이라도 있었던 걸까요?”
“글쎄…….”
은과 쿤은 반사적으로 아래를 봤다. 보통 건물을 세웠으면 그 터가 있게 마련인데 모래가 덮고 있어 그런지 좀처럼 이를 찾을 수가 없었다.
다만 기둥과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송곳처럼 뾰족하게 솟은 조형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쿤은 제 무릎까지 오는 조형물을 세심히 살폈다.
조형물들의 간격 하며, 위치까지. 일반적인 건물이라기엔 좀 특이했다.
신전이나 제사용 건물이라도 있었던 걸까, 싶던 그때 불현듯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왜 어디선가 본 거 같죠?”
“너도 그래? 나도 지금 계속 그 생각 중이었어. 분명 이거랑 비슷한 걸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오즈벨에 이렇게 생긴 건축물이 있나요?”
“아니.”
오즈벨에도 특이한 건축물들이 더러 있지만, 이렇게 생긴 건 본 적 없다.
“어디서 봤지? 분명 어디서 봤는데…….”
모래 속에 파묻혀서 그러는 걸까?
쿤은 기둥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한눈에 조형물들을 살폈다.
조금 떨어져서 보니 뾰족한 조형물들이 마치 대칭을 이루듯 일렬로 놓여 있었다.
쿤은 자리를 옮겼다.
가운데서 보니 거대한 조형물들이 둥근 통처럼 가운데를 향해 말려 있었다.
“…….”
갑자기 온몸에 핏기가 싹 가시는 것 같았다.
동시에 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쿤은 직감했다. 은과 제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은 씨, 이거……!”
쾅, 쾅, 쾅, 쾅!
쿤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굉음이 땅을 울렸다.
굉음은 엄청난 속도로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땅이 솟구치며 모래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우악!”
거센 모래 파도가 쿤을 덮쳤다. 쿤은 모래 속에 파묻혀 허우적댔다. 그때 무언가가 쿤의 허리를 낚아채, 바깥으로 빼냈다.
은의 발치에서 시작된 긴 그림자가 끈처럼 쿤을 낚아 올렸다.
어느새 기둥 위로 피한 은이 쿤을 제 뒤에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