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09)
#108화.
역시 1등석은 편했다.
안락한 소파에 몸을 뉘인 채, 온갖 최상급 서비스를 누리며 수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세 번이나 탔는데 이렇게 만족스러운 건 처음이네.’
처음엔 아일린에게 스파르타 교육을 받느라 즐길 여유가 없었고, 두 번째는 레이나에게 납치된 상태로 탔으니…….
사실상 이번이 처음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역시 돈값을 하는구나.”
메이거스에게 1등석 티켓의 가격을 듣고는 기절할 뻔했다.
500골드.
한화로 치면 거의 5천만 원에 가까운 금액이었다.
경악스러운 가격.
기차 한 번 타려면 집안 기둥뿌리를 뽑아야 가능했다.
그런데 브리아니나 마르테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거액을 지불했다.
역시 제국의 수호자들이었다.
서우진은 새삼 그들에 대한 존경심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을 느끼며 기차에서 내렸다.
‘어두워졌네.’
밖은 이미 밤이 찾아온 상태였다.
탈란에서 수도까지는 거리가 꽤 됐는지라,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다.
‘대공이 공간이동으로 데려다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물었지만, 아쉽게도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런 이동이 가능한 건 오직 자신뿐이라며 말이다.
게랄드와의 전투에선, 그 괴물도 공간에 대한 이능을 지녔기에 가능한 것이라는 설명에 서우진은 살짝 실망했다.
“그래도 많이 늦진 않아서 다행이다.”
밤이 되긴 했지만, 어쨌든 시간 안에 도착하긴 했으니까.
서우진은 기차역을 나가 아카데미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마차를 탈 돈도 없었고, 그리 멀지도 않았기에 조금 빠른 걸음걸이로 움직였다.
수도의 밤은 화려했다.
서울의 야경과 비교해도 결코 꿀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어떤 면에선 이쪽이 더 나았다.
알록달록한 마법등이라던지, 허공에서 도시를 순찰하는 불새라던지,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는 방어 마법의 기하학적인 문양이라던지.
판타지 세계라는 느낌이 물씬 풍겨왔다.
그런 것들을 구경하며 이동하다 보니, 어느새 아카데미 정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전히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척-
서우진이 그곳으로 들어가려 하자, 수문기사들이 그의 앞길을 막아섰다.
“정지. 정체를 밝혀라.”
날이 저물었기 때문일까?
경계 수준이 낮과는 달랐다.
기사들은 아카데미 제복을 입지 않은 서우진을 수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아, 저…….”
‘여기 아카데미 다니는 용사인데요’라는 말이 쉽사리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고 있는데, 기사들 중 한 명이 눈을 크게 떴다.
“서우진 님 아니십니까?”
얼굴을 알아본 것 같았다.
“맞아요. 서우진입니다. 휴가를 갔다가 지금 돌아오는 길이거든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를요?”
왜?
의문에 대한 답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총장님께서 서우진 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
아카데미 총장이 누구더라?
기억을 더듬어봤다.
하지만 떠오르는 얼굴은 없었다.
한 번도 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저를 따라오시죠.”
기사는 멀뚱히 서 있는 서우진을 데리고 이동하기 시작했다.
‘레이나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졌나 본데.’
그것이 아니고서야 총장이라는 양반이 이렇게 서우진을 찾을 이유가 없었다.
메르노타인에 있는 브리아니에게까지 소식이 전해졌으니, 당연히 아카데미에도 서우진에 대한 이야기가 전달됐을 터.
서우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기사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보니, 아직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건물 하나가 보였다.
아카데미 내부의 그 어떤 곳보다 작고 아담한 1층짜리 건물이었다.
“이곳입니다.”
기사는 걸음을 멈추고는 정중하게 노크를 했다.
똑똑-
“들어오세요.”
안에서 생각보다 젊은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럼 전 이만.”
기사는 서우진에게 예를 표하고는 그대로 다시 돌아갔다.
혼자 남은 서우진이 잠시 머뭇거리다 문을 열었다.
