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84
83화-구렁이와 사자(02)
“컥-!”
쿤은 반사적으로 차원이동자를 끌어안았다. 꼭 대형견이 강제로 제 품에 떠안겨진 거 같았다.
“이게 뭐야…….”
시선을 내리자 차원이동자의 얼굴이 보였다. 쭉 찢어진 물방울 모양의 눈과 큼직한 코, 거기에 대걸레를 뒤집어쓴 듯한 적갈색의 털까지.
어릴 때 동화책에서 보았던 북청 사자와 똑 닮은 생김새였다.
그때 스산한 시선이 느껴졌다. 쿤은 흠칫 떨며 고개를 들었다. 거대한 검은 구렁이가 차원문을 통해 그 큰 얼굴을 들이밀었다.
“…….”
여태 여러 차원이동자를 보고, 수많은 자료를 읽었지만 이런 식으로 구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검은 구렁이의 날카로운 눈동자가 느릿하게 주변을 훑다 쿤, 정확히는 그의 품에 안겨 있는 북청 사자에게 향했다.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돋았다. 하얀 세계에서 본 뱀보단 작았으나 정체 모를 위압감이 공기를 눌렀다.
쿤은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그때 구렁이가 입을 쩍 벌리며 달려들었다.
“우악-!”
쿤은 북청 사자를 안고 빠르게 옆으로 피했다.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간 구렁이가 쿤의 바로 뒤에 있던 나무를 콰득 깨물었다. 어마 무시한 턱 힘에 나무가 순식간에 부러졌다.
구렁이는 입안의 나뭇조각을 뱉은 뒤, 다시 쿤의 품에 안겨 있는 북청 사자를 향해 덤벼들었다.
쿤은 이리저리 피하면서 차원문을 살폈다. 그리 큰 크기는 아니어서 그런지 빠른 속도로 사라지는 게 보였다. 더 넘어온 차원이동자는 없었다.
구렁이는 움직임을 가로막는 나무들이 불편하다 느꼈는지 단단하고 긴 꼬리를 크게 휘둘렀다. 눈앞의 나무가 손쉽게 부러졌다.
이곳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산책로였다. 이대로 두었다간 누군가가 크게 다칠지 모른다.
쿤은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산 쪽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동시에 이어 커프를 눌렀다.
“루 씨, 지금 인공 숲에 차원문이 나타났어요. 넘어온 차원이동자는 둘. 한 놈은 북청 사자처럼 생겼고, 다른 한 놈은 거대 구렁이예요.”
다급히 상황을 설명하자, 곧바로 루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 지금 차원문 앞에 있는 거야?]“아뇨, 여기 있다간 사람들이 다칠 것 같아서 일단 산 쪽으로 유인하고 있어요.”
[기절 안 했어?]“기절이 뭐예요, 아예 대놓고 넘어왔어요. 차원문이 창문인 줄 알았다니까요.”
[쿤, 산 말고 인공 숲 뒤에 영주성 전용 마찻길이 있어. 그리로 유인해. 어디인지는 알지?]“네, 알아요.”
쿤은 곧장 마찻길로 향했다. 영주님만 다니는 길이었기에 일반인들은 오지 않았다.
거친 수풀을 헤치고 빠져나오자, 깨끗하게 정돈된 마찻길이 나왔다. 그리고 바로 옆 숲에서 구렁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나뭇잎이 휘날리고 부러진 나무가 바닥을 어지럽혔다.
하늘이 훤히 드러난 길에서 본 구렁이의 모습은 숲에서 보았을 때보다 좀 더 위압적이었다.
“하얀 거 끝났더니, 이제 검은 놈이냐! 그보다 얘는 언제 일어나는 거야.”
쿤은 북청 사자를 제 어깨에 걸쳤다. 그리고 검을 뽑아 들었다.
루가 도착한 건 다음이었다. 그녀는 구렁이를 보곤 이맛살을 찌푸렸다.
“…진짜 위험한 놈이 넘어왔네. 근래 본 녀석 중에 제일 무서운 거 같은데?”
“저만 무서운 게 아니라 다행이에요.”
“근데 어깨에 그건 뭐야.”
“북청 사자요.”
“먹이인가?”
“헉.”
쿤은 잠깐 고민했다. 일단 제 품에 떨어졌고, 위험해 보여 데리고 도망쳤는데 정말로 먹이이면 자연의 생태계를 위해서라도 놓는 게 맞나 싶었다.
그때 어깨의 북청 사자가 움직였다.
잠에서 깨어났는지 비몽사몽하던 녀석이 앞을 확인하곤 퍼뜩 정신을 차렸다.
