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20)
119화.
서우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느껴지는 마력.
소름이 끼칠 정도로 전율적인 그 힘의 크기에 손끝이 떨려올 지경이었다.
‘레이나? 아니… 다르다.’
그녀의 끈적끈적한 마기와는 종류가 달랐다.
‘광기.’
순수하게 미쳐 날뛰는 광기의 마력이었다.
“이, 이게 무슨……!”
모히아딘은 폭발과 함께 느껴지는 거대한 마력에 혼비백산했다.
“아무래도 놈들의 공격이 시작된 모양입니다.”
서우진은 애써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
‘젠장, 리나르는 제대로 출발했는지 모르겠네.’
녀석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괜히 공격에 휩쓸리지 않았길 바랄 뿐이었다.
“후우-”
서우진은 숨을 깊게 내뱉으며 ‘룬 데아’를 뽑았다.
“자작님은 일단 대피하시는 게 좋겠네요.”
제대로 된 대피가 이루어지려면 모히아딘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럼 자네는?”
검을 뽑아 든 모습을 보고 짐작한 듯한 모습이었다.
“저는 공격을 막아야죠.”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솔직히 느껴지는 마력의 총량만 보면, 게랄드나 레이나에 결코 뒤떨어지는 놈이 아니다.
만약 그 정도의 수준이라면 혼자만의 힘으론 막아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막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나서야만 했다.
‘내 실수로 벌어진 일이니까.’
누군가 수습해야 한다면, 그건 자신이었다.
“기사들을 지원해 주겠네.”
“괜찮습니다.”
모히아딘이 제안했지만, 서우진은 고개를 저었다.
솔직히 원숭이의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중급 기사의 힘 정도로는, 저 힘의 무게에 짓눌려 제대로 된 걸음도 떼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것은 도움이 아닌, 방해밖에 되지 않는다.
차라리 서우진 홀로 나서는 편이 훨씬 더 막아낼 수 있는 가능성이 컸다.
“기사들은 병사와 함께 시민들의 대피를 돕도록 해주세요. 그 편이 더 나을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걸음을 옮겼다.
더는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첫 공격 이후로는 잠잠 했지만, 언제 다시 시작될지 모른다.
그전에 나가서 최대한 피해를 줄여야만 했다.
‘신속’.
서우진의 몸이 둥실- 떠오르는 듯한 착시와 함께, 빛살처럼 공간을 질주했다.
난데없는 바람이 휘몰아치자, 우왕좌왕하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넘어지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서우진은 멈추지 않았다.
‘저긴가?’
굳이 찾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동쪽 성벽이 통째로 날아가고, 그 자리를 붉은 화염의 벽이 대신 자리해 있었으니 말이다.
서우진은 비명을 질러대는 사람들 사이로 스쳐 지나갔다.
대피하는 이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지만, 육체의 컨트롤 능력이 극에 달했기에 속도를 유지한 채 이동하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10초? 20초?
영주성에서 성벽에 도달하기까진, 아무리 길어도 1분을 넘기지 않은 듯했다.
덜컥- 하며 제자리에 멈춰선 서우진은 대기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화염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단순한 불이 아니야.’
마치 일부러 영역을 조절한 듯한.
마력이 듬뿍 담겨 있는 화염이었다.
새까맣게 타버린 병사들의 시체들이 지처에 널려 있었다.
눈에 보이는 수만 해도 수십 구.
서우진은 그들을 향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죽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었는데.’
그의 어깨에 다시금 생명이 더해졌다.
병사들을 향해 죄송한 마음을 담아 명복을 빌어준 서우진이 땅을 박찼다.
탓-
앞을 향해 달려가며 ‘룬 데아’를 휘둘렀다.
촤아아아악-!
불길을 구성하던 마력이 가닥가닥 잘려 나가며, 사람 한 명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틈이 만들어졌다.
망설이지 않고 그곳을 향해 몸을 던졌다.