건물 안에는 안경을 쓴 청년 한 명이 책을 손에 든 채 서우진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내일쯤은 돼야 오실 줄 알았는데, 생각보단 빨리 돌아오셨네요.”
윤기가 흐르는 기다란 금발에 유약해 보이는 외모.
그리고 뾰족하게 솟은 귀.
“엘프?”
서우진이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다크 엘프는 본 적이 있지만, 그냥 엘프는 처음으로 본 것이다.
“일단 안으로 들어오시는 건 어떨까요? 밤바람이 찬데.”
총장의 말에 서우진이 급히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피부가 검고 귀가 뾰족하다는 것 외에는 인간의 외형과 비슷했던 다크 엘프와는 달랐다.
눈앞의 남자가 특별한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고귀하고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흘렀다.
‘진짜 엘프구나.’
소설이나 만화에서나 봤던 것이 그대로 실체화 된 느낌이었다.
“엘프는 처음 보시나 보군요.”
“아, 네.”
너무 빤히 쳐다보고 있었던 것일까?
총장은 머쓱한 표정으로 뺨을 긁으며 말을 걸었다.
“죄송합니다.”
실례되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재빨리 사과했다.
“괜찮습니다. 저희 일족이 세상에 드물다는 건 사실이니까요.”
다크 엘프와는 다른 듯했다.
‘그놈들은 시도 때도 없이 마주쳤는데.’
“앉으세요. 비좁지만 나쁘진 않을 겁니다.”
총장이 가리킨 작은 의자에 조심스레 앉았다.
‘오!’
생각보다 훨씬 편안했다.
크기가 조그마해서 불편할 줄 알았는데.
“차 좀 드시겠습니까? 근래 괜찮은 것들이 많이 들어왔거든요.”
“감사합니다.”
서우진은 거부하지 않았다.
엘프들이 마시는 차가 궁금하기도 했고, 목도 조금 말랐으니까.
“잠시만요.”
총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에 마련되어 있는 찬장으로 총총- 다가갔다.
“그린테일 차, 괜찮나요?”
“넵!”
뭔지 모른다.
그래도 엘프가 타주는 차이니 건강에 좋겠지, 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탁월한 선택이에요.”
콧노래까지 부르며 차를 따르는 그의 모습은, 총장이라기보단 가정주부에 가까운 것 같았다.
“자, 한번 드셔보세요.”
고급스럽기 짝이 없는 찻잔에 투명한 녹빛 차가 담겼다.
“감사히 잘 마시겠습니다.”
호로록-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셨다.
서우진의 눈이 커다래졌다.
차가 입에 들어오자마자 청량한 기운이 온몸으로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동시에 지쳐 있던 서우진의 육체를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이건…….”
거의 ‘회복 물약’ 아닌가?
‘연금술사’인 박민성도 아직 만들지 못하는 물건이다.
만드는데 적어도 수십 골드는 들 것이라는 그의 말이 떠올랐다.
“나쁘지 않죠?”
서우진의 표정을 본 총장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네요.”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다.
가능하면 찻잎을 조금이라도 얻어가고 싶을 정도였다.
“오는 데 불편함은 없었나요?”
“괜찮았습니다.”
혼자 1등석을 타고 왔다.
불편할 리가 없었다.
“메르노타인에서 영 좋지 못한 일이 있었다는 소식은 들었어요. 칠흑의 지배자와 엮였다고?”
레이나를 말하는 것이었다.
서우진이 조용히 찻잔을 내려놨다.
피가 쪽쪽 빨릴 뻔한 경험은 트라우마로 남을 지경이었다.
“무사하셔서 다행이네요. 그들은 정말 위험한 혈족들인데. 대공과 마공께서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브리아니뿐만 아니라, 마르테스에게도 소식이 전해진 것 같았다.
“운이 좋았습니다.”
만약 레이나가 육체뿐만 아니라 마력까지 구속해 두었다면, 결코 그리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감인지 자만심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덕분에 서우진이 ‘지고화’를 사용해 속박을 풀어낼 수 있었으니까.
다시 생각해도 식은땀이 흐르는 경험이었다.
“그런가요?”
운이라는 말에 총장이 묘한 눈으로 서우진을 쳐다봤다.
