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12)
#111화.
누군가 물건을 훔친 것 같았다.
서우진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그곳을 쳐다봤다.
치안이 좋은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멈춰! 잡히면 죽여 버릴 거야! 아니, 안 죽일 테니까 멈추라고!”
시끌벅적한 소란이 일었다.
누군가 하나 나서서 상황을 해결할 법했는데도, 사람들은 실실- 웃으며 그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또 털렸나 보네.”
“벌써 며칠째지? 족히 한 달은 된 것 같은데.”
“하루도 안 쉬고 훔쳐 가는 걸 보면 리나르도 보통 놈은 아니야.”
“아미르가 바보인 거 아니고?”
푸하하- 하는 웃음소리가 터졌다.
‘리나르?’
도둑의 이름인 것 같았다.
“이 새끼야, 그건 진짜 안 된다고! 이미 계약까지 끝난 물건이야!”
“좀만 쓰고 돌려줄게!”
“이 미친놈아! 염소젖을 어떻게 좀만 쓰고 돌려줘!”
아미르라는 젊은 여자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리나르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결국 오늘도 못 잡았구만.”
사람들의 끌끌- 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거리가 정리되기 시작했다.
아까 들은 것처럼 꽤나 익숙한 일인 듯했다.
도둑질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웃는 모습이 신기하게 다가왔다.
“도둑을 안 잡아도 되나요?”
서우진이 옆에서 구경을 하고 있던 사람에게 물었다.
“응? 아, 외지 사람이구만.”
서우진의 옷을 본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심각한 일은 아니야. 하루에 한 번씩은 꼭 겪는 행사나 다름없는 일이니까.”
“…도둑질이요?”
“푸하하, 그렇지. 외지인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군. 사실 리나르와 아미르는 남매라네.”
그의 말에 서우진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니까 동생이 누나의 물건을 훔치고 있다는 말인가?
그것도 한 달 동안이나?
솔직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굳이 끼어들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다.
“리나르가 지금 시위 중이거든.”
“시위요?”
“수도에 올라가는 걸 허락해 달라는 시위라네. 용사가 되겠다나 뭐라나.”
남자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아카데미라는 곳에 가면 용사가 될 수 있다는데, 그게 우리 같은 사람에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덕분에 아미르만 골머리 썩는 중이지.”
서우진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순서가 반대다.
용사가 아카데미에 간 거지, 아카데미에 가서 용사가 된 것이 아니니까.
‘이 사람들은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 건가? 분명 용사 소환이라는 게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텐데.’
서우진의 의문은 금세 남자가 풀어주었다.
“어릴 적, 자기 전에 아미르가 해준 이야기들이 뇌리에 남아 있는 모양이야.”
그 말에 서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하자면 대충 너도 용사가 될 수 있단다, 따위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그게 소년의 꿈이 되었고, 이제 와선 아무리 설명해도 사춘기가 온 동생은 귀를 닫고 듣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고집을 부리는 걸 수도 있지.’
이 더운 도시를 벗어나 수도로 상경을 하고 싶다는 열망.
역시 수도를 향한 선망은 지구나 이곳이나 다를 바 없었다.
“아미르가 계속 막아서자 저렇게라도 골치를 썩여서라도 벗어나겠다는 건데. 뭐, 가능할 리가 없지.”
“감사합니다.”
대충 들을 건 다 들었다.
서우진은 그에게 고마움이 담긴 인사를 건네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작은 해프닝이었다.
조금 신기하고 재미있는.
서우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 * *
“리나르! 오늘은 염소젖이야?”
햇볕에 탄 까무잡잡한 피부의 소년이 리나르에게 다가왔다.
“조금 이따 갖다줘야 해.”
“그냥 우리가 마시면 안 돼?”
소년은 눈을 반짝이며 물었지만, 리나르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이건 계약이 되어 있는 거래. 우리가 마시면 누나가 곤란해져.”
자신의 뜻을 보여주기 위해 훔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짜로 곤란한 상황에 빠뜨리고 싶진 않았다.
아미르는 미우나 고우나 자신의 누나였으니까.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굽신거리는 건 보기 싫고.’
이 염소젖이 사라지면, 누나는 계약자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해야 할 것이다.
