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58)
157화.
검이 날아온다.
하품이 나올 정도로 느린 속도였다.
‘그냥 죽일까?’
서우진은 순간적으로 든 생각에 스스로 놀랐다.
‘죽여? 반 슬레인을?’
그는 좋은 사람이다.
모두가 무시하고 멸시할 때, 오직 그만이 자신을 사람 대접해 주었다.
심지어는 직접 검에 대한 가르침까지 내려주어, 홀로 설 수 있도록 해준 스승이었다.
그런 반 슬레인을 죽인다?
서우진은 자신이 현재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지금이 정상적인 것 같았다.
‘그래도 지금 죽이는 건 아니지.’
서우진은 느릿느릿 다가오는 검을 슬쩍 피하며 생각했다.
이 와중에도 반 슬레인의 검은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비록 속도가 너무 느리고, 위력도 형편없었지만…….
그 검로에 스며 있는 격은 서우진으로서도 결코 얕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조금 더 지켜보자.’
아직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몇 번 더 경험해 보면 완벽하게 습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서우진의 머릿속에는 반 슬레인의 검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놈은 누굴까?
반 슬레인이 그를 브루탈이라고 부르는 것은 들었다.
하지만 서우진에게 그딴 이름이 중요한 건 아니었다.
‘마기.’
놈에게서 미약한 마기가 느껴졌다.
‘잡스럽군.’
너무도 하찮아 얼굴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그래도 검은 괜찮아.’
놀랍게도 브루탈의 검은 반 슬레인에 못지않게 뛰어났다.
‘흠…….’
서우진의 눈이 반짝였다.
처음 둘의 합공은 형편없었다.
손발도 맞지 않았고, 타이밍은 처참할 정도로 어긋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조금씩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만약 서우진이 모든 것을 압도할 정도로 높은 격의 존재로 재탄생하지 않았더라면, 결코 피하지 못했을 만큼 위력적인 검로를 그렸다.
서우진은 아주아주 느려진 시간 속에서 그것들을 피해내며, 하나씩 습득했다.
이전이었다면 꿈도 꾸지 못했겠지만, 지금은 보는 것만으로도 그것들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했다.
단순히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닌, 지금 당장 펼쳐 보이라고 해도 쉽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체득한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둘에게 한계가 찾아온 듯했다.
반 슬레인의 잘생긴 얼굴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렸고, 브루탈은 표정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두 사람의 체력과 마력이 바닥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됐어.’
안 그래도 느렸던 검이 점점 더 느려져, 이젠 정말로 눈 감고도 피할 수 있을 있을 것 같았다.
‘죽이자.’
서우진이 마음에 살심을 품었다.
스스스-!
순식간에 주변의 공기가 차갑게 내려앉았다.
반 슬레인과 브루탈이 흠칫- 하며 뒤로 몸을 날렸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심상찮은 기색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늦었다.
그들의 능력으로는 결코 서우진의 영역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죽어라.”
이 순간, 서우진은 반 슬레인이 자신의 스승이라는 사실조차도 잊었다.
그저 죽여야 할 날파리에 불과했다.
서우진의 손이 검의 손잡이를 붙잡았다.
그것이 뽑히면, 바로 그때가 두 사람이 죽는 순간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음?”
서우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건…….”
그제야 고개를 내려 자신이 쥔 검을 확인했다.
“카 라니엘.”
용사의 검.
마왕을 참한 검.
평소에 일렁이던 보랏빛 마력은 사라져 있었다.
그 대신, 서우진의 마기와 반응한 탓인지, 더없이 밝은 순백의 성스러운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곧장 서우진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너무도 거대해 ‘마왕’ 서우진조차도 경악을 할 정도였다.
“이걸 잊고 있었군.”
서우진은 급히 손을 떼려 했지만, 마치 자석이라도 된 것처럼 떨어지질 않았다.
아니, 오히려 마력이 더욱 날뛰며 마기를 몰아내기 시작했다.
서우진의 안에 있던 마기 역시 ‘카 라니엘’의 마력 못지않게 거대했지만, 속수무책으로 밀렸다.
마치 천적이라도 마주한 것처럼 말이다.
