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6)
#15화.
“역시 머리를 다치신 거군요.”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미친 소리를 할 리가 없었다.
“아니거든요?”
서우진도 지금 자신이 뱉은 말이 얼마나 허무맹랑한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저놈은 지금 움직이지 않고 있잖아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거 기회 아니에요?”
얼음 벌레든 드래곤이든.
움직이지 않으면 조금 커다란 샌드백이나 다름없었다.
‘조금이 아닌가?’
슬쩍 얼음 벌레를 쳐다봤다.
반 슬레인과 푸른 방패 기사단이 싸우고 있는 놈과 비교하면 많이 작았지만, 그래도 웬만한 상가 건물 정도는 되는 크기다.
저만한 샌드백을 무너뜨리려면…….
“그래도 우리 둘만으로는 무리예요.”
얼음 벌레가 언제 다시 움직임을 재개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고작 두 사람이 그사이 얼음 벌레를 죽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일린이 상급기사라면 모를까.
그런데 서우진은 아일린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누가 두 명이서 잡는대요?”
“그게 무슨?”
아일린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한 눈빛을 보내자, 서우진이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저쪽에 같이 싸워줄 이들이 저렇게 많은데.”
손가락이 가리킨 곳에는, 어느새 어미 트랑가의 사냥을 끝내고 환호성을 지르는 병사들이 있었다.
* * *
“역시 한 마리가 아니었구나.”
주위를 살핀 반 슬레인이 허허-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기감에 잡힌 얼음 벌레의 숫자는 두 마리.
‘아니, 셋인가?’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뒤쪽에서 미약하게 얼음 벌레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 아이가 있는 쪽이로군.’
반 슬레인은 살짝 고민했다.
얼음 벌레는 위험한 몬스터다.
지금의 서우진으로선 제대로 된 반항도 하지 못할 정도로 거대하고, 강력하다.
그러니 자칫 잘못했다간 용사를 잃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반 슬레인은 끝내 몸을 돌리지 않았다.
얼음벌레에게 복수를 해야 한다는 이유만 있는 건 아니었다.
눈앞의 초거대 얼음 벌레는 지난 수년간 자신의 기사와 병사를 수도 없이 잡아먹은 원수였으니까.
이 기회를 놓친다면 언제 다시 조우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복수가 전부는 아니었다.
‘믿겠네.’
반 슬레인은 아일린을 믿었다.
아직 하급 기사에 불과하고, 경험도 그리 많지 않은 풋내기였지만…….
그럼에도 뛰어난 상황 판단과 냉철함을 지닌 아이였다.
아일린이라면 얼음 벌레에게서 서우진을 충분히 지켜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오늘 내가 할 일은 이 지긋지긋한 악연을 끊어내는 것.”
자신의 기사들을 믿고, 오직 그 목표 하나만을 위해 검을 휘두를 것이다.
“영주님!”
테스테론의 외침이 들려왔다.
길이 열렸다.
푸른 방패 기사단의 검과 피가 무수한 촉수를 뚫고 얼음 벌레에게 향하는 직선로를 만들어냈다.
반 슬레인의 발이 얼음 대지를 박찼다.
콰득-!
발끝에 담긴 힘을 이겨내지 못한 땅에 균열이 가며, 반 슬레인의 신형이 폭발하듯 앞으로 튀어나갔다.
웬만한 인간의 눈으로는 쫓을 수조차 없는 속도.
기사단에서도 테스테론과 제라드를 제외하면, 그 누구도 반 슬레인의 움직임을 감지해 내지 못했다.
그저 유독 강한 돌풍이 분다고 여길 뿐이었다.
반 슬레인은 순식간에 얼음 벌레의 코앞에 도달했다.
스르릉-!
검이 뽑혔다.
반백 년이 넘도록 함께해 온 그의 애검이 오랜만에 북방의 시린 공기를 맛보았다.
“베어라.”
좌에서 우로.
0.1㎜의 오차도 없는 깔끔한 직선이 그려졌다.
얼음 벌레의 크기를 생각하면 너무도 작은 움직임이었지만,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했다.
촤아아악-!
피의 분수가 뿜어졌다.
그어어어어-!
단 일검이었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휘두름에, 거대한 얼음 벌레가 반으로 쪼개졌다.
“피해!”
하지만 몬스터의 질긴 생명력은 아직 빛을 잃지 않았다.
육체가 반으로 잘려 나가는 극한의 고통에 얼음 벌레가 몸부림치기 시작한 것이다.
수백 개의 촉수가 미친 듯이 날뛰었고, 그것은 곧 기사들에게 위협으로 다가왔다.
“막아라!”
지금까지의 공격도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죽음을 앞둔 놈의 발악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광폭하고 위력적이었다.
“커억!”
휘둘러지는 촉수를 정면에서 막아낸 기사 한 명이 하늘을 날았다.
굳건하던 검은 산산이 조각나고, 육체를 보호하던 갑옷은 찌그러져 붉은 피가 새어 나왔다.
첫 전사자였다.
“트레인!”
주변의 기사들이 비명을 질렀다.
이미 각오를 한 상태이긴 했지만, 동료의 죽음 앞에서 평정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전열을 갖추어라!”
반 슬레인의 명령이 기사들의 귀에 박혔다.
“크윽!”
“빌어먹을!”
동료의 전사가 안타깝긴 했지만, 지금은 애도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반 슬레인의 명령대로 기사들은 마음을 가다듬고는 전열을 갖추기 시작했다.
기사단의 힘이 한곳에 모이자, 미친 듯이 발광하는 촉수들도 더는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하지만 촉수만 위협적인 것은 아니었다.
“옵니다!”
