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hine Normally RAW novel - Chapter 266
0266 ==============================================
3부 우리의 빛 – 4. 확장
“하하, 그랬단 말이야?”
“네. 정말이지, 그 순간에 무티히씨를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레이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웃었다. 어젯밤 무티히까지 합세해서 늦게까지 즐겁게 시간을 보냈었다. 그런 자유롭고 어딘가 풀어진 듯한 분위기를 처음 즐겨봤던 레이에게는 지금 생각하면 그저 신기한 순간이었다.
“거기 할매가 조금 유명하기는 하지.”
“교수님도 아십니까?”
볼보트는 레이의 물음에 무슨 그런 당연한 걸 묻느냐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내가 옛날에는 많이 갔었어. 지금이야, 그렇게 놀기에는 체력이 딸려서 못 가는 것이지만 말일세.”
멋쩍은 표정으로 볼보트는 웃어보였다.
저녁에 있을 상인 모임과 무티히와의 만남 전에 레이는 오랜만에 볼보트 교수를 만나러 그의 연구실을 찾아왔다. 다행히 오전 수업만 있어 편하게 한가한 시간을 둘은 즐기고 있었다.
“호든은 북쪽으로 이번에 간다고 그러던데, 자네도 참여하는가?”
“음? 교수님, 호든 형과도 계속 연락 주고 받고 계셨습니까?”
“당연하지. 참 바르고 성실해서 마음에 드는 친구야.”
볼보트의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지어졌고 레이는 생각 외로 길게 이어지는 두 사람의 인연에 솔직히 조금 놀라웠다. 외무부로 옮긴 이후로 더 바빠져서 보기 힘든 호든 형이었는데. 어째 교수님이 자신보다 더 소식에 밝은 것 같았다.
“제가 가는 건 아니고 사절단에 한명 대표로 신청해두었습니다.”
“그래? 윈드인 영지 가보면 좋을텐데. 거기는 여기 남쪽과는 영 달라서 그 보는 재미가 있을건데 말일세.”
“저도 그래서 아쉽지만, 아무래도 이제 자리 잡아야 하는 사업을 두고 멀리 가기는 그래서요. 수도 가는 것도 사실 지금 조금 무리하는 것이거든요.”
“하긴.”
고개를 끄덕이며 볼보트는 레이를 바라봤다. 아쉽다고 하면서도 그닥 아쉬워보이지 않았다. 아마 언제고 갈 생각을 해서 그러리라.
“아킬란 교수는 잘 지내는 것 같던가? 괜히 내가 걱정이더구나. 수도에서 거의 살던 사람이라, 적응 못 할까봐 조금 염려되었거든.”
“아-”
레이는 아킬란의 근황을 묻는 질문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조금 나와버렸다. 울빛 수료식이 있던 날. 슈멜츠, 아킬란과 함께 뒷풀이를 즐겼던 레이는 학생들이 선물한 양피지를 꼭 품에 안은 채 놓지를 않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배지를 늘, 매일 매일 빳빳한 카라 깃에 달고 다니는 것을 울빛에 있는 이들이라면 다 볼 수 있었다.
“정말 잘 지내십니다. 제가 보기에는 점점 더 열정적으로 변하시는 것 같았어요.”
“그래? 그거 다행이구나. 사실 아킬란 교수가 재능이 뛰어난 사람인데, 그 때를 놓쳤다고 해야 하나.”
“가르치는 재능 말씀이시죠?”
레이 역시 느끼고 있던 것을 물었고 볼보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렇지! 그것도 쉽게 가르치는 재능을 타고 났어. 사실 학문적 지식을 쌓는 쪽에는 노력을 하는 것에 비해 성과를 많이 못 얻는 편이어서 유명한 학교의 교수 자리는 솔직히 조금 어려워보이지만. 적어도 무언가를 쉽게 가르치는 것에 있어서는 정말 뛰어나더구나. 나도 옛날에 헬한테 글자 가르쳐주는 것 보고 놀랐었지. 암.”