화르륵-!
불길이 몸을 태우려 덤벼들었지만, 대공이 준 코트의 방호력을 뚫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어마어마한 열기가 느껴지는 건, 역시 이 불길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듯했다.
5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화염의 길을 통과하니, 생각지도 못한 공격의 주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미친.”
칠흑을 닮은 수백, 수천 개의 비늘.
끝도 없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심연과 닮은 눈동자.
한 번의 휘두름에 폭풍을 불러올 것 같은 날개.
그리고…
수십 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대한 육체.
마치 신이 직접 조각한 것같이 아름답고 유려한 거체는, 그 자체만으로도 파괴적이었다.
‘드래곤.’
그중에서도 여룡(驪龍)이라 불리는 검은 용이었다.
제이로닌의 몬스터 도감에도 적혀 있는 존재.
‘뭐라더라?’
마왕의 강림을 알리는 거대한 뿔피리라고 했던가?
게랄드와 레이나가 마왕의 추종자라면, 눈앞의 여룡은 그에 속한 존재다.
보통이라면 이런 곳에 등장할 놈이 아닌데…….
‘젠장. 마법의 효과가 좋아도 너무 좋았나 본데.’
마왕의 강림이 때에 이르러서야 잠에서 깼을 녀석이 이렇게 버젓이 나타나다니.
여룡은 기다란 목을 오연히 쳐든 채, 성벽 너머의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발밑의 서우진은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명백한 무시를 당하고 있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이 상태가 마음에 들었다.
놈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재앙이 시작될 테니 말이다.
‘어떻게 할까?’
‘셀레스티얼 윙’은 사용할 수 없다.
만약 사용하더라도, 그것은 최후의 최후에나 고려할 사항이었다.
만약 ‘셀레스티얼 윙’을 사용했음에도 이기지 못한다면?
전력을 다했을 경우, 리미트는 고작 3분이다.
그 이후엔 죽음이 눈앞에 아른거릴 정도의 반동이 찾아온다.
그 말은 곧, 이 도시도 3분 후에는 끝장난다는 뜻이었다.
수만의 목숨이 걸린 일에 도박을 할 순 없었다.
지금 서우진이 해야 할 일은 여룡을 무찌르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버는 것이다.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 것 같기도 했고.
“후우-”
서우진은 다시 한번 심호흡을 했다.
등뒤에서 느껴지는 뜨거운 열감에 머릿속도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여룡의 고개가 살짝 밑을 향했다.
심연을 들여다보았다.
서우진은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마력이라면 나도 어디 가서 밀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여룡은 그 격이 달랐다.
끝을 알 수 없는 마력.
무한(無限).
서우진은 그 압박감에 폐가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다만, 이상한 것은 마왕의 권속이라기엔 한 점의 마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서우진은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가긍한 자여.]여룡이 서우진을 향해 말을 걸었다.
대기를 거쳐 귀로 들리는 것이 아닌, 머릿속을 울리는 듯한 음성이었다.
서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룬 데아’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가긍?’
가엽다는 뜻인가?
서우진이 말뜻을 고민하고 있을 때, 여룡은 말을 이었다.
[의미 없이 스러져 기억에서 사라질 자여. 그대는 어이하여…….]뒷말은 들리지 않는다.
정신이 아찔해져서일까?
아니면 인지할 수 없는 차원의 언어이기 때문일까?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은데 도무지 들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음인가.]왠지 그 음성에는 아쉬움이 깃들어 있는 것 같았다.
‘이거 잘하면?’
다른 마수나 권속과는 달리, 대화가 통하는 존재였다.
잘 만하면 싸움을 하지 않고 이 상황을 끝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것이 착각이라는 걸 깨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견디어라. 그리고 네 존재를 증명하라. 그것이 인과(因果)의 시작일지니.]심연이 붉게 물든다.
‘그게 무슨!’
