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hine Normally RAW novel - Chapter 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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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우리의 빛 – 8. 자리
노인은 낯설은 광경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것을 뭐라고 하면 좋을까. 익숙하던 공간이 뭔가 익숙하게 느껴지지 않는 순간이 있지 않은가? 지금이 딱 그 짝이었다.
“허이구, 이런 모습을 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구만.”
괜히 혼자 앉아있어도 되나 싶었다. 평소라면 그런 것들에 신경쓰지 않고, 혼자 편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어서 좋았는데.
“형님. 여기 나왔습니다.”
“… 이건 변하지 않았구만.”
노인은 맥스가 다가와 내미는 차를 받아들며 작게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의아한 표정의 맥스를 뒤로한 채 노인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귀를 기울였다.
“맥스 차 2잔이죠? 그러면 알트 차까지 하나 더 해서 세잔으로 하겠습니다.”
“손님, 주문 도와드릴까요? 아, 설명 말씀이죠? 네, 위에서부터 하나씩 말씀드리겠습니다.”
“덧돈은 금액과 상관없이 나눠주시는 마음 그 자체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주문하신 차는 지금 조금 주문이 밀려서 15분 정도 기다리셔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아, 네! 당연하죠. 주문이 밀렸다고 해서 대충하지 않습니다.”
평소에 두명뿐이던 점원이 오늘은 2명이나 더 늘어 홀 안을 바삐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테이블마다 사람들로 꽉 차 있었고 심지어 자리가 없어 돌아가는 이들도 있었다. 노인은 이를 보며 마음이 이상했다.
듣기로는 주방에도 지금은 잠깐 인력을 늘려 딘이라는 수습 놈하고 다른 이가 와서 돕는다고 하던데. 그는 눈 앞의 맥스를 향해 말했다.
“자네, 빨리 안 가도 되는가? 바빠 보이는데.”
그 말에 알트 찻집의 주인인 맥스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그려졌다. 그건 기쁨과 씁쓸함이 함께 담긴 미소였다.
“전 그렇게 바쁘지 않습니다.”
그는 눈 앞의 노인의 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형님처럼 제 차를 찾아주는 사람들은 별로 없거든요.”
“… 자네나 나나 비슷한 처지구만.”
노인은 자신이 몇십동안 마셔왔던 차에서 풍겨져나오는 쓴 향을 한껏 들이마셨다.
나이가 들어가는 자신처럼.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알트 찻집은 자신처럼 찾는 이들이 많이 줄어들어가고 있었다. 마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뒤처지듯하는 그 모양새가 자신과 닮은 것 같아 그는 이 찻집으로 자꾸 발걸음을 하게 되었다.
그것도 이제는 힘들 것 같지만.
작년 여름부터 살아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제법 지금의 보통 찻집들처럼 돌아가는 모양새가 노인의 눈에 꽤 신기하게 보였다. 한편으로는 씁쓸했지만.
“그래도 좋습니다.”
노인은 앞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맥스를 바라봤다. 그러자 홀 안을 둘러보며 미소 짓는 맥스가 보였다. 무뚝뚝한 얼굴이 꽤 많이 부드러워졌다고 노인은 생각했다.
“잊혀지는 게 아닐까 걱정했었습니다. 저야 뭐, 나이가 찰만큼 찼으니 상관없지만. 잊혀지고 잊혀지다가 결국 사라져서-”
맥스의 코에 닿는 찻집 안의 향은 예전과 달랐지만.
그 풍경만큼은 옛날을 닮아가고 있었다.
아니, 닮아가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형님처럼 이 차를 찾는 몇명의 사람들에게 내어줄 자리가 없어질까, 내어줄 차가 없어질까 걱정했습니다. 그리고-”
잘 보이지 않는 주방으로 맥스의 시선이 닿았다.
“이제 시작하는 제 손녀마저 잊혀질까 겁났었죠.”
“… 평소의 자네 답지 않은 말을 하는 구만.”
노인의 말에 맥스는 작게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찻집이 예전의 풍경을 떠올리게 해서 그런가 몰라도 제 마음도 예전처럼 어려지나 봅니다.”
“어려지는 게 아니라 나이가 들어가는 것이겠지.”
맥스와 노인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각자의 시선으로 홀 안을 바라봤다.
노인은 자신의 품 속에 들어간 쓴 향과 달리 찻집 안에 조금씩 흘러나오는 단 향을 조금 들이마셔봤다. 그는 눈 앞의 풍경을 보면서도 그 풍경이 흐려지며 어딘가 다른 풍경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맥스의 말대로 예전의 풍경이 조금씩 보였다.
“그래- 내가 여기 밖에 올 데가 없지.”
“네?”
“아, 아닐세.”
작은 혼잣말에 고개를 돌리는 맥스를 향해 노인은 손을 휘휘 저어보였다. 그는 찻집 안을 채우는 단 향들 사이에서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쓴 향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차를 마시며 생각했다.
