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86
85화-구렁이와 사자(04)
주황색과 노란색, 그리고 순백색으로 된 알이었다.
“진짜 알을 낳네요.”
“그러게.”
북청 사자는 세 알에 제 뺨을 비볐다. 새끼들을 많이 아끼는지 얼굴에 행복이 가득했다.
『내 아가들이야.』
쿤이 만져 봐도 되냐고 묻자 북청 사자가 그러라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쿤은 알 하나를 아주 조심스럽게 살폈다. 품에서 나온 거라 따뜻하지 않을까 했는데, 의외로 차갑고 거칠었다.
생긴 건 정말 예뻤다.
반투명한 알 안에 또 다른 알이 하나 들어 있었고, 그 주변으로 작은 알갱이들이 가라앉았다가 떴다를 반복했다. 거기다 빛을 받을 때마다 반짝이는 것이 꼭 보석 같았다.
쿤은 알이 다치지 않도록 바닥에 아주 살살 내려놓았다.
북청 사자가 방긋 웃었다.
『예쁘지?』
『응. 예뻐. 근데 걔는 왜 네 알을 빼앗으려고 하는 거야?』
북청 사자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는 쿤이 본 이래 가장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몸을 덮는 덥수룩한 털들조차 기운을 잃은 것처럼 축 늘어졌다.
북청 사자는 힘없이 알을 품었다.
쿤은 재촉하지 않고 그가 말해줄 때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그저 슬픔이 가득한 눈으로 훌쩍이는 게 다였다.
“왜 그런데?”
“모르겠어요. 근데 뭔가 일이 있나 봐요.”
“음… 뭐, 말하기 싫으면 말라 그래.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쿤은 고개를 끄덕이며 북청 사자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이유가 뭐든 빨리 기운을 차려서 아까처럼 흥얼거리길 바랐다.
쿤의 바람이 통한 것인지, 아니면 가져다준 사과가 맛이 있었던 건지 북청 사자의 기분이 금세 좋아졌다.
녀석은 콧노래에 괴상한 춤을 추며 방 안을 쏘다녔다.
이름 없이 계속 야, 너를 할 순 없었기에 쿤과 루는 임시로 북청 사자를 ‘북청이’라 부르기로 했다.
세 개의 알은 다시 북청이의 몸으로 돌아갔다. 신기해서 털을 들춰 보자 새카만 살이 보였는데, 설명하긴 어려우나 일반적인 피부와는 그 감촉도 느낌도 달랐다.
“꼭 마법 주머니 같다.”
“그게 뭐예요?”
“은이 언니가 그림자를 가방 대용으로 쓰잖아. 그런 것처럼 마법사들이 자기 마법을 응용해서 만드는 가방이야.”
“아~”
루는 계속 북청이의 배를 만졌다. 그러자 녀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하늘로 날아올랐다.
한 시간 전에야 안 사실이지만, 녀석은 하늘을 나는 게 가능했다. 그리고 몸무게 역시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었다.
북청이를 둘러매고 구렁이와도 싸우고, 키리기스네 저택도 다녀온 쿤의 입장에선 조금 배신감이 드는 부분이었다.
“루 씨도 숙소에서 주무시는 거죠?”
“응. 근데 난 내 방에서 잘 거야. 북청이는 네가 데리고 자.”
“그럴 생각이었어요.”
쿤과 루는 종이를 쌓아두고 북청이에 대한 기록을 하나둘 적었다.
여전히 지하를 거절하는 북청이 탓에 검체 수집과 각종 조사는 2층에서 이루어졌다.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말이 통하는 탓이 쿤은 빠르게 정보를 수집할 수 있었다.
구렁이는 해가 저물 때까지 바다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은이의 추측으론 지상보다는 바닷속이 더 환경에 맞아 거기서 몸을 회복하는 것 같다 했다.
그날 밤, 루는 피곤해서 안 되겠다며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쿤은 방에만 있기 갑갑한 것 같아 북청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정원을 몇 바퀴 돌며 콧바람 좀 쐬고 돌아오니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보보가 보였다.
맨날 혜성만 보다 다른 사람을 봐서 그런 걸까. 뭔가 색다르면서도 신기했다.
“보보 씨 계셨네요.”
보보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평소 입던 판테테 복이 아닌 따뜻해 보이는 티셔츠에 바지를 입고 있었다. 실내화 역시 솜이 두툼하게 들어간 거였다.
누가 봐도 집에서 생활하는 모습이었다.