그는 예전 알트 찻집에서 아킬란과 같이 차를 마실 때 헬에게 잠깐 글을 가르치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어찌나 쉽고 재밌게 가르치던지. 솔직히 말하면 그 때 그는 아킬란에게 처음으로 감탄했었다.
“그런 것 같아요. 사실 슈멜츠 형도 처음에 아킬란 교수님이 가지고 계신 지식에 비해 학생들 수준이 많이 떨어져서 교수님과 학생들 모두 지치지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막상 아킬란 교수님이 수준에 맞는 수업을 잘 해주셔서 정말 다행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그럼. 괜히 수도에서 유명한 과외 선생이었던 게 아니야.”
괜히 자신이 소개해준 이가 잘 하고 있다는 말이 자신의 칭찬 같아 볼보트의 입꼬리는 올라갔고 어깨도 쫙 펴졌다. 레이는 그런 볼보트를 보며 슬그머니 미소를 그렸다가 지웠다. 은근히 나이가 있는 편임에도 볼보트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함에 있어서는 솔직한 사람이었다.
“수도에 가면 스승님을 뵈러 갈 건가?”
“하믈로스 교수님이요?”
“그래.”
“당연히 가야죠.”
레이는 하믈로스 교수를 떠올렸다. 자신 대신에 조금 더 넒은 세상을 보고 그 안에서 느낀 것들을 담아서 전해달라고 했던 노인. 칼펜 왕립 학교의 교수인 하믈로스의 부탁을 레이는 꼭 들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 첫 결과로 우선 크론영지의 빈민가에 대해서 조사해 담았다.
“얼른 뵙고 싶습니다.”
“그래? 스승님이 그 말 들으면 좋아하실 것 같구나.”
자신이 정리한 자료를 얼른 전해주고 싶은 레이였다. 볼보트는 나직하게 웃으며 답했고 곧 차를 한모금 마셨다. 그 모습을 따라 레이도 내려두었던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어딘가 단 것 같으면서도 은은하게 우러나는 쌉싸름한 맛이 일품인 차였다. 과하지 않고 모두 적당한 것이 딱 레이의 취향이었다. 레이는 다시 찻잔을 내려놓으며 볼보트에게 물었다.
“슈멜츠 형이 부탁한 것은 그러면 들어주시는 거죠?”
레이가 오늘 볼보트를 만나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떠나기 전 슈멜츠가 부탁했던 일. 그 일을 완수해야 했다.
볼보트는 레이의 물음에 가만히 있다가 곧 피식 웃고선 답했다.
“내가 설마 안 할까?”
“아. 하하하, 그렇네요. 교수님이시라면 꼭 하실 것 같습니다.”
“그렇지. 그런 당연한 것 굳이 더 묻지 말어.”
툭툭 내뱉는 볼보트를 향해 레이는 고마움을 담아 씨익 웃어보였다. 볼보트는 그 모습을 보며 따라 웃더니 진지한 표정으로 나직하게 답했다.
“올 여름에 안 그래도 다시 크론 영지에 가보려고 했네. 내 눈으로 직접 울빛과 달꿈을 확인하고 싶었거든. 그리고 아킬란과도 그의 논문과 관련해서 이야기 할 것들이 많고. 그러니 그 때 겸사겸사 강의도 몇번하면 좋지.”
올 여름 울빛을 방문해 강의를 몇 번 해달라는 슈멜츠의 요청을 볼보트는 흔쾌히 수락했다. 어차피 가는 김이라서 하는 것도 있었지만 슈멜츠가 내건 강의 주제가 마음에 들기도 했다. 아마 이 주제를 레이도 같이 만들었다지? 볼보트는 흐뭇한 눈빛으로 레이를 보며 이어 말했다.
“‘더 넓은 세상을 보자.’ 그 주제는 나한테 딱이지 않은가? 전 대륙을 모험했던 내가 해야지.”
고개를 끄덕이며 연신 자신이 딱이라고 볼보트는 중얼거렸고 레이는 작게 웃었다. 분명 바쁘게 학기 중을 보내고 쉬고 싶을 것임에도 부탁을 들어주어 그저 고마웠다. 한 번 더 감사의 말을 전하려던 레이는 곧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이 손바닥을 마주 치며 말을 꺼내는 볼보트에 의해 입을 다물어야 했다.
