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2)
#11화.
심장이 철렁한다는 말이 이런 느낌일까?
서우진은 기사의 질문에 뭔가가 쿵- 하고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야, D급 용사, 거기에 고작 2레벨밖에 안 된 애송이가 새끼 트랑가를 상대로 이렇게 버틸 줄은 몰랐네.”
기사는 검을 집어넣고는 서우진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등급이랑은 관계없이 원래 검에 재능이 있는 건가? 너 직업 적성이 ‘검병’이라고 그랬지?”
‘까, 깜짝이야.’
자신을 칭찬하기 위해 그냥 한 말이라는 걸 이제 깨달았다.
서우진은 굳어진 표정을 풀며 한숨을 내쉬었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뭘 그런 거 가지고. 어차피 내가 아니라도 아일린이 나섰을 텐데.”
서우진이 뒤를 돌아보니, 아일린이 검을 든 채로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래도 자신을 구하기 위해 움직이려던 것 같은데, 눈앞의 기사가 조금 더 빨랐던 듯싶었다.
“제가 할 수 있었습니다, 제라드 경.”
“응? 나도 알아, 알아. 우리 아일린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는 거.”
“제 임무를 그렇게 마음대로…….”
“그건 그렇다 치고. 용사라 그런가? 확실히 성장이 빠르긴 빠르네.”
장난기 가득한 음성이 아일린의 항의를 가볍게 묵살했다.
“아, 내 소개가 늦었군. 나는 제라드라고 해. 보다시피 이 녀석보다는 높은 위치에 있지. 이렇게 대화하는 건 처음이지?”
제라드는 서우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 모습에 아일린을 쳐다보자,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테스테론 경과 같은 상급 기사이십니다.”
아일린의 첨언에 서우진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손을 마주 잡았다.
‘상급 기사들은 원래 다 성격들이 꼬인 건가? 아니면 저런 성격 이어야 상급 기사가 될 수 있는 건가?’
둘 중 뭐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서우진이 본 놈들은 죄다 이상했다.
“음음, 확실히 검을 오래 잡은 손은 아니네.”
제라드는 굳은살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서우진의 손바닥에 고개를 끄덕였다.
“뭐, 뭐 하시는 겁니까?”
기분 나쁜 느낌에 손을 빼려 했지만, 서우진이 상급 기사의 힘을 이겨낼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아무리 용을 써보아도 저항은커녕 힘만 더 들 뿐이었다.
“숟가락 하나 들 힘도 남아 있지 않을 텐데, 용케 견디는 것도 그렇고. 용사는 다 이런가?”
다행히 의심의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것보단 호기심이 가득해 보였다.
‘생긴 건 영락없는 아저씨인데…….’
머리도 반쯤 벗겨진 제라드는 똥배만 안 나왔을 뿐, 여느 아저씨의 외모와 똑같았다.
그런데 행동은 또 장난꾸러기 꼬맹이 같았으니, 도무지 이 동네는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이들이 많았다.
“그동안 소문만 듣고 별로 좋게 생각하진 않았는데, 너 꽤 마음에 들잖아?”
제라드는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서우진의 손을 놓았다.
“뭐, 테스테론 놈이 하는 말이 다 그렇지. 안 그래, 아일린?”
뒤를 돌아보며 물었지만, 아일린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래. 무슨 대답을 하든 갈굼당하는 건 매한가지니, 조용히 있는 게 낫지.’
마치 한국 군대의 모습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거기나 여기나. 군대는 다 똑같구나.’
기사들도 일종의 군인이나 다름없었으니, 서우진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여간 저 녀석은 재미가 없다니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 아일린을 보며 혀를 찬 제라드는 다시 서우진을 향해 관심을 보였다.
“검술을 따로 배운 적은 있냐?”
“없습니다만.”
따로 검술이라 불릴 만한 것은 배운 적이 없었다.
그럴 시간도, 가르쳐 주는 이도 없었으니까.
그저 가끔 틈틈이 아일린이 자세를 봐주는 정도였다.
그마저도 깊이 있는 가르침은 아니었고, 기본 중 기본일 뿐이었지만 말이다.
“그런데도 스노울을 사냥하고 새끼 트랑가랑 맞짱 뜰 정도란 말이지.”
“맞짱이라기엔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는데요?”
마지막 찌르기를 제외하면 제대로 된 공격은 해보지도 못했다.
그 찌르기마저도 결국은 새끼 트랑가의 미간에 생채기를 내는 것에 그쳤고.
그러니 전투라 부르기도 민망한 싸움이었다.
“아니아니. 지금 병사들 몇 놈 데려다가 싸워보라고 해도 너만큼 버티는 애들은 드물 거야. 기껏해야 백인대장 놈들이나 좀 비슷할까?”
서우진이 눈을 끔뻑였다.
고작 2레벨이다.
그런데 벌써 백인대장 급의 실력을 갖췄다고?
“물론 놈들이 너보단 좀 더 노련하겠지, 그동안 먹은 짬밥이 있으니.”
그래도 제라드가 본 서우진의 실력은 그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애들한테 듣기론 등급이 낮을수록 성장 폭이 좁다고 했는데. 너 D급이라며?”
‘그런데 어떻게 이 정도나 달라지지?’라며 혼자 중얼거리는 제라드의 모습에, 서우진은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만 같았다.
실제론 너무 추워서 흘리고 싶어도 그러지 못했지만 말이다.
“다른 놈들은 더 빨리 강해진다는 뜻인데……. 어쩐지 제국에 있다는 용사는 벌써 오러를 다룬다더니.”
서우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오러가 뭡니까?”
대충 판타지 소설 같은 곳에서 본 것 같긴 하다.
하지만 그것과 이것이 같은 것인지는 아직 알 수가 없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꽤나 대단한 것 같았다.
