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14)
#113화.
솔직히 말하자면, 문을 박차고 들어온 자가 다르위시라는 사기꾼일 것이라 생각했다.
왠지 이 타이밍에 나타나 줘야 할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아니었다.
‘누구지?’
처음 보는 얼굴이다.
거친 행동과는 달리, 찰랑이는 금발에 잘생긴 얼굴.
햇빛이라고는 본 적도 없는 것처럼 새하얀 피부.
동네 깡패보다는 귀족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법한 청년이었다.
여관은 다시 적막에 휩싸였다.
안으로 들어온 청년이 껄렁거리는 걸음걸이로 휘적휘적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아무도 청년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경비대의 대머리 때와는 달리, 호기심이 아닌 두려움 때문인 것 같았다.
단 한 명.
대머리를 제외하면 말이다.
“라시드 님, 이곳은 어쩐 일이십니까?”
그는 정중하게, 하지만 불편하다는 태도로 그에게 물었다.
“응? 아, 모가담. 너는 여기 어쩐 일이지?”
라시드라 불린 청년의 입에서 자연스러운 하대가 나왔다.
역시 그의 신분은 범상찮은 것 같았다.
“공무 중이었습니다.”
“고생이 많네. 나는 그냥 누구 좀 찾으러 왔으니까 신경쓰지 말고 가서 일 봐.”
귀찮은 파리를 쫓듯 손을 휘저었다.
그러곤 찾고 있는 사람을 찾은 듯, 대머리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서우진 쪽이었다.
‘불길한데.’
팔자걸음으로 다가오는 라시드를 보며 서우진은 눈살을 찌푸렸다.
왠지 귀찮은 일에 휩싸일 것 같다는 강한 예감이 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쪽이 이번에 수도에서 왔다는 놈이야?”
초면에 놈이라니.
오만한 건지, 아니면 싸가지가 없는 건지 잘 모르겠다.
서우진은 대답하지 않고 라시드를 가만히 쳐다봤다.
그러자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대답해라, 미천한 놈아. 내가 묻잖아.”
한숨이 나왔다.
“맞다면? 뭐 어쩌게?”
오는 말이 곱기는커녕 저따위였으니, 서우진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고울 리가 없었다.
숫제 시비를 거는 말투로 놈을 도발했다.
효과는 굉장했다.
창-!
그가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빼 든 것이다.
은색의 예리하게 정련된 검.
병사들의 보급검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명품인 것 같았다.
“감히 그 더러운 혓바닥을 함부로 놀린 죄. 모가지를 잘라서 갚아라.”
얼씨구?
살기까지 띤다.
“라시드 님!”
뒤에서 대머리, 아니, 모가담이 다급히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청년은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방해받지 않겠다는 듯 그대로 다짜고짜 검을 휘둘렀다.
‘이거 미친놈이네.’
서우진은 피할 가치도 느끼지 못했다.
좋은 검이었지만, 실력이 뒷받침되지 못했다.
저런 검격으로는 서우진의 피부에 생채기도 내지 못한다.
헛웃음을 터트린 서우진이 손을 들었다.
터업-
그러곤 손가락으로 검날을 붙잡았다.
웬만한 기사들도 흉내내지 못할 기예였다.
“먼저 공격했으니까 지금부턴 정당방위지?”
서우진이 물었다.
라시드가 아닌, 그 뒤에서 눈을 부릅뜨고 있는 모가담을 향한 질문이었다.
“아니, 그게. 잠깐!”
당황과 경악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그를 무시하고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러곤 어? 어? 하고 있는 라시드의 얼굴을 향해 꽂아 넣었다.
빠아악-!
뼈가 부러지고 피부가 뭉개지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미, 미친!”
“튀어! 여기 있으면 잡혀간다!”
동시에 숨을 죽이고 있던 사람들이 다급히 여관을 빠져나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덕분에 여관 안에는 종업원과 리나르밖에 남지 않고 싹 비워졌다.
‘역시 대단한 가문의 자식인가 보네.’
사람들의 반응을 보니 알 만했다.
이 근방의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의 아들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서우진에게는 상관없는 일이긴 했지만 말이다.
‘오히려 잘됐어.’
어차피 서우진은 최대한 시선을 끌어야만 했다.
