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92
91화-조작(02)
북청 사자 새끼 건으로 비상회의가 열린 지 일주일이 지났다.
루는 뾰족한 대문을 보며 이맛살을 찌푸렸다.
지금으로부터 20분 전, 키리기스가 통신을 걸어왔다.
다짜고짜 통신을 걸어온 그는 루가 채 뭐라 답하기도 전에 ‘지금 당장 내 저택으로 오도록’이란 말을 남기고 끊어버렸다.
다른 사람이 했다면-심지어 혜성이 했어도-뭐래, 하고 씹어버렸겠지만, 상대는 키리기스였다.
‘아무래도 사강 씨보다 선생님을 먼저 쳐야겠어.’
루는 제 숙원 리스트 1위에서 사강을 내리고 키리기스를 올려두었다.
저택 안으로 들어가자 늘 그랬듯 집사가 나와 그녀를 안내했다. 많이 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곳에 올 때마다 만났는데 그는 항상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수염과 구레나룻의 길이가 똑같았다.
사실 이는 집사뿐만이 아니었다. 키리기스의 저택에서 일하는 고용인들 전부 다 매번 똑같은 외향을 유지했다.
태도 역시 기계적이었다.
‘인간미가 없다니까. 뭐, 제일 없는 건 저기 저 인간이지만.’
루는 홀에 걸린 키리기스의 초상화를 쳐다봤다.
새하얀 가면이 샹들리에에 반짝이는 것 같았다.
키리기스 가면에 대해서는 여러 말이 있었다. 눈에 상처가 있다는 것부터 시작해, 사실은 엄청나게 못 생겨서 외모를 가리는 거라는 말까지.
하지만 루는 그가 속내를 감추기 위해 가면을 쓴다 생각했다.
얼굴을 가리면 그 안에 스치는 생각과 감정을 숨길 수 있었으니 말이다.
홀을 지나 응접실로 향하자,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하인이 차와 다과를 내놨다.
이 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이 바로 이 디저트와 차였다.
‘역시 맛있어.’
루가 느긋하게 과자를 먹고 있을 때, 갑자기 하인 하나가 집사를 찾아와 귓속말로 무언가를 전해주었다.
노신사는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짓더니 루에게 말을 건넸다.
“루 님, 아무래도 도련님께서 조금 늦으실 것 같습니다.”
“…저를 불러놓고 늦는다고요?”
“예. 이곳에서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망할 인간이…… 감히 지가 늦어?
루는 빠드득 이를 갈았다. 그러다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럼 저 저택 구경 좀 하고 있을게요.”
“그런 거라면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아뇨, 귀찮으니까 따라오지 마세요.”
루는 집사가 따라오기 전에 서둘러 방을 나섰다. 그리고 빠르게 복도를 달려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들어갔다.
‘선생님 집무실이 3층이었지?’
루는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해가며 3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전에 한 번 와봤기에 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모든 방을 다 들쑤실 뻔했다.
방안에는 엄청난 양의 책장과 자료들이 가득했다. 루는 일단 책상부터 뒤졌다.
그녀가 찾는 것은 단 하나, 바로 쿤과 관련된 기록이었다. 더 정확히는 판테테 시험 성적 조작 관련 자료였다.
저야 당시엔 관심도 없었고, 또 그런 걸 찾아볼 능력도 안 되지만, 키리기스라면 분명 어떻게든 알아냈을 것이다.
‘이 인간이 아직도 이걸 못 찾았을 리 없어. 아이 씨, 근데 무슨 신문이 이렇게 많아. 신문 회사라도 차렸나 아주 회사별로 다 있네.’
루는 신문을 들추고 서랍을 하나씩 다 열어봤다. 그러면서도 처음 모습으로 돌려놓는 세밀함을 잊지 않았다.
순간 그녀의 눈에 서랍 밑의 작은 틈이 보였다. 처음에는 책상 하단에 있는 장식인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낮은 서랍이었다.
하단 부를 만지자 움푹 파인 흠이 보였다. 혹시 몰라 건드리자 달칵 소리가 나며 서랍이 튀어나왔다.
‘역시, 이런 장치 하나는 있어야지.’
루는 거기 있는 서류를 꺼낸 후, 자릴 깔고 앉았다. 낮은 서랍에 들어 있던 자료답게 서류는 몇 장 되지 않았다.
‘아이 씨, 다른 사람들 건 왜 있는 거야.’
