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Ruin A Love Comedy RAW novel - Chapter (539)
539
뭔가 왁자지껄하다.
미유키를 내려다주고 편의점에서 여러 먹거리들을 사온 내가, 툇마루 앞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려 하자마자 느낀 심정이었다.
드르륵.
문창을 여니 소란스럽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잦아들면서, 네 쌍의 눈동자가 날 바라본다.
여자들만의 대화를 하고 있다가, 뜬금없이 남자가 등장해 분위기가 가라앉은 듯한 느낌이다.
분명히 내 집인데 왜 잘못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까?
“왔어?”
어색하게 눈동자를 굴리고 있는데, 요 위에 앉아있던 미유키가 일어나 날 맞이했다.
뒤따라 딱 붙였던 엉덩이를 떼는 세 사람. 그에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주억거린 내가 미유키의 물음에 대답했다.
“어. 뭐하고 있었냐?”
“이런저런 얘기.”
“무슨 얘기?”
“이런저런 거.”
“그러니까 이런저런 거 뭐.”
“이렇고 저런 거.”
음음. 더 캐보려고 해봐야 소용없겠다. 나중에 렌카를 협박해서 알아내봐야지.
물론 히로인들 간의 대화까지 일일이 알아야할 필요는 없다고 보지만, 그냥 렌카를 괴롭히는 게 재미있으니까 괴롭힐 이유를 찾는 거다.
렌카도 내게 그런 식으로 다뤄지는 걸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알았다.”
히요리는 왜 또 꽁한 얼굴일까? 콧등에 주름까지 생겨있다.
미유키가 자신은 나와 오랜 시간동안 함께 동거했다며 도발이라도 했나 싶다.
아니면 미유키는 편하게 행동했는데, 그녀가 여길 제 집인 양 돌아다니는 걸 보고 질투심이 일어나 혼자 삐쳤을 수도 있겠다.
뭐가 됐든 금방 풀릴 것이다.
히요리는 이런 걸 마음에 담아두고 있을 사람이 아니니까.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다가왔으면 다가왔지.
“손님 응대가 별로네 여기.”
렌카의 츳코미를 한 귀로 흘린 나는, 눈을 동글동글하게 뜨고 있는 치나미에게 씨익 웃어주고는 욕실로 들어가 손발을 씻고 나왔다.
이후 다시 요에 앉아있는 네 사람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지금 보니 요가 굉장히 넓다.
분명 나올 때까지만 해도 평소에 사용하는 걸로 깔아놨었는데, 미유키가 대형으로 바꿔놓은 것 같았다.
역시 미유키는 마음이 넓고 생각이 깊다.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잘 캐치해주잖아.
“믓…!”
순간적으로 치나미의 입에서 터져 나온 신음.
아빠다리를 하고 있는 그녀의 종아리를 내 다리로 찧었다는 걸 자각한 내가 급하게 사과했다.
“미안해요. 괜찮아요?”
“넷… 저는 괜찮답니다. 신경 쓰지 마셔요.”
아플 텐데도 포근한 목소리로 날 안심시키고 있다.
말투가 마치 아이를 다루는 엄마 같아서, 갑자기 치나미의 모유가 먹고 싶어진다.
여기 오기 전까지는 간단하게 영화만 보고자 했는데, 네 사람 특유의 향이 잘 어우러져 코를 간지럽히니 아랫도리에 피가 몰려온다.
꼴린다. 그것도 엄청나게.
“자, 잠깐만…! 지금 이상한 생각하고 있죠…!”
내 표정변화를 캐치한 히요리의 긴장감이 가득한 물음.
이에 어깨를 으쓱인 나는 일단 시치미를 뗐다.
“아닌데.”
“아닌 게 아닌데…! 야한 생각하고 있잖아요…!”
“아니라니까?”
“거짓말…! 다 보여요…!”
눈치가 참 빠르구나.
우리 히요리… 나중에 따로 불러서 자제를 좀 시켜야겠다.
“음모론 생성하지 말고, 너 좋아하는 레몬 맛 스이츄 사왔으니까 먹어.”
“넹.”
냅다 반색을 하는 히요리.
이런 말에도 곧장 반응을 하는 걸 보면, 히요리는 그냥 이 자리가 조금 어색해서 내가 뭐라도 해주길 바란 듯했다.
그녀에게 기다란 막대기 형태의 포장지를 건넨 내가 말했다.
“스티커는 찾았어?”
“네. 여기…”
히요리가 이불 안에서 손을 꼼지락거리더니, 내게 자그마한 스티커를 내밀었다.
자기 자신이 독자적으로 생각하여 그린 듯한, 손발이 달려있는 나름 귀여운 레몬 캐릭터.
그것을 받은 나는 피식했다.
스티커가 아니라 포스트잇에 그려진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엄청 귀엽네.”