리나르는 그런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쯧, 하필이면 이걸 들고 와서.”
이미 계약이 되어 있는 줄 알았으면 다른 걸 훔쳤을 것이다.
집으로 돌아가면 뒤지게 맞는 건 똑같았겠지만.
“이래서 언제 돈을 모으나.”
리나르는 수도로 가기 위해 조금씩 돈을 모으는 중이었다.
동네 사람들의 작은 심부름을 해주고 용돈을 받거나, 누나 가게에서 훔친 물건을 팔아 푼돈을 챙겼다.
그렇게 모은 돈이 무려 2골드.
열세 살 꼬맹이가 갖고 있기엔 꽤나 큰 돈이었다.
“기차 티켓이 얼마라고 했지?”
“으응, 100골드였을거야.”
리나르의 입장에서는 턱이 빠질 정도의 거액이다.
이렇게 모아서는 몇 년이 지나도 기차를 타는 건 불가능했다.
“뭔가 특단의 방법이 필요한데.”
리나르가 골목길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나무 박스 위에 앉아 고민하자, 친구이자 부하인 아샤드가 슬쩍 이야기를 흘렸다.
“아까 여기로 오다가 들었는데.”
“어떤 걸?”
이 녀석은 싸움엔 젬병이었지만, 이런저런 소문을 주워듣는 솜씨는 제법이었다.
리나르가 눈을 반짝이며 쳐다보자, 아샤드가 신이 나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오마르 아저씨가 해준 얘긴데, 오늘 기차 1등석에서 내린 사람이 있는 모양이야.”
“1, 1등석?”
자신이 꿈도 꿀 수 없는 좌석이었다.
하지만 놀랄 만한 이야기는 뒤에 더 있었다.
“그 사람, 아무래도 수도에서 내려온 것 같아. 값비싸 보이는 옷이랑 검까지 차고 있다고 했어.”
“수도라고?”
리나르가 눈을 치켜뜨며 소리쳤다.
수도는 어린 소년에게 있어 꿈에서도 바라마지 않는 환상이었다.
그런 곳에서 온 사람이 있다는 말에 엉덩이를 들썩였다.
하지만 아샤드의 제지에 다시 앉을 수밖에 없었다.
“돈도 꽤 많아 보인대.”
“…돈.”
리나르는 자신의 친구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훔치자.”
관광객이나 상인들의 주머니를 터는 건 몇 번이나 해봤다.
누나의 가게에서도 물건을 훔쳐대는데, 생판 남이라고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그쪽을 더 선호하는 편이었다.
‘적어도 집에 가서 맞지는 않으니까.’
리나르는 미간을 찌푸리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수도에서 왔다면 정말 돈이 많을 거야. 그런 사람의 주머니를 털면, 시간을 많이 줄일 수 있어. 그런데 걸리면 어떡하지?’
동네 사람들과는 달리, 엉덩이 몇 대 맞는 걸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조금 전에 검을 차고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럼 더 위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샤드는 그리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딱 보니까 장식용 같다던데? 새하얀 게 화려하기만 하고. 실전에 사용하는 거라기보단, 자랑하려고 차고 다니는 거라고.”
아샤드는 오마르의 말을 찰떡같이 믿었다.
“그래?”
검사나 기사가 아니라면, 해볼 만했다.
둔한 어른은 절대 자신의 달리기를 따라올 수 없을 테니까.
거기다 외지인은 이곳의 지리를 잘 모른다.
‘나는 모든 골목길을 다 꿰고 있지.’
생각하면 할수록, 놓치기엔 아까운 기회 같았다.
결국 리나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털자.”
“잘 생각했어!”
아샤드가 환하게 웃으며 그의 결정을 반겼다.
“애들 몇 명 더 모아봐. 일단 돈주머니가 가장 큰 목표지만, 가능하면 검도 훔칠 거야.”
“값비싸 보인다고 했으니까 그걸 훔쳐서 팔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야!”
신이 난 아샤드가 방방 뛰었다.
‘10골드.’
리나르의 목표다.
100골드에 달하는 기차 티켓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그 돈을 자금으로 삼아 걸어서라도 수도에 갈 생각이었다.
“그만 뛰어다니고 애들 모아오라니까?”