기사인 제라드가 저런 표정을 지을 정도이니 말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마력검이지.”
“…디테일하게 말하자면요?”
“어느 경지에 도달하면, 검으로 흘러들어 간 마력이 그 어떤 것도 베어버릴 수 있는 파괴적인 형태를 취하게 돼.”
“그걸 우리는 오러라고 불러요.”
제라드의 말을 아일린이 이어받았다.
“물론 그 경지라는 것이 한없이 높다는 게 문제이긴 해. 시온에서도 오러를 다룰 수 있는 기사는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적으니까.”
“그중 한 명이?”
“그래. 영주님이지.”
설명을 들은 서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내가 아는 오러랑 같은 거란 얘기지?’
완벽하게 이해했다.
그러면서도 놀랐다.
벌써 그런 기술을 다룰 수 있는 용사가 등장했다니…….
자기는 이제 고작 1레벨을 올렸을 뿐인데 말이다.
‘제국이면 그 녀석인가?’
처음 소환되었을 때 봤던 잘생긴 놈.
직업 적성도 SSS급의 어쩌고였던 것 같았는데, 그날은 정신이 없어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래도 가장 높은 등급을 받은 용사였으니, 그만큼 빨리 성장하는 것 같았다.
‘누군 이렇게 개고생을 하는데…….’
제국이라는 거대한 국가 아래에서 버스를 타며 성장하는 그놈이 눈물 나게 부러웠다.
속으로 몰래 한숨을 내쉬고 있는데, 이번에도 아일린은 그것을 눈치챘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 시온은 기사를 그렇게 편한 방법으로 육성하지 않아요.”
‘오늘 흘린 땀 한 방울이, 내일 흘릴 피 한 방울’ 따위의 표어를 내걸고 훈련하는 놈들이니 오죽할까.
서우진은 기대도 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쿠우웅-!
갑작스러운 진동과 함께 조금 떨어진 곳에서 눈 기둥이 치솟아 오르는 것이 보였다.
“뭐, 뭡니까?”
서우진이 당황하며 아일린을 향해 물어보다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표정 역시 딱딱하게 굳어 있었기 때문이다.
“제라드 경.”
“난 먼저 간다. 넌 이 녀석 챙겨서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있어라.”
“하지만…….”
“영주님께서 네게 내린 명령이 뭐였지?”
아일린은 잠시 멈칫- 했지만, 이내 수긍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래, 그럼 조금 이따 보자고.”
제라드는 서우진에게는 인사 한 마디도 건네지 않고, 그대로 눈 기둥이 치솟아 오른 곳을 향해 달려갔다.
방금 전까지 장난기 가득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잔뜩 긴장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상급 기사인 제라드가 보여준 행동에 서우진은 다시금 불안감이 차올랐다.
“저게 대체 뭡니까?”
드레이카스도 거대했다.
그리고 트랑가 역시 커다란 놈이었다.
하지만 단연코 저 눈 기둥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30미터는 족히 되겠는데?’
대체 무엇이 저런 미친 크기의 눈 기둥을 만들어낼 수 있단 말인가?
“얼음 벌레.”
“……벌레요?”
“북방의 대지 밑을 기어 다니는 대형 몬스터예요. 크기는 천차만별이지만, 저 녀석은 특히 더 거대하죠.”
아일린은 저 몬스터에 대해 상당히 잘 알고 있는 듯, 설명을 해주었다.
“놈이 좋아하는 먹이는 트랑가. 그중에서도 새끼를 가장 좋아해요. 그래서 이 시기가 되면 항상 트랑가의 서식지에 출몰해요.”
그리고 매년, 수많은 전사자를 만들어내는 장본인이기도 했다.
“동료 기사 중에서도 놈과 싸우다 전사한 사람들이 몇 명이나 있죠.”
아일린이 입술을 짓씹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저곳을 향해 달려가 기사단과 함께 전투를 벌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한 표정이었다.
“그런데 아직까지 살아 있다는 얘기는……?”
“항상 토벌에 실패했어요. 놈은 자신이 조금이라도 불리해진다 싶으면 곧바로 도망을 쳤으니까요.”
반 슬레인조차도 도망가는 놈을 잡지 못했다.
“그럼 위험한 거 아닙니까?”
“아까 기사들은 뭐 하고 병사들만 싸우냐고 물어보려고 했죠?”
그랬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비효율적이고 비상식적인 일이었으니까.
“그에 대한 대답을 이제 해줄 수 있을 것 같군요.”
“영주님과 푸른 방패 기사단은 저놈을 기다리고 있었어요.”
* * *
“영주님!”
“나도 봐서 알고 있다네.”
병사들과 트랑가의 전투 현장을 지켜보고 있던 반 슬레인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테스테론.”
“하명하십시오.”
그의 뒤쪽에서 대기 중이던 테스테론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기사 한 명을 불러 트랑가 토벌에 차질이 없게 하게.”
“이미 조치를 취해두었습니다.”
“그래그래.”
반 슬레인은 만족한 듯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기사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올해도 여지없이 나타났구먼.”
“질리지도 않나 봅니다.”
여유로운 반 슬레인의 어조에 기사들은 긴장한 내색을 지우고 웃음을 터트렸다.
“매년 연례행사이긴 하네만, 그것도 이제 슬슬 지겹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이제 그만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웃는 와중에도 기사들의 눈동자는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래서 올해로 끝을 보려 하네.”
스르릉-
매시브 가디언의 사령관을 상징하는 성검 ‘테레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서우진에게 선물한 것과는 정반대로, 이 얼어붙은 북방의 모습을 한데 담은 듯한 순백의 검이었다.
“가지, 그간 저놈에게 희생당한 동료들의 넋을 위로하러.”
푸른 바람이 새하얀 대지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