그러다 문득, 아! 하며 자신의 이마를 쳤다.
“그러고 보니 제 소개도 안하고 있었네요.”
하하- 하고 웃은 총장은 미소와 함께 자신의 소개를 시작했다.
“저는 환상수의 일맥을 잇고 있는 요른 사일러스라고 해요. 부족하지만 이 아카데미의 총장을 맡고 있죠.”
환상수의 일맥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고급스러운 소개였다.
서우진은 그의 말을 기억에 담아두고는 고개를 숙였다.
“서우진입니다.”
정식으로 인사를 하자, 요른이 입을 열었다.
“오늘 이렇게 서우진 님을 찾은 이유는 다른 게 아니고…….”
그린테일을 한 모금 마신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한 가지 제안이 있기 때문이에요.”
‘제안?’
아카데미 총장이 자신에게 할 제안이라는 게 뭘까?
“그게 뭡니까?”
서우진이 물었다.
그러자 요른은 잠시 머뭇거리다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미끼가 되어줄 수 있으신가요?”
뭐라는 거지, 이 엘프가?
* * *
“받아들이던가?”
다리엘이 책상에 발을 올리며 지나가듯 물었다.
“거부하지 못할 보상을 제시했으니 받아들이겠지.”
“거부하지 못할 보상?”
“백시우에 준하는 제국의 지원. 검 하나도 제대로 못 챙겨주는 시온 따위완 비교도 할 수 없는 자금이 쏟아질 거야.”
아그나가 자신있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다리엘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고작 그따위 걸로 그놈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아직 애송이야. 지원에 대한 목마름도 있으니, 지금보다 더 강해지려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어.”
“너는 검을 쓰는 놈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다리엘은 아그나의 뜻대로 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듯했다.
“그거야 두고 보면 알 테고. 준비는 어떻게 됐어?”
“서우진이 미끼 역할을 받아들인다는 전제하에. 아직 미흡하긴 하지만 대부분의 준비가 끝났다.
“놈들은 지금 서우진이 필요해. 반드시 미끼를 물 거야.”
“그 말에는 동의한다만.”
대공의 영역에서 대낮에 납치할 정도였다.
실패로 돌아가긴 했지만, 만약 다시 한번 그런 기회가 온다면 절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을 터.
“최소한 한 명은 더 잡아야 해.”
13사도 중 게랄드가 죽어 이제 12명만 남았다.
건드릴 수 없는 몇몇을 제외하곤 소재조차 파악할 수 없었으니, 이렇게라도 유인을 해서 숫자를 줄여놔야만 했다.
“그러다 그 녀석이 잘못되기라도 하면?”
다리엘이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하지만 아그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별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안타깝지만 상관없어. 우리에겐 백시우라는 걸출한 패가 또 있으니까.”
제국의 손으로 키운 정통 용사.
솔직히 그녀에게 백시우를 제외한 다른 놈들은 고기 방패나 다름없었다.
마왕을 쳐죽일 검 하나.
그것이면 충분했다.
아그나의 말에 다리엘이 혀를 찼다.
“너는 정말 미친X이다.”
그의 욕설에 아그나는 미소를 지었다.
“나도 알아.”
하지만 제국을 위해서라면.
그녀는 마왕보다 더한 악마가 될 수 있었다.
똑똑-
그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아무래도 서우진에 대한 소식인 듯했다.
부하 한 명이 아그나와 다리엘에게 예를 갖추고는,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왔다.
“어떻게 됐지?”
“그가 받아들였습니다.”
부하의 말에 아그나가 다리엘을 쳐다봤다.
‘봤지?’라는 뜻 같았다.
“우쭐대기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다리엘은 눈살을 찌푸렸다.
“알았으니 나가봐.”
승리한 표정으로 부하를 향해 말했는데, 그가 할 말이 있는지 우물쭈물했다.
“특이사항 있나?”
그게 아니라면 저런 태도를 보일 리가 없었기에 물었다.
“그게…….”
부하가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제국의 지원은 괜찮으니 필요 없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아그나의 표정이 구겨지고, 다리엘이 웃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