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07)
#106화.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포박되어 있는 건가 싶었지만, 의외로 몸을 짓누르는 압박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육체, 그 자체가 구속되어 있다는 뜻이었다.
서우진은 당황하지 않고 마력을 순환시켰다.
다행히 마력회로는 멀쩡했다.
대해와 같은 마력이 회로를 타고 몸을 휘돌았다.
하지만 육체의 구속은 여전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도 없었던 것이다.
으드득- 으드드득-!
혼신의 힘을 다해 몸을 비틀어봤다.
하지만 근육만이 비명을 질러댈 뿐이었다.
“너무 애쓰지 마. 지금 네 레벨로는 어림도 없으니까.”
그때, 바로 옆에서 레이나의 음성이 들려왔다.
눈을 떠보려 했지만, 그 역시도 불가능했다.
“헛수고라니까 그러네?”
언뜻 비웃음이 들린 것 같았다.
“이렇게 쉽게 널 데려갈 수 있을 줄은 몰랐는데. 나도 운이 참 좋은 거 있지? 제국의 수도에 도착한 날, 네가 밖으로 나올 줄이야… 이 정도면 운명이라고 봐도 될듯해.”
‘납치.’
레이나는 무슨 이유인진 모르겠지만, 자신을 납치한 후 어디론가 끌고 가고 있는 것 같았다.
“솔직히 별로 마음에 드는 임무는 아니었거든. 괜히 아카데미 같은 곳에 들락거리다 걸리면 귀찮아지기도 하고. 그래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는데, 이렇게 쉽게 해결이 돼서 다행이야.”
레이나는 말이 많았다.
거의 이지아와 동급인 것 같았다.
심지어 서우진이 아무런 대꾸도 없는 상태였음에도, 쉬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덕분에 몇 가지 중요한 이야기를 엿들을 수 있었다.
레이나는 게랄드와 마찬가지로 마왕의 추종자라는 것.
그리고 이 납치는 게랄드의 죽음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밝혀내기 위함이라는 것.
마지막으로는 그 둘에게 임무라는 형태의 명령을 내리는 존재가 있다는 것.
‘조졌네.’
정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레이나의 말에 따르면, 그녀와 게랄드는 동급의 강자다.
그 말은 곧, 혼자서는 절대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뜻이었다.
‘셀레스티얼 윙을 사용하면?’
그래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최대 출력으로 사용하면 3분, 아끼고 아껴도 10분밖에는 사용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 시간 안에 레이나를 죽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게랄드도 그러했으니까.
‘아니, 애초에 위협이 된다고 느꼈다면 팔찌부터 빼앗았겠지.’
레이나는 서우진의 몸에서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다.
‘셀레스티얼 윙’, ‘아이기스’, ‘룬 데아’.
심지어는 브리아니가 선물해 준 옷까지.
그 어떤 것도 자신을 해할 수 없다는 것을 자신하듯, 그 자리에 두었다.
‘아이기스를 사용했어야 했는데.’
분명 바르시크는 이 반지가 모든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방패를 소환한다고 했었다.
만약 낌새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채자마자 ‘아이기스’를 발동했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납치를 당할 리가 없었다.
‘익숙하지 않은 아이템이다 보니 떠올리질 못했어.’
선물을 받고 지금까지 한 번도 써보지 않았다.
그러니 기억 한 켠에 ‘아이기스’라는 이름이 처박히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머리 굴리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린다, 얘.”
그때, 혼자서 주절주절 수다를 떨던 레이나가 서우진에게 말을 걸었다.
“포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편해. 괜한 희망을 걸었다가 좌절하면 너만 더 힘들단다? 물론 그것도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긴 하겠지만…….”
웃으며 말을 하던 레이나가 점점 말끝을 흐렸다.
“저기, 얘.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
갑작스러운 말에 서우진은 당황했다.
꼼짝도 못하는 자신에게 부탁이라니?
레이나가 제정신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때쯤.
“네 피를 조금만 마셔도 되지? 도착할 때까지 참아보려고 했는데, 더 이상은 안 되겠어. 괜찮지?”
