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3)
#12화.
압도적이다.
이름과 외형만 벌레지, 그 크기는 무슨 타이타닉을 보는 것 같다.
너무도 거대해 한눈에 다 들어오지도 않았다.
오히려 놈을 향해 달려가는 기사들의 크기가 벌레처럼 보였다.
“……저걸 진짜 이길 수 있습니까?”
드레이카스를 마주하고 느낀 감정은 공포였다.
아, 여기서 죽는구나! 하는 죽음의 공포.
그런데 저놈 앞에서는 경이롭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자연재해야, 저건.’
사람이 태풍과 지진을 이기겠다고 달려들진 않는다.
그랬다간 미친놈 소리 듣기 딱 좋으니까.
서우진의 눈에는 얼음 벌레에게 달려드는 기사들의 모습이 바로 그런 미친놈들처럼 보였다.
“……모르겠어요.”
아일린은 푸른 방패 기사단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자기들이 최고이자, 최강의 기사단이라 믿는다.
그럼에도 확신을 하지 못했다.
그만큼 얼음 벌레는 강력한 몬스터였다.
지금까지도 토벌에 성공하지 못했을 정도로 말이다.
“그래도 이번엔 다를 겁니다.”
이번엔 더욱 강해진 반 슬레인이 있었으니까.
그러니 이번엔 꼭 잡을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싶었다.
죽어간 동료들과 병사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결연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아일린의 모습을 본 서우진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기사들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얼음 벌레의 크기는 정말로 사람이 상대할 수 있는 생명체가 맞는지 의심이 되게 만들었다.
아무리 반 슬레인이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서우진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전방을 주시했다.
* * *
“산개.”
“산개하라!”
반 슬레인의 작은 명령을 테스테론이 우렁차게 전파했다.
동시에 수십 명의 기사가 좌우로 넓게 퍼졌다.
하나하나가 트랑가 따위는 손쉽게 사냥할 정도의 실력자였다.
기사들은 마치 푸른색의 바람이 형상화된 것처럼 얼음 벌레를 둘러싼 채 질주했다.
도무지 사람이 달려가는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
그런 그들의 앞에 갑자기 땅이 치솟아 올랐다.
아니, 치솟은 것은 땅이 아닌 커다란 촉수였다.
땅속에 숨어 있던 얼음 벌레의 촉수들이 기사들의 돌진을 막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1대, 막아!”
가장 선두에 있던 이들이 검을 휘둘렀다.
그들의 검은 촉수의 크기에 비하면 마치 바늘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의외였다.
얇고 작은 바늘이 촉수를 조각조각 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오오오오-!
촉수 하나가 난도질당해 땅에 떨어지자, 얼음 벌레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터트렸다.
그럼에도 기뻐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아직 남은 촉수는 수백 개에 달했으며, 그것 모두를 합친 것보다 커다란 본체가 건재했으니까.
촉수들이 한꺼번에 떨어져 내렸다.
이건 기사가 아니라, 기사 할아비라도 막지 못할 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들은 당황하거나 공포에 질리는 대신, 검을 들었다.
화아아악-!
검끝에서 바람이 일었다.
처음엔 촉수에 비해 미약하기 짝이 없었지만, 이내 그것은 태풍이 되어 몰아치기 시작했다.
콰과곽-!
그 앞에서 촉수는 무기력했다.
굵기가 웬만한 집보다도 커다란 것들이 말 그대로 갈기갈기 찢겨져 나갔다.
“……젠장.”
하지만 테스테론의 표정은 그리 좋지 않았다.
“너무 쉽군.”
반 슬레인 역시 뭔가 마음에 걸리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습니다.”
쉬워도 너무 쉬웠다.
얼음 벌레의 강함이 고작 크기와 촉수뿐이었다면, 지금껏 토벌에 실패할 리가 없다.
“아무래도 유인을 하는 모양이야.”
“그 말씀은…….”
“5년 전이었지, 아마?”
반 슬레인의 말에 테스테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매시브 가디언에서 토벌을 실시한 이래, 가장 많은 전사자가 나왔던 해.
“한 마리가 더 있군.”
“지금 즉시 진격을 중단시켜야 합니다.”
테스테론이 다급하게 말했다.
만약 그때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당시 테스테론도 거의 죽다 살아났으니 말이다.
하지만 반 슬레인은 고개를 저었다.
“되었네.”
5년 전의 일은 반 슬레인에게도 결코 잊지 못할 상처다.
그럼에도 그의 태도는 여유로웠다.
“길만 열게, 뒤는 나에게 맡기고.”
“영주님!”
그를 모시는 테스테론의 입장에선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었다.
“명령일세.”
주군의 명에 복종하는 것 역시 기사로서 지켜야 할 절대 명제.
갈등하는 테스테론의 어깨를 반 슬레인이 토닥였다.
“걱정할 필요 없으이.”
“따르겠습니다.”
결국 테스테론은 자신이 모시는 자의 곁을 끝까지 지키는 것으로 타협을 했다.
반 슬레인이 언제나처럼 인자해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길을 뚫어라!”
테스테론의 외침이 다시 한번 전장을 흔들었다.
푸른 방패 기사단의 검이 그들의 주군을 위해 휘둘러졌다.
촉수는 조각나고, 검은 피가 기사들의 푸른 갑주를 더럽혔다.
하지만 기사들은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한 번이라도 더 검을 휘두르기 위해 이를 악물었고, 길을 뚫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크윽!”
한 명, 두 명씩.
쓰러지는 기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직 목숨을 잃은 이들은 없었지만, 이대로라면 분명 전사자가 발생할 터였다.
