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57)
156화.
[레벨 업 하셨습니다.]루운발리의 머리가 터지자, 예의 글자들이 나타났다.
‘귀찮군.’
서우진은 그것을 무시했다.
레벨이 몇이 오르든, 지금의 그에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런 ‘시스템’으로 표현하기엔 너무도 높은 ‘격’에 도달했기 때문이었다.
바닷물에 모래 한 알 정도 떨어뜨린 것 같은 성장을 느끼며, 서우진은 처음 보는 놈을 쳐다보았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반 슬레인과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살짝 고개가 갸웃해진다.
분명 방금 전까지 둘은 서로 죽일 듯이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을 멈추고는, 자신을 함께 경계 중이다.
이해할 수가 없는 모습이었다.
‘뭐, 상관없나?’
둘이 갑자기 화해를 하든 말든.
서우진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너는 누구지?”
그때, 반 슬레인이 물어왔다.
“흐음…….”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서우진이라고 할 순 없었다.
그에게 걸릴까 봐 두렵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저…….
‘서우진이 아니니까.’
마왕.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혼돈’이다.
물론, 서우진은 친절하게 대답해 줄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직접 한번 알아봐.”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반 슬레인의 표정이 더욱 굳어졌다.
미소에 감춰진 지독한 살기와 마기를 느낀 것이다.
서우진은 그가 어떻게 반응할지 기대되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지켜보았다.
* * *
“아일린 경!”
로나인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아일린은 대답할 정신이 없었다.
“크윽!”
기괴하게 생긴 마수 한 마리가 휘두른 발톱에 허벅지가 길게 찢어졌다.
피가 터져 나왔지만, 아일린은 이를 악다물고 검을 휘둘렀다.
쯔걱-!
아쉽게도 목을 한 번에 베진 못했다.
자세가 불안정한 탓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론 그녀의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예 효과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아일린을 향해 달려들던 마수들이 흠칫- 하며 움직임을 멈춘 것이다.
“막아!”
로나인의 명령에, 그녀의 근처에 있던 기사들이 마수들을 반으로 쪼개 버렸다.
검은 피가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후욱- 후욱-!”
아일린은 그것을 피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호흡을 골랐다.
“괜찮습니까?”
어느새 주변을 정리한 로나인이 다가오며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순백의 아름다웠던 그의 갑주는, 마수의 피로 물들어 본래의 색이 바랜 지 오래였다.
“괘, 괜찮습니다.”
아일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누가 봐도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다.
다른 기사들처럼 마수의 피가 전신을 적시고 있었고, 크고 작은 부상들을 입은 모습이었다.
만약 주위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서우진님은 어떻게 되었을지…….”
로나인의 말에 아일린이 흠칫했다.
그렇지 않아도 그녀 역시 서우진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들을 탈출시키고 뒤에 홀로 남았다.
마수도 마수였지만, 13사도 중 하나로 보이는 광대는 정말로 강했다.
아무리 서우진이라 하더라도 그 상황을 쉽게 벗어날 순 없을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이미 늦었을 수도 있었다.
아일린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 자신이 너무도 한심해졌다.
‘방해가 되지 않겠다고 했으면서.’
마지막으로 본 서우진의 모습을 떠올렸다.
마치 무엇인가에 쫓기듯, 자신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마수들을 도륙했었다.
그때의 서우진은 경이로울 만큼 강했다.
만약 그 힘을 자신들을 탈출시키는 것에 쓰지 않고, 루운발리와의 싸움에 집중했다면?
그랬다면 훨씬 더 승산이 높아지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아일린의 머릿속을 괴롭혔다.
왠지 서우진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그런 기회를 저버리고 무리한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죠.”
아일린의 기색을 눈치챈 로나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서우진님은 강합니다. 비록 도움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레이나를 상대할 정도로 말입니다. 그러니 이번에도 괜찮을 겁니다.”
딱히 위로가 되는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걱정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일.
아일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세를 바로 했다.
“감사합니다.”
그 모습에 로나인이 미소를 지었다.
경지는 아직 일천하지만, 기사로써 그녀의 행동은 그 누구보다 뛰어났다.
여인의 몸으로 저렇게 완벽한 기사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로나인은 흐트러짐 없는 아일린의 몸가짐에 감탄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단 주변은 정리가 된 듯하군요.”
방금 전 공격이 마지막이었다.
마수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당분간은 안전할 것 같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휴식을 취할 시간 따윈 없었지만 말이다.
“반 슬레인 백작님이 계실 만한 곳을 찾을 생각입니다.”
지금 상황에 가장 안전한 곳을 찾으라면, 당연히 그의 곁일 것이다.
무슨 일이 있는지 신호탄을 발사했음에도 지원을 오진 못했지만, 그래도 그를 찾아야만 했다.
서우진을 돕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찾을 수 있을까요?”
숲속에서 도주와 전투를 반복하느라 방향감각을 완전히 상실했다.
그런 상황에서 반 슬레인을 찾는 것은 꽤 어려울 듯했다.
하지만 로나인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 미소를 지었다.
“크루시엘의 대원들이 함께 있으니까요.”
전혀 문제없다는 뜻이었다.
“그럼 지금 바로 출발하나요?”
“아무래도 그러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이곳은 피냄새가 진동하니 말입니다.”
마수는 짐승답게 후각이 발달했다.
특히나 혈향에 매우 예민했으니, 그것을 맡으면 모조리 이쪽으로 향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그전에 이동을 해야만 했다.
“알겠습니다.”
아일린은 검날을 손으로 쓸어내리며 대답했다.
검에 묻은 피가 주르륵- 하고 흘러 내렸다.
‘여기서도 발목을 잡을 순 없어.’