서우진의 표정에 다급함이 서렸다.
이대로라면 마기는 끝없이 구석으로 몰리게 될지도 모른다.
‘안 될 일이지.’
‘마왕화’가 풀려서는 안 된다.
다시 예전의 그 나약한 서우진으로 돌아갈 순 없다.
저런 버러지 같은 놈들에게 죽을 뻔하고, 도망치고,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삶을 살고 싶진 않았다.
전력을 다해 마기를 끌어모았다.
멈칫-
몸 안으로 파도처럼 밀려오던 마력이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이대로 밀어내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력의 기세가 강대하긴 했지만, 전장은 자신의 육체.
얼마든지 전세를 역전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우진은 그렇게 생각했고, 그것은 실제로 가능했다.
눈앞에서 검이 다가오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네만, 지금일세!”
반 슬레인이 소리쳤고, 브루탈이 호응했다.
둘의 예리한 검이 서우진의 목과 가슴을 노리고 쏘아졌다.
살기가 가득 담긴, 치명적인 공격.
하지만 서우진은 반응하지 않았다.
그들의 검으론 자신의 피부에 흠집조차 내지 못할 것이 분명했으므로.
콰과과과광-!
검과 육체가 충돌하자, 마력이 터져나가며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반 슬레인과 브루탈의 연계 공격은 서로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낸 것이다.
순식간의 숲이 쓸려 나가며 주변의 지형이 변했다.
이 정도라면 초극의 경지에 이른 존재라 해도 결코 무사하지 못할 정도의 파괴력이었다.
“젠장!”
흙먼지 사이로 브루탈의 욕설이 들려왔다.
“음…….”
반 슬레인 역시 묵직한 침음성을 내뱉었다.
까드득-
검은 멈춰 있었다.
서우진의 피부를 단 1㎜도 뚫지 못한 채 멈추었다.
공격은 실패였다.
두 사람은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눈앞의 존재는 자신들의 힘으론 절대 당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아예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곤란한데.’
서우진은 이를 악다물었다.
두 사람의 공격이 통한 건 아니었다.
눈으로 본 것처럼, 그들의 검은 서우진에게 아무런 타격도 입히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카 라니엘’의 마력은 아니었다.
서우진이 잠시 두 사람의 공격에 신경을 빼앗기자, 마력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크윽!’
노도와 같은 기세로 다시 밀려들어 오기 시작한다.
뒤늦게 막아보려고 했지만, 한 번 제대로 기세를 탄 마력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어느새 파도는 쓰나미가 되어 서우진의 몸속을 휘저었다.
‘아아…….’
결국 밀려난 마기가 흩어진다.
오직 마왕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 진 검.
그 안에 담긴 마력은 서우진의 마기에겐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망했군.’
‘마왕’ 서우진은 자신의 마기가 사라지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 마력에 집어삼켜질 게 분명했다.
그리고 결국 ‘마왕화’가 해제되겠지.
‘죽겠는데?’
반 슬레인 앞에서 자신이 서우진이라는 게 밝혀진다?
아무리 검을 가르쳐 준 스승이라 한들, 그냥 넘어갈 리가 없었다.
변명할 시간도 주지 않고 목을 베어내겠지.
그들에게 마왕이란 반드시 배제해야 할 존재였으니까.
‘그럴 순 없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던가?
강해지기 위해 수도 없이 굴렀고, 괴물 같은 놈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발버둥을 쳤던가?
그런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순 없었다.
그것도 자신의 검, ‘카 라니엘’ 때문에 죽는다면…….
‘억울하지.’
서우진이 손을 들었다.
일단 눈앞의 벌레들부터 치워야만 했다.
“꺼져라.”
콰득-!
손을 휘두르자 브루탈의 가슴이 주저앉으며 튕기듯 뒤로 날아갔다.
“커흑!”
아쉽게도 죽진 않았다.
하지만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는지, 코와 입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이번엔 반 슬레인.
서우진의 시선이 그를 향하자, 반 슬레인은 재빨리 몸을 피했다.
“쯧.”
뒤쫓아갈까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지금 중요한 건 그들을 죽이는 게 아니었으니까.
서우진은 가만히 서서 자신의 내부를 관조하기 시작했다.
