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hine Normally RAW novel - Chapter 32
0032 ==============================================
1부 금빛 희망 – 4. 열정
“후우-”
빌리의 집이 눈에 들어오자 레이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레이에게 있어 빌리의 위치는 애매했다. 가족과 친구는 달랐다. 태성으로서의 레이에게 있어서 가족은 할머니가 계셨지만 늘 충족되지 못한, 남들과는 다른, 늘 갈망하고 무의식적으로 꿈꾸게 되는 존재였고 삶이 힘들어질 때마다 가족이 있었다면 이렇게 내가 힘들게 살았을까 하는 생각을 매번 하게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태성과 레이가 동기화가 되었을 때, 단 하나 기쁜 것이 할머니가 계시지만, 새로운 많은 수의 가족이 생겼다는 사실이었고 비록 완전한 아들도 형도 오빠도 아니지만 어찌되었든 그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들어갈 수 있음이 기뻤다. 그렇기에 먼저 마음이 나서서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빌리는 달랐다. 28살인 자신이 14살짜리 남자애한테 사과를 하고 친구로서 지내야 한다는 것이 영 찝찝했다. 차라리 호든과 친구를 맺는 것이 더 속 편할 것 같았다. 그렇지만,
‘사과는 해야해.’
인물 도감을 보고 빌리의 상황을 알게 된 레이는 자신이 빌리에게 큰 상처를 주었음을 알았다. 주변 사람을 잃는다는 것. 그것도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 빌리에게 끔찍한 일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레이이기보다는 태성이기에 더 잘 알 수 있었다.
믿고 의지하던 가족을 잃는다는 것. 그 사실이 가지는 무게를 태성은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깨달았다. 삶의 커다란 한 조각을 잃은 것과 같은 상실감과 마음이 찢겨져 나가는 듯한 아픔, 수없이 부정하게 되는 절망감.
빌리와 태성은 닮아 있었다. 아픔이 닮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레이는 빌리를 외면할 수 없었다.
“빌리! 안에 있어? 나 레이야! 빌리, 안에 있어? 빌리!”
레이는 문을 두드리며 빌리를 불렀다. 두 번, 세 번 불러도 아무런 대답이 들려오지 않자, 빌리가 집에 없나하고 생각이 들었지만, 기분이 우울할 때면 집에 박혀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읽었던 레이는 한 번 더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집 안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고 곧 문이 열렸다.
“오빠,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문이 열리자, 보인 것은 코티였다.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네트에게 들은 적이 있어 인물 도감에 나타났던 네트의 친한 친구이자 빌리의 동생이었다. 레이는 처음 대하는 얼굴에 약간의 어색함을 느꼈는데, 코티 역시 다른 의미로 어색함을 느끼고 있었다.
코티는 어제 빌리 오빠가 집에 들어오고 난 이후로, 말도 없이 방에만 박혀서 나오지 않자, 의아한 마음과 함께 불안함 마음이 들었다. 물론 엄마가 왔을 때는 방에서 나와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엄마가 아침에 일하러 나간 후, 다시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상황에 불안하고 무서웠던 코티는 밖에도 나가지 않은 채 집에만 있었고 조용하기만 한 집에서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라 집 안을 이리저리 헤맸다. 그러다가 레이 오빠의 목소리가 들리고 빌리 오빠를 찾자, 코티는 오빠의 방으로 가서 불렀지만 답이 없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다가 결국 자신이 대신 레이 오빠를 맞이했다.
“안녕, 코티. 빌리 안에 있지?”
“네…”
코티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방으로 들어가는 레이 오빠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레이 오빠가 다시 나올 땐 혼자가 아닌 오빠도 같이 데리고 나오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코티는 간절히 바랐다. 몇 개월 전, 엄마는 일하러 나가고 오빠는 방에만 있고 자신 혼자 있어야 했던 그 시간이 코티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만큼이나 크나큰 아픔이었다.
레이는 노크도 없이 문을 열었고, 문을 열자마자 방 한구석에 벽을 본 채 웅크리고 누워있는 빌리를 발견할 수가 있었다. 안쓰러움과 짜증을 동시에 느끼며 레이는 빌리의 곁으로 다가가 앉았다.
