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4)
#13화.
“지금까지 소환된 용사들 중에 가장 높은 등급을 받은 사람은 누군가요?”
하늘에 닿을 것처럼 높다랗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드넓은 순백의 신전.
가만히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성스러워지는 느낌이 드는 이곳은 신성 왕국 아이에르의 심처였다.
“흥미로운 질문이군요.”
성유라의 질문을 들은 대신관은 턱을 쓰다듬으며 기억을 더듬었다.
“일단 남아 있는 기록에 따르면 S급이 가장 높은 등급이었을 겁니다.”
“……S급이요?”
성유라는 속으로 ‘고작?’이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물론 그것이 높은 등급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자신만 해도 SS급이지 않은가?
‘그놈은 SSS급이고.’
성유라의 표정이 묘하게 변하자, 대신관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서 이번 소환이 특히 대성공이라는 겁니다. 이전까지는 아홉 명이 가장 많이 소환된 경우였으니까요.”
무려 열 배 이상이다.
지금까지 소환되었던 모든 용사를 합쳐도, 이번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만큼 성공적인 소환이었으니, 높은 등급의 이들이 많이 나오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 S급을 받은 사람은 어땠나요?”
“글쎄요. 저도 기록으로만 본지라, 자세히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다만?”
대신관이 말끝을 흐리자, 성유라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별건 아닙니다만, 당시의 강림 전쟁 때는 꽤나 희생이 컸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가장 높은 등급의 용사가 소환되었는데 희생이 컸다니?
그 반대가 되어야 맞는 말 아닌가?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군요.”
대신관은 머리를 긁적이며 고개를 저었다.
수백 년도 더 지난 일이다.
기록마저도 유실된 것들이 많아 당시의 상황을 디테일하게 파악할 수가 없었다.
S급의 용사에게 무슨 문제가 있던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 것인지.
“그래도 이번엔 100분이나 되는 용사님이 오셨으니, 그런 피해는 발생하지 않겠죠.”
대신관은 든든하다는 표정으로 성유라를 쳐다봤다.
“그럼 가장 낮은 등급은 뭐였나요?”
사람이 많으니 높은 등급의 용사가 나왔다.
그렇다면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D급입니다.”
그 대답에 성유라는 한 사람을 바로 떠올릴 수 있었다.
“D급이라는 게 많이 낮은 건가요?”
“아무래도 그렇지요. 기록에 적힌 바에 의하면, 그들은 강림 전쟁 때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다른 용사들이 없었다면, 정말로 큰일이 날 뻔했지요.”
성유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각 왕국으로 흩어지기 전, 다른 병사들과 기사들에게 왠지 모르게 차별을 받던 D급 아저씨의 모습이 이해가 갔던 것이다.
‘별 쓸모가 없으면 그런 차별을 당해도 할 말 없지.’
“뭐, D급 용사가 마왕을 물리쳤다는 야사가 있긴 합니다만.”
“……그게 가능해요?”
“그러니까 야사지요. 공식적인 기록엔 그런 이야기는 적혀 있지 않습니다.”
그럼 그렇지.
그냥 소설 같은 이야기인 것 같았다.
사람들은 언더도그 스토리를 좋아한다.
평범하고 사회적으로 약자인 이들이 그것을 뛰어넘어 성공하는 이야기.
신데렐라도 그렇지 않던가?
D급 용사 이야기도 그런 요인 때문에 퍼진 것일지도 모른다.
“아, 이번에도 D급 용사 한 명이 소환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음… 물론 그 용사도 성장을 하면 어느 정도 강해질 수는 있을 겁니다. 유라 님이나 다른 분께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요.”
당연한 말이었다.
D급과 SS급.
무려 5등급이나 차이가 난다.
1등급의 격차도 넘을 수 없다는 것이 정설인데, 5등급?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었다.
“그 D급 용사는 어느 왕국으로 갔는지 알고 계십니까?”
대신관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알아요.”
성유라는 기억력 하나만큼은 자신 있었다.
한 번 보면 잊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두세 번이면 웬만한 건 다 외울 수 있었다.
그러니 용사들이 어느 왕국으로 흩어졌는지는 대부분 기억하고 있었다.
“시온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아…….”
대신관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 용사는 아마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겠군요.”
“그게 무슨 말인가요?”
성유라가 눈을 끔뻑이며 물었다.
그러자 대신관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해 주었다.
“이 시기의 시온은 전쟁터나 다름없는 곳입니다.”
* * *
“아, 좆됐네.”
진심이다.
차라리 스노울 무리와 혼자 싸우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적어도 놈들과는 검을 들고 싸울 순 있을 테니 말이다.
“대체 저런 놈한텐 어떻게 맞서야 되는 거지?”
저만한 크기의 스테이크를 썰어도 하루 종일 칼질을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몬스터다.
손에 쥔 검 한 자루로는 도저히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생각나질 않는다.
“총이라도 주던가.”
물론 소총 따위로는 별다른 상처도 입히지 못할 것 같았지만 말이다.
탱크 정도는 몰고 와야 어떻게든 비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지.’
자기도 모르게 현실 도피를 하고 말았다.
얼음 벌레는 저 높은 곳에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전체적인 모습은 지렁이를 닮았지만, 입에는 서우진보다도 커다란 이빨들이 가득했다.
‘저렇게 생긴 게 칠성장어였지?’
팔뚝만 한 것도 그렇게 징그러운데, 그 크기가 10미터쯤 되니 공포가 느껴질 정도였다.
콰과곽-!
칠성장어, 아니. 얼음 벌레의 앞쪽 땅이 터지듯 치솟아 오르더니 촉수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반 슬레인과 기사들이 싸우는 놈의 것보단 작았지만, 서우진이 감당하기엔 차고 넘칠 정도로 과분한 크기였다.
