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36)
135화.
마왕이 출현했다.
직접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제국의 수도에서 목도된 마기를 품은 짐승은, 마왕 강림의 증거였다.
[베르쉬트.]흔히 묵시록의 짐승이라 불리는 이 거대한 마수는, 여룡과는 달리 마왕이 직접 소환하는 존재였다.
그 말은 곧 마왕이 이미 세상에 강림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당연히 세상은 혼란에 빠졌다.
특히 ‘베르쉬트’가 출몰한 제국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하물며 그 마왕으로 추정되는 존재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백시우다.
당연히 상황이 심각해질 수밖에 없었다.
“…확실한가?”
제국의 황제, 바실리안 트레제토스는 눈을 감은 채 질문했다.
하얗게 센 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크게 동요하고 있는지 확연히 알 수 있었다.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마공 마르테스와 아카데미의 총장 요른 사일러스가 직접 확인한 사실이옵니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오늘 아침, 제국의 수도에 있던 이들은 모두가 목격했다.
구름 사이를 날아다니는 고래 형태의 무시무시한 마수를.
“오판일 가능성은?”
한때 철혈의 군주라 불렸던 황제는, 어느새 나이가 들어 나약한 모습이었다.
보고하던 아그나는 안타까움을 속으로 감추며 말을 이었다.
“아예 없지는 않사옵니다. 어디까지나 ‘베르쉬트’에 대한 것은 기록에만 존재할 뿐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말을 하는 아그나도, 아침에 본 것이 묵시록의 짐승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만한 마수가 달리 또 있을 것 같진 않았으니까.
“그리하면 정녕 마왕이 이미 강림을 했단 말이더냐?”
이번엔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분명 ‘베르쉬트’는 마왕 강림의 증거가 맞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그것밖에 없다.
기록되어 있는 수많은 증거 중 오직 그것만 나타났다.
그러니 완전히 확신할 수가 없었다.
아그나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자, 황제는 다른 것을 질문했다.
“백시우라 하였던가?”
심기가 불편한 음성이었다.
제국에서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지원하던 SSS급 용사.
“그가 정녕 마왕이더냐.”
그런 백시우가 가장 유력한 마왕의 후보다.
레이나가 직접 그를 경배했고, 데려가기까지 했다.
요른의 보고에 의하면, 백시우의 몸에서 검은 마기까지 발현되었다고 하니…….
그 이상의 증거는 더 찾을 필요조차 없었다.
“크루시엘에서는 그리 보고 있사옵니다. 다만, 혼란이 우려되어 기밀로 처리한 뒤 입단속을 철저히 하였나이다.”
아그나의 말에 황제가 허허- 웃었다.
용사로 써먹고자 한 이가 마왕이 되었다.
그게 가능한 일이란 말인가?
“전례가 없는 일이옵니다. 하여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할 듯합니다.”
“추가 조사라… 어찌할 생각이더냐.”
마왕과 용사에 대한 것은 기록이 전부였다.
그마저도 소실되거나 훼손된 것이 많아, 알아볼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하늘탑과 공조하기로 하였나이다.”
“호오, 그자들이 선뜻 손을 잡던가?”
“마왕이란 대적 앞에선 그 무엇도 앞을 가로막지 못할 것입니다. 설령 하늘탑의 규율이라 할지라도 말입니다.”
평소 하늘탑의 마법사들은 세상사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아니, 갖지 못한다.
그들의 힘이 너무도 강력한 탓에, 지엄한 규율로 통제하기 때문이었다.
근래 들어 하늘탑이 자신들의 힘을 세상에 제대로 투사한 경우는 ‘용사 소환 마법’을 발현할 때뿐이었다.
만약 강대한 힘과 지식을 자랑하는 마법사들이 자신들의 규율을 깨고 이 일을 파고들기 시작하면, 진실을 밝히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게 분명했다.
“허하노라. 크루시엘과 하늘탑은, 전대미문의 사태에 대비함에 있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라.”
“명을 받듭니다.”
