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50)
149화.
거대한 숲이 보인다.
공식 명칭은 ‘필로타인 라세’.
고대어로 끝이 보이지 녹빛 바다라는 뜻이었다.
그 이름대로 숲은 지평선 너머까지 뻗어 있을 정도로 광활했다.
“진짜 넓네요.”
기차의 창문을 통해 숲을 바라보던 서우진이 감탄했다.
“제국뿐만 아니라 대륙 전체에서도 가장 넓은 숲이라네. 엘프 종족의 대부분이 필로타인 라세에서 생활하고 있지.”
웬만한 대도시 서너 개를 합친 것보다도 크다 보니, 한 종족의 80% 이상이 그곳에 모여 살고 있음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물론 엘프라는 종족의 수가 인간에 비해 훨씬 적기에 가능한 일이긴 했지만 말이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목적지가 나올 걸세.”
필로타인 라세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그곳에는 두 사람의 목적지인 죽음의 숲이 있었다.
“거기도 이렇게 큽니까?”
서우진이 물었다.
“아니네.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작지. 흔하게 볼 수 있는 작은 숲에 불과해.”
“그런데도 실종자가 계속 발생했다는 건…….”
“놈들과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큰 게지.”
만약 반 슬레인이 우연히 마기의 흔적을 발견하고 쫓지 않았더라면, 아직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대체 그곳에 뭐가 있는 걸까요?”
크루시엘의 아그나는 죽음의 숲이 게랄드나 레이나, 그리고 사자와 같은 이들이 우글거리는 세력의 근거지라고 단언했다.
초극의 경지에 도달한 괴물들의 수만 보면, 제국을 아득히 초월할 정도로 강력했다.
그들의 근거지라니…….
그곳에는 뭐가 있을지 상상도 되질 않았다.
“직접 가봐야 알 것 같으이. 크루시엘에서 먼저 조사를 시작했으니, 어느 정도 밝혀지지 않았겠나?”
반 슬레인은 크루시엘이라는 조직의 능력을 상당히 믿고 있는 듯했다.
‘하긴.’
백시우를 찾았던 걸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했다.
“대체 크루시엘이라는 곳은 뭐하는 곳입니까?”
“음, 쉽게 설명하자면 제국을 음지에서 지키는 비밀 기관이라네.”
비밀정보국 크루시엘.
예상했던 대로 그곳은 미국의 CIA나 구소련의 KGB, 그리고 한국의 국정원과 비슷한 기관이었다.
다만, 그런 곳들보다 훨씬 더 큰 힘과 권한을 지니고 있다는 게 달랐다.
“황제의 직속 기관이기도 하다네. 그 누구의 명령도 듣지 않고, 오직 황제의 명만 따르지.”
크루시엘의 뜻이 곧 황제의 뜻.
제아무리 귀족들이라 하더라도, 크루시엘의 행동을 규제할 순 없었다.
아니, 그들의 검이 자신들을 향하지 않기만을 바랄 정도였다.
필요하다면 귀족의 즉결처형까지 가능하다니…….
생각보다 더 대단한 조직 같았다.
“제국의 드러난 칼이 수호자들이라면, 크루시엘은 감춰진 칼이라고 볼 수 있다네.”
반 슬레인의 설명을 들은 서우진은 짐작했던 크루시엘의 능력을 조금 더 상향시켰다.
그 정도의 힘이라면 지금까지 죽음의 숲에 대한 정보를 꽤 많이 수집했을 것 같았다.
“이제 거의 다 온 듯허이.”
반 슬레인의 말에 서우진이 창밖을 확인했다.
드넓게 펼쳐져 있던 필로타인 라세가 어느새 사라지고, 널따란 평야가 모습을 드러냈다.
“슬슬 내릴 준비를 합세.”
저 멀리 기차역이 보였다.
목적지인 죽음의 숲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에 있는 역이었다.
“싱그럽네요.”
아일린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말했다.
대륙에서 가장 커다란 숲이 근처에 있어서 그런가?
확실히 공기가 상쾌한 느낌이었다.
‘지나한에 있다 와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걸지도.’
사막도시 지나한.
