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96
95화-용사의 친구 (04)
여느 때처럼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괴인들이 집에 들이닥쳤다.
당시 다른 남매들은 할아버지네 놀러 갔기 때문에 집에 있던 건 부모님과 지독한 감기에 걸린 쿤밖에 없었다.
그들은 세 사람을 납치해 데려갔고, 엘리아노에게 연락했다.
“‘네 자식과 며느리, 손주를 데리고 있다. 그러니 정해진 시간까지 혼자 나와라’. 뭐 대충 이런 내용이었어요.”
“…….”
쿤의 담담한 어투에 루는 저도 모르게 손을 꽉 쥐었다. 보고서의 짧은 글만으로도 충분히 충격적이었는데, 직접 당사자의 입에서 듣는 건 그보다 훨씬 더 처참했다.
“그래서요? 엘리아노 님은 왔나요?”
보보의 질문에 쿤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당시 15구역 재건 때문에 아주 중요한 일이 있었대요. 왕도 오고, 영웅들도 다 모이고. 절대 빠질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더라고요.”
거기다 엘리아노는 대외적으로 가족이 없다 알려졌다. 만약 거기서 그녀가 직접 움직였다면 가족의 존재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그녀는 이 모든 걸 외면했다.
“물론 뒤로 사람을 보내긴 했대요. 근데 그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더라고요.”
“그럼 부모님이…….”
“네, 맞아요. 그때 돌아가셨어요.”
분위기가 금세 숙연해졌다.
쿤은 이를 우울한 이야기라 칭했지만, 그 단어가 가볍게 여겨질 정도로 끔찍한 일이었다.
“이후 전 여차여차 구조됐는데, 저도 부모님이랑 같이 그 사람들 얼굴을 봐서 보호가 필요했어요. 그래서 할머니와 살게 된 거고요.”
물론 그 사실도 비밀로 해야 했기에 대외적으로는 병원에 입원한 걸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쿤은 엘리아노와 숲에서 단둘이 살았다. 그리고 기사단과 할머니의 사람들이 몰래 남은 식구들을 지켰다.
“그때 제가 할머니랑 잠깐 따로 살았던 거예요.”
쿤의 이야기를 듣던 루가 미간을 찌푸렸다.
“좀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어. 넌 그런 일을 겪고도 어떻게 할머니랑 살 수 있었던 거야?”
일곱 살이면 어리긴 하나 어느 정도의 사리분별은 할 수 있었다. 심하게 보면 부모님을 죽게 놔둔 이와 사는 거였다.
만일 제가 쿤이었다면 절대 조모와 함께 사는 선택은 못 했을 것이다.
“음…….”
쿤은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침음을 삼켰다.
“일단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하나는 할머니가 원했대요. 형이랑 누나는 싫다고 절대 안 된다고 했는데, 할머니가 고집을 부렸다더라고.”
“뭔가 남의 이야기 하는 거 같다?”
“그렇게 느끼시는 게 정확할 거예요. 저도 제 이야기 같지 않거든요.”
쿤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사실 저 그때 기억이 없어요.”
“…어?”
“네?”
“아, 다 없는 건 아니고요. 부분 기억상실증이라고 해야 하나. 의사 말론 눈앞에서 부모님이 죽는 걸 본 충격으로 기억 일부가 지워진 것 같다더라고요.”
이게 쿤이 할머니와 함께 사는데 거부감이 없던 두 번째 이야기였다.
당시 쿤은 부분 기억상실에 걸린 데다, 심하게 다쳐 한동안 치료를 받아야 했다.
부모님과 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나중에서야 알았다.
“지금도 기억이 안 나시는 거예요?”
“다는 아니고요, 그냥 부분적으로 조금씩?”
뭐, 기억이 다 돌아왔다 쳐도 그게 아직까지 제대로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로부터 얼마 후 역 차원문에 휩쓸리고, 또 기억에 혼란이 오지 않았던가.
덕분에 쿤의 일곱 살은 혼돈 그 자체였다. 그때를 떠올리면 모든 기억이 흩어진 퍼즐처럼 이리저리 섞여 있었다.
어쨌든 그 이후, 할머니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던 큰 형이 저를 데리고 갔다. 부모님과 할머니 사이의 이야기를 들은 것도 그날이었다.
“모든 걸 알고 나니까 할머니를 도저히 전처럼 못 대하겠더라고요. 거기다 큰형이 할머니를 미워해서, 얘기도 못 하게 했어요.”
누나들이나 작은 형은 할머니를 원망하면서도 이해하는 게 있었다. 그래서 마냥 밀어내지 못하고 간간이 편지도 주고받고 그랬다.