‘피해야 돼!’
서우진은 재빨리 몸을 날렸다.
그리고 그 판단은 아주 적절했다.
콰아아앙-!
방금 전까지 서우진이 서 있던 곳이 놈의 촉수에 맞아 박살이 나버렸다.
간신히 그것을 피하고는 마른침을 삼켰다.
‘못 싸워.’
최소한 테스테론이나 제라드 정도가 아니라면, 이놈을 혼자 상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니, 그들도 힘들 것이다.
“영주 나리 정도는 돼야겠네.”
반 슬레인이 아니라면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떨리질 않았다.
스노울 한 마리와 싸울 때도 처음엔 벌벌 떨었던 게 서우진이다.
그런데 그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한 몬스터를 앞에 두고도 괜찮았다.
아니, 오히려 그 어떤 때보다 침착했다.
무섭고 도망치고 싶긴 했지만, 그렇다고 몸과 머리가 굳어버리진 않았다.
혹시 두려움에 머리가 어떻게 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서우진 씨!”
그때, 건너편에서 아일린의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다, 뒤늦게 얼음 벌레를 발견하고는 정신을 차려 되돌아온 것 같았다.
“도망가요!”
서우진이 아일린을 향해 소리쳤다.
이 상황에 그녀가 온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시체가 한 구 더 늘어날 뿐.
하지만 당연하게도 아일린은 도망갈 생각 따윈 하지 않았다.
자신의 잘못으로 서우진이 위험에 처한 이 상황에선 더욱 그랬다.
“천천히 뒤로 물러나요!”
아일린은 그렇게 외치고는 얼음 벌레의 시선을 끌었다.
이런 곳에서 서우진을 잃어서는 안 된다.
시온의 위신이 걸린 문제이기도 했지만, 자신의 잘못으로 한 생명이 목숨을 잃는 것은 더 싫었다.
아일린은 자신의 생각 없는 행동을 후회하며 무작정 얼음 벌레를 향해 달려들었다.
촤아악-!
촉수 하나가 반으로 갈라졌다.
적어도 아일린의 세 배는 되어 보이는 굵기였지만, 단 일검에 갈라진 것이다.
아직 남은 촉수는 수십 개에 달했지만, 그래도 아무 의미 없는 일은 아니었다.
서우진을 향해 있던 얼음 벌레의 시선이 아일린에게 돌아간 것이다.
‘또냐!’
서우진은 몸을 돌려 도망치려고 했다.
아일린이 시선을 끌었으니, 지금이라면 충분히 도망을 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 망할 놈의 다리는 또다시 뒤가 아닌, 앞으로 향했다.
드레이카스 때도 그랬지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었다.
‘가봐야 방해만 될 게 뻔한데.’
차라리 도망을 치는 것이 아일린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다.
괜히 자신을 보호하느라 신경을 분산시킬 필요도 없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자신은 아일린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할게 뻔했다.
그런데 왜 계속 앞으로 달려가는 것일까?
“씨발!”
눈앞에서 죽을 게 뻔한 사람을 두고 그냥 도망칠 정도로 마음이 강하지 못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일린이 죽는 꼴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 싶지 않았다.
서우진은 아일린을 구하고 싶었다.
비록 그것이 터무니없이 적은 확률이라 할지라도.
“크윽!”
얼음 벌레는 서우진을 보고 있지 않았다.
촉수들은 그저 본능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릴 뿐이었다.
그런데도 서우진은 죽을 뻔했다.
촉수에 맞아 부서진 얼음 파편이 날아와 얼굴이 찢어지며 피가 새어 나올 정도였다.
그것을 닦을 겨를도 없이 움직이며, 결국 얼음 벌레의 지척까지 다다랐다.
“이게 생명체냐? 건물이지.”
가까이서 본 얼음 벌레의 크기는 정말 어마어마했다.
예전에 집 앞에 있던 상가 건물이 떠오를 정도였다.
꿀꺽-
반대편에 있는 아일린의 모습은 얼음 벌레의 몸통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기합 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아직 무사한 것 같긴 한데…….
“어떻게 하지?”
일단 아일린과 싸우는 사이 여기까지 오긴 했다.
그런데 이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쑤셔.”
서우진은 두 손으로 검을 쥔 뒤, 있는 힘껏 앞으로 찔러 넣었다.
푹-!
“어?”
생각보다 수월하게 검이 들어갔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전부라는 것이다.
얕아도 너무 얕았던 것이다.
제대로 된 마력도 싣지 못하는 서우진의 검으론 놈에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했다.
기껏해야 바늘로 따끔 찔린 정도의 통증밖에 느끼지 못할 것이다.
아니, 얼음 벌레는 자신이 검에 찔린 줄도 모르는 듯했다.
그래도 공격이 가능하다는 것은 알았으니 됐다.
한 번으로 안 되면, 열 번.
그것도 안 되면 백 번을 쑤시면 된다.
그때까지도 얼음 벌레가 자신을 못 알아차릴 것 같진 않지만…….
‘그것 말곤 방법이 없잖아?’
서우진은 검을 빼서 다시 찔러 넣었다.
면적이 넓으니 찌를 곳은 많았다.
푹푹푹-
기세에 비해 너무도 조잡스러운 공격이었지만…….
그래도 통했다.
움찔-!
여태까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던 것과는 다르게,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효과가 있어!’
얼음 벌레의 피를 온몸에 뒤집어쓴 서우진이 쾌재를 부르며 위를 쳐다봤다.
“어떠냐, 이 벌레 새…….”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위업을 외치려던 서우진이 입을 다물었다.
촉수 하나가 정확히 그를 향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어우, X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