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83
82화-구렁이와 사자 (01)
쿤은 고민에 빠졌다.
짧은 휴가를 마치고 복귀한 그에게 새로운 문제가 직면한 것이다.
심지어 그것은 살면서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아니, 아예 할 상상조차 못 해본 일이었기에 쿤의 고민은 한층 더 깊어졌다.
그는 한참 동안 흰 종이와 씨름하다 결국 도움이 필요하다 판단했다.
하지만 이 오즈벨에 기꺼이 도와줄 이는 부용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녀가 지금 다른 일 때문에 바쁘단 것이다.
결국, 쿤은 부용 다음으로 도움이 될 것 같은 둘을 뽑았다.
그리고 그 둘을 낚기 위한 미끼를 만들러 주방으로 향했다.
* * *
루는 고민에 빠졌다.
눈앞에 쿤이 만들어준 비빔냉면이 있었다.
문제는 제가 이걸 만들어달라 한 적이 없단 것이다.
거기다 묘하게 능글맞은 미소하며, 미끼를 물길 기다리는 낚시꾼의 눈까지.
똑똑한 루는 곧장 상황을 이해했다.
‘미끼군.’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저에게 부탁할 게 생긴 것이다. 그도 아니면 지옥 훈련을 흥정하거나.
평소였다면 볼일 없다며 자릴 박차고 일어났겠지만, 그러기엔 냉면이 너무나 먹음직스러웠다.
루는 냉면은 먹으면서 쿤의 부탁은 들어주지 않을 묘수를 고민했다.
* * *
보보는 고민에 빠졌, 아니, 고민하지 않았다.
똑똑하지 못했던 보보는 이게 미끼란 생각도 못 하고 티아문하고 먹을 반찬이 생겼음에 기뻐했다.
쿤이 집에 싸갈 음식을 따로 챙겨줬기에 보보는 아무런 걱정 없이 젓가락을 들어, 티아문이 가장 좋아하는 소고기 채소찜을 먹었다.
고기를 크게 베어 문 보보의 눈이 초롱초롱 빛났다.
“진짜 맛있어요.”
“그래요? 다행이에요.”
“네. 근데 갑자기 웬 고기찜이에요?”
“아~ 그게 실은 제가 보보 씨한테 부탁할 게 있어서요.”
“헙…….”
보보가 조심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쿤이 젓가락 받침을 빼갔다.
“낙장불입. 먹었으면 끝이에요”
보보는 갈 곳 없는 젓가락을 제 입에 넣었다. 젓가락에 묻은 양념이 너무 맛있어서 더 서글퍼졌다.
“…루 씨는 알고 계셨어요?”
“응.”
“좀 말려주시지……!”
“내가 왜.”
“이렇게 된 거, 답은 하나밖에 없네요. 루 씨도 얼른 드세요.”
“내가 왜?”
“빨리요. 면 불면 맛없어요.”
면이 불면 맛없다는 건 루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번만은 너무 불어 2인분이 되어도 그럴 수 없었다.
오즈벨에서 생활한 지 두 달 반. 이제 석 달을 앞둔 쿤은 루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잘 적응했다. 그리고 그만큼 오즈벨 지부의 나쁜 점 역시 잘 배워 나갔다.
‘대체 이런 건 누구한테 배운 거야.’
자신이 담당 선배라는 사실을 잊은 루는 뚱한 얼굴로 팔짱을 꼈다.
“용건부터 말해. 거래는 그다음이야.”
루의 날카로운 시선에 쿤이 움찔했다.
옛날이었다면 이 기세에 휘말렸겠지만, 지금의 쿤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결국, 쿤은 마지막 남은 비장의 수를 썼다.
“알겠어요. 안 드신다는 거죠?”
쿤이 그릇을 치우려 들었다. 그러자 루가 팔을 뻗어 이를 막았다.
잠깐의 침묵 후,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귀찮은 거야?”
“네.”
“윽… 시간 많이 걸려?”
“두 분이 어떻게 도와주느냐에 따라 달라요.”
“구체적으로 말해.”
“그냥, 제가 할 수 없는 영역이라 도움이 필요해요.”
루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쿤이 뭘 부탁하려는 지 알 수 없었다.
결국, 루는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걸 물었다.
“도와달라는 게 대신해 달란 거야?”
“아뇨, 하는 건 제가 해요. 그냥 도와주기만 하면 됩니다.”