보보와 녹턴의 서류가 있었지만, 다른 사람 건 관심이 없었기에 루는 빠르게 장을 넘겼다. 그리고 끝자락에서 그토록 찾던 쿤의 서류를 발견했다. 두 장밖에 안 되어 금방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어, 얘 로비츠 영지 출신이 아니네? 그리고 큰 형이… 레이포드? 뭐지,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할아버지는 로비츠 출신의 요리사. 그리고 할머니는… 없다? 어? 없다고?’
루의 머리 위로 커다란 물음표가 그려졌다. 자주는 아니지만, 쿤은 종종 제 조모에 관해 이야기했었다. 근데 서류상에는 아무런 기록이 없었다.
더 충격적인 건 밑의 내용이었다.
‘유괴를 당했어? 거기다 이게 뭐야, 피살?’
루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쿤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 반 페이지 가득 적혀 있었다.
루는 서둘러 다음 장을 넘겼다. 그때였다.
“거기서 뭘 하는 거지?”
루가 화들짝 놀라며 서류를 놓쳤다. 종이가 바스락 소릴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천천히 고개를 들자 키리기스가 책상 앞에 서 있었다.
“내가 집무실에 들어오라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이거, 진짜 쿤 이야기 맞아요?”
“이런. 내 제자가 언제 이렇게 뻔뻔해졌을까. 이럴 땐 사과부터 해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남의 사생활 캐내는 사람한테 사과하고 싶진 않은데요.”
물론 그걸 훔쳐본 저도 피차일반이지만, 이번만큼은 그냥 밀고 나가기로 했다.
“쿤 시험 성적 누가 조작한 거예요?”
“거기까진 못 본 건가?”
역시 뒷장에 있었나?
루는 서둘러 서류를 펄럭였다. 그러나 그보다 키리기스가 빨랐다.
그는 그 커다란 손으로 서류를 덮었다. 그리고 루의 손에서 빼앗아 갔다.
“후배를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지금은 좀 이른 것 같군.”
“그냥 시원하게 말씀해 주세요. 누군지 아시는 거죠?”
키리기스가 허리를 폈다. 그는 바닥에 앉은 루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
“…….”
“지금은 이 정도만 알아두는 게 좋겠군.”
* * *
쿤, 은, 녹턴, 사강 네 사람이 거실에 모였다. 그들은 사뭇 진지한 얼굴로 소파 테이블에서 서로의 털을 잡아 뜯는 북청 사자 형제를 바라봤다.
그들이 이곳에 모인 이유는 단 하나였다. 역 차원문 보고서 작성, 그리고 지독한 육아로 미뤄졌던 이름 짓기 때문이었다.
“이름 추천받을게요.”
쿤의 말에 사강이가 번쩍 손을 들었다.
“너트와 볼트 추천!”
“기각.”
“왜, 추천받는다며!”
“안 귀엽잖아요. 이렇게 귀여운 애들한테 어떻게 그런 이름을 줘요!”
쿤이 열을 토했다.
나머지 세 사람은 잠깐 북청 사자 새끼들을 내려다봤다. 이런 말을 하긴 뭐하지만, 귀엽다고 하기엔 조금 거리가 있는 얼굴이었다.
“야! 너트랑 볼트가 얼마나 귀여운데! 얘들보다 귀여워!”
“안 돼요- 다른 거 추천받습니다.”
이번엔 은이 손을 들어 보였다.
“일억이 십억이 어때?”
“…그, 그건 좀 생각해 볼게요. 녹턴 씨는 뭐 없어요?”
녹턴은 턱을 괴며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사이 형 사자가 동생 사자를 걷어찼다. 순식간에 두 사자가 뒤엉키며 싸움이 일어났다.
유독 나풀거리는 털들을 보며 녹턴이 드디어 답을 내놨다.
“오징어, 해파리.”
“…사자한테?”
“진담이야?”
은과 사강이 녹턴을 쳐다봤다. 그러나 그녀는 확고했다.
“…녹턴 씨는 앞으로 차원이동자 이름 짓지 마세요.”
쿤은 두 번 다시 그녀에게 발언권을 주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아직도 발길질하는 형제를 떼어놓았다.
“얘들아 가만있어 봐. 니들 이름 짓잖아.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왜 쌈박질이야.”
쿤이 형제를 나무며 테이블 끝과 끝으로 보내자, 사강이 손가락을 튕겼다.
“홍코너, 청코너로 하자.”