반 슬레인이 감지한 또 한 마리의 얼음 벌레.
땅속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던 놈은, 다른 하나가 죽자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는지 대지를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미친!”
기사 중 하나가 욕설을 내뱉었다.
방금 전 반 슬레인이 반으로 쪼개 버린 놈은 얼음 벌레 중에서도 특별히 거대한 개체였다.
일반적인 크기보다 1.5배 이상 컸으니까.
그런데 지금 모습을 드러낸 놈은 그보다도 컸다.
‘저놈이었구나!’
반 슬레인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매년 수많은 전사자를 만들어낸 얼음 벌레는, 방금 죽은 놈이 아니라 저놈이라는 것을 말이다.
‘할 수 있는가?’
얼음 벌레의 거대한 육체는 그 자체로 훌륭한 무기이자 방어구다.
웬만한 공격으로는 큰 타격을 주기가 힘들었다.
체급이 깡패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란 말이다.
지금까지 토벌에 실패한 가장 큰 이유도 그것이었다.
그동안은 반 슬레인조차도 놈에게 유의미한 상처를 줄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할 수 있다.’
조금 전의 일격으로 확신할 수 있었다.
놈의 거대한 육체를 벨 수 있다.
일격이 안 되면 이격.
얼음 벌레가 도망갈 시간조차 주지 않고, 벨 수 있었다.
반 슬레인이 다시 한번 검을 들었다.
* * *
“병사들 말인가요?”
아일린이 물었다.
어미 트랑가의 사냥을 끝마친 병사들은 엉망진창이었다.
수십 명이 죽었고, 그보다 몇 배는 많은 이들이 부상을 입었다.
지금은 승리의 기쁨에 젖어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할 터.
“기사들은 지금 바쁘잖아요.”
서우진이 고개를 돌려 반 슬레인이 전투를 벌이고 있는 쪽을 살폈다.
“응?”
갑자기 나타난 얼음 벌레에 정신이 팔린 사이, 전황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한 마리가 죽었네요.”
아일린은 그제야 그 사실을 깨닫고는 입술을 짓씹었다.
반 슬레인과 동료들을 믿지 못하고 생각 없이 행동한 자책감이 다시 몰려왔다.
“하나가 더 나타나긴 했는데…….”
끔찍할 정도로 거대한 얼음 벌레.
하지만 서우진은 그리 걱정하지 않았다.
아직 기사단도 건재한 것 같았고, 무엇보다 반 슬레인이 놈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으니까.
“지금은 이쪽부터 생각하죠.”
스노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몬스터가 얼음 벌레다.
만약 놈의 사냥에 성공한다면?
‘무조건 레벨 업을 하겠지.’
고작 스노울 다섯 마리를 잡고 레벨 업을 했으니, 어쩌면 레벨 몇 개를 단숨에 올릴 수도 있었다.
그런 경험치 덩어리가 멈춰서 움직이질 않고 있는데, 이런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병사들이라…….”
확실히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다.
병사 중에는 지금 서우진보다 뛰어난 이들이 널려 있었으니 말이다.
수백 명의 병사가 동시에 달려들어 난도질을 한다면, 아무리 얼음 벌레라 해도 버티지 못할 게 분명했다.
“하지만 놈이 다시 움직인다면 피해가 엄청날 거예요.”
애초에 지금 이런 대화를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놈이 멈춰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놈의 촉수가 병사들을 향해 공격을 시작한다면…….
그로 인한 피해는 상상하기 싫을 정도였다.
하지만 서우진은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어요. 만약 놈이 기사들에게 향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얼음 벌레 한 마리와 싸우는 것과 두 마리를 동시에 상대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물론 반 슬레인은 무사하겠지만, 다른 기사들은?
피해가 커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서우진은 그 부분을 지적했다.
“그건…….”
아일린이 입술을 짓씹었다.
그 말에도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관망과 개입.
둘 중 그 어느 것도 선택하기 쉽지 않았다.
“……대신 얼음 벌레가 조금이라도 움직일 기미를 보이면 곧장 후퇴할 거예요.”
“물론이죠.”
아일린이 말하지 않아도 누구보다 먼저 튈 자신이 있었다.
병사들은 겁쟁이라고 욕할지도 모르겠지만 무슨 상관이랴?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목숨인 것을.
‘그런 것치고는 계속해서 무모한 짓을 벌이고 있긴 하지만 말이지.’
뒷머리를 긁적인 서우진이 아일린을 쳐다봤다.
차갑다 못해 싸늘하기까지 한 그녀의 표정이 보였다.
하지만 서우진은 느낄 수 있었다.
그녀의 안에 누구보다 동료를 걱정하는 마음이 가득하다는 것을.
그걸 이용해야만 했다.
“그럼 저놈은 우리가 잡는 걸로 하죠.”
무리할 생각은 절대 없다.
하고 싶지도 않았고.
‘적당히, 적당히.’
병사들 사이에서 검 몇 번 찔러대고 경험치나 얻어먹을 생각이었다.
‘얼른 레벨 업을 해서 스킬에 대해 알아봐야 해.’
자신이 어떤 것을 할 수 있는지.
자신이 무슨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그것을 정확히 파악해야만 생존 가능성을 올릴 수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이용할 건 다 이용해야지.’
어차피 서로 이용하는 관계다.
자신은 성장하기 위해.
저들은 성장한 자신을 마왕과의 전쟁에 써먹기 위해.
“가요.”
아일린이 병사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하급 기사에 불과했지만, 그녀 역시 지휘관들 중 하나.
다른 기사들이 모두 얼음 벌레와 전투 중이었으니, 지금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릴 가장 큰 권한을 갖고 있는 것은 아일린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