당황한 녀석이 심하게 몸부림쳤다.
“가만있어 봐.”
『아파, 싫어!』
“어?”
쿤은 당황했다. 분명 낯선 언어였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것 같았다. 제가 공부하고 외웠던 이계어 중 하나인 것이다. 심지어 무척 쉬운 언어라 가벼운 일상 회화 정도는 가능했다.
오동촌에서조차 소용없었는데, 드디어 써먹게 되다니!
『안녕.』
쿤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러자 차원이동자가 화들짝 놀랐다.
『헉! 안녕!』
놀란 건 루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갑작스러운 쿤의 행동에 입을 턱 벌렸다.
“너, 뭐해?”
“차원이동자랑 말해요. 얘 제가 아는 이계어를 하고 있거든요.”
“이계어는 대체 왜 아는 건데.”
어지간한 판테테라면 이계어가 얼마나 쓸모없는지 알 것이다. 일단 이계어를 외운다 해도 말이 통하는 이를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리란티아만 해도 공용어가 아닌 타언어를 쓰는 민족은 안 통하지 않은가. 곤충이나 새, 이런 동물들하곤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다른 차원은 오죽하겠는가.
물론 자주 연결되는 곳이나 쉬운 언어는 따로 정리했다. 하지만 실용도가 워낙 떨어져 언어 전문 판테테나 일부 변태가 아니고선 외우지 않았다.
“설마 그 변태가 내 후배일 줄이야…….”
“변태면 어때요. 써먹을 수 있으면 된 거지.”
쿤은 앞의 구렁이를 살피면서 북청 사자에게 물었다.
『괜찮아? 쟤 왜 너 쫓아오는 거야?』
『히익! 무서워!』
뒤늦게 구렁이를 발견한 북청 사자가 쿤의 어깨에 매달려 파들파들 떨었다.
『쟤가 내 알, 빼앗으려 해.』
쿤의 머리 위로 커다란 물음표가 그려졌다.
알이라니. 제가 단어를 잘 못 외운 걸까? 아니면 저쪽 세계에선 사자가 알을 낳나?
『내 새끼, 지켜야 해.』
북청 사자의 눈꼬리가 축 떨어졌다. 이윽고 굵은 눈망울이 뚝뚝 떨어졌다.
“뭐야, 얘 왜 울어?”
“저도 잘은 모르겠어요. 근데 저 구렁이가 자기 알을 빼앗으려 한대요.”
“……사자가 알을?”
루는 정확히 쿤과 똑같은 지점에서 의문을 표했다. 그리고 똑같은 방법으로 납득했다.
“저쪽 세계는 사자가 알을 낳는구나. 어쨌든 식사가 아니라 유괴 현장이었던 거네.”
“아직은 미수지만요.”
쿤은 북청 사자를 고쳐 안은 후, 검을 빼 들었다.
이쪽에서 노골적으로 적의를 띠자 구렁이의 눈매가 더욱 날카로워졌다.
“쟤랑은 말 안 통해?”
“잠시만요.”
쿤은 길게 심호흡한 후, 구렁이에게 차분히 말을 걸었다.
『안녕.』
『…….』
『나쁜 짓은 안 돼.』
쿤은 제가 말해놓고도 머쓱해졌다. 뭔가 그럴싸한 말로 설득하고 싶은데, 좀처럼 멋진 문장이 안 만들어졌다.
쿤은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말했다.
『이건 아니야.』
정말로 이건 아닌 말이 만들어졌다.
‘유괴는 범죄라 하면 안 돼’를 대체 어떻게 말하지?
『어… 음… 그니까…….』
쿤이 금붕어마냥 뻐금거리며 버벅이자 루가 미간을 구겼다.
“너, 뭐 하냐?”
“잠시만요. 현지인을 만났더니 너무 떨려서 단어가 생각이 안 나요. 루 씨, 유괴랑 범죄가 이계어로 뭐였죠?”
“왜 여기서 울렁증을 겪는데. 그리고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난 변태가 아니라고. 루가 한마디를 덧붙이며 핀잔을 줬다.
쿤은 이 부분에 한에서만큼 루가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걸 깨닫고, 제가 공부했던 기억을 되짚었다.
『너희가 상관할 일이 아니야.』
순간 구렁이가 말했다. 북청 사자처럼 밝고 명랑한 목소리가 아닌, 낮고 묵중한 목소리였다.
『그러니 빨리 그 아이를 내게 넘겨.』
노기가 어린 목소리에 북청 사자가 히익 하고 숨을 삼켰다.