“좋아, 도와줄게.”
그제야 쿤이 손을 뗐다. 루는 잽싸게 그릇을 제 앞으로 가져왔다.
“그래서 뭔데?”
“일단 드세요.”
쿤은 루가 빠져나갈 구멍을 완벽하게 차단했다.
“분명 처음엔 이렇게 영악하지 않았는데… 대체 이런 건 누가 가르친 거야.”
“루 씨요.”
“루 씨잖아요.”
옆에 있던 보보까지 한마디를 보탰다.
루는 조용히 젓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냉면을 돌돌 말아 입에 넣었다.
젠장. 왜 이렇게 맛있는 건지.
“그래서 뭘 도와주면 되는데.”
쿤은 식탁에 새하얀 종이뭉치를 올려놨다. 루도 보보도 잘 아는 서류 제출용 종이였다.
최근 쿤은 일을 맡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가 써야 할 보고서는 단 하나.
“역 차원문 보고서구나.”
“맞아요. 그거 써야 해요.”
“근데 왜 네가 써? 은이 언니가 너더러 쓰래?”
“루 씨와 사강 씨에 이어 은이 씨까지… 쿤 씨, 대체 얼마나 호구 잡힌 거예요…….”
“아니에요! 그리고 은이 씨는 누구누구 씨들이랑 달리 저한테 이런 거 시키지 않는다고요!”
쿤은 그리 말하며 루를 매섭게 노려봤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씨알도 안 먹혔다.
루는 태연히 냉면을 먹었다.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들어요!”
“듣고 있어. 그래서 그거랑 우리가 무슨 상관인데.”
역 차원문 보고서는 넘어간 당사자 말고는 상황을 전혀 모르게 도와줄 건덕지가 없었다.
루가 얼른 말해보라며 턱짓했다.
쿤은 주변을 휙휙 살피며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뒤, 엄청난 기밀이라도 말하는 사람처럼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실은 그때 저랑 은이 씨 사이에 말 못할 일이 있거든요.”
“……어?”
“근데 차원문 보고서는 사실대로 다 적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이걸 조작하려고……. 두 분 다 표정이 왜 그러세요?”
루와 보보의 눈이 호두알만큼 커져 있었다. 심지어 루는 뭐가 그렇게 놀랐는지 젓가락까지 떨어트렸다.
“왜 그러세요?”
“너, 너랑 은이 언니 사이에 뭐가 있다고?”
“쿠, 쿤 씨… 설마……!”
둘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쿤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이내 상황을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이 미친 인간들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그런 거 아니거든요!”
“네가 말을 그렇게 했잖아!”
“이게 어떻게 그렇게 해석돼요!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거야!”
“너보다 훨씬 건전해! 잠깐, 설마 네가 숨겼던 게 이거야?”
“그런 일 없었다고요!”
둘이 애처럼 으르렁거렸다. 그 사이 보보가 휴지를 가져와 바닥을 닦았다. 그는 루의 젓가락을 새것으로 바꿔준 후에야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에요…… 두 분이 결혼한다면 축의금을 어느 쪽에 내야 하나 고민했거든요.”
“…넌 또 왜 거기까지 간 거야.”
“보보 씨도 참, 상상력이 좋으시네요… 부럽게…….”
하하. 보보가 머쓱하니 웃었다.
“어쨌든 보고서에 적을 수 없는 일이 있었다는 거잖아요.”
“그렇죠.”
“무슨 일이기에 못 적는 거예요?”
보보가 아주 태연히 핵심을 파고들었다.
쿤은 입을 다물었다. 두 사람이 물어볼 거란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뭐라 답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게… 그니까… 음…….”
쿤은 한참을 우물거리다 긴 한숨과 함께 사과했다.
“죄송해요. 말 못 해요.”
은과 약속한 것도 없고, 말해봤자 걱정할 것이 뻔했기에 함구하기로 했다.
은의 과거 얘기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냥 모른 척 넘어가 주세요. 나중이 때가 되면 말씀드릴게요.”
“위험한 일은 아니지?”
“음… 일단은요.”
“좋아.”
루와 보보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그저 때가 되면 알아서 말해주겠지 하고 믿는 것 같았다.
루는 새 젓가락으로 냉면을 돌돌 말며 말했다.
“그래서 네가 필요하다는 도움이 정확히 뭐야? 서류 조작하는 법?”