아그나는 지극한 예를 갖추며 알현실을 빠져나왔다.
“어찌 되었습니까?”
밖에서 대기 중이던 부하가 다가오며 조심스레 물었다.
“윤허가 떨어졌다.”
아그나의 대답에 부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럼…….”
“전 수호자들을 소환해.”
크루시엘의 검공, 다리엘.
하늘탑의 마공, 마르테스.
메르노타인의 대공, 브리아니.
서쪽 접경 지역의 권공, 카론.
그리고 황실의 암공, 스테로인까지.
제국을 수호하는 다섯 날개의 소집령을 내렸다.
“아, 그리고…….”
아그나는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북방의 검귀도 부르도록.”
“반 슬레인 백작 말입니까?”
“그의 기사단 역시 불러들여라.”
마왕의 존재가 확인된 이상, 전쟁은 불가피하다.
예상과는 한참 어긋난 시기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을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전력을 모아, 일단 파악된 마왕의 추종자들부터 정리를 해야만 한다.
“알겠습니다.”
부하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후우-”
아그나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아직 준비가 되려면 멀었거늘.”
강림 전쟁의 핵심은 용사다.
그런 용사들이 아직은 전력으로 써먹기엔 너무도 약했다.
물론 마수나 몬스터들을 상대로는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치겠지만, 진짜 적은 그딴 놈들이 아니었다.
마왕과 놈의 권속들.
그들을 상대하려면 적어도 100레벨은 넘어야만 했다.
그런데 용사의 대부분은 아직 50레벨조차 되지 못했으니…….
“어찌한다?”
골치가 아파졌다.
차라리 모두가 착각한 것이었으면 좋겠다.
‘베르쉬트’도, 백시우도.
모든 것이 착각에서 비롯된 일이기를 바랐다.
그럼 충분히 대비를 할 수 있으련만.
‘최소한 2년, 아니, 1년 6개월만 더 있었어도.’
아그나는 한숨을 내쉬며 걸음을 내디뎠다.
일단 지금은 하늘탑과의 연계에 힘을 써야 했다.
* * *
“정신이 드시나요?”
눈을 뜨는 것과 동시에 아일린의 음성이 들렸다.
‘요즘 들어 이런 상황이 계속 반복되는 것 같은데…….’
벌써 몇 번째인가?
싸우고, 정신을 잃고, 침대에서 깨어나는 일이.
이토록 강해졌음에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자신이 강해진 것보다도 적은 더 강했으니까.
서우진은 괜한 자괴감에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어떻게 된 거야?”
정신을 잃은 동안 아일린이 간호를 해주고 있었던 듯했다.
욱신거리는 통증이 밀려들었지만, 이 정도는 버틸 만했기에 내색하지 않으며 물었다.
“정신을 잃고 하루가 지났어요. 백시우님은 그 흡혈귀에게 납치가 되었고, 동시에 하늘에 나타났던 마수도 사라졌죠.”
‘백시우님?’
서우진은 아일린의 말에서, 사람들이 아직 정확한 사태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만약 상황을 제대로 알아차렸다면 백시우님이 아닌, 마왕이라고 지칭했을 테니 말이다.
“그게 전부예요. 파괴된 아카데미는 정리 중이고, 교육은 잠정적으로 중단된 상태죠.”
제국에서는 이번 사태를 마왕의 추종자들 중 하나가 침입한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 와중에 용사 한 명이 납치되었고, 그를 구출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는 것도.
‘감추기로 했구나.’
하긴, 용사가 마왕이 되었다면 그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다.
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내놓은 방책이겠지.
“다친 사람은 있어?”
서우진은 지인들을 걱정했다.
전투 현장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고는 하지만, 워낙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특히 레이나와 요른의 전투는, 아카데미를 통째로 소멸시켜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격렬했다.
거기에 마르테스의 초월적인 마법까지 펼쳐졌으니, 거리가 있었다고는 해도 안심할 순 없었다.
