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59)
158화.
반 슬레인은 뒤로 물러나며 눈앞의 ‘검은 존재’를 살폈다.
‘움직이지 않는군.’
당연히 공격이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움직임을 멈추었다.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자신이 모르는, 뭔가가 일어난 것 같았다.
반 슬레인은 멀찍이 날아간 브루탈의 기색을 살폈다.
다행히 죽지는 않았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도 되는지는 모르겠다만.’
그와 브루탈은 원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사이었다.
얼굴을 마주하면, 반드시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할 불구대천의 원수.
그럼에도 반 슬레인이 놈과 손을 잡은 이유는 하나였다.
눈앞의 ‘검은 존재’를 막아야 한다는 강력한 예감 때문.
초극의 경지에 이르러 몸이 젊어진 반 슬레인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육감을 지니게 되었다.
그런 육감이 경고를 보내왔다.
저놈을 막지 못하면, 이 세계는 끝장날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브루탈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 역시 반 슬레인과 같은 것을 느꼈는지, 아무것도 묻지 않고 그 손을 붙잡은 것이었고.
그러다 일격을 당해 날아갔으니…….
원수로써의 브루탈은 죽는 것이 나았지만, ‘검은 존재’를 생각하면 저렇게 죽어선 안 된다.
반 슬레인은 모순적인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내 바로 잡았다.
브루탈이 신경 쓰이긴 했지만, 그래도 더는 한눈을 팔 순 없었다.
“음?”
그런데 ‘검은 존재’의 상태가 이상했다.
‘몸을 떨어?’
눈을 감은 채 전신을 바르르- 떤다.
마치 발작이라도 온 것처럼.
얼굴까지 일그러뜨리고 있었으니, 확실히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
‘쳐야 하나?’
본래의 성격대로라면 이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검을 내질렀을 것이다.
완전한 무방비 상태인데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상태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으니까.
지금 공격한다면, 웬만한 적들은 자신이 어떻게 죽는지도 모른 상태로 목이 잘려 나갈 것이다.
그런데도 반 슬레인은 움직이지 못했다.
아니, 움직이지 않았다.
확신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금 공격을 해도 그것이 통할 것이라는 확신이 말이다.
그만큼 ‘검은 존재’의 강함은 경이로웠다.
그 반 슬레인이 검을 뻗는 걸 주저할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을 수도 없는 일.
주저하던 반 슬레인은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비록 내 경지가 일천하여 아무런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는 하나, 그렇다 하여 물러설 수는 없는 일.’
일단 행한다.
그에 대한 결과는 후에 생각하면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두려움에 빠지는 것은 자신과 어울리지 않다.
반 슬레인은 공격하기로 마음을 먹고, 자신의 애검을 들었다.
이가 나가고 금이 간 검신이 보였다.
몇 번의 검격 만에, 평생을 함께해 온 검이 더는 회생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졌다.
속이 쓰려왔다.
‘조금만 더 버티려무나.’
저 존재를 죽일 때까지.
혹은 자신이 죽을 때까지.
부디 그때까지만 견뎌내 주기를 바랐다.
반 슬레인은 검에 마력을 있는 대로 몽땅 때려 박았다.
단 일격.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걸고 마지막으로 검을 휘두른단 다짐을 했다.
정신은 명경지수처럼 맑아졌고, 전신에는 활력이 치솟는다.
‘벨 수 있다. 아니, 벤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반 슬레인이 검을 그었다.
쩌어어억-!
‘검은 존재’와 반 슬레인 사이의 모든 것이 잘려 나갔다.
마기의 장막을 베었던 바로 그 검이었다.
찰나(刹那)를 수십 번 쪼갠 지극히 짧은 시간.
반 슬레인의 검에서 시작된 참격은, 순식간에 ‘검은 존재’의 앞에 도달했다.
그리고,
세상 그 무엇도 벨 수 있을 것 같은 거대한 참격이 ‘검은 존재’를 절단하기 직전.
갑자기 검은 빛이 터져 나왔다.
순간적으로 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밝은 빛이었다.