그래, 내 추억 하나 즐길 자리마저 사라지면 어떡하겠나. 여기는 잊혀지면 안되지. 내가 여기서 만들고 간 기억들이 얼마나 많은데.
“맥스.”
“네. 형님.”
“헬이 찻집을 이어받아서 계속 하겠지?”
“그렇죠.”
맥스는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헛기침을 하며 노인을 향해 말했다.
“크흠, 큼. 형님, 그, 거 보면 모르겠습니까?”
“뭐?”
“헬이 새로 만든 차 말입니다. 그게 다 말해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
그렇지. 그게 있었지.
노인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의 귓가로 들려오고 있었다.
“헬 차 두 잔에 맥스 차 한잔이죠?”
“그럼요, 가장 중간 맛이라고 할 수 있는 게 알트 찻집입니다. 쓴 맛과 단 맛의 조화를 이루는! 그게 알트 차의 묘미죠. 아? 이 가게 이름이랑요? 네. 연관되어 있습니다. 차를 만드신 분이 이 알트 찻집의 후계자시거든요.”
“오래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나름이 멋이있죠? 하하, 처음 방문하게 된 손님들이 오시면 그런 말씀을 가장 많이 하세요. 그래서 조금 뿌듯할 때도 있어요.”
귓가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다들 자신보다 젊은 이들의 목소리였다. 자신이 이 찻집을 처음 찾았을 때 아마 저런 생기있는 목소리를 냈었겠지. 지금은 그럴 힘이 없지만.
시끌벅적한 축제에서 조용한 곳을 찾아 이곳으로 왔던 노인은 묘하게 지금 여러 소리들로 가득찬 이곳의 이 순간이 시끄럽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알트 찻집은 계속 꾸준히 이 자리에 남아있었으면 좋겠구만.”
아주 오래도록.
그러면 자신의 추억도, 이 곳에서 보내온 시간들도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때 맥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당연히 그럴 겁니다. 그러려고 버텨온 것 아닙니까.”
“그렇지.”
맥스와 노인은 입가에 작게 미소를 그렸다.
“사장님!”
“왜?”
수잔은 맥스와 함께 있는 손님인 듯한 노인을 살짝 보고는 난감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손님을 신경 쓴 작은 목소리였다.
“저 주문이 들어왔는데. 헬이 이 차는 사장님이 잘 만드신다고 하셔서요. 쓴 차 거든요.”
그 말에 노인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맥스를 향해 말했다.
“얼른 가보게. 나와 같은 이가 있나보네.”
“네. 그럼 형님, 가보겠습니다.”
맥스는 인사를 건네곤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등을 보이며 주방으로 향하는 맥스와 종업원을 노인은 지켜보았다. 그 때 종업원이 맥스에게 건네는 말이 들려왔다.
“그, 젊은 남자분이신데요. 원래 쓴 맛보다는 조금 덜 쓰게 해줄 수 있냐고 부탁하시더라구요. 단 맛은 싫어서 주문하는데, 쓴 맛이 나는 차를 제대로 마셔본 적이 없다구요.”
노인은 그 말을 듣고선 가만히 자신의 차를 내려다보았다. 맥스와 종업원은 이미 멀리 걸어가 더이상 그들이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자리는 대신 축제와 여유를 즐기는 많은 이들의 목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젊은 남자라-
이 차를 찾는 이가 젊은이라는 말이 묘하게 노인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었다. 남자는 차를 다시 들이마셨다. 오랫동안 즐겨 온 쓴 향이 입 안을 맴돌았고 그 속에 다시 익숙함을 느꼈다.
평소와 다른 모습에 낯설음을 느꼈던 노인은 다시 그 모습에서 익숙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축제의 열기로 가득 찬 찻집 안을 보며 조용히 읊조렸다.
“축제라- 좋구만.”
노인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그려졌다.
축제의 한가운데. 그 곳에 올해는 알트 찻집도 함께 하고 있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버텨오던 그 자리에서 찻집은 오는 이들 누구에게나 자리를 내어주고 있었다.
*
축제의 다섯번째 날. 아직 이틀을 남겨두었지만 어느 새 중반을 훌쩍 넘은 다섯번째 날은 어느 새 해가 지고 밤이 되어 판매장 문 닫을 시간을 코 앞으로 남겨두고 있었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크론은 다른 곳들보다 일찍 문을 열고 늦게 닫았기에 여전히 빛을 뿜어내고 있었지만.
슬슬 폐장 시간이 되기는 했다.
“호오- 이 화이트데이라는 것 정말 제 취향이군요. 마음에 드는데?”
“역시 손님이 보실 줄 아시는군요. 크론 영지의 최고 자기 제작소에서 맡긴 것으로 저기에 전시되어진 자기 장인이 운영하는 제작소에서 만든 용기를 사용했고 중품 조청 중에서도 심혈을 기울여 만든 조청으로 내용물을 채워넣었습니다.”
레이는 워릭의 목소리를 들으며 잭을 슬쩍 바라보았다.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한쪽 벽에 바짝 붙어 어색한 미소를 입가에 매달고 있는 것이.