“빌리, 자?”
빌리는 뒤에서 들려오는 레이의 목소리조차도 듣기 싫어 모르는 척 눈을 감고 그대로 있었다. 어제 그렇게 남처럼 대하더니 찾아올 건 또 뭐란 말인가. 빌리는 속으로 궁시렁 거리는 한편, 역시 레이 이 놈이 자신에게 올 줄 알았다며 안도와 함께 작은 기쁨을 느꼈다. 하지만, 작은 기쁨으로 풀리기에는 자신의 상처가 너무나 컸다. 그 상처는 빌리에게 레이에 대한 두려움을 만들어 주었다. 어제와 같은 그런 냉정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까. 레이의 행동과 반응 그 모든 것들에 빌리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은 더 이상 상처받기 싫고 울기도 싫었다. 상처 받고 울 바에는 안 보는 것이 나았다.
“미안해.”
빌리는 떠지려는 눈을 막으며, 더 힘을 줘 눈을 꾹 감았다.
레이는 미동도 없는 빌리의 등을 보며 마음이 가장 여린 친구라고 적어놓았던 인물 도감의 말을 기억하였고 자신의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이런 반응이 충분히 이해가 가고 미안했기에 다시 한 번 더 사과의 말을 건넸다.
“미안해. 내가 어제는 정신이 없어서 나쁜 말을 했어. 정말 미안해”
레이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진심을 담아 말했다. 하지만 빌리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빌리, 안 자는 거 다 알아. 모르는 척 하지 말고 일어나봐.”
빌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사과를 하는 레이의 행동에 살짝 마음이 풀어졌지만, 내가 그럴 이유는 없다고 말하던 레이의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았고 뻔히 자신의 힘듦과 아픔을 알면서 그렇게 행동한 레이에 대한 괘씸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사실은 괘씸함보다는 좀 더 투정을 부리고 싶었다. 나 이만큼 상처 받았다고. 내가 이렇게 상처 받을 걸 알면서 너는 그런 행동을 했냐고.
빌리는 레이에게 말하지 않음으로서 말을 하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을.
레이는 아무리 말을 걸어도 아무 반응이 없자, 안타까움은 줄어들고 슬슬 짜증이 났다. 원래의 레이였으면 이런 빌리를 어르고 달래 돌아보게 했겠지만 지금의 레이는 그렇지 않았다. 원래는 퀘스트 수행을 위해서 좋게 좋게 말하려고 했었다. 자신이 생각한 시나리오 대로 빌리가 원하는 레이의 모습으로 대하고 싶었지만, 그게 잘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같은 아픔을 지니고 있었기에 레이는 더 마음에 들지 않았고 더 계획대로 대할 수가 없었다. 자신도 사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일년 간은 기억이 없었다. 기억이 없다는 말이 기억상실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정신을 놓고 살았다는 말이다. 세상 모든 것이 밉고 마음의 큰 상실로 인해 더 상처 받을까봐 더 잃을 것이 없는데 얼마 남지 않은 그것마저 잃을까봐 그게 두려워서 세상의 모든 것에 날이 뾰족하게 서 있었다. 그래서 모든 것들에 예민해졌고 날카로운 잣대를 들이밀었으며, 자신을 웅크리게 했다.
하지만, 그래봤기에 알았다.
그런 행동이 나에게 남겨주는 것은 없다는 것을.
‘그리고 이 놈은 나랑 다르잖아. 적어도 자신이 지킬 가족이, 기댈 수 있는 가족이 있잖아.’
레이는 인물 도감에 레이가 코티에 대해 적었던 것을 떠올리며 아까 마주친 코티의 흔들리는 눈빛과 거실에서 안절부절 못하던 모습을 기억했다.
아픔을 함께 나눌 사람이 있는데 서로 아픔만 쌓여 상처가 곪아가는 것을 보기 싫었다.
같은 아픔을 지닌 사람으로서, 그리고 친구로서 말이다.
레이는 자신이 생각한 이성이 아닌, 마음이 시키는 대로 말했다. 그것이 설사 빌리에게 더 상처를 주는 것일지라도 멈출 수가 없었다.