“다행히 크게 다친 분은 없어요. 마공의 마법에 휩싸여 부상을 입은 분들이 있긴 하지만, 그마저도 경상에 그쳤죠.”
아일린이 저렇게 말할 정도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다행이네.”
서우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괜히 휘말려 큰 부상을 입은 사람이 나왔다면, 죄책감에 시달릴 뻔했다.
“아, 그리고…….”
아일린이 할 말이 있는 듯 서우진의 눈을 쳐다봤다.
“응? 또 무슨 일 있어?”
서우진이 묻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황실에서 우진 씨를 찾았어요. 정신을 차리면 곧장 입궁하라고.”
“…황실?”
설마 이 상황에 전에 약조한 보상을 주겠다는 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건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듣고 싶다는 것이겠지?’
최초의 싸움은 서우진과 백시우로부터 시작됐다.
그 이후에 피엔느가 등장했고, 레이나와 요른까지 끼어들며 혼돈으로 빠져들었다.
그러니 서우진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마왕으로 의심되는 백시우와 싸움을 시작했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킨 유일한 인물이었으니까.
“지금 당장 오래?”
“이미 밖에서 황실기사단이 대기를 하고 있어요.”
급하긴 급했나 보다.
언제 깨어날지도 모를 사람을 데리고 가기 위해 황실의 기사단까지 보낼 정도면.
“그럼 지금 가야겠네.”
침대에서 벗어나기 위해 힘을 주자, 신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으윽.”
가슴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통증에 얼굴이 찌푸려졌다.
아무래도 마지막에 레이나에게 공격당한 것이 꽤나 큰 충격을 남긴 것 같았다.
“괜찮으세요?”
아일린이 걱정스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응, 괜찮아.”
그 험악한 전투를 벌인 것치고는 상태가 많이 나쁘진 않았다.
다른 때와 비교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서우진은 부축하려는 아일린에게 웃어 보인 뒤 두 발로 섰다.
“휘유우-”
아프긴 했지만 견딜 만했다.
“어디야?”
“바로 문 밖에 있을 거예요.”
아일린의 대답에 서우진은 고개를 끄덕이곤 문을 열었다.
황금색의 화려한 갑주를 입고 있는 기사 다섯 명이 보였다.
“깨어나셨군요, 서우진님.”
그들 중 가장 직위가 높아 보이는 이가 앞으로 나서며 서우진에게 예를 표했다.
“지금 가면 됩니까?”
“이야기를 들으셨군요. 괜찮으시다면 바로 출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기사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바로 가죠.”
아쉽게도 아일린은 데리고 갈 수 없었다.
부름을 받은 것은 오직 서우진,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기사들은 포위인지 호위인지 모를 대형을 갖추고는 서우진과 함께 길을 나섰다.
황실의 인장이 커다랗게 박혀 있는 화려한 마차를 타고 한참을 달렸다.
그동안 오간 대화는 없었다.
기사들은 과묵했고, 서우진은 생각에 잠겨 있었기 때문이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지?’
솔직하게 있었던 일만 말하면 될 것이다.
시비도 백시우가 걸었고, 마기를 발현한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감출 건 단 하나.
스킬 ‘묵시록의 짐승’에 대한 것뿐이었다.
서우진은 그것을 빼곤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하기로 결정했다.
“여기서부터 황궁입니다.”
문득 들려오는 기사의 말에 서우진이 창밖을 쳐다봤다.
수도의 활기찬 모습과는 달리, 적막과 화려함이 공존하는 초원이 보였다.
‘마당치고는 진짜 넓구나.’
괜히 황궁이 아니었다.
마차는 단 한 번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황궁 내부를 달렸다.
평소라면 이곳에서 마차를 타고 이동할 수 있는 존재는 오직 황족뿐이었겠지만, 오늘은 예외였다.
황제의 명이 있었는지, 서우진이 탄 마차는 황궁에 들어선 이후에도 계속해서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서우진이 마차에서 내렸다.
그의 앞에 끝도 없이 펼쳐진 마력의 집합체, 황제의 신궁(神宮)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