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42)
141화.
서우진의 표정은 차가웠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일린이 흠칫- 놀랄 정도로 서늘한 모습이었다.
“우진 씨.”
그녀는 찌르는 듯한 살기를 풍기고 있는 서우진을 불렀다.
그러곤 다가가 어깨에 손을 얹었다.
“진정해요, 지금 너무 흥분한 것 같으니.”
서우진이라 하더라도, 수십 명에 달하는 생명을 한 번에 죽이는 게 쉬울 리가 없었다.
힘의 문제가 아니었다.
정신적으로 큰 충격이 있을 터였다.
아무리 익숙해졌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인간의 형상과 비슷한 존재를 죽인다는 건 큰 부담이었을 테니까.
아일린의 손에서 느껴지는 따뜻한 체온에 서우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고마워.”
서우진은 표정을 풀며 라시드를 향해 걸어갔다.
‘카 라니엘’은 다시 검집에 집어넣었다.
괜히 이걸 들고 있다가는, 자신도 모르게 놈의 목을 베어버릴 것만 같았던 것이다.
아일린 덕분에 조금 진정이 되긴 했지만, 서우진은 여전히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다, 다가오지 마라! 뭐 하느냐? 저놈을 막지 않고!”
라시드는 옆에 있던 병사를 잡아끌더니, 앞으로 밀었다.
“어? 어?”
병사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한 채, 서우진을 향해 강제로 밀려갔다.
그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도 제 한 몸 살자고 남을 앞세우다니…….
“비켜.”
“옙!”
싸늘한 음성에 병사는 당연하게도 허겁지겁 옆으로 비켜섰다.
아무리 라시드가 무섭다고는 하지만, 서우진만큼은 아니다.
방금 다크 엘프 수십 명을 떼몰살시킨 장본인 아닌가?
라시드가 아니라, 그 누가 와도 서우진보다 무서울 순 없었다.
“이, 이 새끼가!”
뒤늦게 라시드가 병사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불가능했다.
서우진의 신형이 어느새 라시드와 병사 사이에 끼어든 것이다.
흠칫-!
손을 뻗으려던 라시드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곤 마른침을 삼켰다.
자신이 야심차게 준비한 일이 몇 초 만에 무참하게 박살났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설마하니 다크 엘프들이 그렇게 무참히 죽어버릴 줄이야.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자신이 다크 엘프들과 교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켰다는 것이었다.
하필이면 그것도 용사에게!
라시드는 도무지 빠져나갈 구멍이 보이지 않는 막다른 길에 몰린 기분이었다.
“야.”
서우진이 라시드를 불렀다.
그러자 다시 한번 움찔- 하며 몸을 움츠렸다.
“걱정하지 마라. 죽이진 않을 테니까.”
서우진의 말에 라시드의 안색이 살짝 밝아졌다.
이 자리에서 목을 베어도 할 말이 없을 텐데, 살려준다니.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표정이 일그러졌다.
“대신 네 입에서 차라리 죽여달라는 소리가 나오게 만들어주지.”
서우진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콰드득-!
첫 만남 때 그러했던 것처럼, 라시드의 코뼈가 부러져 나갔다.
“아아아악!”
끔찍한 고통에 비명이 터져 나왔다.
“지금부터 시작이야. 일을 저질렀으면 대가는 치러야지.”
서우진의 폭력은 무자비했다.
한 방, 한 방이 뼈를 부수고 피부를 찢었다.
비명은 어느새 멎었다.
살려달라고 애원하던 목소리도 사라졌다.
그저 미약한 신음만이 흘러나올 뿐이었다.
“그, 그만…….”
그때, 라시드의 입에서 가느다란 음성이 내뱉어졌다.
“아직 더 맞을 수 있나 본데? 말이 나오는 걸 보니까.”
서우진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신성왕국 아이에르의 고위급 사제들이 직접 나서도 쉽게 치료할 수 없을 정도로 박살낼 작정이었다.
그래야만 여생 동안 후회라는 것을 할 테니 말이다.