“언제까지 조금 상처 받고 화나면, 그렇게 숨어들고 웅크리고 있을거야?”
미동이 없던 빌리의 몸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답답하고 짜증나고 안타깝고 온갖 감정이 휘몰아치는 이 마음을 레이는 빌리에게 말했다.
“내가 잘못 했다고 했잖아. 사람이 살다보면 말 실수 할 수도 있는 거고, 그리고 그게 상처가 되면 아물 수 있게 서로 풀어야지. 대화조차, 화해조차 거부한 채 네가 이러고 있으면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언제까지 어린 애처럼 굴거야.”
빌리는 더 이상 모르는 척 할 수가 없었다. 자기가 잘못해 놓고선 저런 말을 하다니. 빌리로서는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린 애처럼 굴다니. 누가 보면 자신이 어린애처럼 구는 줄 알 것이다. 자신은 매번 무너지고 싶고, 울고 싶고, 화를 내고 싶고, 정말 끔찍하고 힘든데, 엄마때문에 친구때문에 늘 억누르고 참았다. 자신이 그런 행동을 할 때면 그들이 상처 받은 표정을 지으니까, 그래서 빌리는 참고 참았었다. 울고 싶고 화 내고 싶은 것을.
“뭐? 거부? 화해? 넌 네가 한 말을 잊어 버렸냐? 어? 네가 알 바 없다며? 그래 놓고선 이렇게 와 가지고 미안하다고 갑자기 그러는데 그게 말이 돼? 장냔하냐? 어? 그리고, 어린 애처럼 굴지 말라고? 네가 뭘 안다고 지껄여? 네가, 내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 지 알아?”
빌리는 뿌옇게 흐려진 시선으로 레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내가! 매일 매일 무슨 생각으로 눈을 뜨고 무슨 생각으로 너희들 앞에서 웃긴 소리나 지껄이고 그러는 줄 알아? 미칠 것 같이 힘든데! 근데 뭐? 어린애처럼 굴지 말라고? 난! 수만번씩 어린애처럼 굴고 싶은데, 너네들이 내가 조금만 그래도 걱정하니까, 그래서 매일 되도 않는 웃긴 소리나 지껄이면서 그러는 거야! 네가 뭘 안다고 나보고, 나보고 그래? 어? 네가 뭘 안다고 그렇게 지껄이는 거야!”
터져나오는 감정을 견디지 못해 빌리는 레이를 향해 결국 고함치듯이 말하고 말았다.
처음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이렇게 고함을 질러보는 것은. 터질듯이 뛰는 심장 소리를 느끼며 빌리는 숨을 가다듬었다. 뿌옇던 시야는 점점 제 빛을 찾아갔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레이를 보았다.
“몰라. 난 몰라.”
빌리의 귀로 레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빌리는 아픔을 품은 듯한 레이의 눈을 보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곧 이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문 틈 사이로 코티의 얼굴이 보였다.
울고 있는 코티의 얼굴이 보였다.
“하지만, 코티는 알아.”
레이의 목소리가 들렸고,
“오빠….”
코티의 목소리가 들렸다.
빌리는 다시 흘러내리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소리 내어 울었다. 꾹꾹 참고 있던 둑이 터지는 것을 느꼈다. 빌리는 외쳤다. 어느 때보다 큰 목소리였지만 그 목소리는 아프게 떨리고 있었다.
“알아, 나도 알아. 빨리 정신 차려야 하는 거. 근데 그게 안돼. 무서워. 또 나한테 소중한 사람을 잃을까봐. 정말 미칠듯이 무서워. 집도 점점 돈이 없어져 가고, 엄마도 이제 잘 웃지도 않고, 다 무서워. 근데, 그런데 너까지 그러니까.. 정말 나는!”
“오빠…..”
자신에게 안기는 코티를 빌리는 마주 안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처음으로 빌리는 코티의 체온을 느낄 수 있었다. 빌리는 잠시 자신이 잊고 있던 것을 깨달았다. 자신과 같은 아픔을 지닌 사람이 이 세상에 두 사람이 더 있다는 것을. 그리고 또 하나 깨달았다. 자신보다 더 어리고 작은 사람이 그 두 사람 중 하나라는 것을. 자꾸만 엇나가는 코티를 빌리는 뭐라고 혼내기만 했었는데, 이렇게 안겨있는 코티는 정말 작았고 자신보다 더 아파보였다. 자신의 눈에는 동생의 마음이 미처 보이지 않았다.
