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29)
128화.
“얘기 들었어?”
뭔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인지, 성유라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백시우에게 물었다.
“무슨 얘기?”
“그 D급 아저씨 말이야.”
서우진의 이름이 나오자 백시우의 표정이 굳어졌다.
너무도 작은 변화에 성유라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지만, 그는 명백히 서우진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 사람이 왜?”
백시우는 별다른 관심이 없는 척하며 물었다.
“또 휴가를 갔다지 뭐야?”
성유라는 어이가 없다는 듯 손부채를 부치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뭐, 놀고 싶지 않아서 휴가를 안 내는 줄 아나. 진짜 너무하지 않아?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 말이야.”
-마왕을 막아낼 수 있는 힘을 키운다.
성유라의 지상최대의 과제는 바로 그것이었다.
사명감 때문이 아니었다.
그 이후에 대가로 받을 것들이 더 중요했다.
부와 명성, 그리고 힘.
그것들을 가지고 지구로 돌아가 남들보다 우위에 선 삶을 사는 것 말이다.
그것을 위해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강해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서우진이 계속해서 휴가를 써서 밖으로 나도니 배알이 꼬였다.
“할 일이 있나 보지.”
백시우는 그런 친구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 아저씨가 여기서 할 일이 뭐가 있겠어? 기껏해야 밖에 나가서 술이나 마시겠지.”
성유라의 생각은 딱히 틀리지 않았다.
용사가 휴가를 받아서 나가봐야 노는 것 외에 딱히 할 일이 있을 리가 없었다.
아카데미 밖에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신경쓸 일은 아니야.”
백시우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을 하도록 노력했다.
요즘 들어 서우진만 떠올리면 가슴이 답답해지며 짜증이 치솟았다.
때문에 최대한 신경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성유라 때문에 그른 듯했다.
“어떻게 신경을 안 쓰냐? 계속 거슬리는데. 넌 아무렇지도 않아?”
성유라는 슬쩍 백시우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뭐가.”
“아니, 요즘 그 아저씨 엄청 강해졌잖아. 아무리 우연이라지만 너랑 싸워서 이기기도 했고.”
백시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반사적으로 지지 않았다고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진 게 사실이니까.’
분명 자신이 더 강하다고 생각했다.
서우진이 등급과 레벨에 맞지 않는 실력을 지니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그런데도 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SSS급 ‘검신’이었으니까.
제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서우진은 D급 ‘검병’에 북방의 작은 왕국 시온이 지원국이다.
모든 면에서 자신이 월등히 뛰어났다.
그러니 자신이 있을 만했다.
‘하지만 졌지.’
그 사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려고 했었다.
그저 서우진이 자신보다 더욱 노력했을 뿐이라고.
지금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고.
그럼 언젠간 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했다.
서우진에 대한 열등감은 점점 심해졌고, 지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리고 말았다.
“자존심 상해?”
“적당히 해.”
백시우의 말투는 어느새 싸늘해져 있었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성유라는 오히려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신경이 쓰이긴 하나 보네. 너 그런 표정 처음 봐.”
“내 표정이 어떻…….”
말을 하던 백시우가 입을 다물었다.
딱딱하게 굳어진 자신의 표정이 느껴진 것이다.
“너한테도 열등감이라는 게 있었구나?”
비꼬는 것일까?
아니면 친구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게 즐거운 것일까?
성유라가 빙굿- 웃었다.
“그런 거 아니야.”
“확신해? 정말 아무렇지도 않다고? 그런 것치고는 네 태도가 진짜 이상한 거 알지?”
뭐가 이상하다는 건지 모르겠다.
자신은 언제나 평소대로 침착하게 행동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뭐, 내가 착각한 거면 미안하고.”
성유라가 어깨를 으쓱였지만, 진심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다.
“그런데 만약 정말로 그 아저씨한테 열등감을 지닌 거라면… 조금 실망인데.”
백시우는 그제야 자신의 친구가 왜 자꾸 서우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지 알 수 있었다.
‘이간질을 하고 있어.’
성유라의 뜻은 명확했다.
자꾸만 거슬리는 서우진과 자신의 사이를 갈라놓아, 어떻게든 처리하고 싶다는 것.
‘예전에도 자주 써먹은 방법이었지.’
평소였다면 절대 넘어가지 않았을 얄팍한 수였다.
그런 악의적인 뜻에 동조해 줄 만큼 백시우의 인성에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서우진에 대한 불편함이 적개심으로 변해가는 것을 스스로도 느꼈다.
고작 성유라의 도발 몇 마디만으로.
백시우는 이래서는 안 된다며 마음을 다잡으려고 했지만, 그에게 깃든 마기는 그리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한번 증명해 봐.”
무엇을 증명하냐고는 묻지 않았다.
그걸 물었다간 정말로 늪에서 빠져나갈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성유라는 그러든 말든, 말을 이었다.
“네가 그 아저씨보다 뛰어나다는 걸 말이야. 너라면 할 수 있지? 무려 SSS급인데 고작 D급한테 질 순 없잖아. 우연으로라도.”
헛소리는 그만하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 것에 신경쓸 시간에 레벨이나 더 올리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백시우의 입 밖으로 나온 것은 생각과는 정반대의 말이었다.
“나는 안 져. 원한다면 보여줄게, 내가 얼마나 강한지.”
그 말을 들은 성유라의 미소가 짙어졌다.
섬뜩할 정도로 기괴한 미소였다.
* * *
“이, 이게 1등석?”
리나르의 눈이 더는 커질 수 없을 정도로 부릅떠졌다.