하지만 서우진은 의지와 달리, 주먹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지나, 한에… 악마, 정보…….”
“응?”
무슨 말일까?
지나한, 악마, 정보?
세 단어의 뜻을 생각해 보던 서우진이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너, 뭐 아는 게 있냐?”
“이, 있습니, 다. 피를 먹, 는…….”
레이나다.
그녀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는 게 분명했다.
“말해. 제대로 된 정보를 넘기면, 여기서 그만두지.”
그러자 라시드는 파들거리며 떨리는 손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엔 겁을 먹고 엉거주춤 서 있는 병사가 있었다.
“저놈이 아, 알고 있…….”
서우진은 라시드에게서 떨어졌다.
그러곤 천천히 그가 가리킨 병사를 향해 다가갔다.
“아는 게 있어?”
“압니다! 제가 알고 있습니다!”
병사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1초라도 늦으면 라시드와 같은 꼴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필사적인 모습이었다.
“말해봐.”
“그, 그러니까 그게…….”
병사는 설명을 시작했다.
“저 다크 엘프들이 처음 나타났을 때였습니다. 그들은 라시드 공자님과 꽤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처럼 보였습죠.”
병사는 다크 엘프들이 아마도 이와 비슷한 일을 몇 번 처리해 준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엔 조금 달랐습니다. 일에 대한 대가로 조금 특이한 걸 요구했는데…….”
“특이한 거?”
서우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네, 네. 본래는 골드로 셈을 치렀는데, 이번에는 돈이 아니라 인간을 필요로 했습니다.”
병사의 대답에 서우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짐작 가는 바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공자님이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그들의 피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당연히 저는 질색했는데, 공자님께선…….”
병사의 시선이 슬쩍 라시드를 향했다.
경멸이 섞인 눈빛.
그것만 봐도 저놈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 것 같았다.
“몇 명이나 갖다 바쳤지?”
“…다섯 명입니다.”
헛웃음이 났다.
그러니까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보살펴야 할 영지민 다섯 명의 목숨을 대가로 치른 것이다.
살기가 왈칵- 치솟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을 가까스로 누르고는, 입을 열었다.
“계속해.”
“제가 직접 그들을 데리고 한 저택으로 향했습니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질 줄 알았다면 절대 가지 않았을 겁니다.”
“무슨 일이 있었지?”
“그, 그곳에는 악마가 살고 있었습니다. 여자인 것 같긴 한데, 그것도 정확히는 모르겠습니다. 그저 붉은 기운과 짙은 은발 정도밖에는 보이질 않았으니까요.”
붉은 기운과 은발.
레이나의 특징과 일치했다.
“그래서?”
“그 악마는 다섯 명을 씹어 삼켰습니다. 말 그대로 정말 씹어서 삼켰단 말입니다.”
병사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당시의 공포가 몸을 엄습하는 듯했다.
“그것을 보자마자 저는 도망쳐 나왔습죠. 공자님께 말씀을 드려봤지만, 별로 신경쓰지 않으셨고요.”
“혹시 그 악마의 곁에 다른 사람은 없었나?”
레이나가 이곳에 있다는 건 확실한 것 같았다.
그럼 백시우는?
서우진에겐 레이나보단 그 망할 놈의 존재 여부가 더 중요했다.
“아, 그러고 보니 누가 있긴 한 것 같았습니다. 너무 무서워서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분명 남자 한 명이 더 있었습죠.”
예상대로 그 둘은 같이 있는 듯했다.
“그렇군.”
이제 라시드 따위는 문제가 아니다.
물론 영지민들을 사사로이 다룬 것에 대한 대가는 후에 치르게 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나중의 일.
지금 해야 할 일은 백시우와 레이나를 처리하는 것이었다.
“그곳으로 안내해라.”
“…예? 거길 말입니까?”
병사가 혼비백산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그 악마가 살고 있는 곳을 또 가게 될 줄은 상상도 못한 모양이었다.
“그럼 여기서 저놈 꼴이 되던가.”