마음이 조급해진 리나르가 아샤드를 재촉했다.
* * *
“음…….”
숙소를 본 서우진이 신음했다.
아카데미의 기숙사나 대공성의 응접실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그곳들은 제국에서도 보기 드물 정도로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장소였으니까.
그런 퀄리티는 바라지도 않았다.
이곳은 제국의 남부.
그리 크지 않은 자그마한 도시에 불과했으니까.
‘그런데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니냐?’
이곳에서 가장 좋은 여관이라고 해서 들어오긴 했는데…….
“이게 폐가지.”
한숨이 절로 나왔다.
커다란 금이 쫙- 가 있는 벽.
서우진 한 명이 눕기에도 버거워 보일 정도로 작은 침대.
청소는 제대로 하긴 한 건지, 천장 구석에 보이는 거미줄까지.
필요하다면 맨 땅에 누워 침낭 하나만 있어도 잠을 잘 수 있긴 하지만, 합당한 요금을 지불하고 이런 곳에서 자는 건 사양이었다.
‘벌써부터 아일린이 그립다.’
그녀가 곁에 있었다면 이런 구린 곳을 고르진 않았을 텐데.
눈살을 구긴 서우진이 돌아서 방을 나섰다.
“응? 손님, 왜 나오십니까?”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여관 주인이 연신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올라오다, 서우진을 발견하고는 물었다.
“…방이 너무.”
“아아, 까다로운 분이시네. 이 도시에서 저만한 방을 구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십니까?”
커다란 그의 몸이 계단을 막아섰다.
“하아-”
한숨이 나왔다.
아무래도 이상한 놈한테 걸린 것 같았다.
‘왠지 옛날 동대문에 온 것 같네.’
무서운 형들에게 갇혀 필요도 없는 옷을 강제로 사야만 했던 추억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때의 서우진과 지금의 서우진은 달랐다.
“뭐 하는 겁니까?”
눈매를 좁히며 물었다.
“제가 뭘요? 저는 그저 손님이 조금 더 방을 자세히 보실 수 있도록 안내해 드릴 생각입니다만.”
“비키시죠. 전 이런 방에서 못 잡니다.”
서우진이 단호하게 말하자, 웃고 있던 여관 주인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이것 참, 개시부터 재수 없게. 이봐 뜨내기, 내가 친절하게 대해주니까 우습게 보여? 어딜 구경만 하고 그냥 가? 가고 싶으면 수고비 정도는 챙겨아아아악!”
말하던 놈이 비명을 질러댔다.
서우진의 손가락이 그의 귀를 비틀고 있었다.
“입냄새가 너무 나서 도무지 듣고 있을 수가 없네. 이봐요, 아저씨. 그렇게 말하면 내가 쫄 줄 알았어?”
웃기지도 않는다.
“아아악! 자, 잠깐! 내 귀! 귀가 떨어진다!”
여관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자, 아래쪽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뭐야? 무슨 일이지?”
“저거 형님 비명소리 아니야?”
쿠당탕탕- 소리와 함께 몇 명이 계단 위로 뛰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이 새끼 죽여! 아니, 일단 이 귀부터 어떻게 해봐아아악!”
역시 평범한 여관은 아닌 듯했다.
하필 골라도 이런 곳을 골랐다는 생각에 짜증이 났다.
“너 이 새끼, 당장 그 손 못 놔?”
부하로 보이는 험상궂은 사내들이 서우진을 협박했다.
하지만 먹힐 리가 만무했다.
“그래, 이런 것도 신선하긴 하네.”
생각해 보면 그동안 너무 강한 놈들하고만 싸워왔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발산할 때도 필요하겠지.
서우진이 주먹을 말아 쥐었다.
* * *
끼이익-
여관 문이 열렸다.
방과는 달리 그럴듯하게 생긴 문이었다.
서우진은 주먹에 묻은 핏방울들을 대충 닦아내고는 속 시원한 얼굴로 여관을 빠져나왔다.
“어디 괜찮은 여관 없나?”
이런 곳 말고.
서우진이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리자, 옆에서 한 음성이 들려왔다.
“혹시 여관 찾으시나요?”
아직 변성기도 채 오지 않은 듯한 남자아이의 음성.
리나르였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