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eturn a dimensionpover correctly RAW novel - Chapter 98
97화-용사의 친구(06)
엘리아노의 이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실제로도 세 아이는 나머지와 너무 큰 실력 차가 났다. 은이야 범주 외 존재니 젖혀두고, 키리기스와 혜성만 두고 보더라도 꼭대기와 지하층의 차이였다.
“너희 둘은 키리기스 밑에서 배웠다고 들었는데, 제대로 배우긴 한 거야?”
“윽…….”
루와 보보가 이를 갈았다. 엘리아노를 한 대도 못 때린 것보다 이런 말을 듣는 게 더 모욕적이었다.
“도대체 이런 실력으로 어떻게 판테테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엘리아노는 진심으로 모두를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이 맨땅을 일궈 판테테를 만든 그녀에게 지금의 판테테는 72시간 법칙과 지원, 지지 등 모든 걸 갖춘 편안한 집단이었다.
그런데도 옛날의 판테테보다 못 해 보였다.
“쯧쯧.”
엘리아노가 혀를 찼다.
루는 빠드득 이를 갈았다.
“망할 꼰대 같으니라고…….”
보보 또한 속으로 온갖 욕을 내뱉었다.
둘과 조금 먼 곳에 떨어져 있던 쿤은 이제야 겨우 몸을 일으켰다.
쿤과 할머니가 건 내기 조건은 단 한 번의 유효타.
너무나도 쉬워 보였던 조건이 이렇게까지 버겁게 느껴지는 것은 개개인이 가진 역량 차가 크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여기서 마법을 쓸 수 있는 사람이 루밖에 없다. 제 마법은 조건이 안 맞고, 보보는 흡혈 일족이라 써도 되는지 아닌지 쿤으로썬 판단할 수 없었다.
가장 좋은 건 저와 보보가 몰아넣고 엘리아노를 결계에 가두는 것.
지금까지야 각개 전투였지만, 만일 저와 보보가 엘리아노를 몰아넣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쿤은 보보와 루를 흘끗 쳐다봤다. 그들 역시 제 쪽을 보며 눈치를 주고받았다. 이제 더 이상의 각개 전투는 소용이 없다는 걸 다 아는 것이다.
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가는 눈이 빠르게 훈련장을 훑었다.
불쑥 엘리아노가 움직였다. 그녀는 쿤 옆으로 이동해 손자를 걷어찼다. 그러나 탁 하는 소리와 함께 긴 다리가 투명한 벽에 가로막혔다.
루가 쿤을 에워싼 결계를 만든 것이다.
“그래, 우리를 떨어트릴 줄 알았어.”
이쯤 되면 엘리아노도 자신들이 합심할 거라는 걸 알 것이다. 그럼 가장 먼저 할 일은 단 하나. 계획을 짜지 못하게 떨어트리는 거였다.
루는 바로 땅을 박찼다.
‘물리적 공간을 좁혀야 해.’
그녀는 다양한 크기의 결계와 벽을 쌓았다. 엘리아노의 순간이동을 막기 위해 그녀가 들어갈 수 없는 크기의 결계들이 훈련장 곳곳에 쌓였다.
마치 여러 짐이 방에 꽉 들어찬 것 같았다.
쿤은 엘리아노와 루가 대치하고 있는 틈을 타 보보에게 달려갔다.
“보보 씨, 루 씨를 위한 틈을 만들어야 해요.”
그는 보보만 들을 수 있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제 생각을 설명했다.
보보는 곧장 내용을 이해했다.
“괜찮은 거 같아요. 한번 해보죠.”
작전을 주고받은 쿤과 보보가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보보는 곧장 엘리아노에게 달려들어 결계와 씨름하는 그녀에게 검을 휘둘렀다.
엘리아노는 이를 능숙하게 피한 뒤, 얇은 벽처럼 만들어진 결계를 보보에게 걷어찼다. 그리고 순식간에 보보 뒤쪽으로 순간 이동해 그의 등을 걷어찼다.
보보의 몸이 쓰러지는 결계와 부딪히려 하자, 루가 빠르게 이를 풀었다.
“젠장.”
루는 다시 결계 벽을 만들었다.
풀었다 만들었다를 계속 반복하는 것이 오랫동안 결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엘리아노 역시 이를 알고 있기에 전투하며 루가 결계를 풀고 다시 만들 수밖에 없는 상황을 계속 만들었다.