“…장난해요? 뭐든 이름 따라간다는데, 그렇게 지으면 매일 쌈박질 할 거 아니에요.”
“뭐, 어때. 귀엽잖아.”
쿤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어쩜 이렇게 하나같이 이름 짓는 센스가 없을까.”
“북청이 용이한테 듣고 싶지 않아.”
“창의력은 네가 제일 바닥이거든?”
은과 사강이 성을 내며 쿤을 비난했다.
녹턴은 그럴 가치도 없다 판단하고 비난조차 안 했다.
그렇게 한창 서로의 창의력을 깎아내리며, 최적의 이름을 찾아 헤맬 때, 현관문이 열렸다.
“아이 씨, 현관 앞에 물건 쌓아둔 사람 누구야.”
서류 더미를 잔뜩 끌어안은 루가 쿤이 사온 애들 짐을 발로 밀었다.
“죄송해요, 금방 치울게요.”
“그거 말고 이거나 받아.”
루는 쿤에게 서류 더미를 건넸다. 족히 몇천 장은 되어 보였다.
“으억. 이게 다 뭐예요?”
“선생님 심부름.”
그건 저번 회의에서 혜성과 키리기스가 이야기했던 ‘리란티아에서 태어난 차원이동자’의 조사 자료 일부였다.
대체 이 많은 걸 어디서 찾아낸 건지. 정말 정보력 하나만큼은 탁월한 인간이었다.
“일주일 걸린다지 않았어요?”
“내 말이. 심지어 이렇게 많을 줄 누가 알았어.”
“이거 어디다 갖다놔요?”
“어… 우리가 봐도 되는 건지, 아니면 보스만 보는 건지 모르니까 일단 지하 자료실에 갖다 놓고 와. 아, 위에 보지 말란 메모도 붙여놔.”
혹여 이곳에 없는 부용이나 자료실을 수시로 청소하는 보보가 실수로라도 볼 수 있다.
루의 첨언에 쿤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쿤이 지하실로 내려가자 북청 사자 두 마리가 둥둥 떠다니며 그 뒤를 따랐다.
“선생이 저거 가져가라고 부른 거야?”
루가 소파에 앉기 무섭게 사강이 물어왔다.
루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마차 태워 보내지, 왜 직접 와서 가져가라고 했대?”
“그러게나 말이… 어?”
잠깐, 진짜 왜 날 부른 거지?
집무실의 일 때문에 짜증 나 잊고 있었는데, 키리기스는 혜성과 달리 이런 실없는 일을 시키는 인간이 아니었다. 거기다 잘 생각해 보니 유독 3층에 하인들 수가 없었던 것 같다.
“혹시 일부러 보라고 그런 건가?”
“뭘?”
루는 지하실 쪽 방향을 쳐다봤다. 그리고 쿤이 없음을 확인하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선생님 집무실에서 쿤 서류를 발견했거든요.”
“응? 갑자기 집무실은 왜 갔어?”
은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루는 제 설명이 부족했음을 깨닫고 다시 처음부터 설명했다.
“쿤 판테테 시험 성적 누가 계속 조작했잖아요. 선생님이면 이미 누가 그랬는지 알고 있을 것 같아서 집무실에 몰래 들어갔거든요.”
루의 대담한 행동에 녹턴과 사강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세상 그 누가 키리기스의 집무실을 털 생각을 하겠는가. 다음 날 신문 1면을 차지할 각오가 아니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그래서, 그 서류에 누가 그랬는지 나왔어?”
사강은 루가 본 서류의 내용을 물었다. 하지만 채 답을 듣기도 전에 은이 다른 의문을 표했다.
“쿤 성적이 조작됐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은은 세상 심각한 얼굴로 세 사람을 훑어봤다.
“너희 다 알고 있었어?”
“…몰랐어요?”
“너 왜 몰라. 쿤이 오즈벨 돌면서 인사 다닌 날, 선생이 말했잖아.”
“나 그때 회의 안 갔잖아.”
세 사람의 입이 떡 벌어졌다. 아무리 회의에 안 왔기로서니 이게 얼마나 핫한 내용인데 석 달이 다 되도록 혼자만 모른단 말인가.
은이 소식이 늦은 거야 하루이틀이 아니었지만, 이번만은 정말 충격이었다.
세 사람은 그날의 일을 설명해 주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때였다.
“이게 다 무슨 소리예요?”
지하실에서 올라온 쿤이 모두를 향해 물었다.
“제 시험 성적이 조작됐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