그럼에도 기사들은 더욱 박차를 가했다.
오직 반 슬레인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그리고,
“시온을 위하여!”
제라드였다.
아저씨 같던 모습은 마치 거짓이었다는 것처럼, 제라드의 외침은 그 누구보다도 기사다운 위엄이 가득했다.
“시온을 위하여!”
얼어붙은 대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검광이 빛을 번뜩였고, 기사들의 땀과 피가 쌓여 있던 눈을 녹였다.
그리고 마침내…….
“가지.”
반 슬레인이 움직였다.
* * *
“미친…….”
서우진은 1초도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기사들의 분투는 지금껏 모든 일에 심드렁했던 그의 가슴에 불을 피우기 충분했다.
꾸우욱-
그것은 옆에 있던 아일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자신이 저 자리에 같이 있지 못한다는 사실이 분한지, 주먹을 꽉 쥔 채 입술을 짓씹고 있었다.
“기사들은 정말 대단하네요.”
“저희가 대단한 겁니다.”
내륙의 기사들은 흉내도 내지 못할 위용이었다.
항상 목숨을 걸고 몬스터들과 사투를 이어가는 이들만 할 수 있는 일.
아일린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중앙의 겁쟁이들은 검도 제대로 들지 못할 거예요.”
서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푸른 방패 기사단은 처음 소환됐을 때 봤던 이들과는 뭔가가 다른 것 같았다.
‘무식하게 훈련만 하는 것도 그렇고.’
그러니까 저런 힘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일 터였다.
막연히 상상해 왔던 것보다 강력한 기사단의 힘에 서우진이 그렇게 조금 걱정을 내려놓을 때였다.
“안 돼!”
갑자기 아일린이 비명을 질렀다.
“무, 무슨 일입니까?”
“한 마리가 아니에요!”
아일린은 뭔가를 느낀 듯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한 마리가 아니라면?”
“두 마리. 어쩌면 그 이상!”
그녀는 지금과 같은 전투 양상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 그곳에서 아일린은 스승과도 같은 사람을 잃었다.
때문에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저 자리에서 함께 복수를 하고 싶었던 것인데…….
그날의 악몽이 또다시 반복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일린은 자신도 모르게 뛰쳐나갔다.
절대 하지 말았어야 할 행동이었다.
서우진의 곁에서 그를 지키라는 명령을 저버린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만큼 긴박하다는 뜻이었다.
“어? 자, 잠깐만요!”
서우진은 어리둥절해하다 다급히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이런, 젠장!”
그녀가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모르는 건 아니었다.
‘위험하다는 걸 알려주려는 것이겠지.’
하지만 그걸 이해하진 못하겠다.
자신이었다면 어떻게든 그 위험을 피할 테니까.
마침 전투에도 참가하지 않은 상태였으니, 가만히만 있으면 위험에 빠질 일이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아일린은 스스로 저곳을 향해 달려간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더 이해할 수 없는 건,
“씨발, 나도 달려가고 있다는 거잖아!”
왠지 모르게 자신도 아일린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드레이카스의 앞에 섰을 때와 똑같았다.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몸부터 움직였다.
지금이라도 다리를 멈추고, 자리에 서서 관망하면 될 일이다.
그럼에도 서우진은 계속 뛰었다.
심지어는 수납해 두었던 검까지 꺼내 든 상태로.
‘나도 모르겠다.’
무사안일, 안전제일.
타인에 무관심하고 오직 자신의 안위만이 가장 중요했던 게 자신이다.
지구에서는 길에서 삥을 뜯는 고딩들을 봐도 모른 척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괜히 나섰다가 험한 꼴을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서우진은 그런 성격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와선 죽을지도 모르는 곳에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들어 간다.
‘아니,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닌가?’
심장이 미친 듯이 뛴다.
힘이 들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무서워서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눈앞의 아일린이 점점 더 멀어져 까마득해졌지만, 서우진은 그녀의 뒤를 쫓아가는 걸 멈추지 않았다.
미친 게 분명했다.
아일린뿐만이 아니라,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행동을 할 리가 없었다.
그것도 무려 두 번이나.
서우진은 속으로 계속해서 욕을 하며 뛰었다.
눈앞에서 땅이 솟아오를 때까지.
“우아아악!”
땅을 굴렀다.
갑자기 바닥이 흔들리며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데, 서우진에겐 아직 그걸 버틸 능력이 없었다.
넘어졌던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용케 놓치지 않은 검을 앞으로 겨누었다.
예상대로 그곳에는 얼음 벌레 한 마리가 땅 밖으로 모습을 드러낸 상태였다.
“……실화냐.”
놈 덕분에 아일린과도 떨어져 버렸다.
주위에는 기사는커녕 병사 한 명도 보이질 않았다.
온전히 얼음 벌레와 단둘이 남은 상황.
기사단과 싸우고 있는 놈보다는 훨씬 작았지만, 그래도 드레이카스보단 컸다.
서우진은 자신이 너무도 작게 느껴졌다.
기사들은 그런 와중에도 잘 싸웠지만, 서우진은 그게 불가능하다.
‘도망칠까?’
싸워서 이길 확률은 전혀 없었다.
아니, 싸움 자체도 성립이 안 될 터였다.
그냥 촉수 한 번 휘두르면 그대로 쥐포가 될 것이다.
피하고, 자시고 할 시간도 없이 말이다.
그러니 남은 선택지는 도망밖에 없었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을 듯했다.
얼음 벌레의 시선이 정확히 서우진에게 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아, 좆됐네.”
처음 소환됐을 때 했던 욕을, 다시 한번 내뱉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