반 슬레인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고, 아차! 하는 생각에 곧장 마력을 순환시켜 시력을 보호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검은 존재’가 작은 미소를 띤 채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눈동자에 차갑게 박혔다.
* * *
‘죽을 뻔했다.’
서우진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기와 마력의 조화, 합일, 일체화.
단어의 선택이야 어찌 됐든, 서우진은 그것을 해내고야 말았다.
대륙의 역사를 통틀어 찾아보아도, 전례가 없을 정도의 업적이다.
그것을 이룬 대가로 서우진은 전신이 갈기갈기 찢겨 죽을 뻔했다.
간신히 살아남기는 했지만,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의 고통도 겪었다.
그 결과, 서우진은 초극의 경지에 오를 수가 있었다.
‘마왕화’를 통한 강제적인 격의 상승이 아닌, 온전히 스스로 이룩한 경지였다.
정신은 성숙했고, 육체는 다시 한번 진화했다.
마력과 마기가 하나로 합쳐지며 세상에 없는 새로운 기운이 창조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서우진이 얻은 것 중 가장 큰 것은 따로 있었으니까.
서우진은 자신을 향한 참격을 맨몸으로 받아내고는, 그것을 날린 사람을 쳐다봤다.
반 슬레인.
그는 경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행이야.’
서우진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속으로 생각했다.
‘늦지 않게 정신을 차려서.’
서우진이 얻은 가장 큰 것.
그건 바로, 본래의 정신이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마왕화’를 유지한 채로.
지독했던 살의도, 세계를 멸망시키겠다는 악의도.
모두 사라졌다.
그저 조금은 소심하고, 평범하며, 지극히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인간.
서우진의 인격이 그 자리를 다시 차지했다.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서우진은 자신의 손으로 스승인 반 슬레인의 목숨을 앗아갈 뻔했다.
그것도 마치 파리를 때려잡듯,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참사가 벌어지지 않아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그래도 아는 척을 하면 안 되겠지?’
외형만큼은 서우진이 아닌, ‘마왕’이었으니까.
‘대충 수습을 한 다음 이곳에서 벗어나야겠어.’
서우진은 본능적으로 ‘마왕화’ 상태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그 어떤 것보다 큰 장점이었다.
서우진은 슬쩍 걸음을 내디뎠다.
반 슬레인이 움찔- 하며 경계하는 모습이 보였다.
‘죄송합니다.’
심하게는 할 생각이 없다.
그저 눈속임을 위해 잠시 어울려 준 뒤, 이곳을 빠져나가 ‘마왕화’를 해제할 생각이었다.
“뭐해? 계속 덤비지 않고.”
서우진은 일부러 싸늘한 음성으로 그를 도발했다.
하지만 방금 전의 공격이 막힌 탓일까?
반 슬레인은 쉽게 움직이지 못했다.
‘어쩔 수 없지.’
서우진은 자신이 먼저 행동하기로 했다.
탓-
최대한 힘을 뺀 채, 아직 이름붙이지 못한 기운을 모두 갈무리한 뒤 땅을 찼다.
화아아아악-!
그럼에도 ‘신속’을 사용했을 때와는 비교되지 않는 경이로운 속도로 쇄도한다.
“흡!”
깜짝 놀란 반 슬레인이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놀라운 반응 속도를 보이며, 서우진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스아아악-!
창졸지간에 펼친 검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깔끔하고 위협적인 검이다.
이전의 서우진이었다면 결코 피해낼 수 없는, 지극히 높은 경지의 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서우진은 팔을 들어 손바닥으로 검면을 때렸다.
따앙-!
청아한 소리와 함께 반 슬레인의 검이 춤을 춘다.
‘너무 강했나?’
스승이 아끼던 검이 박살나기 직전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자신의 의지로 그런 건 아니었지만, 괜히 미안해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공격을 멈출 순 없었다.
서우진은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좋은 검을 한 자루 구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한번 손을 뻗었다.
콰과과과-!
단순한 동작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위력적이었다.
주변의 공간이 일렁이고, 대기가 찢어발겨지며 섬뜩한 공격이 반 슬레인을 향해 빠르게 다가갔다.
“나를 무시하는 겐가!”
