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38)
137화.
처음으로 마왕이라는 존재가 이 세상에 출현했을 때였다.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세계는 단 한 번도 마주해 보지 못한 미지의 공포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당시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수가 인류의 절반에 달할 정도였다.
뒤늦게 살아남은 이들이 적에 대해 파악하고 힘을 모았다.
인간, 엘프, 다크 엘프, 드워프, 드래곤 등.
종족을 불문하고 싸울 수 있는 이들이 모두 집결했다.
제1차 강림 전쟁.
마왕과 연합군은 기나긴 전쟁에 돌입했다.
적은 강대했지만, 생존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모인 힘도 결코 약하지 않았다.
무려 5년에 달하는 기간 동안 서로 죽고 죽였다.
문자 그대로 시체가 산처럼 쌓였고, 피가 강이 되어 흘렀다.
하지만 그런데도…….
마왕은 이길 수가 없었다.
그 존재는 너무도 강력했고, 치명적이었으며, 공포스러웠다.
그렇게 세계가 멸망의 길로 접어들었을 무렵.
용사가 나타났다.
지금은 그 이름조차 남아 있지 않는, 무명의 용사.
말단의 병사로 시작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강해지더니, 어느샌가 마왕에게도 대적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세계 구원의 유일한 희망.
모든 종족은 그를 위해 검을 한 자루 만들어주었다.
엘프는 세계수의 자엽(子葉)을 사용해 축복을.
다크 엘프는 흑단화의 뿌리로 조화를.
요정은 퀸의 날개를 바쳐 환상을.
드래곤은 심장과 용린으로 무한한 마력과 강인함을.
인간은 성물(聖物)의 힘을 빌려 신의 은총을.
그 모든 것을 드워프의 망치가 벼려냈다.
그렇게 탄생한 검은 용사의 손에 들려, 결국 마왕의 검을 베었다.
신검 ‘카 라니엘’.
용사의 이름은 잊혔지만, 검은 남아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손잡이부터 검집까지.
빠져들어 갈 것만 같은 칠흑으로 이루어진 ‘카 라니엘’은, 그 존재만감만으로도 주변을 압도했다.
“뽑아보거라.”
황제의 권유에 서우진은 보라색 마력이 일렁이는 검을 서서히 뽑았다.
스으으윽-
그 흔한 쇳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금속으로 만들어진 검이 아니었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검은 한 폭의 예술 작품과도 같았다.
‘아름답다.’
서우진은 속으로 감탄했다.
이건 단순한 검이 아니다.
막대한 양의 마력과 소름이 끼칠 정도의 예리함이 느껴졌다.
‘카 라니엘’이라면, 여룡의 비늘이라도 종잇장처럼 찢어발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세계의 총화가 모여 만들어진 이 존재는, ‘룬 데아’와 비교를 불허하는 격을 지니고 있었다.
꿀꺽- 하고 마른침이 넘어간다.
“본래는 그 누구에게도 하사할 생각이 없는 물건이었느니라.”
그 말에 서우진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그럼 이걸 나한테 주는 이유가?’
살짝 불안해졌다.
검 자체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뛰어났지만, 그 상징성은 더하다.
첫 번째 마왕의 목을 벤 검이니까.
그런 대단한 물건을 공짜로 주지는 않을 터였다.
그리고 당연히 그 예상은 들어맞았다.
“그대가 해주어야 할 일이 있도다.”
서우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물론 걸리지 않도록 아주 살짝만.
“…무슨 일 있었나요?”
아일린은 황실에서 돌아온 서우진의 표정을 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나 좋지 못한 일을 당한 건 아닌지 걱정을 하는 듯했다.
“응? 아니, 아니야. 별일은 없었어.”
그냥 신검이라 불리는 걸 받았고, 그 대가로 한 가지 일을 해주기로 했을 뿐이다.
물론 그 일이라는 게 조금 문제이긴 했지만.
서우진이 애써 웃으며 말을 하자, 다행히 아일린은 모른 척 그냥 넘어가 주었다.
‘후우-’
한숨이 새어 나온다.