하지만 큰형만은 달랐다. 그는 지금도 서류뿐 아니라 실제로도 조모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여길 만큼 엘리아노를 원망했다.
“그래서 좀 서먹한 거예요. 거기다 할머니는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영웅일지는 몰라도 좋은 부모, 좋은 아내는 아니었거든요.”
할아버지가 당시 갓난쟁이였던 아버지를 데리고 고향에 돌아왔을 때, 마을 사람들은 아내를 밝히지 않는 그를 보며 한참이나 수군거렸다.
아내가 병으로 죽었다는 것부터 시작해, 친아들이 아니라 주워온 자식이란 이야기도 있었고, 심하면 상대가 창녀라 밝히지 않는 거란 말도 들었다. 때문에 아버지의 유년시절은 손가락질의 연속이었다.
자주 만날 수 있는 게 아니었기에 육아 역시 할아버지의 몫이었다. 그는 걸음마도 못 뗀 아들을 데리고 식당을 운영해야 할 만큼 고된 삶을 살았다.
경제적인 지원도 못 받았다. 혹시라도 꼬리가 잡히면 안 된다는 이유로 말이다.
용사의 친구, 리란티아를 구한 영웅. 분명 엘리아노는 존경받아 마땅한 위인이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가족으로썬 최악이었다.
“여기까지가 저와 할머니, 그리고 우리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너도 보기보다 고생을 많이 했구나.”
“아뇨, 사실 그렇게 고생한 건 없어요. 안 좋은 일을 겪었을 뿐이지, 그것만 제하면 형 누나들하고 행복하게 살았고요. 부족함도 크게 없었어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가세가 휘청이긴 했지만, 할아버지가 있는데다 큰형과 큰누나가 자리를 빨리 잡는 바람에 막둥이인 쿤은 보호 속에서 자랐다.
“진짜 고생은 큰형이랑 큰누나가 많이 했죠. 할아버지랑요.”
쿤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보보는 마음이 심란했다. 뭐랄까. 지금 그의 모습이 꼭 힘든 일을 감추던 막내와 비슷해 보였다.
‘철이 너무 빨리 드는 것도 안 좋은데…….’
보보가 그리 생각할 때 쿤이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우리 이제 우울한 이야기 그만하고, 좀 다른 얘기 해요.”
분위기를 환기하려는지 쿤이 평소보다 명랑하게 말했다.
루와 보보는 흔쾌히 이에 편승했다.
“좋아요.”
“무슨 얘기 할까.”
루의 질문에 쿤이 비장하게 말했다.
“우리 애들 이름 뭐로 할지 얘기해 봅시다.”
두 사람이 멈칫했다. 분위기를 바꾸려고 한 주제치곤 지나치게 귀찮았다.
“…아직도 못 정했어?”
“네. 추천해 주세요.”
“‘마늘’과 ‘쑥’으로 해.”
“‘마늘’이랑 ‘쑥’은 왜요?”
“먹고 사람 되라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마늘아, 쑥아’라고 할 순 없지 않은가.
‘…어? 생각보다 귀여운 거 같다?’
쿤은 진짜 마늘이 쑥이로 할까 고민했다. 문이 부서진 건 그다음이왔다.
쾅- 엄청난 타격음과 함께 훈련장의 문이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잠에서 깬 북청 사자 두 마리가 소스라치게 놀라 숨었다.
쿤과 루, 보보는 경첩만 덜렁이는 문을 쳐다봤다. 마치 며칠 전을 고대로 가져다 놓은 듯 엘리아노가 서 있었다.
“…쿤, 너희 할머니 문 여는 법 모르니? 왜 매번 부수는 거야?”
“저도 그게 항상 궁금했어요.”
“…마늘과 쑥은 엘리아노 님이 드셔야겠네요.”
세 사람이 기가 차 한마디씩 던지는 사이, 엘리아노가 안으로 걸어왔다.
“드디어 보네. 쿤, 할미랑 얘기 좀 하자.”
“같이 가자는 말만 아니면 할게요.”
“누차 말했지만, 할머니는 네가 판테테가 되는 거 반대야.”
역시나 엘리아노는 제 고집을 꺾지 않았다.
쿤은 북청 사자들을 루와 부용에게 맡겼다.
“하아… 이 얘기는 부메랑도 아니고 왜 주기별로 돌아오는 거예요. 보는 사람들도 다 지겹겠어요.”
다소 짜증 섞인 목소리에 엘리아노와 비슷한 말을 한 적 있는 보보가 뜨끔했다.