“오늘 숙소에서 주무세요?”
“네, 일이 좀 밀려서요. 원래는 집에서 하려 했는데 집중이 잘 안 되더라고요.”
쿤도 격하게 공감했다. 특히 저의 경우는 같은 건물인데도 제 방에서 일하는 것보다 지하에서 하는 것이 훨씬 더 잘됐다.
그래서 쿤도 어지간하면 일을 방으로 가지고 올라오지 않았다.
“거기다 티아문이 친구 데려올 거라고 해서요. 애들 노는데 끼기도 그렇고, 그냥 여기서 편하게 자고 가려고요.”
“아~”
그렇구나. 다행이다.
이제야 하는 말이지만, 쿤은 보보가 차원이동자 돌볼 때마다 티아문이 걱정됐다. 하루도 아니고 무려 72시간 동안 집에 못 들어가는 게 아니던가.
그리고 티아문은 그 긴 시간 동안 혼자 있어야 했다.
보통의 중학생이라면 오히려 좋아할 수도 있겠지만, 형제의 과거를 알아서일까. 영 신경 쓰였다.
어쨌든 친구와 함께 있는 거라면 다행이었다.
“근데 쿤 씨 옆에 그건 뭐예요?”
보보가 쿤의 옆에 둥둥 떠 있는 북청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제가 이번에 돌보게 된 차원이동자요.”
“바다로 숨었다지 않았어요?”
“걔는 다른 애예요. 두 마리 넘어왔거든요.”
북청이는 둥둥 날아가 보보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대형견만 한 애가 저러고 있으니 꽤 답답해 보였다.
“생긴 게 조금 무섭네요…….”
보보의 감상평에 쿤은 작게 웃고 말았다. 내내 북청이의 무섭단 말만 들었지, 그 반대는 처음이었다.
“근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얼굴이에요.”
“북청 사자 몰라요? 왜 엄청 유명한 동화책 있잖아요.”
“어… 저는 책이랑 사이가 안 좋아서…….”
“그럴 수 있죠. 어쨌든 어디 전통 동물인가? 전통 놀이였나. 그걸 모티브로 쓴 거라 했어요. 동화도 엄청 재밌어요.”
“무슨 내용인데요?”
“북청 사자가 사람들에게 들러붙은 귀신을 처리해 주는 내용이에요.”
말 그대로 영웅인 북청 사자가 리란티아 전역을 여행하며 사람들을 괴롭히는 귀신들을 처리해 주는 내용이었다.
영웅 서사, 권선징악, 거기에 감동까지. 쿤이 좋아하는 내용이 모두 다 들어 있어 몇십 번이나 읽었다.
“뭐, 북청이는 귀신은커녕 벌레 한 마리도 못 잡을 거 같지만요.”
그래도 하도 많이 읽었던 책이어서 그런가. 북청이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귀신이나 악귀들을 다 내쫓아 줄 것 같았다.
『쿤, 배고파.』
『알았어. 사과 줄게.』
『사과 좋아~ 여기 과일 맛있어~』
북청이가 또 흥얼거리며 주변을 뿔뿔 돌아다녔다.
보보는 쿤이 이계어를 했다는 것에 화들짝 놀랐다.
판테테 시험 범위에 일부 이계어가 있기도 하고, 또 공부를 워낙 잘하는 사람이니 어느 정도는 알 거라 예상했지만, 저렇게 자연스럽게 말할 정도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저런 변태 짓을 하는 사람이 진짜 있구나…….”
“예? 뭐라고 하셨어요?”
“아뇨,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보보가 식은땀을 흘리며 손을 휘휘 저었다.
무언가 미심쩍었지만, 제대로 못 들었던 쿤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는 사과를 챙겨와 북청이의 입에 넣어주었다.
차원이동자를 돌보는 쿤의 모습은 꼭 일 잘하는 보모 같았다.
보보는 쿤이 북청이의 얼굴을 닦아주는 걸 보며 조용히 말했다.
“문득 든 생각인데요. 쿤 씨가 마법사였으면 보호 계열 쪽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쿤은 뜨끔했다.
“제, 제가 마법이요?”
“아, 죄송해요. 이상한 의도로 한 말은 아니고요. 이계어도 그렇고, 돌보는 것도 그렇고, 또 오동촌도 그렇고… 엄청나게 정성을 쏟으시잖아요. 그래서 그쪽으로 특화되지 않았을까 한 거예요.”
“하하…….”
쿤의 등을 타고 식은땀이 비죽비죽 흘렀다.