“잃기 싫으면 지켜주면 돼.”
빌리는 레이를 바라보았다. 어제 이후로 처음 보는 레이의 미소였지만, 빌리의 눈에는 너무나도 아프게 다가왔다. 어째서 레이가 저런 미소를 짓는 것일까. 하지만, 다시 들려오는 레이의 목소리에 빌리는 이 생각을 마음 속 깊숙이 묻어 두었다.
“빌리, 소중한 사람을 네가 지키면 돼. 그러면 잃지 않을거야. 두려워서 웅크리지 말자. 웅크리고 있으면, 벽만 바라보고 있으면 알 수 없어. 네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그러니까, 우리 웅크리지 말고 지키는 거야, 우리의 소중한 사람을.”
빌리는 코티를 더욱 더 세게 껴안으며 레이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못한 채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뭐라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흘러나오는 눈물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
[퀘스트를 40% 진행하셨습니다.] [두번째 동료는 빌리 파밀리어 (열정 수치 95%) 입니다.]*
처음 들어보는 단어에 잘못 들은 줄 알고 반문하는 퍼시를 향해 호든은 다시 한 번 더 말했다.
“이건 ‘사탕수수 조청’이야.”
그리고 덧붙였다.
“내가 이 늦은 밤에 널 찾아온 이유이기도 하지.”
“그게 무슨,”
“아, 아니다. 네가 아니야.”
호든은 노스를 향해 말했다.
“아버님을 뵈러 왔습니다.”
노스는 자신을 보러 왔다는 호든의 말에 의아한 마음이 들어 바라보니,
“우선, 한 번 ‘시식’해 보시고 나면 말씀드릴게요.”
호든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어디 뜨거운 물 없나요?”
“허!”
노스는 뜨거운 물이 담긴 잔에 호든이 통에 담긴 액체를 타는 것을 보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였지만, 자신에게 호든이 해를 끼칠만한 것을 줄리 없다는 믿음이 있었고 우선적으로 통을 열자마자 나는 달달하고 고소한 향에 입맛을 다시게 되었다. 그래서 호든이 타준 차를 한 모금 마시는 순간,
그 맛에 노스는 놀라고 말았다. 세상에. 이런 식의 단맛은 처음 느껴보는 그였다. 과일 특유의 상큼하면서 달달한 맛이 아니라 깊은 단맛에 고소하기까지 한 그 맛이 굉장히 색다르고 자신의 입맛에 꼭 맞는 것이 정말로 엄청났다.
짧은 감탄을 끝으로 어떠한 말도 하지 않은 채 눈을 지그시 감고서 맛을 음미하는 노스를 보며 퍼시는 얼른 자신도 달라고 호든을 보챘고, 그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호든은 퍼시를 향해 조청차 한잔을 내밀었다. 궁금한 마음으로 차를 한 모금 마신 퍼시는,
“허!”
노스와 똑같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노스와 같이 눈을 지그시 감으며 맛을 음미했다.
둘의 똑같은 반응에 호든은 작게 웃었고, 뿌듯함이 차 올랐다. 레이와의 약속을 자신은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리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바른 생각을 하는 이를 위해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것은 호든에게 즐겁고 행복한 일이었다.
“어떠세요? 어때?”
호든은 각각을 향해 물었고 노스는 말 없이 엄지 손가락을 척 들었다. 그리고선 더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차를 마시는데 온 신경을 다 집중했다. 단 음식을 그닥 즐기지 않는 그에게 이런 단 맛은 정말로 취향에 딱 맞았고 또한, 맛있었다. 호든은 노스의 반응을 보고 난 뒤, 퍼시를 바라보았고 퍼시는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호든을 향해 말했다.
“이거 꿀 아니야? 아, 근데 꿀이라기엔 맛이 좀 다른데.”
“어떻게 다른데?”
“조금 더 고소하고, 아- 아무튼 다른데. 이게 ‘사탕수수 조청’이라고? 꿀에 뭘 섞은 거야?”
