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04)
#103화.
‘신속’.
다시 한번 신의 발걸음을 불러왔다.
빛이 되어 공간을 접었다.
푸른색으로 빛나는 오러는 백시우가 대경하며 펼친 ‘검막’을 찢어발겼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마력을 욱여넣었기 때문이다.
마치 종잇장을 가르는 것처럼, 반투명한 막이 찢어졌다.
‘룬 데아’가 백시우의 목에 닿았다.
핏-!
자그마한 핏물이 튀어나왔다.
제때 멈췄음에도, 그 안에 담겨 있는 기운이 SSS급 용사의 육체에 상처를 남긴 것이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서우진은 멍하니 서 있는 백시우가 지니고 있던 띠를 모두 회수했다.
총 열 개.
고작 두 시간여 정도의 시간밖에 흐르지 않은 시점이었다.
“훈련을 종료하겠습니다.”
주변에서 훈련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루데인이 나와 훈련이 끝났음을 알렸다.
각자의 전투를 이어가던 팀원들이 서우진의 손에 들린 열 개의 띠를 보곤 환호성을 질렀다.
압도적인 승리였다.
“하아.”
훈련을 마치고 기숙사로 돌아온 서우진이 침대에 걸터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기라니.”
스스로도 모르는 걸 보니, 마왕의 추종자 같은 놈들과 엮인 건 아닌 듯했다.
그렇다면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건데, 솔직히 모르겠다.
서우진은 직업만 ‘마왕’이지 쥐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으니까.
“전쟁도 전쟁인데… 이거 걱정이네.”
만약 제국의 누군가가 백시우에게 마기가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다면?
마왕, 마기, 마족 따위에는 경기를 일으키는 이들이다.
아무리 SSS급 용사라 하더라도, 백시우를 처리하려고 할 게 분명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백시우가 걸려서 혼자 죽든 말든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문제는 용사가 마기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만약 제국에서 그것을 빌미로 모든 용사를 조사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유적에서 마력과 함께 마기도 흡수한 서우진은 그 조사에서 100% 걸린다.
그러니 걱정이 될 수밖에.
괜한 불똥이 튀지 않으리란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해야 해.”
그러기 위해선 도움이 필요하다.
마기에 대해 잘 알 것.
자신을 의심하지 않을 사람일 것.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대공 브리아니.”
그녀는 게랄드와의 싸움에서 서우진이 감추고 있던 것의 일면을 봤다.
그런데도 추궁하지 않고 오히려 감춰주기까지 했다.
제국의 수호자이니 마기에 대해서도 남들보단 훨씬 자세하게 알 터였다.
“이 이상의 조건을 지닌 사람은 또 없지.”
슬쩍 마르테스가 떠오르긴 했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녀가 자신에게 이상할 정도로 우호적이긴 해도 브리아니만큼 신뢰할 순 없었다.
“…메르노타인에 다녀와야겠어.”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나가야 할 것 같았다.
자신의 안위가 걸린 일이었으니, 마냥 안심하고 지켜만 보고 있을 순 없었다.
“내일 휴가를 내고, 모레쯤 출발하면 되겠다.”
이번에는 아일린에겐 미안하지만 진짜 혼자 가야 할 것 같았다.
대충 생각을 정리한 서우진이 침대에 누우려 할 때였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세요?”
찾아올 사람이 있던가? 생각해 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며 머리 하나가 쑥- 들어왔다.
덥수룩한 머리.
“안녕하세요.”
김우람이었다.
녀석은 쭈뼛거리며 방문 앞에서 서성였다.
“거기 있지 말고 들어와.”
침대에서 일어나 소파로 갔다.
똥 마려운 강아지 꼴을 한 모습을 보니, 대충 무슨 용무로 온 것인지 짐작이 되었다.
“왜? 할 말 있어?”
가만히 앉아서 물어보자 김우람이 머리를 긁적였다.
“저…….”
김우람은 쉽사리 말을 꺼내지 않고 머뭇거렸다.
하지만 재촉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마주치며 기다려 주었다.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결심한 듯, 김우람의 입이 열렸다.
“어떻게 해야 당신처럼 강해질 수 있죠?”
그는 말을 하며 아까 있었던 서우진의 전투를 떠올렸다.