서우진이 라시드를 가리키자, 병사는 사색이 된 채 고개를 흔들었다.
저렇게 될 바에야, 차라리 악마가 살고 있는 저택까지 안내하는 편이 훨씬 더 나을 것 같았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병사는 울며 겨자 심정으로 안내를 자처했다.
“아일린.”
서우진이 뒤를 돌아봤다.
일련의 사태를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던 아일린이 고개를 저었다.
“혼자 두고 갈 생각이라면 그만두는 게 좋을 거예요.”
그녀는 서우진이 자신을 떨어뜨려 놓고 갈 것이라 생각했는지, 처음부터 못을 박았다.
“그 말을 하려던 게 아니야.”
서우진이 어색하게 웃었다.
실제로 그는 아일린을 떼어놓고 갈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시도도 하기 전에 걸리고 말았다.
“그럼 왜요?”
아일린은 여전히 의심이 섞인 눈초리를 거두지 않은 채 물었다.
“저 망할 놈을 영주성으로 좀 데려다 줄래?”
“……그사이에 혼자 가려고 하는 거죠?
그럴 줄 알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저 녀석을 여기에 두고 갈 순 없잖아. 치료도 해줘야 하고, 모히아딘 자작과 로아닌 경에게도 상황을 알려야지.”
여기서 멀쩡히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서우진, 아일린, 그리고 이름 모를 병사뿐이었다.
서우진과 병사는 레이나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하니, 남은 것은 아일린밖에 없다.
그렇다고 다 같이 영주성에 들렀다가 이동하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허비된다.
그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레이나는 고개를 젓고 싶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라는 건 인지하고 있었기에, 거부하기도 힘들었다.
결국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이는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요. 대신 곧바로 따라갈 거예요.”
“표식을 남겨둘게. 그걸 따라오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거야. 혹시 모르니 로아닌 경과 지원들도 데리고 와줘.”
“알았어요.”
아일린은 쓰러져 있는 라시드를 둘러업었다.
“으윽!”
고통스러운 신음이 터져 나왔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솔직히 라시드가 제국이 아닌, 시온의 귀족이 아니었다면 직접 목을 베었을 것이다.
그럴 수가 없다는 게 너무도 안타까웠다.
“그럼 다녀올게요. 그리고…….”
아일린은 문을 나서기 전 서우진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번엔 다치지 말고요.”
“알았어.”
서우진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절대 다치지 않겠다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일린이 사라지자, 서우진의 표정은 그 어떤 때보다 무겁게 가라앉았다.
“어디라고?”
병사를 향해 물었다.
“저, 저를 따라오시면 됩니다.”
그는 서우진과 함께, 악마가 살고 있는 저택으로 향했다.
* * *
“하아- 하아.”
고통에 겨운 거친 숨소리가 터져 나왔다.
팔이 잘리고, 척추의 반이 끊어졌다.
아무리 레이나라고 해도, 고통스럽지 않을 리가 없었다.
“젠장, 피가 더 필요해.”
고작 다섯 명의 피로는 턱도 없었다.
평소였다면 그 정도만으로도 몸을 전부 회복하고도 남았을 텐데…….
지금은 아주 잠깐의 시간만 벌었을 뿐이다.
마공과 요른의 공격은 레이나의 육체에 돌이킬 수 없는 상흔을 남긴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시선이 옆을 향했다.
그곳에는 멍한 눈빛으로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는 백시우가 서 있었다.
‘저분을 확보했으니 손해는 아니야.’
새로운 마왕.
새로운 지배자.
그분을 영접하는데 이 정도의 대가는 싼 편이었다.
“언제쯤 정신을 차리실는지.”
까닭은 알 수 없었지만, 현재 백시우의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뭔가를 해보려고 해도, 현재 자신의 상태가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로 정상적이질 않았다.
사자에게 연락을 취해놓았으니, 때가 되면 진정한 왕의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다.
“부디 강림하시어 저희를 이끌어주시길…….”
레이나는 고통과 쾌락이 뒤섞인 눈빛으로 백시우를 바라보며 웃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