퍼시는 학교 다닐 때, 중요한 날에만 먹었던 한 스푼의 꿀을 기억하고 있었다. 귀해서 쉬이 구할 수도 없고 설령 어디서 판다는 것을 알아도 그 값이 비싸 살 수 없다고 했던 것이 꿀이라고 했다. 그것을 형편이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는 호든이 구해올리는 없었고, 그리고 호든은 이것을 꿀이 아닌 사탕수수 조청이라고 했다.
“꿀? 이게 그 귀하다는 꿀?”
노스는 아들의 꿀이라는 말에 놀란 표정으로 호든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호든은 노스와 퍼시를 번갈아 눈을 마주치고선, 말했다.
“아뇨. 이건 꿀이 아닙니다. 아까 전부터 말했듯이 사탕수수 조청이에요.”
“아- 진짜, 답답하게 구네. 그러니까 그 사탕수수 조청이라는 게 뭐냐고?”
퍼시는 아까 전부터 답을 해주지 않는 호든이 답답해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우리 마을에 레이들리히 바이스라고 하는 14살짜리 남자애가 하나 있거든, 근데 그 애 집이 좀 많이 어려워.”
“아- 누가 그런 걸 물었어? 왜 말이 새-”
“아, 좀 들어봐봐.”
“그래, 들어보자구나. 퍼시, 넌 좀 조용히 해.”
퍼시에게 조용히 하라고 말하는 노스에게 살짝 미소를 지어준 호든은, 노스의 눈을 보며 말했다. 자신이 말을 해주는 대상은 퍼시였지만, 들어야 할 대상은 노스였다. 호든은 자신과 눈이 마주치자 살짝 웃어주는 따뜻한 노스의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했다.
“이번에 우리 영지를 비롯해서 남부 지방에 홍수 때문에 크게 손해를 봤잖아. 특히, 농사를 짓는 사람이나 그 농사를 돕는 것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크게 손해를 봤고, 그래서 당장 겨울에 먹고 사는 것이 위험한 상태라는 것 너도 알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우리 마을 역시 그래. 그리고 내가 방금 전에 말한 레이들리히. 레이라는 이 아이의 집도 그래, 아니. 어쩌면 우리 마을에서 제일 심해. 원래 집이 가난했거든. 그런데, 어느 날, 이 애가 나를 찾아왔어.”
호든은 통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사탕수수 조청을 가지고서 말이야.”
“뭐-?”
“이 사탕수수 조청을 만든 사람은 그 아이야. 레이들리히 바이스.”
퍼시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순간, 저도 모르게 멍한 표정을 지었다. 만들다니, 뭐를?
“이걸 만들었다고? 14살 짜리가?!”
“응, 만들었어.”
“허, 참- 세상에. 이걸 14살 짜리가?”
퍼시는 연신 자신의 손에 들린 잔과 호든을 번갈아 보며 말했고 이 행동은 노스 역시 마찬가지 였다. 매일 투닥거려도 하는 행동이 닮은 두 사람이었다.
“응. 맞아.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야. 레이가 이걸 왜 만들었는 줄 알아?”
호든은 시선을 아예 노스에게 고정한 채 말했다.
호든의 머릿속으로 레이와 했던 대화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버님, 희망이래요. 겨울을 따뜻하게 지낼 희망으로 이걸 만들었대요. 왜 희망인지 아세요? 그리고 왜 희망을 저에게 들고 왔을까요?”
나직히 울리는 호든의 목소리를 듣고 노스는 더 말하라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저에게 이 희망을 주면서 말했습니다, 레이는요. 축제 때 장사를 할 수 있게 해달라구요. 형이 관리가 되었으니까 자리를 작게라도 마련해주실 수 없냐면서요. 그렇게 되면 이걸 팔아서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구요. 그런데, 저는 말했습니다. ‘관리’인 호든 모렌은 너에게 이런 것을 해줄 능력이 없다 라구요.”
호든은 떨리는 마음을 다 잡으며 말했다.