쉴 새 없이 충돌하는 마기와 마력.
‘진정을 시키는 게 먼저다.’
마기가 밀리는 건 이제 막을 수 없었다.
하지만 미친 망아지처럼 날뛰는 마력을 조금 진정시키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카 라니엘’의 마력도 일단 자신의 몸에 들어왔으니, 컨트롤이 불가능하진 않을 터.
서우진은 정신을 집중해 마력에 자신의 의지를 심기 시작했다.
으드득-!
마력이 그것을 거부하며 더욱 심하게 날뛰었다.
덕분에 굳건했던 마력 회로가 뒤틀리고,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왕’의 육체가 아니었으면, 1초도 버티지 못하고 터져 나갔을 터.
서우진은 아릿하게 올라오는 통증을 참아내며, 더욱 강하게 의지를 투사했다.
‘내 명령에 따라라.’
조금씩, 하지만 단호하게.
서우진의 강력한 의지력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력의 움직임이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나쁘지 않군.’
속도는 느렸지만, 지배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서우진은 의지력을 더욱 넓게 퍼트리며, 지배 영역을 넓혔다.
밀알에서 쌀알로, 쌀알에서 포도로.
점점 그 크기를 키워가자, 마력은 완전히 서우진의 지배하에 들어왔다.
‘돌아가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마력들을 다시 ‘카 라니엘’로 돌려보내려는 시도를 했다.
하지만…….
“크윽!”
마력이 반발한다.
하마터면 애써 붙잡아놓은 녀석이 풀려날 뻔했다.
‘이건 안 되겠어.’
가장 좋은 방법은 초기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차선책.
‘균형과 조화를 이룬다.’
마력을 조금씩 한쪽으로 이동시키며, 마기와의 거리를 두었다.
그러자 벼랑 끝까지 몰렸던 마기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다.
심연처럼 깊고, 어두운 기운이 기지개를 켠다.
그리고 잃었던 제자리를 찾아 움직였다.
쿠구구구-
그 크기가 커질수록, 마력과의 반발력이 다시 강해지기 시작했다.
서우진은 두 기운이 다시 충돌하는 것을 방지하며, 그 크기를 동일하게 맞추는 것에 집중했다.
가장 중요한 건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균형을 맞추는 것.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는 기운들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일하게 만드는 일은.
하지만 초월적인 존재가 된 서우진은 0.1초도 집중력을 놓치지 않고, 그것을 가능케 했다.
‘됐다!’
완벽하다.
마기와 마력이 완전한 균형을 이루었다.
이제 남은 것은 조화.
서우진은 두 가지의 상반된 기운을 한 군데로 엮기 시작했다.
콰과과과과과-!
격렬하다 못해 폭주에 가까운 반발이 일어났다.
목에서 비릿한 피의 향기가 느껴졌다.
놀랍게도 서우진의 그 육체가 상한 것이다.
하지만 서우진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까지보다 더욱 강한 의지력으로 두 기운을 찍어 눌렀다.
반발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마치 천재지변이 일어난 것처럼.
마력회로가 찢어지고, 근육이 파열되며, 골격이 파괴된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당장에라도 모든 것을 놓고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차라리 죽는 것이 더 편할 정도의 고통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서우진은 버텼다.
피가 흐르고, 육체가 붕괴하는 와중에도.
서우진은 상극의 두 기운을 조화시키기 위해 끝없는 노력을 기울였다.
‘아…….’
그때 문득, 반 슬레인이 가르쳐 주었던 그 검이 떠올랐다.
검과 기운의 합일.
당시의 서우진에겐 거대한 산처럼 느껴졌던 마기의 장막을 일검에 베어내게 만든 바로 그 경지.
서우진은 본능적으로 마기와 마력을, 반 슬레인이 인도해 주었던 경로로 이끌었다.
여전히 반발은 강했지만, 조금씩, 아주 조금씩.
몸을 순환할 때마다 섞여 들어갔다.
한 바퀴, 두 바퀴, 열 바퀴…….
그리고 마침내 백 바퀴가 넘는 것과 동시에 빛이 터져 나왔다.
시리도록 눈이 부신.
검은 빛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