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78
77화-역 차원문 (07)
* * *
과거, 쿤이 할머니와 함께 갔던 역 차원문 너머의 세계는 모든 것이 버석하게 말라 버린 곳이었다.
땅은 쩍쩍 갈라졌고, 풀 역시 말라 비틀어졌으며, 건물 또한 낡고 기울어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 세계에서 물은 무척이나 귀했기에, 사람들은 항상 이를 두고 싸웠다.
쿤은 할머니와 크고 작은 전투에 휘말렸다.
그때 한 아이가 두 사람을 도와주었다.
아이는 제집에서 쉬게 해주는 것은 물론, 먹을 것도 나눠주었다.
이 척박한 세계에 살면서도 아이는 생기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희망찬 눈으로 말했다.
“비가 오면 전쟁이 끝날 거야.”
쿤은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땅도 사람들도 메말라 버린 이 땅에 비가 내리는 상상을 말이다. 그리고 정말로 비가 내렸다.
이후, 엄청난 통증이 쿤을 덮쳤다.
결국, 쿤은 며칠 내리 앓게 되었고, 후유증으로 기억이 뒤죽박죽 섞이고 말았다.
하지만 마법을 썼던 것만은 또렷하게 기억 나 할머니에게 그 일을 말했다.
“할머니, 내가 분명 마법을 썼어. 그래서 엄청나게 많은 비가 내렸어.”
그러나 들려오는 대답은 너무나 호탕한 웃음이었다.
“하하하. 우리 손주가 재밌는 꿈을 꿨나 보네.”
꿈? 그게 꿈이라고? 아직도 모든 게 생생한데 꿈이라고?
“아니야, 할머니. 그건 꿈이 아니야. 진짜야. 그래서…….”
“쿤. 그건 마법이 아니라 우연히 내린 비야. 그게 진짜 네 마법이면 지금도 쓸 수 있어야지.”
쿤은 다른 세계에서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따라 했다.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비도 내리지 않았고, 통증도 없었다.
“우리 손주가 마법사가 되고 싶어서 그런 꿈을 꿨나 보다. 딱한 것.”
정말로 꿈인 걸까?
쿤은 도저히 믿기지 않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제 기억은 온전하지 못했고, 마법을 쓸 수 없었으니까.
무엇보다 그렇게 생각해야지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쿤은 제 손에 남았던 그 감각을 잊기 위해 힘썼다.
그런데 그것이 십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살아났다.
* * *
심장이 쿵쾅거렸다.
쿤은 제 눈앞에서 벌어진 일을 믿을 수 없었다. 제가 상상한 모습이 그대로 실현되었다.
모래벽은 순식간에 지네 위로 허물어졌다.
엄청난 양의 모래가 쌓이며 자욱한 먼지가 일었다.
바로 코앞에 있었던 탓에 쿤과 은 역시 휩쓸리고 말았다.
쿤은 서둘러 모래 더미에서 빠져나왔다. 온몸이 모래 범벅이었지만, 털어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이게 무슨…….”
더 놀라운 건 그다음에 일어났다. 다른 한 마리의 지네 앞에도 거대한 모래벽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무너지지 않고, 돌처럼 굳어 앞을 막았다.
모래벽에 가로막힌 지네가 방향을 틀어 뒤쪽에서 덤벼들었다.
쿤이 화들짝 놀라며 다시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또 한 번 모래가 치솟으며 적을 막았다.
제가 생각한 대로 움직이는 모래에 소름이 쫙 끼쳤다. 동시에 팔이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애써 잊으려 했던 그 감각이었다.
쿤은 은을 둘러업은 뒤, 자리를 벗어났다.
“쿤, 너 뭐야…… 너 마법사였어?”
“잘 모르겠어요.”
정말로 알 수 없었다. 마법사인지, 그렇다면 왜 그동안 사용할 수 없다 이제야 쓸 수 있는 건지.
가지고 있는 정보가 너무 한정적이라, 쿤은 제가 아는 걸 짧게 설명했다.
“할머니랑 역 차원문을 타고 간 세계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근데 그 후로 뭔 짓을 해도 마법을 사용할 수 없어서, 제 꿈인 줄 알았어요.”
은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때 땅이 솟구치며 지네가 앞에 나타났다. 놀란 쿤은 무의식적으로 팔을 움직였다. 그러나 이번엔 아무런 일도 생기지 않았다.
“뭐, 뭐야. 왜 안 돼?”