꿈에서도 바라마지 않았던 수도로 올라간다는 것도 믿겨지지 않는데, 무려 1등석을 타고 가게 되었으니…….
놀라서 까무러치지 않는 게 다행일 지경이었다.
“조용히 해.”
서우진이 그런 리나르에게 주의를 주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죄, 죄송합니다.”
리나르는 입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을 하며 서우진의 뒤를 따라 1등석 안으로 들어왔다.
푹신푹신한 소파와 고급스럽기 그지없는 인테리어.
모히아딘의 성에서도 보지 못한 화려함이 가득했다.
객실의 구석구석까지 훑으며 구경하는 리나르의 모습에, 서우진은 새로운 사실 하나를 깨달을 수 있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시끄러울 수가 있구나.’
저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었다.
정신이 사나워진 서우진은 한숨을 내쉬며 리나르를 불러 세워 소파를 가리켰다.
“도착할 때까지 가만히 앉아서 가.”
“넵, 알겠습니다!”
마치 순한 양이 된 것처럼, 힘차게 대답하고는 소파에 앉는다.
‘편하네.’
서우진은 말 잘 듣는 리나르를 보며 속으로 웃었다.
소년의 수도행은 생각보다 쉽게 허락을 받았다.
아미르가 전혀 반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도시를 구한 영웅이 직접 데리고 가서 키워주겠다는데, 그것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애초부터 수도로 보낼 생각이었다고 했었지?’
그것을 위해 리나르 몰래 돈까지 모아두고 있었다니 더욱 그랬다.
서우진은 신이 난 리나르에게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무조건적인 명령 복종.
만약 그것을 어기면 곧장 돌려보내겠다는 엄포였다.
당연히 이 철없는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고, 덕분에 서우진의 말 한 마디에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따르고 있었다.
‘이제 돌아가는구나.’
이번 외유는 실수투성이였다.
결과적으로 잘 풀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었다.
‘암공의 모습이 심상찮았지.’
의심까지는 아니었다.
서우진이 ‘마왕’이라는 사실을 눈치채기엔, 너무도 단서가 부족했으니까.
하지만 뭔가를 감추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아차린 것 같았다.
그러고 보면 서우진에 대해 의구심을 품은 존재가 세 명이나 된다.
검공 다리엘.
처음 게랄드를 만났을 때, 서우진이 마기에 영향을 받지 않은 것에 직접 검을 섞으며 시험했다.
대공 브리아니.
이 경우엔 좀 더 심각했다.
서우진의 몸속에 마기가 내재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니까.
다행히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불문에 붙이긴 했지만…….
그렇다 해도 불안요소인 것은 확실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암공 스트레인.
‘제국의 다섯 수호자 중 셋이야.’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과정에서 수상한 모습을 보인 것이니, 서우진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앞으론 좀 더 조심해야 되겠는데.’
이젠 정말, 진짜로, 기필코!
아카데미의 교육과정이 끝나기 전까진 밖에 나오지 않으리라.
다시 한 번 다짐했다.
물론 그것이 지켜질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저, 용사님.”
리나르가 조심스럽게 부르는 소리에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무슨 일이지?”
“그게…….”
리나르는 잠시 머뭇거리다, 큰 결심을 한 것처럼 단호하게 물었다.
“저도 아카데미에 가면 용사님처럼 강한 용사가 될 수 있나요?”
눈까지 반짝인다.
‘음…….’
리나르는 자신도 아카데미에 입학해 용사가 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었다.
이전에 길에서 만났던 남자가 이야기해 준 것처럼, 아무리 불가능하다고 생각을 해도 여전히 그 꿈을 놓지 않은 듯했다.
‘오해를 풀어주긴 해야 할 텐데.’
뭐라고 대답을 해줘야 할까?
서우진은 골치가 아파졌다.
금방 들통날 거짓말을 할 순 없으니 사실대로 말을 해줘야 할 텐데…….
‘그럼 실망하겠지.’
아직 열두 살의 나이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평생의 꿈이다.
그것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면 얼마나 실망을 할까?
서우진은 잠시 고민을 해보았다.
어떻게 얘기를 해야 덜 상처받을 수 있을지.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그런 방법 따위는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랬다.
“아니. 넌 용사가 될 수 없어.”
그냥 솔직하게 직구를 던져 버렸다.
“…네?”
리나르는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이 들은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용사는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될 수 있는 게 아니야.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것도 네가 원한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지.”
그제야 리나르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마치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한 것처럼.
소년의 표정도 무너져 내렸다.
“그, 그럼…….”
눈물을 글썽이는 리나르의 모습에 서우진이 속으로 혀를 찼다.
미리 설명을 해줬어야 했는데, 최대한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을 고르다 보니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서우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이 세계의 사람이 아니야. 다른 용사들도 마찬가지지. 우린 그저 마왕으로부터 이쪽 세상을 구하기 위해 소환된, 그런 존재야.”
용사란 그런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고.
서우진은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었다.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건 이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리나르는 아직 어리다.
꿈이 사라진 소년이 받아들이기까진 꽤나 긴 시간이 걸릴 게 분명했다.
“…전 절대 용사가 될 수 없는 건가요?”
눈물이 또르륵- 흐르는 것을 보니 마음 한구석이 좀 아프다.
“그래. 넌 용사가 될 수 없어.”
그렇지만 서우진은 단호하게 말을 해주었다.
“그럼 수도로 가봐야…….”
할 수 있는 게 없다.
아카데미에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용사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수도로 올라가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그때, 서우진이 어린 소년의 눈을 똑바로 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영웅은 될 수 있어.”
용사가 아닌 영웅.
서우진은 소년에게 새로운 꿈을 심어주기로 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