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35)
134화.
백시우의 오러는 본연의 찬란한 빛을 잃었다.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건, 불길하게 타오르는 흑색의 어둠이었다.
흉악하게 일그러졌던 표정도 사라졌다.
오직 세상을 오연하게 내려다보는, 절대자의 냉막한 시선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콰득-!
연무장 바닥이 깨져 나가며 뒤로 날아갔던 서우진이 몸을 멈춰 세웠다.
“…어이가 없네.”
턱을 타고 흐르는 핏물을 닦으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곤 검을 들고 가만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백시우를 향해 말했다.
“누가 보면 네가 ‘마왕’인 줄 알겠다?”
미약하게 흐르던 마기는 어느새 백시우를 집어삼키고 제 존재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 양은 다른 마왕의 추종자들에 비해 적었다.
하지만 SSS에 달하는 등급 덕분인지, 그 순도는 게랄드나 레이나에 비해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다.
“서우진 씨.”
백시우의 입에서 북방의 삭풍과도 같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이 와중에도 반말을 하지 않는 것에 웃어야 할까?
서우진은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입을 열었다.
“말해.”
“저는 당신보다 강합니다.”
그 말에 서우진은 백시우가 왜 마기에 먹혔는지 알 수 있었다.
“마음에 마가 깃든다.”
언젠가 대공이 해주었던 말이 떠올랐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고작 그런 저열한 열등감 때문에 마기에 먹혔다고?
누구는 ‘마왕’인 걸 들키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살아가는데?
어이가 없다 못해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병신새끼.”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지금 이 개고생이 그딴 이유 때문이라는 것 자체가 짜증났다.
“그래, 네가 나보다 강하다. 됐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감정을 담아 백시우를 비꼬았다.
마음 같아서는 대가리를 쪼개 버리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그럴 수가 없었다.
‘‘셀레스티얼 윙’의 반동만 아니었으면…….’
최소한의 출력으로, 최대한 짧은 시간 동안 사용했음에도 서우진은 몸에 과부하가 걸렸다.
그렇지 않았다면 백시우의 공격에 이처럼 볼품없이 날아가진 않았을 것이다.
아무리 녀석이 강해졌다고는 하지만, 서우진은 그 이상으로 강해졌으니까.
하지만 그것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면 백시우와 함께 레이나에게 납치되었을 판이었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 그것을 증명하겠습니다.”
서우진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했다.
아니면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던가.
둘 중 뭐가 됐든, 제대로 한판 붙는 건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서우진은 호흡을 조절하며 슬쩍 주위를 살폈다.
콰과과과과-!
레이나와 요른의 전투에 연무장은 제 형태를 잃은 지 오래였다.
전투 자체는 레이나가 유리해 보였다.
요른은 공격보단 방어에 치중하며 연신 뒤로 밀리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의외로 레이나가 훨씬 더 초조해 보였다.
마치 시간이 없는 것처럼…….
‘아!’
서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카데미는 제국의 심장부인 수도에 있었다.
당연히 수많은 기사와 강자들이 즐비할 것이다.
게다가 근처에는 하늘탑도 있었으니…….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불리한 것은 레이나였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요른은 섣불리 공격을 하지 않고 시간만 끄는 중이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서우진은 마음을 조금 편히 먹었다.
적어도 레이나에게 뒤통수를 맞을 일은 없을 듯했으니까.
어느새 출동한 기사들과 용사들의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너무도 험악한 싸움에 그들은 끼어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멀찍이 떨어져 사태를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익숙한 얼굴들도 있었다.
그들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우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얘기해 주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럴 틈이 없었다.
“감히 저를 앞에 두고 다른 곳에 신경쓸 정신이 있습니까?”
백시우가 다시 덤벼들기 시작한 것이다.
대기를 가르며 다가오는 놈의 검은 서우진을 죽이겠다는 의지가 가득 담겨 있었다.
‘막는다.’