“아, 레이!”
“네. 교수님.”
볼보트는 어딘가 얼굴에 장난기를 담고서는 손가락으로 아래를 가리켰다. 그 행동에 레이는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이동했고 아래에 있는 것을 보고 의문을 얼굴에 담았다.
“어때?”
“네?”
“어떻더냐, 이 말일세.”
밑도 끝도 없는 물음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가만히 있던 레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맛있죠?”
“그래?”
“네. 제 입맛에 딱 맞습니다.”
“그렇군.”
고개를 끄덕이며 볼보트는 연신 그렇군이라며 중얼거렸고 레이의 얼굴에 의문이 가득해졌다. 그러다가 순간 문득 드는 생각에 레이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고 그 표정에 볼보트는 씨익 웃더니 말했다.
“헬이 좋아하겠군.”
“이거, 헬씨가 만든 건가요?”
“그럼. 자네 수도 올라오면 알려주려고 하던건데, 내가 맛있어서 조금 얻어온 것이라네. 아마 알트 찻집가면 놀랄거야. 자네 오면 보여줄거라고, 아니, 시음하게 할거라고 3개 정도 차를 새로이 만들었다고 하더구만.”
“와- 그럼 이게 조청을 넣어서-”
레이는 새삼 테이블 위에 있던 찻잔을 들어 바라보았다. 달기는 했지만 조청 특유의 고소하면서도 어딘가 진한 맛이 사라져 있었다. 그렇기에 레이는 꿈에도 짐작하지 못했다.
이거, 기대하라더니, 정말 기대 이상일 것 같은데?
볼보트의 말에 따르면 2개는 더 남아있다는 뜻이니, 레이는 기대가 더 커지는 것을 느꼈다.
“아, 이거 자네가 마신 건 헬에게 비밀이라네. 내가 나만 마시고 누구도 맛 보지 못하게 하는 조건으로 가져왔거든. 사실 이거 가져올 때도 어쩌다가 하믈로스 교수님과 같이 있다가 맛 본 거라네. 어찌나 기밀이라고 나도 못 맛 보게 하려고 하던지. 어휴.”
볼보트는 그 때를 떠올리며 고개를 가로저었지만 레이는 속으로 헬에게 잘했다는 칭찬을 건넸다. 기밀을 유지하며 3 종류의 새로운 차를 준비했다는 것이 레이는 기뻤다. 확실히 시간이 지난 만큼 알트 찻집도 헬도 뭔가 변해있으리라는 기대는 했지만.
“얼른 수도에 가 봐야 겠는데요?”
“그래. 얼른 가봐. 아마 다른 두 개까지 마시면 반 할 걸? 나도 하나 밖에 못 마셔봤으니까. 보니까 조청에다가 다른 재료까지 더해서 끓이더라고. 으음,”
말을 하다 말고 볼보트는 갑자기 입을 닫더니, 머리를 긁적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만 말해야 겠네. 이거 더 말하다간 나중에 헬이 알면 혼날 거 같아.”
“하하하, 네. 교수님, 나머지는 제가 가서 직접 겪어보겠습니다.”
“그래, 그래. 그리고 얼른 팔게 만들어줘. 얼른 다 맛 보고 싶으니까.”
레이는 볼보트의 말에 따로 답하지 않은 채 그저 씨익 웃어보였다. 조청과 다른 재료들을 활용한 새로운 차의 탄생. 역시 조청 연구가로서 헬 알트를 선택한 것은 잘한 일이다 싶었다. 레이는 연구실 안 마법 시계를 보며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것을 확인하고는 조금 더 편하게 자세를 잡으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왠지 아까 전보다 더 향도 맛도 좋은 것 같았다.
책들로 가득 찬 연구실의 한가한 오후 봄 햇살을 마음껏 쬐며 레이는 분위기를 음미했다. 저녁에 있을 만남으로 긴장했던 마음이 한결 풀어지는 것을 느끼며 레이는 달면서도 쌉싸름한 그 맛에 빠져들어갔다.
*
“정신없죠?”