뭔가 번쩍번쩍- 하고, 오러가 타오르고, 번개가 몇 갠지 셀 수도 없이 떨어져 내리고.
그가 동경하던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같은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도무지 자신과 같은 용사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자신은 엑스트라에 불과하다.
김우람은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로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서우진은 그런 김우람을 쳐다보다 물었다.
“강해지고 싶어?”
“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이 나왔다.
“엄청 힘들 텐데.”
“상관없어요.”
“난 진짜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어. 넌 모르겠지만 얼마 전에도 죽다 살아났고.”
“그 정도는 감수할 수 있어요.”
서우진과 같은 강함만 가질 수 있다면, 그 어떤 역경과 고난도 헤쳐나갈 자신이 있었다.
“확실해?”
서우진이 다시 한번 물었다.
“물론이에요.”
“좋아.”
서우진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브리아니가 준 코트를 챙겨 입으며, 밖으로 나갔다.
“따라와.”
각오하고 있다면 기회를 줘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자신 역시 수많은 기회와 도움을 받았으니까.
서우진은 반 슬레인을 떠올렸다.
‘용사란 굴리면 굴릴수록 강해진다.’
강력하게 동감하는 바다.
그런 뜻에서, 김우람을 굴리기로 결정했다.
서우진은 코트 안에 든 ‘소환석’을 만지작거리며, 김우람과 함께 실내 연무장으로 향했다.
* * *
“게랄드가 죽었다.”
사자의 음성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런, 어쩌다가?”
앞에 앉은 여인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동자에는 그 어떤 감정도 엿보이지 않았다.
당황, 안타까움, 분노, 슬픔.
오랜 시간을 함께해 온 동료의 죽음에도, 여인이 눈에 담은 감정은 오직 허무뿐이었다.
발랄한 음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눈빛이었다.
“크루시엘이 그의 행적을 쫓고 있던 모양이다. 결국 검공의 검에 명을 달리하였다.”
음울한 음성이 한층 더 가라앉아 있었다.
“흐응, 이상하네. 게랄드가 그깟 늙은이한테 당할 애가 아닌데.”
“검공과 조우하기 전, 이미 심대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던 듯하다. 태공과의 전투에서 얻은 것이겠지.”
“그것도 말이 안 되고. 그 말괄량이가 혼자 게랄드에게 그런 심각한 부상을 입혀?”
코웃음을 터트렸다.
“아직은 알 수 없다, 다른 조력자가 있는지는. 이제부터 알아봐야 할 일이다.”
“알아서 해. 아, 내 도움 필요하면 부르고.”
자신이 관심을 가질 사안이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어 축객령을 내렸다.
하지만 사자는 나갈 생각이 없었다.
“계획이 틀어졌다. 벌써 두 번째다. 이대로 가다간 대계에 지대한 차질이 생길 터.”
회색빛의 죽어버린 안구가 여인을 훑었다.
“그 도움을 지금 받는 것이 좋겠다.”
“하아-”
여인이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곤 고운 피부를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나 지금 식사 중인 거 안 보여? 그런 심각한 얘기는 좀 나중에 하면 안 돼?”
입술에 묻은 붉은 액체를 핥으며 사자를 노려봤다.
“레이나, 부탁이 아니다.”
자신의 이름까지 부르자, 그녀는 결국 식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귀찮게 정말. 뭔데? 그 부탁이 아닌 도움은?”
“제국으로 가라.”
“제국? 거기는 왜?”
레이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위험한 장소에는 왜 가라는 것일까?
“데리고 와야 할 자가 있다. 게랄드의 죽음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르는 이다.”
“그런 거라면 다른 녀석도…….”
“보이지 않는 암령의 힘이 필요한 일이다.”
암령(暗靈).
레이나의 칭호이자, 능력.
그 이름까지 나온 이상, 그녀는 거부할 수가 없었다.
“…누군데?”
“서우진. 그분의 심장을 겨누고 있는 100개의 칼 중 하나다.”
“용사?”
“그를 데려오라. 게랄드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야 한다.”
레이나는 잠시 생각을 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받아들일게. 대신!”
손가락을 들며 웃었다.