노스는 왜 호든이 이 늦은 밤 자신을 찾아와 조청을 보여주고 이런 말을 하는지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타인의 어려움을 쉬이 넘겨보지 못하는 호든은 분명히 그 아이를 돕기를 원할 것이고 그렇다면 호든이 할 것은 무엇인지, 노스는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대신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형이, ‘인간’ 호든 모렌 어떻게든 너에게 장사할 자리를 마련해 주겠다라구요.”
호든은 노스를 향해 허리를 숙이며 부탁했다.
“부탁드립니다, 아버님. 축제 때 가게에 자리 하나만 작게 내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보답은 제가 어떻게든 하겠습니다.”
허리를 숙인 호든을 보며, 노스는 팀을 떠올렸다. 이 레이라는 소년도 팀과 같은 아이일까. 가족을 위해 먹고 살기 위해 어린 나이 때부터 돈을 벌려고 하다니. ‘희망’이라는 말이 노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축제 때도 똑같이 장사를 할 것인데 그 한 공간에 자리 하나 내어준다고 큰일날 것은 전혀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런 아이가 이렇게 대단한 물건을 판다고 하는데, 대환영이었다.
노스는 여전히 숙여진 호든의 어깨를 잡아 일으켜 세웠다.
“뭘, 그런 걸 부탁하나. 무어 어려운 일이라고. 축제 전까지 저쪽에 자리 하나 비워둘테니까 마음 놓고 장사하라고 해. 필요한 것 있으면 말하라고 하고.”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역시, 외면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지만, 조금의 불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흔쾌히 노스가 허락을 해주자 하늘을 날듯이 기분이 좋아진 호든이었다. 조금이라도 일찍 레이에게 좋은 대답을 해주기 위해 말을 타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달려왔는데, 그로 인한 피로감은 싹 사라지고 온몸 가득 뿌듯함으로 힘이 넘쳐났다.
정말 기쁘다는 듯이 함박웃음을 짓는 호든에게 퍼시는 다가가 옆구리를 푹 찌르며 말했다.
“야, 넌 이런 걸 뭐 그리 어렵게 부탁하냐. 그냥 말하면 되지.”
툴툴거리는 말투였지만 말에 담긴 따뜻한 마음에 호든의 미소는 더 짙어졌다.
앞으로 수많은 일들을 해내야 한다는 스스로와의 약속을 가진 호든에게 있어 하나의 약속을 지켜냈다는 것이 마치 앞으로의 일이 잘 풀린다는 신호같아 이루말할 수 없이 기뻤다.
“그런데 걔는 나이도 어린데 이걸 어떻게 만들었대? 아! 맞다! 너 왜 사탕수수 조청이 뭔지 안 가르쳐 줘?”
셋이 둘러앉은 테이블에 퍼시는 호든을 향해 닥달했다. 노스는 퍼시의 말에 관심도 없다는 듯이 조청차 음미에 정신이 없어보였다. 정말 그의 마음에 쏙 든 듯 해보였다. 호든은 부탁을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알게 모르게 생긴 긴장으로 못 만들었던 자신의 차를 만들며 대답했다.
“레이가 기술이라고 했어. 그러니 난 못 말해줘. 레이가 오면 레이에게 직접 물어봐.”
“헤- 그 꼬맹이가 기술이라고 했다고?”
“응.”
“와- 확실히 난 놈은 난 놈인가 보네.”
기술이라는 단어에 장인을 떠올린 퍼시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하지만 축제 쯤에 올라올 레이에게 꼭 물어볼 것이라고 다짐하는 퍼시였다.
호든은 자신의 잔에 담긴 조청차를 한모금 마셨다. 그는 기쁜 마음과 뿌듯함이 가득했지만, 그래도 꽤 많은 긴장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피로했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이 조청차가 마시고 싶었다.
“음?”
“왜 그래?”
한 모금 마시더니 물끄러미 조청차를 바라보는 호든을 향해 퍼시는 물었다.
“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퍼시, 너 이거 마시니까 머리가 개운해지고 피로가 싹 풀리는 그런 느낌 못 받았어? 기분도 좋아지고.”
“응? 음- 기분은 단 걸 먹어서 그런가 확실히 좋아지는데. 머리가 개운해지는 건 잘 모르겠는데. 아버지는 어때요?”
“음- 나도 기분은 좋아지고 속은 든든하니 좋은데, 머리가 개운해지는 것은 잘 모르겠구나.”