무티히의 작은 목소리에 레이는 그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네, 네? 뭐라고?”
정신없이 앉아있느라 무슨 말을 했는지 제대로 듣지 못한 레이는 자신의 물음에 무티히가 난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젓자 그도 난감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그! 넌 어제 저 꼬맹이를 봤다고 하더만?”
“이 놈의 할배가! 아그가 뭐야, 아그가! 내 이름은 아그폴티스야! 그리고 어제 안 봤어! 첸 놈이 봤지, 바빠 죽겠는데, 이런 꼬맹이 볼 시간이 어딨어?”
어느새 꼬맹이가 되어버린 레이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앉아있었다. 도저히 끼어들 틈이 없는 것도 없는 것이었지만. 상인 모임 대표인 다섯명의 노인들은 정말이지 말들이 다 엄청났다.
레이가 첫날 갔던 아그폴티스 식당의 주인인 아그폴티스는 역시 욕쟁이 할매가 맞았고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칼립스 역시 쌍벽을 이루는 욕쟁이 할배였다.
“크흠, 레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이여.”
듣는 이로 하여금 부끄러워지게 만드는 극적인 어조를 사용하는 케인스시 가장 큰 잡화점을 운영하는 노인, 크시우프는 신사적인 미소를 띄우며 레이를 향해 물었다.
“네, 네. 어르신.”
“으음~ 어르신이라니, 난 아직 초여름의 푸른 나뭇잎들과 같이 아직 푸르르다네.”
“귀신 시나락 까먹는 소리 처하고 자빠졌네.”
크시우프의 시적인 말에 욕쟁이 할배 칼립스가 투덜거렸지만 크시우프는 이를 무시한 채 계속 레이를 향해 물었다.
“자네가 사는 남쪽의 끝. 오! 참 낭만스럽군.”
“아, 감사합니다. 좋은 곳입니다.”
“그래, 그래. 하지만 좋은 곳인지 아닌지는 내가 알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다네. 자, 내 질문에 답을 하게, 소년이여.”
레이는 진중한 표정의 크시우프를 보며 뭔가 시험이 시작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진지한 표정으로 그와 얼굴을 마주했다. 천천히 열리는 멋진 노신사의 입에 레이는 집중했다.
“크론의 레이디들은 아름다운가?”
순간 레이는 할말을 잃었다.
그리고 케인스시 욕쟁이 쌍벽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 미친 바람둥이 놈 같으니라고. 쯧쯧.”
“지 주제 파악을 못해! 다 늙은 놈이 징그럽게!”
크시우프는 레이가 아무 답이 없자, ‘그래, 크론은 아닌가보구만. 내 이해하도록 하지.’라고 중얼거리더니 자신의 두 동료를 향해 슬픈 표정을 지은 채 말했다.
“오, 우리 전우들이여, 왜 그렇게 나에게 화살을 날리려고 하는가? 내 이 뜨거운 마음을 모르겠는가?”
그리고 욕쟁이 할매 아그폴티스는 외쳤다.
“말도 안되는 소리 또 처하고 있네!”
레이는 세 노인을 외면했다. 그러자 남은 두 대표가 보였다. 단아한 모습으로 조용히 차를 마시는 수선집 주인 나타샤, 미디엄시의 데커만큼의 덩치를 자랑하는 하크만이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세 노인들의 대화가 들리지 않는다는 듯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
정신없을 수도 있다고 이해바란다는 무티히의 말이 절실하게 이해되는 레이였다. 개성 강한 노인들이라던 볼보트 교수의 평 또한 정확했다.
“크흑, 아그폴티스. 난 당신의 그 청순했던, 백합과 같던 그 순간을 아직까지도 기억한다네. 어쩌다가 당신이-”
“아, 진짜 못 들어 처먹겠네.”
“푸하하하하, 청순은 무슨, 나는 무슨 쇠라도 씹어먹을 것 같아보이더만!”
레이는 언제 본론으로 들어갈까 싶었지만, 그냥 마음을 비웠다. 멍하니 테이블 위를 바라보고 있던 레이는 곧 들려오는 작은 소리에 테이블 위가 조용해지는 놀라움을 겪었다.