진짜 당분간은 아카데미에 처박혀서 나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누군가 밖에 금덩이가 있으니 갖고 와서 너 쓰라며 유혹해도,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 다짐할 정도였다.
지금은 밖을 돌아다니기보단, 안에서 더욱 강해져야만 했다.
지금의 서우진으로선 적들을 모두 감당해 낼 수가 없었으니까.
아니, ‘마왕화’라도 하지 않는 이상은 레이나 한 명도 못 이긴다.
적어도 그런 괴물 한두 명 정도는 상대할 수 있을 만큼 강해진 뒤에나 아카데미를 벗어나고자 했다.
‘그래야 되는데…….’
망할 황제가 괴상한 명령을 내렸다.
말이야 부탁이었지만, 그걸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심지어 ‘카 라니엘’이 그 대가였으니, 서우진은 도저히 고개를 저을 수가 없었다.
결국 하긴 해야 된다는 건데.
‘대체 나보고 어떻게 백시우의 머리를 가져오라는 거냐?’
그를 죽일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솔직히 백시우를 죽이는 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고작 열등감 때문에 마기에 빠져 자신을 죽이려고 검을 뽑아 든 놈을 죽이는 게 뭐가 어렵다고.
불쌍하긴 해도, 그렇다고 해서 죽자고 덤벼드는데 봐줄 정도로 서우진은 착하지 않다.
죽이고자 한다면, 일 검에 목을 잘라 고이 포장해서 황제에게 가져다줄 용의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애초에 백시우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지금 그놈의 옆에는 레이나가 딱 붙어 있을 게 확실하다.
백시우의 머리를 가져오려면 그녀와도 싸워야 한다는 얘기였다.
‘불가능해.’
적어도 지금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카 라니엘’이 지닌 힘이라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셀레스티얼 윙’과 ‘아이기스’를 적당히 사용하고, 마왕의 스킬들까지 모두 사용하면…….
‘어쩌면 생각보다 쉽게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 대가는 정말 어마어마할 것이다.
적이 레이나 한 명만 있으리란 법도 없고.
서우진은 고민에 빠졌다.
황제가 기한을 둔 건 아니었지만, 눈치를 보아하니 최대한 빨리 해결해 주길 바라는 모양이었다.
제국의 최정예 기사들과 정보기관의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란 약조까지 하는 걸 보면 말이다.
“고민은 함께 나누면 의외로 빨리 해결될 때도 있어요.”
그때 아일린이 슬쩍 말했다.
혼자 끙끙 앓지 말고 얘기 좀 해달라는 뜻이었다.
평소라면 이런 말을 하진 않았겠지만, 고민하는 모습이 꽤나 심각해 보였나 보다.
서우진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혼자 고민하는 것보단 여러 사람이 머리를 맞대면 괜찮은 방법이 나올 가능성이 더 높았다.
“뭐부터 얘기를 해야 되려나……. 아, 이 검 본 적 있어?”
서우진은 대화의 포문을 위해 허리춤에 매달려 있는 흑색검을 가리켰다.
“안 그래도 신경이 쓰이긴 했어요. 황제 폐하께서 하사하신 검인가요?”
아일린은 기사다.
당연히 서우진의 검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보라색 마력이 일렁이는 흑색검이라니?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물건이었다.
서우진의 표정이 심상찮아 묻지 못하고 있었지만, 궁금해서 죽을 것 같다는 눈치였다.
“‘카 라니엘’이라는 검이야.”
“…네?”
아일린이 눈을 끔뻑였다.
“다시 한번 얘기해 주시겠어요?”
멍하니 묻는 아일린의 말에 서우진이 입을 열었다.
“‘카 라니엘’. 용사가 쓰던 검이라던데?”
그제야 그녀의 눈이 부릅떠졌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검과 서우진을 번갈아 쳐다볼 뿐이었다.
“들어본 적 있는 모양이네.”
아일린의 반응은 서우진을 즐겁게 했다.
그만큼 ‘카 라니엘’이 대단한 물건이라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신검.”
한참 뒤에야 흘러나온 아일린의 음성에는 불신이 가득했다.
제국의 보물.
승리의 징표.
용사의 상징.