쿤이 놀라 당황하는 사이 지네가 쿤의 오른팔을 물었다.
“큭!”
뾰족한 이빨이 살점을 파고들었다.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쿤은 빠르게 은을 내던졌다.
은이 모래밭에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지네가 쿤을 끌고 모래 속으로 들어갔다.
물에 빠진 것보다 훨씬 갑갑하고 무거운 압박이 몸을 짓눌렀다. 움직이긴커녕 눈조차 뜰 수 없었다.
‘젠장.’
이대로 있다간 정말 위험했다.
쿤은 은의 그림자를 움직여 지네의 머리를 휘감았다. 순간 위에서 다른 그림자가 내려와 지네의 몸을 칭칭 감았다.
그것은 그대로 지네와 쿤을 잡아끌었다.
콰앙-
대량의 모래가 솟구치며 쿤과 지네가 밖으로 빠져나왔다.
지네는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위에 크게 몸부림쳤다.
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다른 팔로 지네의 얼굴을 꾹 누른 그는 입이 살짝 벌어지는 틈에 맞춰 머리 아래를 걷어찼다. 단단한 턱이 벌어지며 쿤의 팔이 빠졌다. 이윽고 몸이 아래로 추락했다.
“쿤-!”
채 균형을 잡기도 전에 몸이 바닥에 추락했다.
쿵- 엄청난 통증이 전신을 덮쳤다.
“윽……!”
쿤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숨을 들이켜는 것과 동시에 기침이 터져 나왔다.
“콜록, 콜록, 하아…….”
“쿤, 괜찮아?”
“괜찮, 아요.”
쿤이 크게 숨을 내쉬었다.
심호흡하면 할수록 팔이 잘게 떨렸다. 지네에게 물린 팔은 감각이 없었고, 꾸역꾸역 흘러내린 피가 손 전체를 붉게 물들였다.
그사이 은이 힘겹게 쿤 쪽으로 걸어왔다. 그녀는 처참한 팔의 상태에 표정을 굳혔다.
“팔 움직여 봐.”
쿤은 주먹을 쥐어 보였다. 힘이 제대로 들어가진 않았으나 제 의지대로 움직였다.
은은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그림자를 더 강하게 잡아당겼다.
한참을 저항하던 지네의 몸이 뒤로 접혔다. 우드득. 드득. 콰직. 섬뜩한 소리와 함께, 관절이 으스러졌다.
“이게 뭐라고……!”
은이 빠드득 이를 갈았다. 평소였으면 별 힘도 들이지 않고 끝낼 녀석들이건만, 지금은 조금만 움직여도 진이 빠졌다.
결국, 은이 그림자를 놓았다. 연회색의 그림자가 발치로 돌아오자, 속박에서 벗어난 지네의 몸이 쿵 소릴 내며 무너졌다.
“젠장, 몸이든 그림자든 하나만 멀쩡해도 이 고생은 안 하는 건데…….”
더는 움직여지지 않는지 은이 그 자세 그대로 가쁜 숨만 들이켰다. 그나마 괜찮아졌던 몸이 다시 최악을 찍었다.
조급한 건 쿤 역시 마찬가지였다. 조금 늦게 켰던 그의 시계 역시 진동을 울리며 72시간이 가까워짐을 알렸다.
‘이대로 있으면 반송 차원문을 못 타.’
처음 은과 주변을 둘러보고 전갈 괴물을 만났을 때에는 둘 다 멀쩡한 상태였다.
그래서 적의 처리도 빨랐고, 멀리 갔음에도 금방 원위치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괴물의 공격은 막는 게 겨우였고, 서 있는 것도 힘들었다.
두 시간이 결코 넉넉한 게 아닌 것이다.
쿤은 은을 둘러업은 후, 검을 왼손으로 고쳐 잡았다. 그리고 그림자를 나침반 삼아 나아가려던 순간이었다.
남아 있던 한 마리의 지네가 두 사람을 향해 돌진했다. 놀란 쿤은 반사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지네의 머리가 잘리며 검은 피가 쿤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마치 바닷물에 들어갔다 온 것처럼 온몸이 검은 피로 물들었다.
‘큰일 났다.’
쿤은 황급히 옆을 바라봤다. 애벌레들이 하나둘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미 잔해를 해치운 벌레들이 슬금슬금 기어오기 시작했다.
생각할 시간 같은 건 없었다.