그곳의 공기는 농담으로라도 좋다고 할 수 없었다.
서우진은 오랜만에 맡아보는 피톤치드 향에 마음이 진정되는 듯했다.
“준비가 되었습니다, 반 슬레인 공.”
그때, 로나인이 다가오며 정중하게 말을 걸었다.
“허허, 공은 무슨. 그냥 작위로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네.”
반 슬레인이 편하게 대하라 말했지만, 로나인은 그럴 수가 없었다.
“제가 어찌 감히.”
그가 아직 검을 잡지도 못할 어린 나이일 때부터, 검귀라는 명성을 날렸던 이였다.
제국의 검공과 자주 비교가 되던 존재.
로나인은 그와 함께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영광스러울 정도였다.
그러니 극존칭을 사용하는 것은 당연했다.
반 슬레인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허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사람하고는. 아무튼 일단 가세. 시간이 촉박하니.”
로나인과 백은기사단이 준비한 것은 바로 말이었다.
이번에도 마차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던 서우진이 눈을 빛냈다.
지금까지 직접 말을 타고 이동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오…….’
수십 필의 말이 도열해 있었다.
그 위에 앉아서 대기하고 있는 백은기사단의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말은 이쪽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로나인이 직접 준비된 말로 일행을 안내했다.
그곳엔 흰색의 아름다운 말 세 마리가 투레질을 하고 있었다.
“고르고 고른 녀석들입니다.”
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서우진의 눈에도 명마로 보였다.
“한 마리씩 골라서 타시면 됩니다.”
로나인의 말에 서우진은 잔뜩 기대하는 표정으로 가장 앞에 있는 말을 골랐다.
“말을 타본 적이 있나?”
반 슬레인이 물었고, 서우진은 고개를 저었다.
“처음입니다.”
“그런가? 흠, 상관없겠지.”
승마를 가르쳐야 할지 잠시 고민하던 반 슬레인은 어깨를 으쓱했다.
서우진은 용사다.
그것도 다른 용사들과는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성장을 했다.
이미 인간의 육체를 아득히 초월했다는 뜻이었다.
말을 타는 요령 정도야, 서우진의 신체능력을 생각하면 몇 분도 걸리지 않아 터득할 게 뻔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아일린.”
반 슬레인이 부르자, 서우진의 뒤에서 말을 쓰다듬고 있던 아일린이 고개를 돌렸다.
“말씀하십시오.”
“잘 가르쳐 주게.”
“알겠습니다.”
아일린은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다는 듯,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이제 그만 출발하지.”
반 슬레인이 말에 올라타자, 서우진도 훌쩍- 뛰어 말 등에 올랐다.
푸르르-
낯선 이가 올라타자 말은 잠시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명마는 명마인지, 이내 진정하고는 얌전히 서우진을 받아들였다.
“옳지, 착하다.”
부드럽게 말의 목덜미를 쓰다듬어 주자, 기분이 좋은 듯 고개를 흔든다.
“출발!”
가장 선두로 나선 로나인이 소리치자, 말들의 질주가 시작됐다.
두두두두두-!
대지가 울린다.
서우진은 기분 좋은 울림을 느끼며, 말을 모는 데 집중했다.
‘음, 이렇게. 이건가?’
처음 타보는 말이었지만, 반 슬레인이 예상한대로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일린이 따로 가르쳐 줄 필요도 없었다.
그저 말의 움직임에 맞춰 육체를 컨트롤해 주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서우진은 시원하게 바람을 달렸다.
드넓게 펼쳐져 있는 대지를 달리다 보니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타보는 말은 어때요?”
아일린이 문득 물었다.
“좋네, 왜 지금까지 안 타봤는지 후회가 될 정도로.”
서우진은 웃으며 대답을 해주었다.
단순히 속도로 따지자면 자신이 직접 다리로 달리는 게 훨씬 빨랐다.
하지만 말을 타고 달리니, 혼자 뜀박질을 하는 것과는 다른 묘한 쾌감이 있었다.
심지어 주변에는 완전무장을 한 기사단이 따르고 있었으니, 더욱 그랬다.
“다행이네요.”
아일린이 살짝 미소를 지었다.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서우진의 모습이 신기했던 것이다.
