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79
78화-늦은 휴가(01)
무거운 눈꺼풀이 들리며 낯선 천장이 보였다. 곧이어 시원한 소독약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쿤은 멍한 눈으로 천장을 올려다보다 제가 있는 곳이 병원임을 깨달았다.
어느새 날이 저물었는지 어둠이 내려앉고, 은은한 달빛이 병실을 밝혔다.
며칠 만에 보는 밤은 묘한 안심과 함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었다.
고개를 살짝 돌리자 창틀에 걸터앉은 루가 보였다. 달빛을 등진 그녀의 양옆으로 하얀 커튼이 하늘거렸다.
“일어났어?”
“네…….”
버석하게 쉬어 잔뜩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쿤은 몸을 일으켜 앉았다.
괴물들에게 물린 팔과 다리가 욱신거리고, 장시간의 노동을 하고 난 것처럼 몸이 고됐다. 특히 움직일 때마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루는 컵에 물을 따른 뒤, 쿤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러다 그가 제대로 들지 못하는 걸 보고 빨대 하나를 꽂았다.
쿤은 힘없이 목을 축였다. 겨우 물 몇 모금이 다였는데, 사막에 비가 내린 것처럼 몸 안의 갈증이 해소됐다.
“…은이 씨는요?”
쿤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목소리에 불안이 어려 있었다.
루는 이를 빤히 쳐다보다 한숨을 푹 내쉬었다. 눈을 뜨자마자 하는 첫 질문이 이거라니.
“지금 네가 은이 언니 걱정할 때는 아닌 거 같은데……”
루가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답부터 말하자면 지금 옆 병실에서 자고 있어.”
“괜찮은 거죠?”
“응. 낮에 수술했고, 지금은 회복 중.”
“수술했어요?”
쿤이 화들짝 놀랐다. 손이 힘없이 떨리자, 루가 물컵을 다시 쥐어주었다.
“그냥 가벼운 수술이었어.”
“수술에 가벼운 게 어디 있어요.”
“것도 그러네. 어쨌든 수술 잘 끝났고, 지금 상태만 보면 너보다 멀쩡해.”
인간이 회복이 좀 빨라야지. 루가 그리 중얼거렸다.
쿤은 루의 눈치를 살폈다. 목소리 자체는 평소랑 같은데, 화가 난 건지 표정이 계속 험악했다.
“걱정 많이 하셨어요?”
“안 했겠냐.”
루가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그녀는 침대에 팔을 걸치고 턱을 괴었다. 고운 미간이 잔뜩 구겨졌다.
“역 차원문이 나타난 것도 기가 막힌데, 너랑 은이 언니가 휩쓸렸다고 하지, 무사한지 아닌지 확인할 길은 없지, 그렇다고 뭘 따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요 며칠 루를 가장 괴롭혔던 게 바로 이거였다.
가만있지 못할 만큼 걱정되고 불안한데, 72시간을 기다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무능함을 넘어 무력감이 어깨를 짓눌렀다.
“그래도 은이 언니랑 같이 있으니까,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루는 차마 뒷말을 잇지 못했다. 쿤과 은이 반송 차원문을 빠져나왔을 때의 광경을 생각하면 아직도 말문이 막혔다.
일단 은이 다쳤다는 것이 너무나 충격이었다. 건너 세계가 어떻든 은만은 괜찮을 거라 여겼는데, 실상은 그러지 않았다.
등에 업힌 쿤의 꼴도 말이 아니었다. 농담이 아니라 루는 그때 그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생각했다.
“내가 생각을 잘못했나 봐. 난 여태 너를 성급하게 가르치지 않아도 된다 생각했거든.”
등줄기 산에서 내려온 후부터 루는 쿤에게 강도 높은 훈련이나 교육을 시행하지 않았다.
성급하게 훈련하는 것보다 경험을 쌓아가며 차근차근 실력을 늘리는 게 더 맞다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루는 쿤을 전투도 되고, 백업도 되는 멀티로 만들고 싶었다.
“설령 중간에 무슨 일이 생긴다 해도 나나 단원들이 커버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
절대 혼자 있지 말아라. 혼자 있을 때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도움을 청해라.
이제 갓 판테테가 된 신참이었기에 루는 무엇보다 이를 중요시했다.