쿤은 뜀박질을 다시 했다. 십수 마리의 애벌레가 목이 베인 지네에게 달라붙었고, 그 외 나머지가 쿤과 은의 뒤를 쫓았다.
이럴 때 마법이라도 쓸 수 있으면 좋은데 뭔 짓을 해도 사용할 수 없었다.
애당초 쿤은 자신의 마법이 뭔지 알 수 없었다.
“대체 뭘 어떻게 한 거야……!”
“쿤, 진정해.”
은이 통증에 이를 꽉 깨물었다. 꽉 다문 잇새 사이로 간신히 만들어낸 말이 들렸다.
“마법사는, 자기 마법이 뭔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어. 네가 느낀 게 있을 거야.”
직감적으로 느낀다고?
쿤은 서둘러 제가 마법을 썼을 때를 떠올렸다.
비를 내리고, 모래벽을 내릴 때의 일을 되짚었으나 제가 특별한 무언가를 한 거 같진 않았다.
그저 딱 하나.
“그냥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상상한 게 다예요.”
“그럼 그게… 맞을 거야.”
아주 드물지만, 생각하는 것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구현 계통의 마법사가 있다.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적인 상상과 그걸 실행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다.
“생각하면 돼, 벌레들을 막고, 돌아갈 방법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쿤은 은의 말대로 이 위기를 극복해 낼 방법을 생각했다.
또 벽을 세울까? 하지만 그건 완벽하게 막을 수 없다.
그럼 폭풍을 일으켜? 그러다 자신들도 휩쓸리면?
모래로 공격해? 그러나 저들은 모래에 사는 녀석들이다. 심지어 저 애벌레들은 모래 폭풍에도 살아남았다. 공격이 먹힌다면 다행이지만 아니라면 괜히 시간만 빼앗기게 된다.
오만 생각이 머릿속을 뛰어다녔지만 끽해야 임시방편이지 확실한 묘수는 없었다.
‘분명 있을 거야. 이 상황을 한 번에 끝낼 방법이……!’
엉킨 실타래처럼 모든 것이 혼란스럽던 그때, 불쑥 헤라네 학교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은이 씨, 그림자가 많아지면 어떻게 되죠?”
은이 작게 움찔했다.
“제 머릿속에 가장 확실한 방법이……”
순간 다리에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무릎이 절로 꺾이며 몸이 무너졌다.
쿤은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제 다리를 물고 있는 애벌레가 보였다. 그리고 그 뒤로 수십 마리의 벌레가 들끓었다.
쿤은 마치 은을 보호하듯 끌어안았다. 커다란 벌레들이 제 등을 타고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그때 은이 말했다.
“쿤, 그림자만 있으면 다 해결할 수 있어. 그니까…….”
쿤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짙고 깊은 어둠을 생각했다.
“나한테 가장 어두운 그림자를 줘.”
은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사막이 검게 물들었다.
이윽고 하얀 세계에 밤이 찾아왔다.
* * *
72시간이 다 되가자 오즈벨 지부의 판테테는 반송 차원문 위치에 모였다.
통제해 두긴 했지만, 혹시라도 사람이 들어올까 싶었던 루는 주변을 두르는 커다란 결계를 만들었다.
괜찮을 거라고 수없이 되뇌었지만, 치미는 초조함과 불안을 막을 수 없었다.
“…젠장. 시간이 왜 이렇게 안 가는 거야.”
가장 불안한 것은 단연 사강이었다. 그는 두 손을 깍지껴 잡으며 생전 믿지도 않는 신께 빌었다.
‘제발… 제발 애들이 무사하게 해주세요.’
그때 공간이 깨지며 반송 차원문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익숙한 얼굴이 걸어나왔다.
몸에 뒤집어쓴 검은 액체와 고약한 향.
쿤을 등에 업은 채 걸어나오던 은은 익숙한 풍경과 잘 알고 있는 얼굴들을 확인한 후에야 걸음을 멈췄다.
“하… 돌아왔네…….”
은이 희미하게 웃었다. 길게 내뱉는 숨 속에 안도와 안심, 반가움이 엿보였다.
“다녀왔어.”
힘없는 인사와 함께 은의 몸이 앞으로 무너졌다.
“언니!”
루가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그녀보다 먼저 혜성이 두 사람을 받아냈다. 검은 피가 새하얀 재킷을 물들였다.
혜성은 쿤과 운을 내려다봤다. 두 사람에게서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둘을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만 들릴 목소리로 작게 말했다, 잘 다녀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