서우진은 결코 방심하지 않고 ‘룬 데아’를 들어 백시우의 검로를 가로막았다.
쩌엉-!
미간이 절로 찌푸려진다.
충격도 충격이었지만, ‘룬 데아’의 내구력이 한계에 달했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이대로라면…….’
몇 번의 충돌 후에는 부러질 것만 같았다.
‘룬 데아’가 부러지면 큰일이었다.
지금의 서우진은 백시우를 맨손으로 제압할 수 없었으니까.
“이것도 한 번 받아보시죠. ‘구천섬뢰’!”
처음 보는 스킬이었다.
아홉 가닥의 검은 뇌전이 마치 그물이 된 것처럼 서우진을 향해 짓쳐왔다.
파지지직-!
한눈에 보기에도 심상찮아 보이는 위력이었다.
등골이 쭈뼛- 선다.
마기로 강화된 SSS급의 스킬은 가공할 정도의 힘을 품고 있었다.
‘직격 당하면 죽는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구천섬뢰’라는 스킬은 정말로 위험했다.
힘을 감추고, 말고 할 때가 아니었다.
서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숨겨두었던 힘 중 하나를 풀었다.
[묵시록의 짐승.]어둠이 드리운다.
멸망의 끝에서 태어난 짐승 한 마리가 서우진의 명령에 따라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오오오오-
마음속 깊은 곳까지 울려 퍼지는 거대한 포효가 울려 퍼졌다.
파지지지…….
‘구천섬뢰’의 검은 뇌전이 서우진의 곁에 다가오지도 못한 채, 그대로 소멸했다.
“무, 무슨?”
백시우가 울컥- 하고 피를 토하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구름 사이로 끔찍할 정도로 커다란 짐승 한 마리가 언뜻 보였다.
푸화아악-!
그것을 목도한 백시우가 코와 입에서 피를 뿜었다.
“아, 아.”
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격을 지닌 마기가 제국의 수도를 짓눌렀다.
“저건……?”
레이나와 싸우고 있던 요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백시우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저 ‘짐승’은 마왕의 증거였다.
“어떻게…….”
혼란과 경악으로 뒤섞인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어떻게 지금!”
요른이 피를 토하는 듯 소리치는 것과 달리, 레이나는 만면 가득 미소를 지었다.
[경외하라.]그녀의 입에서 나온 것은, 더없이 존귀한 존재께 바치는 찬양이었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라. 멸세(滅世)의 왕께서 현현하였으니, 마땅히 경배함이 옳으니라.]기쁨의 찬가를 부른다.
그토록 오랜 시간 동안 기다려 왔던 새로운 주인이 강림했다는 증거가 눈앞에 펼쳐졌다.
환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공포였다.
“황실에 경고를 보내고, 하늘탑에 지원을 요청하세요! ‘짐승’이 나타났으니, 불간섭의 규율은 이 시간부로 해제합니다!”
요른의 명령과 함께 기사들 몇이 후들거리는 다리를 간신히 진정시키며 재빨리 움직이기 시작했다.
만약 이곳이 제국의 수도가 아니었다면.
그래서 대마법진에 의한 보호가 없었다면.
기사들은 단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묵시록의 짐승’이 내뿜는 마기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했다.
[늦었느니라.]레이나는 그들을 막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분이 강림한 이상, 한낱 미물들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용사?
아직 제대로 성장도 하지 못한 놈들로선 절대 막을 수 없다.
[금시에 마침내 뜻한 바가 이루어지리라.]레이나는 순수한 미소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요른이 아닌, 서우진과 백시우가 있는 쪽이었다.
‘망할!’
서우진은 그녀가 다가오는 것을 보면서도 꼼짝도 하지 못했다.
‘묵시록의 짐승’을 소환한 대가는 마력.
막대하다는 말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할 정도로 많은 양이 뭉텅이로 빠져 나갔다.
탈력감과 ‘셀레스티얼 윙’의 후유증과 겹쳐, 서우진은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기 힘든 상태가 되어버렸다.