어느새 루 쪽으로 온 쿤이 그녀에게만 들릴 만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두 사람은 엘리아노의 앞에 벽들을 계속 만들며 머릿속으로 그린 상황을 공유했다.
“좋아, 그걸로 하자.”
“그럼 저랑 보보 씨가 몰아붙일게요.”
쿤은 죽기 살기로 할머니에게 달려들었다.
엘리아노는 쿤과 보보를 상대하는 중간중간 루가 마법을 계속 반복해 쓰게끔 하였으나 이미 방 대부분이 수많은 결계로 꽉 찬 후였다.
“하아… 하아…….”
루가 가쁜 숨을 내쉬었다. 생각해 보니 이런 식으로 마법을 쓴 건 처음이었다.
‘이거 체력 엄청 잡아먹네. 두 번은 못 하겠어.’
“공간이 좁아도 상관없어. 어차피 20분 남았으니까.”
20분 버티는 것쯤이야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거기다 루의 체력이나 상태로 봤을 때 만들 수 있는 결계가 한 번 정도밖에 안 남은 것 같았다.
엘리아노는 빠르게 거리를 계산하고 순간이동 지점을 잡았다. 70분이나 지났음에도 처음과 똑같은 움직임과 냉철한 판단을 보니 일흔을 넘겼다는 사람이 맞나 싶었다.
하지만 공간이 좁아졌다는 건 확실히 그녀에게 불리함으로 작용했다. 어느 곳으로 이동하든 세 사람이 빨리 따라잡을 수 있단 거였다.
카앙- 캉. 70분 만에 처음으로 검과 검이 제대로 맞부딪혔다.
쿤과 보보는 양쪽에서 엘리아노를 몰아갔다. 그녀는 단박에 세 사람의 계획을 눈치챘다. 분명 둘이 저를 몰아넣고, 루가 결계로 저를 가두려는 거겠지.
엘리아노는 세 사람이 제게 한 번에 모이는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때에 맞춰 루와 쿤을 저 멀리 순간이동시켰다.
그때였다. 보보가 갑자기 검이 아닌 주먹을 휘둘렀다.
엘리아노는 보보의 팔을 잡아 막았다. 그리고 내던지려던 때였다.
보보가 쥐고 있던 손을 펴 보였다. 그의 손바닥에 각설탕만 한 크기의 결계가 있었다.
『얘들아, 나와!』
쿤이 소리치는 것과 함께, 루가 결계를 풀었다. 순간 엄청난 풍압과 함께 북청 사자가 튀어나왔다. 작은 결계 안에 갇히느라 작아졌던 몸이 점점 제 크기를 찾았다.
“-!”
예상 못 한 차원이동자의 공격에 엘리아노가 크게 당황했다. 그녀는 빠르게 가장 먼 곳으로 순간이동을 했다. 그러나 땅에 발이 닿기 무섭게 또 한 마리의 북청 사자가 몸을 부풀렸다.
뒤이어 인기척이 느껴졌다.
루와 보보, 그리고 두 마리의 차원이동자가 만든 찰나의 틈.
쿤은 그걸 놓치지 않고 할머니 등을 주먹 쥔 손으로 툭 하고 쳤다. 안마를 하는 것보다 약한 힘이었다.
약속했던 시간 안에 달성한 단 한 번의 유효타.
쿤은 손을 뗐다. 그리고 작게 웃으며 말했다.
“약속 지키세요, 할머니.”
“푸하… 죽을 거 같다.”
쿤과 루 보보가 그대로 훈련장 바닥에 드러누웠다. 힘들어 죽을 것 같았다. 특히 계속 결계를 만들고, 유지해야 했던 루는 죽을 맛이었다.
쿤 역시 하얀 세계 이후 이렇게 움직이는 건 처음이었다.
“전 루 씨 결계로 엘리아노 님 가둘 줄 알았어요…….”
보보가 숨을 푹 내쉬었다.
“저도 처음엔 그럴까 했는데, 할머니가 알 것 같더라고요.”
저와 보보가 몰아붙이고 루가 결계를 씌운다는 작전을 구상했을 때, 번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근데, 할머니가 과연 이 생각을 못 했을까?’
경험과 관록이라는 건 무시 못한다. 가장 쉬우면서도 뻔한 이 방법을 그녀가 눈치채지 못할 리 없다.