서우진은 할 수만 있다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도망을 치고 싶어졌다.
‘뱀파이어!’
칠흑을 지배하는 노블레스.
생명력이 충만한 피를 마심으로 스스로의 격을 높이어 강대한 권능을 얻는 존재들.
뱀파이어는 마왕의 추종자들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혈족이었다.
달뜬 숨소리가 바로 귀 옆에서 들려왔다.
“조금만 마실게, 죽지 않을 정도로만. 그 정도는 괜찮잖아?”
‘그만해, 이 미친년아!’
속으로 소리를 질러 봤지만, 그것이 입 밖으로 나오지는 못했다.
레이나의 얼굴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숨소리가 커지고, 이내 숨결이 닿을 정도가 되었다.
‘안 돼!’
저 이빨에 꽂히면 끝이다.
말은 조금만 마신다고 하지만, 그걸 믿는 게 더 우습다.
무언가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던 서우진의 뇌리에 뭔가가 번뜩였다.
‘될까?’라는 생각보다 행동이 앞섰다.
‘지고화!’
화아아아악-!!!
지극히 높은[至高] 불꽃[火]이 서우진의 마력을 연료 삼아 세상에 현현했다.
“아, 아아아아악!”
레이나의 비명소리가 귀를 울렸다.
동시에 육체를 구속하고 있던 정체불명의 기운이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동시에 서우진이 튕기듯 자리에서 일어나 ‘룬 데아’를 뽑아 들었다.
하지만 휘두르진 못했다.
순백의 고결한 화염이 레이나의 몸을 녹이고 있었다.
‘저게…….’
‘지고화’.
서우진도 처음 사용해 보는 스킬이었다.
그저 흡혈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약간의 피해라도 입히면 더욱 좋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런데 ‘지고화’는 그 정도가 아니었다.
숫제 레이나라는 존재를 이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 버리겠다는 듯, 끊임없이 타오르고 녹여냈다.
“–!!”
성대라도 상한 것일까?
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댔다.
저런 상태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천천히 오러를 끌어올렸다.
‘룬 데아’가 견딜 수 있는 최대한의 마력을 뽑아내, 모조리 쏟아 넣었다.
지금껏 본 적 없는 거대한 오러가 가공할 파괴의 기운을 품고 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멀쩡한 상태의 그녀라면 모를까, 지금이라면 충분히 베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마치 정화되듯, 온몸이 재로 변하고 있는 레이나의 목을 향해 ‘룬 데아’가 휘둘러졌다.
우우웅-
거대한 마력에 공간이 일그러졌다.
‘좋아.’
파괴력은 충분했다.
이대로 머리를 끊어내기만 하면…….
검날이 목에 닿기 직전이었다.
레이나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암… 령?’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내 그것이 그녀의 혈족 능력 발현을 위한 시동어였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어둠이 폭사됐다.
지극히 높은 불꽃도, 형체만 간신히 갖추고 있던 레이나도, ‘룬 데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소리마저 집어삼킨 듯, 적막이 흘렀다.
마치 눈과 귀가 먼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야. 분명 앞에 있다!’
그저 보지 못할 뿐이다.
그렇게 생각한 서우진은 현혹되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그대로 몸을 비틀었다.
허리에서 시작한 회전이 가슴, 어깨 팔을 거쳐 최종적으로 ‘룬 데아’에 도달했다.
스걱-!
갈랐다.
손끝에 느낌이 있었다.
분명히 뭔가가 잘렸다.
그런데…….
어둠이 사라지질 않는다.
‘젠장, 얕았나?’
갑작스러운 어둠 때문에 당황했기 때문이었다.
찰나간의 멈칫거림이 레이나에게 피할 수 있는 시간을 준 듯했다.
서우진은 자세를 잡으며 마력을 퍼트렸다.
혹시 모를 공격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조용했다.
공격은커녕, 그 어떤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어디냐?’
서우진은 결코 마음에 칼날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예리하게 갈고닦아 주변을 경계했다.
칠흑의 지배자는 본래 성정이 교활한 혈족이었으므로.