“피 조금만 빨아 먹어도 돼? 예전부터 용사의 피 맛이 궁금했거든.”
손가락에 묻은 붉은 액체를 혀로 핥는 모습이 퇴폐적이다.
“뜻대로 하라.”
사자가 허락했다.
“좋아. 최대한 빠르게 제국으로 갈게.”
레이나가 식사를 다시 시작했다.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열 살도 채 되지 않는 어린 소녀의 시체였다.
* * *
“호흡 가다듬어! 발 쉬지 말고! 어딜 쳐다보는 거야!”
“끄아아아아!”
비명과 같은 기합을 터트리며 김우람의 창이 대기를 꿰뚫었다.
푸욱-
하지만 기세에 비해 상처는 얕았다.
크우우우-!
배에 상처를 입은 마수, 아르카비는 역겨운 숨결과 함께 주먹을 휘둘렀다.
까앙- 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늦지 않게 창을 들어 막은 것이다.
하지만 그 충격까지 해소하지는 못했다.
“으아아아!”
뒤로 날아가 벽에 처박힌다.
쿵쿵쿵쿵-!
황소의 형상을 하고 있는 아르카비가 김우람을 향해 돌진했다.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기에 꽤 위험해 보였다.
하지만 서우진은 개입하지 않았다.
‘이 정도도 못 이기면 용사 생활 접어야지.’
김우람과 아르카비는 동격이다.
전투만 제대로 치르면 충분히 이기고도 남는 상대라는 뜻이었다.
‘엉망이구만.’
자리를 데구루루 구르며 공격을 피하는 김우람의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기꺼웠다.
저 상황에서도 싸움을 포기하지 않고 창을 드는 모습에서 근성이 느껴졌다.
“두 다리를 굳건히 하고, 찔러!”
서우진의 말에 김우람이 진각을 밟았다.
쿵-
하체가 안정됐다.
동시에 창이 뻗어져 나왔다.
단단히 고정된 두 다리에서 시작된 힘이 창극에 이르러, 단단하기 그지없는 아르카비의 가죽을 꿰뚫었다.
일체의 낭비도 없는 정석적인 찌르기였다.
그어어어어-
심장이 관통당한 마수가 비통한 울음과 함께 자리에 누웠다.
파아앗-!
동시에 김우람의 몸에서 빛이 터졌다.
레벨 업이었다.
마침내 30레벨이 된 것이다.
방금 전까지 죽음의 문턱에 다다른 것 같았던 호흡이 진정되고, 피가 철철 나던 상처가 모두 회복됐다.
빛이 사라지고 모습을 드러낸 김우람이 조용히 자신의 창과 아르카비의 사체를 번갈아 쳐다봤다.
표정에는 감출 수 없는 벅참이 가득했다.
“좀 알겠냐?”
서우진의 물음에 김우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한 번도 이런 싸움을 해본 적이 없다.
언제나 기사들이 가져다준 몬스터만 죽이며 레벨 업을 했고, 토벌 때는 제일 먼저 낙오했다.
도망치지 않고 이렇게 맞서 싸운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감격스럽겠지.’
서우진도 느껴본 적 있는 감정이다.
북방에서 처음으로 스노울과 싸워 이겼을 때.
그때 느꼈던 환희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김우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 하하.”
마침내 녀석의 입에서 웃음이 흘러나왔다.
기쁨과 후회가 뒤섞인 웃음이었다.
“감사합니다.”
서우진을 향해 허리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한다.
“앞으로가 더 중요하다. 고작 이런 것에 만족하면 거기서 끝이야.”
“네, 알겠습니다.”
김우람의 태도가 조금은 정중해졌다.
겁을 먹어서 보여주는 게 아닌, 진심에서 우러난 모습이었다.
“피 좀 닦아라.”
서우진이 준비해 간 수건을 던져 줬다.
온몸이 피범벅이라 돌아가려면 조금 닦아내야 할 것 같았다.
“넵.”
김우람은 수건을 받아 몸에 묻은 피를 씻어냈다.
그리고 얼굴을 닦기 위해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위로 걷어 올렸다.
‘……뭐냐.’
서우진이 눈을 끔뻑였다.
김우람의 얼굴이 눈부실 정도였다.
“너 왜 잘생겼냐?”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