“네. 아무리 생각해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복잡하게 생각할 거 뭐 있어. 일반 차원문이면 모를까, 역 차원문이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너랑 은이 언니만 아는 거잖아. 대충 말할 수 있는 일만 잘 꾸려서 적으면 될 거 같은데.”
“그건 아는데 티가 날까 봐 걱정하는 거죠.”
가뜩이나 장시간의 기절로 시간이 텅텅 비어 있다. 여기서 있었던 일까지 제한다면 내용 전체가 없다 해도 무방한데, 그럼 누가 봐도 내용을 줄였다 생각하지 않겠는가.
“확실히 그렇긴 하네요. 무엇보다 은이 씨가 그렇게 오랫동안 기절했다는 걸 알면 말이 나올 거 같긴 해요. 저희야 두 분이 어떤 모습으로 돌아왔는지 아니까 그렇지, 만약 글로만 봤으면 잘 안 믿겼을 거예요.”
보보 역시 턱을 짚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그러나 루는 생각이 다른지 뚱하니 면을 집었다.
“걱정도 많다. 지들이 의심해 봤자 어쩔 건데.”
증거를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둘을 불러다 심문할 수도 없다.
무엇보다 심증 하나만 가지고 판테테를 소환했다간 해당 지부의 단장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은이를 불러간단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고 말이다.
“그냥 적을 수 있는 것만 적어. 그 외 내용은 기절했거나, 그냥 사막을 걸어 다닌 게 다라 그래.”
“음…….”
“그리고 네가 조작해야 할 건, 너랑 언니 사이에 있었던 일이 아니라, 둘이 다쳤단 거야.”
“예? 왜요?”
“너도 알다시피 우리 보스가 좀 별나야지. 남의 속 뒤집는 데 천재적이란 말이야.”
오즈벨 내부에도 혜성이라면 치를 떠는 이들이 수두룩했다. 심지어 그의 옆에는 최고 골칫덩어리 사강도 있어 오즈벨을 벼루고 있는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들이 실제로 덤벼들지 못하는 건, 혜성의 뒤에 은과 키리기스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은의 경우는 존재만으로도 막강한 방패가 된다.
“그런 언니가 다쳤다는 걸 알면, 어떻게서든 언니의 약점을 캐내려 할걸.”
“그럼 오랫동안 기절한 것도 숨겨야겠네요.”
“그런 편이 좋겠지.”
루는 마지막 남은 냉면을 먹은 후, 젓가락을 내려놨다.
“보고서에 쓸 자료 찾았어?”
“네, 다 찾아놨어요.”
“가지고 올라와.”
“지금요?”
“응. 생각난 김에 해치우자.”
쿤은 알겠다며 자료를 가지러 지하로 향했다.
보보는 그 뒷모습을 빤히 쳐다보다 쿤이 완벽하게 사라진 걸 확인하고서야 입을 열었다.
“조작하니까 든 생각인데요, 쿤 씨는 아직도 자기 시험 성적이 조작된 걸 모르는 거죠?”
“알면 이미 날뛰지 않았을까.”
그러고 보니 그간 정신이 없어서 잊고 있었다. 쿤의 시험성적이 내내 조작되었단 걸 말이다.
‘선생님은 범인을 찾으셨으려나.’
당시에는 못 찾았다고 했지만, 키리기스의 정보력을 생각하면 이미 범인을 알아냈을 수도 있다. 혜성 역시 범인을 알 확률이 높았다.
루는 턱을 괴며 짧게 고민했다. 순간 그녀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 * *
루의 지략적 전술과 보보의 예상 못한 상상력으로 보고서의 틀을 잡은 쿤은 은에게도 이를 보여주고자 오동촌으로 향했다.
‘간 김에 도사님 환술에서 마법이나 연습해야겠다.’
이번엔 새로운 꽃 피우는 거 성공해야지.
쿤은 비석이 있는 숲에 들어섰다.
순간 경보음이 귀를 찔렀다. 다른 어디도 아닌 이곳에 설치된 차원문 파동 경보기였다.
쿤은 곧장 경보기가 있는 곳으로 달렸다.
우거진 수풀을 헤치고 달려가자 커다란 아름드리나무에 생긴 차원문이 보였다.
사격형 모양은 드물어서 형태를 까먹지 않게 기억할 때, 갑자기 차원문에서 커다란 덩어리가 날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