[가치가 없다면 끝을 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여룡의 입이 벌어졌다.
동굴과도 같은 목구멍에서 불꽃이 튕기는 것이 보인다.
‘용의 숨결!’
예전에 임태은이 부리던 드래곤의 입에서 뿜어지는 걸 본 적이 있었다.
손바닥보다 조금 큰 녀석이었지만, 그 파괴력은 용사들 중에서도 수위에 이를 정도였다.
그런데 그 수천 배에 달하는 크기의 여룡에게서 숨결이 뱉어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서우진이 눈을 부릅뜨고 있는 사이, 숨결이 입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상상을 초월하는 초고온에 대기가 순식간에 끓어오르며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일렁이는 시야를 뚫고 붉은 광선이 쏟아진다.
‘못 막아.’
서우진은 냉정하게 판단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어떤 스킬로도 저건 막지 못한다.
혹시 ‘지고화’라면 상쇄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지금은 불가능하다.
그만큼 여룡의 숨결은 고차원적이고 파괴적이었다.
‘젠장!’
하지만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서우진에게는 막을 능력이 없었지만, 아이템은 있었으니까.
‘아이기스’.
마공이 선물해 준 반지였다.
하루 한 번, 모든 종류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방패를 소환하는 마법이 부여되어 있었고.
‘고룡 급의 숨결도 막아낼 수 있다고 했었지.’
서우진은 푸른색의 반지에 마력을 집중하며 입을 열었다.
“아이기스.”
1초를 100번으로 쪼갠 시간.
제대로 된 인식도 할 수 없는 그 짧은 순간 속에, 마법이 발동됐다.
서우진의 눈앞에 황금색의 마법진이 그려졌다.
온갖 화려하고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가득한 마법진은, 한 겹, 두 겹 그 수를 늘리더니…….
마침내 총 열 겹의 대마법진(大魔法陣)으로 화했다.
—!!!!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너무도 큰 소리였기에 듣지 못한 것일 수도 있었다.
서우진은 귀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오는 것을 느끼며 정면을 직시했다.
여룡의 숨결과 맞닿은 황금색의 마법진은 점점 더 큰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상을 파괴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던 거대한 힘이 열 겹의 마법진에 휘감겨 소멸하고 있었다.
‘아…….’
경이로운 광경에 서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넋을 놓았다.
아름답다 못해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순 없었다.
서우진은 ‘룬 데아’를 단단히 붙잡았다.
여룡의 공격이 끝남과 동시에 일격을 날리기 위함이었다.
물론 먹히지는 않겠지만, 자신에게 시선을 돌리는 것이면 족하다.
‘정면에서 맞서 싸울 순 없어.’
이미 알고 있긴 했지만, 숨결을 보니 확신할 수 있었다.
싸우면 죽는다.
감춰둔 스킬들을 모조리 써도 승리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그렇다고 안 싸울 순 없지.’
최대한 도망을 다니며 도시에서 멀어져야 한다.
그렇게 시간을 끌다 보면 분명 지원이 올 것이다.
리나르가 이제 떠났으니, 서두른다면 리마르탄에 닿기까지 3일.
소식이 전해진 뒤, 검공과 암공이 다시 이곳까지 오기까지 최소한…….
‘4일? 5일 정도일까? 중간에 일이 조금 틀어진다면 일주일일지도 모르고.’
자신이 여룡을 막아서야 할 시간을 떠올린 서우진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일주일이라니.
턱도 없는 시간이었다.
여룡을 막을 수 있는지는 둘째 치고, 그동안 싸움을 지속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해야지.’
적어도 도시의 시민들이 안전하게 피할 수 있을 때까지 만이라도.
숨결이 멎고, ‘아이기스’의 마법진도 사라졌다.
동시에 서우진이 땅을 박차, 여룡을 향해 쇄도했다.
‘룬 데아’에는 ‘지고화’가 스며든 검은 오러가 일렁이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