그렇다면 여기서 나올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는 그 생각을 역으로 이용하는 거였다.
그때부터 쿤은 물밑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곳엔 있으나, 모두가 잊고 있는 존재, 새끼 북청 사자들을 이용하기로 했다.
“오늘의 일등공신이네요.”
“그러게.”
루는 저희 위를 빙글빙글 도는 북청 사자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근데 얘네 작아지는 건 어떻게 안 거야?”
“도사님이 얘들 형태가 유령에 가깝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결계에 가둔 채 계속 줄이면 작게 압축되지 않았을까 했어요. 근데 성공해서 다행이에요. 보통은 안 되잖아요.”
완벽하게 밀봉된 결계는 그 안에 공기를 비롯한 여러 요소 때문에 압축시키는데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북청 사자는 기라는 허상의 존재가 뭉쳐서 그런지 그게 됐다.
사실 쿤은 한 마리가 써먹을 생각이었다. 북청 사자가 사라진 걸 할머니가 눈치챌 수도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루가 두 마리 다 하자 했고 몰래 만들어 마지막 틈이 생겼다.
“후…….”
쿤은 길게 숨을 내쉰 후, 상체를 일으켰다. 다리를 쭉 뻗은 채로 앉자 할머니가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북청 사자는 지금 돌보는 차원이동자야?”
“예?”
쿤은 당황했다. 왜 갑자기 이걸 묻는 걸까.
혹시 차원이동자 도움 빌렸다고 반칙이라고 하는 건 아니겠지?
쿤은 어떻게 말할지 잠깐 고민하다, 뒤탈이 없게끔 그냥 제가 작성할 보고서 내용에 맞춰 말했다.
“아뇨, 어미는 돌아갔고, 새끼들은 반송 차원문을 놓쳤어요. 원래는 차원이동자촌에 데려다줘야 하지만, 지금은 너무 어려서 제가 돌보는 중이고요.”
“…….”
할머니가 두 사자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쿤은 머쓱해졌다.
“얘들이 이렇게 커 보여도 사실은 아기예요. 말도 못 하고요.”
북청 사자 두 마리가 쿤의 옆에 와 양 뺨에 제 얼굴을 비볐다. 잠시 후, 까슬까슬한 혀가 얼굴을 핥았다.
“강아지 같지만 사자예요.”
“그래서 쳐다본 거 아니야. 네가 정말로 나한테 했던 말을 지키고 있어서 조금 놀랐을 뿐이지.”
“예?”
내가 할머니한테 무슨 말을 했더라?
쿤은 제가 무슨 말을 했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무언가 기억이 나려 할 때, 조모가 중얼거렸다.
“그래, 그런 거라면 나쁘지 않겠네.”
그녀는 그 말과 함께 몸을 돌려 훈련장을 빠져나갔다.
쿤은 조금 얼떨떨해졌다.
“…지금 저거 무슨 뜻이에요? 승복한 거예요?”
“그보다, 문을 제대로 열고 나갔어.”
“저건 그냥 뚫린 거 통과한 거 아닌가요…….”
루와 보보의 실없는 소리에 쿤이 힘없이 웃었다.
그는 다시 바닥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차가운 훈련장의 바닥에 욱신거리는 근육을 찜질해 주었다.
할머니는 의외로 깔끔하게 승복했다. 뭐라 따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과 달리 뒷말도 없었고, 그냥 지부에 놀러 와 제가 일하는 걸 구경하다 갔다.
지금도 제가 북청 사자에게 사과를 깎아 먹이는 걸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자신을 엄마처럼 따르는 두 아이를 볼 때마다 심란해하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할머니는 의외로 승복이 깔끔한 편이구나.’
집념이 강해 원하는 바를 이룰 때까지 계속 밀어붙일 줄 알았는데 말이다.
어쨌든 잔소리가 사라진 건 기쁜 일이었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마냥 반대하는 것보단 나았으니 말이다.
‘누나한테도 할머니 이긴 거 말해줘야지.’
쿤은 이번 주에 쓸 편지를 생각하며 사과 껍질을 봉투에 담았다. 그때 엘리아노가 불렀다.
“쿤.”
“네.”
“많이 바빠?”
“아뇨, 괜찮아요.”
엘리아노가 식탁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긴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할머니랑 데이트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