솔직한 심정으론 당장에라도 누워서 휴식을 취하고 싶었다.
마수들의 시체가 가득하든, 피 웅덩이가 있든 상관없었다.
그런 것은 익숙했으니까.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자신 때문에 일행의 행동이 늦어지는 것도 원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서우진을 구하기 위해선 지금 움직여야 했다.
‘움직여야 돼.’
파르르-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걸음을 옮겼다.
“이쪽입니다!”
그사이, 크루시엘에서 반 슬레인의 위치를 특정한 것 같았다.
아일린으로선 그 방법을 짐작도 하기 힘들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이동한다.”
로나인이 명령했고, 아일린은 그들의 사이에서 이동을 시작했다.
발이 땅에 닿을 때마다 허벅지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마지막에 입은 부상이 꽤나 심각한 듯했다.
‘아이에르의 사제라도 함께했다면 좋았을 텐데.’
아니면 그 성유라라는 ‘성녀’라도.
한숨이 새어 나왔다.
지나한에서 헤어질 게 아니라, 데리고 왔다면…….
자신뿐만 아니라 상처 입은 다른 기사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을 텐데.
하지만 성유라는 없다.
서우진이 돌려보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서우진에게 악감정을 품고 있는 그녀로선 반발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저 아카데미로 돌아가 이곳의 상황을 요른에게 보고해 달라는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러곤 대답도 듣지 않고 헤어졌다.
뒤에서 그녀가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서우진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당시의 결정을 후회하는 건 아니었지만, 조금 아쉬운 것도 사실이었다.
‘쯧, 몸이 약해지니 별 잡스러운 생각이 다 드는군.’
아일린은 고개를 흔들며 생각을 털어냈다.
지나간 일을 이제 후회해 봐야 무엇할까?
중요한 건 지금부터 해야 할 일이었다.
반 슬레인을 찾고, 서우진을 구해야만 했다.
그리고 어떻게든 무사히 이 숲을 벗어나는 것까지.
신경써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 이런 잡생각을 할 여유 따위는 없…….
콰아아아앙-!
전면에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방패 들어!”
동시에 로나인이 명령했고, 선두에 있던 기사들이 방패를 세웠다.
쿠구구구구구-!
어마어마한 충격파가 일행을 휩쓸었다.
상급 기사들의 방패가 1차적으로 방어를 했음에도, 아일린은 충격을 이겨내지 못하고 땅을 나뒹굴었다.
그것은 크루시엘의 대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넘어지지 않은 것은 백은기사단의 기사들뿐이었다.
하지만 그들 역시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억지로 충격파를 견뎌내다 보니, 내부가 진탕된 듯했다.
“미친……!”
로나인이 경악했다.
직접 적으로 공격을 받은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충돌의 여파로 생긴 후폭풍일 뿐이다.
그런데 그조차도 완벽히 막아내는 것이 불가능했다.
“대체 누가?”
대체 어떤 괴물들이 전투하고 있기에, 이런 거대한 폭풍이 몰아친단 말인가?
로나인을 포함한 모두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앞을 쳐다봤다.
방금 전까진 보이지 않았던 전투 장면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방금 전의 폭발로 주변의 나무들이 모조리 뿌리째 뽑혀 날아갔기에 시야가 확보된 것이다.
“저건!”
“단장님, 피해야 합니다!”
전투를 벌이고 있는 이들을 확인한 기사들이 경악했다.
반 슬레인은 그렇다 치고, 그 옆에서 함께 싸우고 있는 남자는 브루탈이다.
아일린의 눈이 부릅떠진다.
시온의 배신자.
제국에서 지정한 적색 등급의 위험 분자.
브루탈을 누구보다도 증오하고 있을 반 슬레인이 함께 싸우고 있었다.
아일린으로선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건 따로 있었다.
“…저 둘의 합공을 막아낸다고?”
누구일까?
뿔과 날개, 그리고 외피만 봐도 그가 평범한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브루탈은 반 슬레인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강자다.
그런 이들의 합공을 너무도 쉽게 막아내는 존재라니…….
‘혹시?’
아일린은 순간적으로 백시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외형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브루탈이 검을 겨누고 있었다.
그 누구보다 신실한 마왕의 추종자가.
그러니 백시우는 아닐 것이다.
‘그럼 대체 누구지?’
아일린은 빠르게 상황을 파악하다, 문득 뭔가를 발견했다.
“흡!”
동시에 숨이 막힌다.
‘루운발리?’
머리가 박살나 얼굴을 알아볼 순 없었지만, 분명 저 복장은 조금 전까지 서우진과 싸우고 있던 루운발리의 것이었다.
13사도 중 하나이자, 초극의 경지에 이른 강자.
그런 이가 마치 길가의 쓰레기처럼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아일린의 눈동자는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더욱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루운발리는 분명 서우진과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이곳에서 시체가 되어 있었다.
그럼 서우진은?
대체 그는 어떻게 된 걸까?
아일린은 치밀어 오르는 불안감을 삼키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우진 씨…….”
화아아아악-!
서우진의 이름을 속삭이는 것과 동시에 눈앞에서 강풍이 불었다.
“윽!”
도저히 눈을 뜨고 있을 수가 없어 잠시 팔을 들어 얼굴 앞을 가로막았다.
그리고…….
이내 잠잠해져 팔을 내린 아일린은, 자신의 앞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검은색의 외피가 뒤덮여 있는 상체.
고개를 들자 얼굴이 보였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표정과 심연보다 깊은 눈동자.
그 안에서 느껴지는 소름끼치는 마기까지.
아일린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정체를 입에 담고 말았다.
“……마왕.”
동시에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