“그렇죠? 왜 그런 걸 물어봐?”
퍼시의 물음에 호든은 아니라고 대답하며 고개를 갸웃 거렸다. 저번에 먹었을 때 느꼈던 그 기분이 느껴지지 않자 조금 이상하였지만 그래도 조청 본래의 달달하고 고소한 맛만으로도 훌륭한 음식이었다. 하지만 관리로 일하면서 쌓일 피로를 그때 마셨던 조청차로 풀려고 했던 호든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다. 하지만 퍼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그 이유는,
‘그 때, 차를 탄게 레이여서 그런가. 레이한테 뭔가 비법이 있나보네. 물어봐야 겠어.’
“호든, 그러면 그 아이한테는 어떻게 알릴 거냐?”
“아, 마을로 지나가는 보부상 편으로 보내기로 했습니다. 내일 가서 있으면 그 편으로 보내려구요.”
“그래, 어린 애가 조마조마하면서 기다릴텐데, 얼른 소식이 전해졌으면 좋겠구나.”
“네, 아버님.”
노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호든은 관사에 가자마자 편지를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자리를 구했다고 알릴 생각에 마음이 들뜨기 시작했다. 호든의 머릿속은 편지에 들어갈 말들로 가득 찼다.
‘우선 허락받았다는 걸 말하고 여기 위치나 장소에 대해서 조금 세세하게 써서 보내야 겠어. 레이도 감을 잡아야 하니까. 축제에 대한 대략적인 내용도 써서 보내야 겠고. 아! 그리고 차 타는 법도 물어봐야 겠어.’
희망이 불러올 미래가 기대되는 호든이었다.
오늘도 12가 가까워져 가는 늦은 시간까지 문을 닫지 않는 스란 약재상은 따뜻한 차와 함께 세 사람의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름의 밤이 점차 길어져가고 있었다.
이 날 밤, 레이는 빌리와 화해를 한 후, 어느 때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잠이 들어 있었다.
============================ 작품 후기 ============================
읽어주셔서 감사힙니다.
빌리네 성인 파밀리어는 Familie (가족) 이라는 뜻입니다.
전 빌리가 좋고 빌리네 가족이 좋아요. 🙂
댓글 달아주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추천해주신 분들도 정말 감사합니다.
후원 쿠폰 보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더 즐겁게 써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
중복되는 질문이 많아서 리코멘에 닉네임과 댓글을 못 담고 간단히 질문 내용과 그 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설탕(마스코바도)와 조청에 대한 질문
: 염려가 하시고 생각하시는 부분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글은 정해진 플롯대로 가고 있는데 염려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
*세계관
: 저는 중세라는 말을 소설 속에 사용 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영지나 영주, 관리로 인해 중세시대 봉건제가 떠올랐기에 독자님들이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ㅠㅠ 이 부분은 제가 파악을 못 했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의 세계관은 좀 다릅니다.
이는 차차 소설이 진행되면서 레이의 세계가 커지면서 서서히 나타날 예정이니, 조금 서툴러도 어여쁘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레이의 세계는 지금 마을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 세계가 커지면 점점 세상을 알아가게 되겠죠? 🙂
*경영학과 관련된 질문들
: 경영학전공을 하였고, 졸업이 코앞입니다. (슬프네요.) 그래서 배운 내용들로 하는데, 생각이 나지 않거나 모르는 부분은 찾아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으로 경영과 회계, 금융 이 3가지는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 O회계라고 별명으로 불리울 정도로 회계- 애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시겠죠? 답이 되었으리라 봅니다. 🙂
*히든 스킬 사용법
: 기본 능력 중 1 스탯이 차감하기 때문에 지정되지 않은 스탯 포인트는 기본 능력이 아니기 때문에 차감 대상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
질문은 @ 달아주시면 답변하도록 하겠습니다.
줄거리에 영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
일요일까지 정신이 없을 것 같아 오늘 용량을 두 편을 묶어서 올립니다.
일요일에 밤에 뵙겠습니다.
2016년 새해가 밝았네요.
올 한 해 좋은 일 가득하시길 바라고 빛나는 한 해 되시길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