[이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고대하였나이다.]그런데 레이나의 시선이 백시우를 향해 있었다.
‘응?’
당연히 스킬을 사용한 서우진에게 올 줄 알았는데, 어이없게도 레이나는 백시우를 마왕이라 판단한 것 같았다.
전신을 뒤덮은 마기.
지금도 ‘묵시록의 짐승’에 대항하기 위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검은 마기는, 누가 봐도 백시우를 ‘마왕’처럼 보이게 했다.
‘걸리지 않아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속으로 헛웃음을 내뱉었다.
이 와중에도 그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자신도 참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와 함께 돌아가시길 간청하나이다. 준비된 자들이 왕을 기대하고 있으니.]레이나의 손이 백시우를 향해 내밀어졌다.
마치 이것을 잡으라는 듯이.
하지만 녀석은 아직 제정신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휘몰아치는 마기의 폭풍에 의식을 잃지 않는 게 용할 정도의 상태였다.
그것을 알아차린 것일까?
레이나는 조심스럽게 백시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아니, 얹으려 했다.
“피를 탐하는 어둠의 혈족이로구나.”
공중에서 여상한 음성이 들려왔다.
서우진이 홱- 하고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봤다.
‘마공!’
인형처럼 아름다운 외모의 아이, 마르테스였다.
“너……!”
레이나가 깜짝 놀라며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러곤 백시우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마르테스의 행동이 한 발 빨랐다.
그녀가 한쪽 손을 들며 마법을 발현한 것이다.
“라 솔반테.”
싸늘한 음성과 함께, 태양이 떠올랐다.
“꺄아아아아악!”
레이나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측량할 수 없는 마력이 담긴 빛에 어둠이 물러간다.
치이이이익-!
레이나의 피부가 불타오르고, 재가 되어 흩어지기 시작했다.
“안 돼!”
레이나가 피를 토하며 절규했다.
빛을 담은 마법은 그녀에게는 상극 중의 상극이었다.
단 한 번의 마법에 심대한 부상을 입을 정도로 말이다.
육신이 통째로 증발할 것 같은 고통이 침습해 왔다.
하지만 레이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서둘렀다.
“막아라!”
뒤늦게 요른이 소리쳤다.
그녀가 하려는 행동을 알아차린 것이다.
서우진은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아주 잠깐의 방해면 된다.
그럼 다른 사람들이 해결해 주리라.
서우진은 남은 모든 힘을 짜내며 ‘룬 데아’를 휘둘렀다.
푸른 오러가 이글거리며 레이나를 향해 쏘아졌다.
그녀의 힘을 생각하면 작은 생채기도 내기 힘든 미약한 힘이었다.
그것을 본 레이나가 귀찮다는 듯 손을 휘둘렀다.
서우진에게 지속적인 호의를 보였던 것과는 달리, 지독한 살기가 가득한 일격이었다.
쩌저적-!
‘룬 데아’가 수수깡처럼 부러진다.
동시에 마치 덤프트럭에 정통으로 치인 듯한 충격이 전신을 뒤흔들었다.
정신이 아득해져 갔다.
‘아, 안…….’
서우진은 서서히 점멸해 가는 시선 사이로, 백시우를 바라봤다.
녀석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레이나의 손에 붙잡혔다.
그래도 서우진이 노력한 보람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마르테스의 마법이 다시 한번 발동했다.
그것에 레이나의 다리 한쪽이 날아갔다.
검붉은 피가 튀었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요른의 ‘푸르나’가 녹빛 오러를 담고 휘둘러졌다.
등에 뼈가 보일 정도로 깊은 상처가 그어졌다.
그래도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전신에서 피를 흘리고, 회복하기 어려운 부상을 입었음에도…….
레이나는 웃었다.
“내가 이겼어.”
그 말과 함께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없었던 것처럼.
지독한 혈향과 핏자국만을 남긴 채, 백시우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그 장면을 마지막으로 서우진은 정신을 잃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