쿤은 머리를 거칠게 헤집었다. 이제는 이런 걸로 하는 씨름하는 것도 지친다.
“저 이제 뭘 허락받고 해야 할 나이 아니고요, 설령 그렇다고 해도 누나가 이미 허락했어요. 그러니 반대하지 마세요. 소용없어요.”
“정말로 허락한 게 맞아? 네가 너무 하고 싶어 하니까 어쩔 수 없이 져준 게 아니라?”
“…….”
“쿤, 할머니만이 아니야. 네 누나와 형들도 다 반대했어. 어른들이 그러는 덴 그만한 이유가 있어. 네가 지금 할머니에 대한 미움으로 판테테가 되겠다고 오기를 부리는 건데, 이건 네 누나랑 형을 아프게 하는 거야.”
“…….”
“그리고 너한테는 이런 쪽으론 재능이 없어. 네가 루처럼 결계를 만들 수 있니? 아니면 키리기스처럼 빼어난 정보력이라도 있어? 아니잖아. 사람은 겸손해야지. 다 네가 걱정돼서 이러는 건데, 네가 네 깜냥을 모르면 그거야 말로…….”
“잠깐-”
한창 엘리아노가 말을 이어가는 데, 루가 그 말허리를 잘랐다.
상대의 말을 끊는 건 무척이나 예의 없는 행동이었지만, 그런 걸 신경쓸 그녀가 아니었다. 뭣보다 지금은 그보다 더 급히 확인해야 할 일이 있었다.
“쿤, 너희 할머니 옛날부터 저런 식으로 말씀하셨어?”
“네. 어릴 때부터 저러셨어요.”
“하.”
루는 엘리아노를 흘겨봤다. 이제야 쿤의 성격이 왜 그 모양인지 이해가 갔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이상하다고 느꼈다. 일곱 번의 낙방과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꿈을 포기하지 않은 뚝심 있는 녀석이, 유독 자기 일만 되면 자신감이 떨어졌다. 거기다 자기 자신을 너무 낮춰봤다.
처음에는 비마법사라는 콤플렉스 때문인 줄 알았는데, 인제 보니 그게 아니었다.
“이렇게 노골적으로 깎아내니 애가 찌질이가 되지…….”
“그러게요. 낙하산이니 뭐니 삽질을 하시기에 왜 저러나 했는데… 이래서였어요.”
루와 보보는 마치 세상에 둘도 없는 적을 만난 것처럼 엘리아노를 매섭게 노려봤다.
이 와중에 쿤은 제가 정말로 그렇게 찌질했나 싶었다.
“제가 그 정도로 찐따 같았어요?”
“어.”
“네.”
그, 그래. 그랬구나.
쿤은 멋쩍어졌다.
루와 보보는 쿤의 양옆에 섰다.
“노파심에 하는 말인데, 너 저 말 듣고 또 흔들리지 마라.”
루가 그러면 가만 안 두겠다는 투로 말했고,
“저 저번에 쿤 씨한테 판테테 안 했으면 좋겠다는 말 철회할게요.”
보보가 쿤의 생각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쿤은 피식 웃어 보였다.
만일 할머니가 보보와 담당 선배일 때, 혹은 부용의 밑에서 배울 때 와서 이런 말을 했다면 쉽게 흔들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쿤은 모든 고민을 끝냈다. 무엇보다 양옆으로 이렇게 든든한 사람들이 있는데, 어떻게 그만두겠는가.
“걱정하지 마세요. 저런 말에 때려치울 거면, 시말서 썼을 때 진작 때려치웠어요.”
“완벽하네.”
“진짜진짜 판테테가 된 걸 축하해요.”
“저번에 된 거 아니었어요?”
“시말서 이야기가 일상에서 나오면 진짜진짜가 된 거예요.”
셋은 동시에 서로를 보고 피식 웃었다.
쿤은 다시 엘리아노를 쳐다봤다.
“들었죠, 할머니. 전 이제 흔들리지 않아요.”
엘리아노는 제 손자와 그를 지지하는 두 판테테를 보며 입매를 굳혔다.
지금 쿤은 그 어느 때보다 확신에 찬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목소리 역시 그의 각오만큼이나 단단했다.
“그래… 이제는 이런 방식으로 너를 설득할 수 없구나. 하지만 할머니도 쉽게 포기할 수 없어.”
엘리아노는 카드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니 할미와 내기하자. 네가 이기면 더는 반대하지 않으마. 하지만 네가 진다면, 나와 함께 가는 거야.”
그녀가 손자를 향해 검을 내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