그러나 이번 일을 겪으며 쿤이 혼자 있더라도 저 하나쯤은 지킬 수 있게 가르쳐야 한다 판단했다.
“그래서 퇴원하면 빡세게 훈련할 거야.”
“…….”
“왜? 훈련한다니까 걱정돼?”
“아뇨, 사실 저도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전 제가 방해가 안 되는 게 가장 도움이 되는 거라 판단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신입이란 이유로 계속 피했던 거 같아요.”
이제 확실하게 알았다. 제가 해야 할 건 짐이 안 되는 게 아니라, 저 자신을 지키고 상황을 타파할 힘을 기르는 거란 것을.
“…….”
쿤은 멍하니 컵을 내려다봤다. 빨대가 균형을 잃으며 한쪽으로 기울였다. 갑자기 하얀 세계에서 사용했던 마법이 떠올랐다.
이제는 그게 꿈이 아니란 걸 안다.
‘어떻게든 제대로 쓰는 법을 터득해야 해…….’
쿤은 없는 힘을 가까스로 짜내어 주먹을 움켜쥐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린 건 그다음이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드니 문간에 기대 서 있는 혜성이 보였다.
“혜성 씨.”
“드디어 깨어났네.”
혜성이 병실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놀라는 저와 달리 덤덤한 루를 보니 그가 병원에 있는 걸 이미 알고 있던 듯했다.
“계속 여기 계셨던 거예요?”
“네 병실이랑 은이 병실을 오가고 있었어.”
“은이 씨는요? 괜찮아요?”
“자고 있어. 수술한 애가 맞나 싶을 정도로 무서운 회복력을 보여주고 있지. 문제는 너야.”
극심한 근육통은 말할 것도 없고, 괴물한테 물렸던 팔과 다리는 붕대로 칭칭 감겨 있었다.
가벼운 철과상은 기본이고, 특히 팔의 경우는 한동안 무리하면 안 될 정도였다.
“이제 겨우 두 달 넘긴 건데 경력이 너무 화려한 거 아니야?”
“하하… 죄송해요.”
쿤은 혜성에게 하얀 사막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나 예상외로 그는 이를 묻지 않았다.
대신 컵을 빼앗고, 무언가를 쥐어주었다. 뭔가 싶어 보니 제 통장이었다.
“자세한 건 나중에 퇴원하면 말하고, 일단은 휴가 며칠 더 줄 테니까 병원에서 푹 쉬면서 몸조리나 해.”
쿤은 잠깐 고민했다. 차원문이야 그렇다 쳐도 오동촌은 어쩌나 싶었다.
‘하지만 이 꼴로 갔다간 다들 놀라겠지?’
결국, 쿤은 몸이 회복된 후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다음 날 아침, 쿤은 여느 때와 다른 느긋한 아침을 맞이했다. 병원에서 주는 삼삼한 아침밥을 먹고, 밀린 일기나 쓸까 싶을 때 누군가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
“쿤, 바빠?”
은이 문 너머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은이 씨!”
쿤은 반가움에 벌떡 일어나다 전신을 짓누르는 근육통에 끙끙 앓았다.
“워워~ 앉아 있어.”
“그건 제가 할 말이에요. 수술했다면서요. 이렇게 돌아다녀도 돼요?”
“내가 원래 회복속도가 좀 남달라.”
은이 총총 걸어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분명 더 심하게 다친 것도 그녀고 수술까지 했는데 저보다 훨씬 안색이 좋아 보였다. 거기다 모자는 또 언제 챙긴 건지 머리에 살짝 걸쳐 쓰고 있었다.
만일 안에 입은 환자복만 아니었다면, 같은 환자가 아니라 병문안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넌 어때. 괜찮아?”
“근육통 말고는 괜찮아요. 근데 혜성 씨가 혹시 모르니까 좀 더 검사해 보제요.”
“혜성이가 왔었어?”
“네, 어젯밤에 잠깐 들르셨어요. 은이 씨 병실이랑 제 병실을 오갔다던데요?”
은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어제 잠깐 눈을 떴을 때에도, 그리고 저녁에 깨어나 쿤의 상태를 보고 왔을 때에도 혜성은 없었다.
“일부러 숨은 거야, 아니면 우연인 거야…….”
“뭐가요?”
“아무것도 아냐. 별다른 말은 없었고?”
“자세한 건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하셨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루가 있어 삼킨 것 같았다.