당초 계획은 야나그다르의 국경을 넘어 리마르탄에 도착하고 난 뒤에야 실행하려 했지만, 이렇게 된 거 여기서 시작을 해도 될 것 같았다.
“너, 너……!”
피를 줄줄 흘리며 주저앉은 라시드가 서우진을 향해 삿대질했다.
설마 자신이 얻어맞을 줄은 생각도 하지 못한 것일까?
그의 눈에는 두려움과 함께 분노가 가득해 보였다.
“한 대 맞은 거 가지고 뭘 그래? 검을 뽑았으면 자기 목 잘릴 각오도 했어야지.”
서우진은 그런 라시드를 차갑게 내려다보며, 휴지를 들어 피 묻은 손을 닦았다.
“그리고 아직 안 끝났어.”
바닥을 기며 서우진에게서 멀어지려 발버둥을 치고 있는 놈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그때였다.
“멈춰라.”
모가담이 앞으로 나서며 서우진을 제지했다.
“더 이상의 폭력은 용납할 수 없다.”
그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진짜 라시드의 얼굴을 짓뭉개 버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모가담은 서우진에게 ‘감히 이분이 누군 줄 알고!’ 따위의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난 분명 정당방위라고 말했는데?”
“라시드 님은 반항할 수 없는 상태다.”
“그래서 뭐? 더 때리면 과잉방어라고?”
서우진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렸다.
“그딴 말은 칼 뽑고 덤벼든 저놈한테 먼저 하지 그래?”
자신을 죽이려는 놈이 다쳤다고 더 때리면 안 된다니.
어디서 많이 본 상황 아닌가?
“라시드 님이 과했다는 건 알고 있다. 그 부분은 우리가 처리할 테니…….”
“이놈 귀족 같은데, 그게 가능하겠어?”
공식적인 신분이 존재하는 세계다.
고작 경비대 따위가 귀족의 죄를 물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당연하게도 모가담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의 직위로는 라시드를 체포하긴커녕, 지키지 못했다고 징계를 받을 상황이었으니까.
“잡아! 저 새끼 잡아서 끌고 가라고!”
뒤에서는 아직도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라시드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봤지? 저놈은 좀 더 맞아야 해.”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
지나가던 개미가 위협을 했다고 모조리 밟아 죽일 순 없는 일이었으니까.
그저 조금만 더 패는 걸로 족하다.
겸사겸사 소동도 좀 일으키고.
“그러니까 비켜.”
서우진이 한 발 앞으로 나서자, 모가담이 검에 손을 가져다 댔다.
“여기는 여기만의 법이 있다.”
막무가내로 검을 휘두른 라시드와는 달리, 그는 절대 쉽게 무기를 뽑지 않았다.
그저 경고에도 물러나지 않으면 공격하겠다는 뜻만 내보일 뿐이었다.
서우진은 가만히 그런 모가담을 쳐다보다 혀를 찼다.
“됐다. 알아서 해라.”
대머리를 상대로 힘을 쓰는 것도 마뜩잖았다.
첫인상과는 달리 그는 제대로 된 생각이 머리에 박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서우진이 자리로 돌아가서 앉자, 모가담은 경계 어린 시선을 돌리지 않고 라시드를 향해 다가갔다.
“괜찮으십니까?”
“저 새끼 잡으라니까, 이 개 같은 놈아! 감히 귀족의 몸에 손을 댄 대가가 뭔지 가르쳐 줘!”
손, 발을 자르고 혓바닥을 뽑으라는 둥 개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서우진은 그 말을 싹 무시하고는 종업원, 유란을 불렀다.
한쪽에서 겁을 먹고 있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아까 이 녀석이 시킨 흑맥주. 지금 가져다주세요.”
“네, 네.”
얼이 빠진 듯, 빠르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곧장 주방으로 향했다.
“너는 왜 도망 안 갔냐?”
서우진은 아무런 말도 없이 가만히 앉아 있는 리나르에게 물었다.
“그게…….”
눈알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어,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눈을 슬쩍 피하며 대답하는 소년의 모습에 서우진이 픽- 웃었다.
“여기 맥주 나왔습니다…….”
조금 전에 보여주었던 활발한 모습이 사라진 유란이, 흑맥주 잔을 조심스레 내려놨다.
“고맙습니다.”