사자는 어깨에서 내려와 쿤의 등 뒤에 달라붙었다. 어찌나 심하게 떠는지 쿤의 몸까지 잘게 떨렸다.
『이해가 안 돼. 설명해 줘.』
『너희가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 했을 텐데. 그 아이만 넘기면 얌전히 돌아갈 거야.』
『어차피 지금은 못 돌아가.』
구렁이가 작게 움찔했다. 쿤은 잠깐 단어를 생각하고 말했다.
『72시간이 지나야 갈 수 있어. 그리고 얘가 너무 무서워해. 그니까 이유를 말해줘.』
『……할 수 없군. %$-%^# 수밖에.』
쿤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중간에 제가 모르는 말이 섞여 있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한 거지, 싶던 그때 구렁이가 쿤을 공격했다.
입이 쩍 벌어지며 날카로운 이빨이 모습을 드러냈다.
쿤이 빠르게 몸을 물렸고, 루가 그 자리에 결계를 만들었다. 그러나 결계가 채 만들어지기 전에 구렁이가 땅으로 파고들었다.
예상 못한 움직임에 둘이 숨을 들이켰다. 루의 결계는 찰나라고 할 만큼 순식간에 만들어졌다.
거기다 마찻길은 단단하게 다져진 흙길이라 쉽게 파고들기 힘들었다. 그런데 구렁이는 그 모든 것을 엄청난 속도 해냈다.
“쿤!”
“알고 있어요.”
쿤은 제 아래에서 튀어나오는 구렁이를 피한 후, 검을 휘둘렀다. 캉- 검날과 구렁이의 이빨이 부딪히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이빨이 아니라 두꺼운 철을 때린 것 같았다.
“윽. 뭐가 이렇게 단단해.”
쿤은 이를 악물며 검을 위로 베었다. 구렁이의 윗입술에 긴 상처가 생기며 묽은 피가 흘러내렸다.
『크윽.』
구렁이가 얼굴을 찌푸리며 짧은 비명을 뱉었다. 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발로 머리를 걷어찼다. 목이 꺾이며 그 큰 몸체가 휘청였다.
“루 씨!”
“알아!”
루가 다시 결계를 만들었다. 허무하게 놓쳤던 아까와 달리 이번엔 커다란 결계가 구렁이를 가로막았다.
투명한 결계 안에서 구렁이가 가쁜 숨을 내뱉었다. 윗입술에선 계속 피가 흘러내렸다.
하얀 세계에서의 일이 생각나 힘껏 걷어차긴 했는데, 지금 보니 조금 심했나 싶었다.
『때려서 미안…….』
구렁이가 쿤은 노려봤다. 날카로운 눈동자에 이체가 서렸다.
그사이 떨어지지 않고 등에 매달려 있던 북청 사자가 쿤의 어깨를 타고 올라 얼굴을 쏙 내밀었다.
『됐어? 이제 괜찮아?』
『응, 괜찮아.』
북청 사자의 눈이 예쁜 반달이 되었다. 더는 구렁이가 위협되지 않는 게 기쁜 듯했다.
녀석은 대걸레처럼 수북한 털을 좌우로 흔들며 흥얼거렸다.
『이제 괜찮아~ 하나도 안 무서워~ 내 새끼도 무사해~』
『…….』
구렁이는 천천히 일어나 결계의 벽에 이마를 붙였다. 샛노란 눈동자가 점점 붉게 물들었다. 꼭 흡혈한 보보의 눈동자 같았다.
주변의 분위기가 바뀌며 아까와는 차원이 다른 위압감이 공기를 짓눌렀다.
북청 사자 역시 이를 느끼고 다시 쿤의 뒤에 숨었다.
『무, 무서워……!』
“나도 이번은 조금 무서운 거 같다…….”
쿤은 검을 꽉 쥐었다. 역시나 여태 보았던 차원이동자 중 가장 무서웠다. 존재 자체가 다른 것 같은 느낌.
그때였다.
쩌적. 쩍. 구렁이가 이마를 붙인 결계를 중심으로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루는 그 위에 또 다른 결계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런 수고가 무색할 만큼 두 겹의 결계 다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다.
풍압과 함께 결계 파편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윽!”
“젠장!”
쿤과 루는 다시 구렁이를 잡기 위해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러나 구렁이는 둘을 지나 바다 쪽을 향했다.
이건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두 사람은 빠르게 구렁이의 뒤를 쫓았다.
하지만 그들이 채 잡기도 해안가에 도착했고, 구렁이는 그대로 바닷속으로 사라졌다.
철썩이는 파도가 황망한 두 사람의 발치까지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