“그쵸?”
“어.”
뿌듯해하는 히요리를 보니 나 또한 기분이 좋아진다.
그런데 이러면 휴대폰에 붙일 수가 없잖아.
어찌할까 고민을 하던 나는 휴대폰 케이스를 드러내고, 그 안에 포스트잇을 붙인 뒤 다시 케이스를 결합했다.
“붙였다. 됐지?”
“네, 마음에 드네요.”
선심을 쓰듯 고개를 끄덕거린 히요리의 눈이, 순간적으로 미유키를 훑었다.
그녀의 반응을 보고 싶은 모양인데, 승부욕이 남아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
저 승부욕이 엇나가서 다툼이 일어나면 안 되겠지만, 잘 컨트롤할 자신이 있으니 크게 신경을 쓸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제 영화보자.”
요 옆에 탁상을 놓고, 그 위에 먹거리가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올려놓은 내 말에, 미유키가 기다렸다는 듯 리모컨을 들었다.
“뭘로 볼 건데?”
그녀도 이렇게 있는 것보단 다 같이 뭐라도 하는 걸 바라나보다.
아직은 어색함을 풀긴 쉽지 않은가?
하긴, 네 명이서 모인 적이 몇 번 없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긴 하겠다.
그래도 예전에 모였을 때처럼 금세 적응할 거라 믿는다.
어찌 됐건 지금 이 상황에선, 내용이 복잡한 장르를 보는 게 맞다고 본다.
똑똑한 미유키와 치나미가 주도를 하여 토론을 할 수 있는 영화가 훌륭한 선택지라고 생각한다.
“추리영화.”
“웬일로 추리영화를 봐? 머리 아프다고 싫어했잖아.”
“한 번 봐보려고.”
“그래…? 알았어.”
별 희한한 일이 다 있다는 듯한 눈빛을 보낸 미유키는, 얼마 지나지 않아 영화 목록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게 좋겠냐고 의견을 물었다.
엉덩이를 뒤로 뺀 나는, 알록달록한 머리가 삼삼오오 모여있는 광경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굉장히 보기 좋은 모습이다. 마구마구 야한 짓을 하고 싶어도, 오늘만큼은 딱 영화만 봐야겠다.
이 훈훈한 분위기를 깨기는 싫다. 화합을 중요시하는 느낌으로 가자.
**
다 함께 영화를 본 것이 도움이 되었을까?
다음 주 월요일에 다 같이 모여 아카데미로 향할 때의 차 안은, 저번 주보다 시끌벅적했다.
“선배는 어느 브랜드 화장품 써요?”
“저는 모모님에서 나온 기초화장품을 사용해요.”
“거기서 화장품도 나와요?”
“물론이랍니다. 나온 지 조금 됐어요. 샘플을 드려볼까요? 한 번 사용해보실래요?”
“네, 엄청 궁금해서 써보고 싶어요.”
화장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히요리와 치나미,
“그때 그 장면은 별로였어.”
“어떤 장면이요?”
“뜬금없이 주인공이 죽어버리잖아. 머리 잘 써놓고 마지막 쉬운 문제를 틀리는 게 어디 있어?”
“아… 그건 저도 좀 그랬어요.”
“그치? 누가 선택한 영화인지 참 별로더라. 아, 하나자와 너한테 하는 말은 아닌 거 알지?”
저번에 본 영화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듯, 날 돌려 까는 렌카, 그리고 배시시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미유키…
네 사람이 점점 조화로워지고 있다. 아주 좋은 징조다.
아직은 이름이 아닌 성씨를 부르지만, 점점 조화로워지는 네 사람을 보니 미래가 밝다고 느껴졌고, 동시에 기념하고 싶은 게 생겼다.
히요리의 집과 아카데미가 우리 집을 거쳤고, 때마침 지나는 곳이 집과 가까운 도로였다.
거기에 더해 아직 등교 시간까진 여유가 있어서, 나는 곧장 목적지를 바꾸었다.
“뭐야…? 어디 가?”
갑작스럽게 핸들을 트니, 미유키가 의아한 목소리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말없이 집으로 차를 몬 나는, 대문 앞에 주차를 해놓고 모두에게 말했다.
“다 내려요.”
그러자 렌카가 당혹스러워하며 날 쳐다보았다.
“뭔데…? 왜?”
“사진 하나 찍게. 내려서 들어간 다음 담장 너머로 고개만 내밀어 봐요.”
“갑자기…? 왜?”
“얼른요. 찍고 싶어서 그래요.”
약간 벅차오른 내 말투에 무언가 느끼는 바가 있었을까?
평소였다면 툴툴거렸을 렌카가 조용히 차에서 내리더니, 앞장서서 대문 안으로 들어갔다.
이럴 땐 맏이 같은 모습이 보이는구나. 오늘 엉덩이에 칭찬도장을 찍어주도록 해야겠다.