탁.
순식간에 조용해진 분위기에 레이는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고 그러자 단아한 모습의 할머니, 나타샤가 찻잔을 테이블 위에 둔 채로 가만히 세 노인들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입이 천천히 열렸고 단아하면서도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까지 주둥이를 열며 말을 처 할건가요?”
순간 레이는 그녀를 외면했다. 조곤조곤한 목소리와 단아한 옷차림과 달리 나타샤의 눈빛과 표정은 마치 야차같았다. 입을 조용히 다문 세 노인의 심정이 이해되는 레이였다. 박력부터가 앞선 욕쟁이 두 노인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 때 나타샤처럼 조용히 있던 큰 덩치의 노인 하크만이 허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 자. 다들 진정하고 우리 같이 이야기를 해보는 게 어떻겠는가? 귀한 손님도 왔는데 이런 모습을 보일 수는 없지 않는가?”
가장 정상적이면서도 푸근한 옆집 할아버지 같은 모습에 레이의 입가에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하크만의 말에도 칼립스는 투덜거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귀한 손님은 무슨, 촌구석에서 온 꼬맹이한테-”
그리고 그 순간.
쾅!
엄청나게 큰소리에 레이는 몸을 움찔거렸다. 그는 놀란 눈으로 하크만을 바라보았다. 건장한 덩치의 노인은 테이블 위를 내리쳤던 자신의 주먹을 다시 들며 허허 웃었다.
“허허, 칼립스. 이제 그만 레이의 이야기를 들어보았으면 좋겠구만.”
“그, 그러든가 마, 말든가!”
과거 젊은 시절, 케인스시 최고의 철주먹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하크만은 욕쟁이 할배 칼립스가 조금 더듬었지만 여전히 불퉁거리며 투덜거려도 허허 웃어넘겼다.
레이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는 슬그머니 옆으로 시선을 돌렸고 그러자 색다른 모습의 무티히가 보였다.
“아, 할배, 할매들. 다들 그만 하고 그냥 좀! 가만히 있어요, 가만히!”
정말 짜증난다는 듯이 인상을 찡그리며 무티히는 다섯 노인들을 향해 말했다. 하지만 다섯 노인들은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허허, 우리 무티히가 귀한 손님 왔다고 평소보다는 얌전하구나.”
“흐음, 우리 겨울의 매서움과 닮아있던 무티히가 봄의 부드러움을 닮아가고 있구나! 오, 놀라워!”
“가시나, 지 손님 왔다고 챙기기는! 쯧!”
하크만, 크시우프, 칼립스 순으로 들려오는 말에 레이는 무티히에게서마저 고개를 돌렸다. 이거 다들 장난이 아니구나. 문득 레이는 오늘 무사히 이야기들을 다 나누고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레이군.”
“아, 네, 네!”
나타샤의 조곤조곤한 목소리에 레이는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답했다. 그에 그녀는 단아한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말했다.
“이음새 협회에 대해서 무티히양에게 듣기는 했는데,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얘기 해 줄 수 있겠나요?”
“아, 그럼요!”
레이는 씩씩하게 답했고 그에 나타샤는 웃어보였다. 레이는 테이블 위의 다른 대표들도 조용히 들을 준비를 하는 것을 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케인스시에서 상인 모임 사람들을 만나면 말하고 싶었던 이음새 협회에 대한 탄생 배경과 그 과정 그리고 현재 상황에 대한 것들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레이는 말했다. 그는 조언을 듣고 싶었고 된다면 케인스시 상인모임과 이음새 협회 간에 어떠한 인연의 끈을 이어지게 하고 싶었다.
무티히와 다섯 노인들은 레이의 말에 집중했고 전에 떠들던 그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그리고 레이의 말이 다 끝났을 때 쯤. 테이블 위는 잠시 동안 조용해졌다. 긴장된 마음으로 레이는 그들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 반응이 나왔다.
“무슨 어디 꿈 속 세상에서 살다 왔나, 소꼽놀이하고 처 자빠졌구만.”
욕쟁이 할매 아그폴티스의 목소리가 테이블 위에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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