평소라면 얘기해두었던 대로 마칠 때 쯤 잠깐 왔다가 확인만 하고 돌아가는 그가-
‘크흠, 놔두고 간 게 있는 것 같군.’
갑자기 돌연 다시 판매장 안으로 뛰어들어와 벽에 서서 멀뚱히 서있는 것이.
티를 확 내고 있었다.
레이의 입가에 장난기가 담긴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흐음, 밥! 이건 어떤가? 하나 살까? 저기, 종업원. 1번 있습니까?”
“크흠, 밥이라니-”
갈색의 더벅머리로 모자를 푹 눌러쓴 두 남자.
레이는 밥이라고 불리게 된 남자를 보며 혼자서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다가 고개를 훽 돌린 남자와 눈이 마주쳤고. 레이는 아무렇지 않게 모른 척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자신을 바라보던 그 원망스러워하는 눈빛을 레이는 확실히 보았다.
그래서 더 우스웠다.
“아, 1번은 이번에 판매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워릭은 남자의 말에 난감하다는 듯이 볼을 긁적였다. 그런 그의 어깨를 누군가의 손이 살짝 잡았고 고개를 돌린 워릭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 답은 제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손님.”
레이는 눈 앞의 손님을 향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1번을 비롯한 몇몇의 특별한 숫자들은 지금 판매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손님도 하시다시피 1이라는 단 하나라는 숫자는 굉장히 특별하지 않습니까? 그 의미부터 해서요.”
남자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레이는 그 미소를 보며 말을 이었다.
“1. 유일한 그리고 최고라는- 그런 의미가 담겨져 있으니, 쉬이 판매할 수가 없어서요.”
레이는 남자의 어깨 너머로 벽에 바짝 붙어있는 잭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자신에게 뭔가 신호를 보내는 듯 해보였으나. 어쩌겠는가. 신호를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레이였다.
“그렇군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갈색의 더벅머리에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는 레이와 눈을 마주하며 싱긋 웃어보였다.
“내가 사야 되겠군. 1이니까.”
“그러길 바랍니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여보이더니 달꿈의 다른 제품들을 사지 않고 판매장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런 남자의 뒤를 또 다른 일행이 따랐다. 그는 손 가득 프릴링의 제품이 포장되어 들려져 있었다.
레이는 남자와 일행 둘 다에게 깊숙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남자는 피식 웃고선 판매장 밖으로 나갔고 뒤 따르던 일행은 앞선 남자 몰래 레이에게 엄지 손가락을 척 올려 보이곤 뒤 따라 판매장 밖으로 사라졌다.
“레이!”
“하하하-”
잭이 황급히 자신을 부르며 다가오는 것을 보며 레이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뭐라고 말을 꺼내려고 하면서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는 잭을 충분히 이해했다.
아마 여기서 잭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자신 뿐이리라. 아니, 호든 형이나 쿠온 형이 있다면 알았으리라. 하지만 그들이 다 오늘은 담당이 아닌 걸 어떡하겠는가. 그리고 저렇게 꽁꽁 숨켜서 눈 빼면 알아볼 수 없게 했는데. 누가 알겠나. 알아차린 잭이 대단하다고 레이는 생각했다.
“괜찮습니다. 보좌관님.”
“허어-”
레이는 나직히 탄식을 내뱉는 잭을 향해 장난기 담긴 미소를 지어보였다.
“몰래 나온 것 아닙니까. 그렇다면 모른 척 하는 게 답이잖습니까.”
“그건 그렇지. 그렇지.”
잭은 레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판매장 입구를 멍하니 바라봤다.
작년처럼 손 안 가득 들려진 프릴링의 제품을 들고서 그는 걸음을 바삐 옮겼다. 어째 작년이랑 변한 게 하나도 없나 싶은 펠이었다. 간신히 걸음을 빨리해 바로 뒤에 서게 된 그의 귓가로 앞선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축제는 재밌어. 그렇지 않은가. 밥?”
“하아- 그 밥이라는 이름 말고 다른 이름은 안되겠습니까?”
펠은 자신을 보며 짖궂은 표정을 짓는 왕세자 로다온을 보며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하지만 로다온은 그럴수록 더 즐거운 듯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남겨진 보좌관 펠은 다시 그 걸음을 따랐다.
“올해는 작년보다는 그래도 조금 더 태가 나네.”
축제라는 사실이.
로다온은 다섯번째의 날을 마무리하는 특산품 시장을 벗어나며 미소를 그렸다. 올해 명예의 영지는 어디로 할 것인가. 그것을 알아본다는 변명으로 나왔던 그는 아직 시들지 않은 축제의 여운을 맘껏 들이마시며 자신의 본래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작년보다 조금 더 늦게까지 불을 밝히는 특산품 시장 곳곳의 불빛들이 돌아가는 그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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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오랜만에 비 그친 밤입니다.
그게 또 좋네요. 🙂
댓글, 추천 감사합니다.
쿠폰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빛나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