대부분의 사람들은 ‘카 라니엘’이 그저 전설상에서나 존재하는 검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만큼 신화에 가까운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검이 서우진의 손에 들려 있었으니, 아일린이 쉽게 믿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한번 봐도 될까요?”
떨리는 음성으로 묻는다.
당연하게도 서우진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어림도 없었지만, 아일린은 아니다.
서우진은 목숨도 맡길 수 있을 정도로 그녀를 신뢰했으니까.
“이게 신검.”
‘카 라니엘’을 받아 든 아일린의 손이 살짝 떨려왔다.
긴장하거나 감격스러워서는 아니었다.
보라색으로 일렁이는 마력의 힘을, 그녀가 온전히 버텨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중급 기사에 불과한 아일린으로선 그저 손에 쥐고 있는 것만으로도 전신에 부담이 갈 정도였다.
하지만 놓지는 않았다.
입술을 살짝 깨물며 힘껏 검을 뽑았다.
흑색의 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으윽!”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검집에서 빠져나온 ‘카 라니엘’의 마력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이리 줘.”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서우진이 다급히 검을 회수했다.
“후욱- 훅-”
마력의 압박에서 벗어난 아일린이 거칠게 호흡했다.
“…괜찮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자,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놀랐을 뿐이에요.”
몇 초도 지나지 않아 평소의 호흡으로 돌아온 아일린은 ‘카 라니엘’을 보며 감탄했다.
“정말 신검이 맞군요?”
“설마 황제가 짝퉁을 주지는 않았겠지.”
서우진이 웃으며 말하자, 아일린 역시 픽- 웃었다.
“이런 검을 공짜로 주진 않았겠네요. 그것 때문에 지금 고민하고 있는 것일 테고.”
“맞아.”
아일린은 단번에 눈치를 챘다.
“백시우를 찾아서 죽여달라고 하더라.”
“…정말 쉽지 않은 일이네요.”
황제의 입장에선 백시우가 눈엣가시일 것이다.
제국을 등에 업고 성장한 이가 마왕이라니.
입단속한 덕에 아직 소문이 나지는 않았지만, 언젠가는 퍼질 일이었다.
황제는 그전에 백시우를 처단해, 황실이 분노했음을 보여주고 싶은 듯했다.
대충 수습도 하고 말이다.
물론 그딴 건 서우진이 알 바 아니었지만.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백시우, 그놈의 위치부터 찾는 거야.”
그것이 선행되지 않는 한은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제국의 정보기관이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준다고 하긴 했는데, 솔직히 별로 믿음이 가진 않거든.”
이 시대의 첩보단체는 지구에 비하자면 신뢰도가 크지 않았다.
위성도, 특수 장비들도, 이동수단도.
그 어떤 것도 지구보다 나은 게 없었다.
물론 마법이라는 것이 있긴 했지만, 그것은 선택받은 소수에게만 허락된 힘이다.
마법사들이 고작 정보기관을 위해 일을 해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니 딱히 신뢰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일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아니, 오히려 그 어떤 때보다 확신을 갖고 말했다.
“크루시엘을 무시하지 마세요.”
“응? 크루시엘?”
처음 듣는 단어에 서우진이 고개를 갸웃하자, 아일린이 말을 이었다.
“제국의 비밀정보국이에요. 솔직히 그들이 지닌 능력이라면, 지금쯤 백시우님의 행적을 찾았다고 해도 크게 이상하지 않아요.”
“…그 정도로 대단하다고?”
서우진이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을 때였다.
똑똑-
누군가 노크를 했다.
“들어오세요.”
서우진의 허락에 처음 보는 남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아그나님의 전언이 있습니다.”
“아그나?”
서우진은 이전에 보았던 여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룬 데아’의 이름을 가르쳐 주고, 하늘탑과도 연결을 시켜 주었던 이.
“비밀정보국 크루시엘의 국장이십니다.”
남자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그나의 정체를 밝혔다.
당연히 서우진의 시선이 아일린을 향했다.
그녀가 방금 말한 정보기관이었으니 말이다.
“무슨 일로……?”
서우진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리고 남자는 아주 완벽하게, 아일린의 말을 증명해 냈다.
“백시우의 위치를 찾았습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