서우진은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는 한 모금 가득 입에 물었다.
‘역시 맛있어.’
입안을 맴도는 맥주향에 서우진이 미소를 지었다.
라시드에 대한 일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인 것 같았다.
“저기, 아저씨.”
그때 라시드가 말을 걸어왔다.
“말해.”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그러고 보니 아까 무슨 말을 하다 라시드가 들어오는 바람에 멈추었다.
슬쩍 곁눈질해서 모가담을 쳐다봤다.
그는 아직도 소리를 지르고 있는 라시드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맘 같아선 이 자리에서 체포하고 싶다는 표정이었지만, 상대가 귀족인지라 억지로 참고 있는 듯했다.
“부탁이 뭔데?”
시선을 다시 돌린 서우진이 물었다.
“혹시 수도로 돌아가실 때, 저도 데려가 주시면 안 돼요?”
턱도 없는 소리다.
그럴 이유도 없을뿐더러, 리나르가 수도로 간다고 해서 꿈을 이루는 것은 불가능했으니까.
괜히 데리고 갔다가 짐덩이 하나를 더 맡는 건 사양이었다.
“응, 안 돼.”
서우진이 고개를 저었다.
“왜요? 데려가 주기만 해도 돼요. 그다음엔 제가 다 알아서 할게요!”
열몇 살밖에 되지 않는 녀석이 잘도 살겠다.
수도로 가봐야 여기처럼 누군가의 돈이나 물건을 훔치지 않으면 다행이다.
그나마 이곳에선 딱히 처벌하진 않지만, 수도는 다를 것이다.
뭔가를 훔치다 걸리면 큰 처벌을 받을 게 분명했다.
서우진은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흑맥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너 이 새끼! 여기서 꼼짝 말고 기다려라! 아주 대가리를 잘라서 박제를 해줄 테니까!”
라시드가 결국 모가담에 의해 끌려 나가는 장면이 보였다.
그를 향해 가운뎃손가락을 들어올려 보여줬다.
‘그래그래, 친구들 많이 데리고 와라.’
그래야 자신에게 이목이 더욱 집중될 테니 말이다.
“제발요, 네?”
“안 돼. 그리고 너 이제 그만 가라. 누나가 걱정할라.”
서우진은 단호하게 말한 뒤, 더는 말을 꺼내지 말라는 듯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 뒤로도 리나르는 계속 졸라댔다.
심지어는 바짓가랑이를 잡고 흔들어대기도 했다.
하지만 서우진이 한 마디의 대꾸도 하지 않자, 제풀에 지쳐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이며 시무룩한 표정으로 여관을 나갔다.
그 모습이 조금 안쓰럽긴 했지만, 그렇다고 충동적으로 들어줄 만한 부탁은 아니었다.
혼자 남은 여관은 조용했다.
그저 서우진이 드로이탄 구이와 흑맥주를 마시는 소리만 울려 퍼질 뿐이었다.
한참 동안이나 자리에 앉아 식도락을 즐기고는 유란을 불렀다.
“…다 드셨어요?”
“네, 정말 잘 먹었습니다.”
서우진이 안심하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방은 준비가 됐습니까?”
“아, 네. 2층에 있는 3호로 가시면 될 거예요. 청소는 오전에 미리 해뒀으니 깨끗해요. 목욕물은 잠시 후에 가져다 드릴게요.”
“고맙습니다. 얼마죠?”
의자에서 일어난 서우진이 품에 손을 넣으며 물었다.
“식사와 숙박, 목욕물까지 합쳐서 300실버예요.”
천 실버가 1골드쯤 되니.
‘대충 3만 원 정도인가?’
가격도 착해서 마음에 들었다.
“여기 있…….”
돈주머니를 꺼내려던 서우진의 얼굴이 굳어졌다.
“손님?”
그 표정에 다시 겁을 먹은 유란이 떨리는 음성으로 불렀지만, 서우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없어. 돈주머니가 없어.’
분명 코트 안에 넣어뒀는데,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순간 머릿속으로 뭔가가 스쳐 지나갔다.
자신을 데려가 달라며 바지를 붙잡고 조르던 리나르.
누나의 물건을 훔쳐서 달아나던 리나르.
돈주머니에 들어 있는 돈을 보고 놀란 리나르.
“…이 새끼가?”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