다른 히로인들 또한 의문을 접고 렌카를 뒤따라 들어갔고, 내 말대로 담장 밖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못 말려 정말…”
가장 오른쪽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젓는 미유키의 중얼거림.
이를 듣고 씨익 웃은 나는 휴대폰을 꺼내 가로로 들었고, 히로인들에게 포즈를 주문했다.
“스승님은 예쁘게 웃어줘요.”
“으음… 이렇게일까요?”
두 손가락을 담장 밖으로 들어올리면서 눈을 동글동글하게 뜨는 치나미.
입꼬리까지 스윽 올리니 귀여움이 배가 되는 그녀에게 방긋 웃어보인 내가 대답했다.
“아주 좋습니다. 부장은… 표정 좀 풀죠?”
“내가 뭘…!”
“너무 딱딱하잖아요.”
“난 원래 이래.”
꼭 잘 가다가 이렇게 한 번씩 주인님을 거슬리게 한단 말이지.
엉덩이에 칭찬도장은 취소다. 채찍질로 다스려주마.
“그래요 그럼.”
“어.”
퉁명스럽게 구는 렌카의 옆으로 시선을 돌린 내가 무언가를 말하려고 할 때,
“아니…! 좀 옆으로…”
히요리가 제자리에 버티고 서선, 안으로 조금 더 들어오려는 미유키를 방해했다.
“가…! 가라구…! 아사히나, 내 말 안 들려…!?”
“으익…!”
대답 한 마디 없이 끙끙거리면서 미유키를 밀어내려고 하는데, 절대 자리를 주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이 뭔가 웃기다.
“싸우지 말고 똑바로 서.”
“마츠다 군…! 얘가… 무, 뭐해…!! 야!”
이젠 자신의 뺨을 미유키의 뺨에 대고 밀어내기까지 하는 히요리의 표정은 무척 뻔뻔했다.
그런 히요리를 보니 역시 사람은 원하는 걸 쟁취하려면 얼굴에 철판을 깔고 봐야한다는 생각이 앞선다.
문제는 히요리의 경우 원하는 것 따윈 없고, 갑작스럽게 승부욕이 생겨 그저 미유키를 방해, 견제하려는 목적만 갖고 있다는 점이지만 그러려니 하자.
이대로 가다간 사진은커녕 하루 종일 다툼만 일어날 것 같았고, 표정을 잡고 있는 치나미의 얼굴 근육이 걱정되었기에, 나는 그냥 그러려니 하며 휴대폰 화면을 조정했다.
표정들이 전부 일관되지 못하지만, 그게 또 은근히 자연스러웠다.
그리 생각한 나는 예고도 없이 가운데의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그러려는 순간, 렌카가 무감정한 얼굴로 양손을 자신의 머리 위까지 들어올렸다.
마치 토끼 율동을 취하는 것 같은 제스처. 포즈를 좀 어떻게 해보라는 내 말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었다.
그녀의 행동에 아랫입술을 꽈아악 깨물며 웃음을 참아낸 나는 촬영 버튼을 눌렀다.
찰칵-!
“됐다.”
“뭐…? 벌써…?”
“왜 말도 안 하고 찍어요…!”
망연자실하는 미유키와 히요리를 본 나는 음흉하게 끌끌거리며 사진을 확인해보았다.
아주 잘 나왔다. 내가 바라는 모습이 담겨있어서 충분히 만족스럽다.
사진을 휴대폰 배경화면으로 설정해놓은 내가 이를 드러내보이며 웃었다.
“됐다. 이제 가자.”
여태 보여준 적이 무척이나 드물었던, 아까보다 더욱 벅찬 목소리.
이를 듣고 내 기분을 캐치한 미유키와 히요리가, 서로 다투다 말고 입을 꾸욱 다물었다.
렌카도 마찬가지. 꿍얼거리지 않고 얌전히 다시 대문 밖으로 나왔다.
스윽.
“잘 나왔을까요?”
어느새 내 뒤 어깨너머로 까치발을 들고 있는 치나미에게 찍힌 사진을 보여주자,
“나도…! 나도 볼래…!”
불안해 보이는 얼굴로 다가와선 손을 내미는 미유키와, 그런 그녀의 뒤를 따라온 히요리.
똑 닮은 두 사람의 행동에 진심이 담긴 미소를 지어보인 나는, 차에 타지 않고 내 곁으로 모인 네 사람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앞으로는 매번 생각했듯 행복해질 일만 남았다고.
물론 수난이 없진 않을 것이다.
가령 결혼 허락 같은… 그런 큰 산이 남아있긴 하다.
하지만 앞으로도 그래왔듯, 극복할 것이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그럴 자신이 있다.
-러브 코미디를 망가뜨리는 법-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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