거짓말을 못 하는 편은 아닌데, 이상하게 마법이 주제만 되면 당혹을 감출 수 없었다.
쿤은 서둘러 말을 이었다.
“근데 마법을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가 애들 돌보는 걸 좋아한다고 그런 마법이 생기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 마법이 쉬운 것도 아니고…….”
“그것도 그렇죠. 근데 다들 잘 보면 본인 성격이랑 어울리는 마법을 가진 거 같아요.”
그건 쿤도 공감하는 바였다.
루고 사강이고 은이고 보보고 아닌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마법이랑 성격이 닮았다.
특히 키리기스의 경우는 그 고압적인 태도와 마법이 짝이라도 지은 것처럼 딱 맞았다.
“…….”
마법과 성격 이야기를 해서 그런 걸까. 문뜩 키리기스의 저택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의문이 드는군.”
“……뭐가요?”
“아무리 봐도 내 마법이 필요한 것처럼 느껴지진 않아서 말이야.”
“그건 또 무슨 ㄱ, 아니, 소리예요?”
“너희 마법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단 소리야.”
당시에는 그게 루와 은의 마법을 말하는 것 같았는데, 돌이켜보니 그게 전부가 아닌 것 같았다. 유독 날카로웠던 시선도 그렇고 말이다.
설마 알고 있나? …에이, 아닐 거야. 내 마법이 뭔지 알았으면 내가 눈치챌 만한 식으로 떠봤겠지.
쿤은 아닐 거라 생각했다.
“보보 씨, 저희 이만 올라가 볼게요.”
“네. 내일 봬요.”
쿤은 북청이를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2층 방으로 가 잠자리를 준비했다.
모두가 잠든 깊은 밤이었다. 짙고 어두운 밤이 오즈벨에 내려앉았다.
북청이를 끌어안고 자던 쿤은 이상한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위잉- 위잉- 시끄러운 진동음과 함께 귀가 간지러웠다.
쿤은 제 귀를 긁다, 이어 커프를 눌렀다.
“ㄴ…….”
말이 채 나오기도 전에 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쿤, 너 어디야!]“저 지금 숙소…….”
대체 뭐기에 이러나 싶어 비몽사몽 한 눈으로 몸을 일으킬 때, 갑자기 섬뜩한 한기가 피부를 찔렀다.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잠이 확 달아났다.
쿤은 빠르게 북청 사자를 끌어안았다. 고개를 돌리자 창 너머로 이쪽을 빤히 쳐다보는 구렁이가 보였다.
새빨갛게 물든 눈이 아직도 단잠에 빠져 있는 북청 사자를 향했다.
“……젠장.”
쿤은 곧바로 일어나 복도로 달려나갔다.
와장창창-! 창문이 깨지며 구렁이가 들어왔다.
방안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고, 요란한 소리가 숙소를 울렸다.
“이게 무슨 일……!”
“방금 뭐야!”
보보와 루가 숙소 방문을 열고 튀어나왔다. 두 사람은 2층 복도를 꽉 채운 구렁이를 보며 숨을 삼켰다.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카드를 꺼내 들었다.
“여기서 싸우면 안 돼요!”
쿤은 두 사람에게 소리치며 1층으로 내려왔다.
구렁이 크기가 작으면 모르겠으나, 꽤나 컸기에 여기서 싸우면 자신들이 불리했다.
“쿤 씨, 정원으로 유인하세요!”
“도로로 나가면 안 돼!”
“네!”
쿤은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구렁이는 곧장 그 뒤를 따랐다. 차원이동자의 거침없는 움직임에 계단 손잡이부터 시작해 거실의 소파까지 다 부러지고 뒤집혔다.
구렁이는 정원에 나오고서야 속도를 멈췄다. 새빨간 눈이 매섭게 북청이를 노려봤다.
쿤은 잠옷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냈다. 항상 소지하라는 말 때문에 잘 때도 가지고 잤는데, 이렇게 쓰게 될 줄은 몰랐다.
2층 창문에서 뛰어내린 루와 구렁이 뒤를 따른 보보도 정원에 도착했다.
“자다 깨서 싸우는 건 오래간만이네.”
“그러게요.”
루와 보보가 검을 뽑아 들었다. 두 사람도 자다 나왔기에 평소 보던 판테테 재킷이 아닌 편안한 실내복 차림이었다.
쿤과 보보, 루는 구렁이를 둘러쌌다.
그리고 정원의 나무 그림자에서 은이 모습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