“앞으로는 말을 탈 일이 많을 거예요.”
“…그래?”
웬만한 거리는 기차를 타면 된다.
그게 훨씬 편하고 빠르니까.
단거리는 직접 뛰거나 마차를 빌려서 이동하는 게 더 효율적이었고.
가끔 이렇게 한 번씩 타는 거면 몰라도, 자주 탈 거라니?
서우진이 고개를 갸웃하자, 아일린이 말을 이었다.
“전쟁에서는 말이 필수니까요.”
“아, 전쟁.”
서우진은 그제야 아일린의 말을 이해했다.
강림 전쟁이 시작되면, 웬만한 운송수단은 모조리 파괴가 될 게 뻔했다.
아무리 제국의 힘이 강하다 한들, 세계멸망 급 전쟁이 벌어졌는데 기차선로까지 모두 지킬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당연히 말이 애용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기사단의 집단마상돌진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죠.”
영화에서 많이 봐서 안다.
단 한 번의 돌진으로 적들의 진형을 모두 부숴 버리는 장면은, 장엄할 정도로 멋있었다.
영화 특유의 과장인가 싶었는데, 아일린의 말을 들어보니 진짜인 듯했다.
“서우진 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위력일 겁니다.”
곁에서 말을 달리던 로나인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런가요?”
로나인은 제국의 제1기사단인 백은기사단의 단장이다.
그가 하는 말이니 더욱 실감이 났다.
“하지만 위험하기도 하죠.”
기사들이 가장 많이 사망할 때는 바로 그때였다.
무사히 돌파한다면 상관없었지만, 만약 막힌다면?
기동력을 잃은 마상돌진은 죽음을 뜻한다.
아무리 강력한 기사라 하더라도, 적들에게 포위된 상태에선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고 마니까.
그 경지가 상급 이상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겠지만, 어디 그런 수준의 기사가 흔하던가?
“전쟁이 시작되기 전까지 최대한 말에 익숙해지시는 게 좋을 겁니다. 지금도 잘 타시긴 하지만.”
아직 멀었다는 뒷말은 생략한 듯했다.
말과 한 몸이 될 정도의 수준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수족을 부리듯 움직일 정도는 되어야 할 것 같았다.
“조언 감사합니다.”
서우진이 로나인을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전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지.’
전투는 해봤어도, 전쟁은 경험이 없다.
그저 영화로 본 게 전부였다.
가장 비슷한 경험은 북방에서의 토벌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진짜 전쟁과는 많이 다를 터.
분명 상상하는 것과는 차이가 클 것이다.
‘전쟁에 대해서도 공부를 좀 해야 되겠는데.’
가르쳐 줄 사람은 많다.
주변에 널린 게 기사들이었으니까.
그들 중에는 실제로 타국과 전쟁을 해본 이도 있을 것이다.
‘이번 일이 마무리되면.’
서우진은 다음을 기약하며 말을 달리는 것에 집중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슬슬 말에 익숙해질 때쯤.
“저 앞입니다.”
숲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게 죽음의 숲?”
무시무시한 별명과는 달리, 너무도 평범한 모습이었다.
필로타인 라세처럼 광활하지도 않았고, 마경 헬데인처럼 음습하지도 않다.
그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작은 숲.
사람들이 저곳에서 실종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서우진은 표정을 굳혔다.
“확실히…….”
다른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단 한 사람, 반 슬레인을 제외하면 말이다.
“느껴지나 보구먼.”
반 슬레인이 슬쩍 말을 걸어왔다.
“네, 확연하게 느껴지네요.”
마기다.
무형의 마기가 숲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거의 지옥이겠네요, 저 숲은.”
“내가 떠나기 전엔 저렇지 않았다네. 아무래도 크루시엘이 발각된 듯하군.”
그의 음성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조금 더 서둘러야겠습니다.”
서우진의 말에 로나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속으로!”
말의 속도가 빨라졌다.
서우진은 살짝 긴장감을 끌어올리며, 눈앞의 숲을 노려봤다.
‘이번에도 쉽지 않겠어.’
죽음의 숲에서는, 그 이름대로 죽음의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