반 슬레인의 노호성이 터져 나왔다.
강력하긴 하지만, 단순하다.
이래서야 마치 장난치는 것으로밖에는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반 슬레인은 분노를 담아 검을 내려쳤다.
쩌어어엉-!
결국 검이 반으로 쪼개져 버렸다.
그 충격을 견뎌내기엔, 검의 내구성이 한계에 달해있던 탓이었다.
‘이제 슬슬 돌아……?’
이쯤이면 되었다 생각한 서우진이 슬쩍 몸을 날리려 할 때였다.
“마기?”
뒤쪽에서 마기로 이루어진 오러가 등을 노리고 날아오는 것이 느껴졌다.
‘부르탈이었나? 브루탈이었나?’
반 슬레인과 합공하다 가슴이 박살난 채 날아간 마왕의 추종자.
아직 살아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공격할 수 있을 정도의 여력이 있는 줄은 몰랐다.
‘그냥 맞아도 상관없겠지만.’
현재 서우진에 비하자면 너무도 하찮았다.
무방비 상태로 맞아도 날개에 생채기조차 나지 않을 그런 잡스러운 공격.
하지만 서우진은 대응하기로 했다.
조금이라도 반 슬레인에게 틈을 보여, 자신이 물러날 계기를 만들기 위함이었다.
살짝 몸을 틀며 날개를 펼쳐 휘둘렀다.
후우우웅-!
순간적으로 대기가 밀려나며, 미친 듯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서우진의 뜻을 따라 발광하던 대기는, 이내 광폭한 폭풍으로 화해 뒤를 향해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고작 날개 한 번 펄럭인 것으로 이런 자연재해가 일어난다는 게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폭풍은 마기의 오러를 순식간에 집어삼키고는, 브루탈 역시 찢어발길 듯이 회전했다.
“크아아아악!”
바람 사이로 그의 처절한 비명이 들려왔다.
서우진은 그대로 브루탈을 향한 살의를 품었다.
반 슬레인도 아니고, 마왕의 추종자인 그는 굳이 살려둘 이유가 없었다.
아니, 죽는 편이 더 세상에 이로웠다.
서우진은 브루탈을 이대로 죽여야겠다는 생각에 몸을 돌리려 했다.
“이노옴!”
하지만 반 슬레인이 막았다.
반으로 쪼개진 검에는, 그의 머리카락 색과 같은 은색의 오러가 일렁였다.
가용가능한 모든 마력을 담은 것인지, 주변의 공간이 버티다 못해 비명을 질러댔다.
‘이건 피해야겠군.’
마력이 심상찮다.
그대로 맞는다 해도 별문제는 없겠지만, 반 슬레인은 다르다.
그의 육체는 충돌의 충격을 이겨내지 못할 수도 있었다.
서우진은 머릿속에서 브루탈을 지우며, 옆으로 빠르게 회피를 시작했다.
그리고…….
거대하다 못해 아찔할 정도의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아아아아앙-!
반 슬레인의 마력을 이겨내지 못한 숲이, 자신의 이름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거대한 크레이터가 파이고, 나무들은 증발했다.
순식간에 주변은, 그 어떤 생명도 살지 못하는 죽음의 대지가 되고 말았다.
남아 있는 것은 서우진과 반 슬레인, 그리고 쓰러진 브루탈과 루운발리의 시체뿐이었다.
‘휘유…….’
서우진은 반 슬레인이 만들어낸 광경에 감탄하며 몸을 돌렸다.
반 슬레인과 브루탈 모두 폭발의 여파에 휩쓸려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우진이 걸음을 내딛으려 할 때였다.
“우진 씨…….”
아일린의 음성이 들려왔다.
‘어떻게?’
그녀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더욱 서둘러 자리를 뜨려 했던 것이었고.
그런데 갑자기 자신의 이름을 부르다니?
깜짝 놀란 서우진이 몸을 날려 아일린 앞에 섰다.
‘무사하네.’
크고 작은 부상을 입긴 했지만, 다행히 그녀는 무사했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데, 아일린의 입이 다시 한번 열렸다.
“…마왕.”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