“아, 그리고 휴가 주셨어요.”
“병원에 있는 게 무슨 휴가야. 안 아프고 노는 게 휴가지.”
“그래도요. 그보다 은이 씨, 제 마…….”
쾅- 갑자기 엄청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쿤과 은이 화들짝 놀라며 문 쪽을 쳐다봤다. 그러자 평소보다 꼬리가 긴 두건을 멘 사강이 보였다.
“흐읍- 너희……!”
사강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금세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는 그대로 달려와 쿤과 은을 꽉 끌어안았다.
“우악- 아파요!”
“야, 떨어져! 뭐 하는 거야!”
“흐으윽. 내가 너희를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너희는 나한테 잘해야 해!”
“알겠으니까, 이것 좀 놔요.”
“옆구리 누르지 마!”
결국, 보다 못한 은이 그림자 손을 이용해 사강을 집어 던졌다.
종종 있던 일인지 사강은 안전하게 착지했다. 그리고 눈물을 훔쳤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걱정해 준 건 고마운데, 내가 역 차원문 처음 타는 것도 아니고, 무슨 일 했는지도 알고 있잖아. 근데 왜 오버야.”
“그거랑 이건 다르지! 네가 조사팀일 때는 팀원도 다들 한가락 했고, 준비도 빵빵하게 해서 갔잖아. 근데 이번엔 네가 내 상처를 받아간 것도 있고… 뭣보다 너 역 차원문 타는 거 오래간만일 거 아냐.”
사강의 힘없는 중얼거림에 쿤이 은을 흘끗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가 고개를 작게 가로저었다.
아무래도 사강은 은이 오즈벨에 온 후에도 역 차원문을 탄 적이 있다는 걸 모르는 듯했다.
“앞으로 역 차원문 탈 거면 나도 같이 가. 알겠지?”
쿤과 은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차마 빈말로라도 그러겠다 할 수 없었다.
그사이 사강이 의자를 끌고 와 침대 옆에 앉았다.
은은 휴지를 뽑아 사강에게 건넸다.
“걱정 끼쳐서 미안해.”
“큽……!”
“울지 마. 이게 뭐라고 울어.”
“네가 눈앞에서 사람 둘이 사라지는 걸 봤어?!”
“알았어. 우리가 잘못했어.”
“킁.”
사강은 코를 먹으며 주머니를 뒤적였다.
“내가 너희 깨면 주려고 선물 가져왔어.”
잠시 후, 그가 새하얀 침대보 위에 작은 상자를 올렸다. 뭔가 싶어 보니 트럼프 카드였다. 병문안 선물이라기엔 여러모로 의아한 물건이었다.
“이건 갑자기 왜……?”
“병원에 있다 보면 포커가 하고 싶을 거 같아서.”
“……근데 카드는 왜 섞으세요?”
“왜긴. 꺼낸 김에 하려고 그러지.”
조금 전까지 울었던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사강이 싱글벙글 웃으며 카드를 섞였다.
인제 보니 병문안 선물은 핑계고 저희와 포커를 하고 싶어 가져온 모양이다.
카드를 섞는 게 너무 엉성해, 쿤은 사강에게 카드를 받아 섞었다.
“오~ 너 잘 섞는다.”
“식구들이랑 자주 했거든요. 그보다 저희 없던 사이 별일 없었죠?”
“응. 차원문도 안 나타났고, 사람들한테도 잘 숨겼어.”
“숨겨요? 왜요?”
“몰라. 혜성이가 그러라 했대.”
사강은 그리 말하며 은을 올려다봤다. 너는 그 이유를 알지 않냐는 듯한 시선이었다.
하지만 은 역시 아는 게 없는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번 일은 은이 몰래 역 차원문을 조사하러 간 게 아니고, 불의의 사고로 휩쓸린 것이기에 딱히 알려져도 문제될 게 없었다.
“둘이 또 뭐를 꾸미고 있나?”
“하긴. 선생이랑 혜성이가 작당 모의를 많이 하긴 하지.”
사강이 맞장구를 쳤다.
쿤은 혜성과 키리기스를 떠올렸다. 작당 모의까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그 둘이 오즈벨 지부를 운영하는 것 같긴 했다.
‘근데 둘이 하기엔 살림이 너무 크지 않나?’
그리 생각하며 카드를 나눠줄 때,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