방심은 절대 금물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한 시간? 두 시간? 어쩌면 일 단위의 시간이 지났을지도 모르겠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는 무감각의 세계였는지라 도무지 시간의 흐름을 짐작할 수가 없었다.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천천히 흘러내리는 것이 느껴졌다.
천천히, 천천히.
뺨을 타고 턱에 맺혀 톡- 하며 육체와 유리되었을 때.
레이나의 음성이 들려왔다.
[-부러지지 않는 그 정신에 감탄하노라.]비할 데 없이 오연하다.
철없는 아이 같았던 말투는 없었다.
오히려 그 어떤 귀족들보다도 고고하고, 초연했다.
순간 마공 마르테스가 떠오를 정도였다.
거대한 위압감에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
갈고닦은 인내가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을 것이다.
[운이 좋다 하였으나, 돌아보니 허상(虛想)이라. 오늘의 오판이 천추의 한이 되어 돌아오겠다.]귀가 아닌, 머리에 때려 박듯이 들리는 음성.
그것은 평이했지만, 안에 담겨 있는 후회가 여실히 느껴졌다.
[금일의 도모는 본 암령의 실패임을 확언하노라. 그리하여 너의 귀래를 허하니, 돌아가도 좋으니라.]‘보내준다고?’
바뀐 레이나의 분위기는, 서우진의 전신을 으깨 버릴 것 같은 위압이 가득했다.
심지어 게랄드보다도 더한 듯했다.
하여 오늘 이 자리에서 정말 죽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해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그런데 보내준다니?
[뒷날을 기약하노니, 즉일에 필연을 기대하라.]그 말이 끝이었다.
모든 감각을 차단했던 어둠이 사라지고, 빛과 소리가 느껴졌다.
서우진은 어느새 감고 있었던 눈을 천천히 떴다.
“…레이나.”
눈앞에는 뼈와 잔해만 남은 레이나의 시체가 있었다.
‘아니, 저건 본체가 아니야.’
방금 전까지 들려왔던 음성을 제외하고도, 그리 확신하는 이유가 있었다.
“레벨 업을 안 했어.”
무려 게랄드와 동급인 괴물이다.
후의 오연한 자세를 생각하면, 게랄드를 넘어서는 경지에 이른 것이 분명했다.
그런 존재를 서우진 홀로 죽였다.
‘지고화’로 인해 불에 타고, 녹아내려 재와 뼛조각밖에 남기지 않았다.
그런데 단 1레벨도 오르지 않는다고?
어불성설이다.
그러니 저 시체는 더미에 불과할 것이다.
뒤늦게 다리에 힘이 풀리며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긴장과 두려움이 일시에 가시며 가벼운 탈력감까지 찾아왔다.
지금껏 느끼지 못했는데, 이미 온몸은 땀으로 푹- 젖어 있었다.
“여긴……?”
두 다리에 힘을 주며 간신히 쓰러지는 것을 견뎌내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엔틱하고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모든 것이 두 개로 꾸며져 있는 것을 보니 2인실인 것 같았다.
서우진에게도 낯이 익은 장소였다.
“1등석?”
아일린과 함께 탑승했던 기차의 1등석이었다.
“지금껏 여기에 있었다고?”
이곳이 어디인지 눈치채는 것과 동시에 객실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사람들이 몰려오는 소리였다.
똑똑-.
“손님, 괜찮으십니까?”
노크 소리와 함께 승무원의 걱정스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혹시 무슨 일 있으신 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 문을 열어봐도 되겠습니까?”
자신과 레이나의 전투가 밖으로 새어나간 모양이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마기의 파편이라도.
서우진은 대답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핑- 하는 현기증과 함께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이, 이거 탄내 아니야?”
“불이 난 것 같다!”
잿더미로 변한 더미의 냄새를 맡은 것인지, 노크 소리가 과격해졌다.
쾅쾅쾅-!
“들어가겠습니다!”
결국 억지로 문이 열렸고, 그들의 모습을 본 서우진은 까무룩 눈을 감았다.
기절을 한 것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