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66)
165화.
서우진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아일린과 함께 반 슬레인을 아카데미의 의료 시설에 데려가는 것이었다.
치명상을 입은 건 아니었지만, 꽤나 큰 부상이었기에 시급한 치료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쪽으로!”
아이에르의 사제들이 몰려들어, 반 슬레인을 둘러업더니 곧장 침대에 눕혔다.
“지금부턴 저희가 맡겠습니다.”
서우진은 같이 있고 싶었지만, 방해만 될 뿐이라는 사제들의 말에 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괜찮으실까요?”
아일린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반 슬레인은 그녀의 주군이기도 했지만, 사사롭게는 스승이자 아버지와도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저런 부상을 입었으니, 아일린이 안절부절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아이에르의 사제들이 돌봐주고 있으니, 금방 회복하실 거야.”
반 슬레인의 상세는 그 누구보다 서우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와 직접 싸운 당사자였으니 말이다.
반 슬레인의 상세가 심각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생명이 위험할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 이곳엔 황실을 제외하고 제국에서 가장 뛰어난 신성력을 지닌 사제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니, 금세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서우진의 위로에도 아일린의 표정은 펴질 줄을 몰랐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문득 아일린이 서우진을 쳐다봤다.
“당신은 괜찮은가요?”
그 물음에 서우진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기차에서 수도까지 오며 반 슬레인과 수도 없이 나눴던 대화의 연장 같았던 것이다.
“레벨 업하면 완전회복이 되는 건 너도 잘 알잖아. 당연히 괜찮지.”
“하지만 그런 것치곤 얼굴에 상처가 너무 심해요.”
“아, 이건…….”
레벨 업을 한 직후, 갑작스런 기습을 피하지 못해 입은 상처라고 둘러댔었다.
하지만 역시 너무 빈약한 핑계였던 것 같았다.
하긴, 초극의 경지에 이른 이가 그깟 마수에게 상처를 입었다는 사실이 말이 안 되긴 했다.
“이것도 금방 나을 거야. 그냥 좀 긁힌 건데 뭐.”
단순히 긁혔다고 보기엔, 상처가 깊었다.
레벨 업이라도 하지 않는 이상은, 상처가 회복되더라도 짙은 흉터가 남을 게 분명했다.
“우진 씨도 여기서 치료를 좀 받는 게 어때요?”
아이에르의 사제들이라면, 신성 마법을 사용해 흉터가 남지 않게 치료를 하는 것이 가능할 터였다.
하지만 서우진은 고개를 저었다.
“나중에 받을게. 지금은 먼저 해야 할 일이 좀 있으니까.”
일단은 보고가 우선이었다.
서우진이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에 대한 보고를 해야 할 사람은 둘.
바로 황제와 요른이다.
물론 황제가 만나고 싶다고 해서 바로 만날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으니, 지금은 요른부터 찾아가야만 했다.
“그럼 저도…….”
“아니야. 피곤할 텐데 들어가서 좀 쉬어.”
서우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요른과 만나는 자리에서 어떤 대화가 오가게 될지 알 수 없었다.
분명 이전에 그는 ‘검은 존재’를 쫓고 있다고 했다.
어느 정도 성과도 있었고 말이다.
다행히 백시우가 미쳐 날뛰고, 레이나가 등장하며 흐지부지 됐지만…….
‘이대로 그냥 넘어갈 리가 없지.’
게다가 죽음의 숲에서도 그 ‘검은 존재’가 다시 등장했다.
요른, 그리고 제국에선 그 부분을 아주 미심쩍게 생각하고 있을 확률이 컸다.
‘그런 자리에 아일린을 데리고 갈 순 없어.’
“알았어요.”
아일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면서도 서우진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나도 금방 돌아갈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쉬어. 고생 많이 했잖아.”
아일린은 그야말로 죽음의 위기를 간신히 넘겼다.
백은기사단이나 크루시엘조차도 죽은 이들이 수두룩하다.
그런 곳에서 중급 기사인 그녀가 살아 돌아온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다.
아일린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확실히 체력이 한계에 달했다.
“내일 봐요.”
아일린이 인사하고 숙소로 돌아가자, 서우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몸을 돌렸다.
그의 표정이 언제 미소를 짓고 있었냐는 듯, 딱딱하게 굳어졌다.
요른이 있는 총장실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기에 도착하는 데는 고작 몇 분이면 충분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서우진님.”
총장실 앞에는 요른이, 자신의 말처럼 서우진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오랜만… 이었던가요?”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산뜻한 미소를 지었다.
“아, 생각해 보니 그리 오랜만은 아니네요.”
체감상 길게 느껴졌을 뿐.
실제로 흐른 시간은 고작해야 며칠이었다.
거기다 요른은 엘프였는지라, 더욱 짧게 느껴졌을 터.
서우진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일단 들어오시죠. 오늘은 새로운 차를 준비해 두었답니다.”
요른이 문을 열고 서우진을 맞이했다.
“그것 참, 기대가 되네요.”
설렘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무거운 눈빛으로, 그의 뒤를 따라 총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따뜻하고 아늑한 분위기의 집무실이 서우진을 반겼다.
“아무데나 편한 데 앉아계세요. 금방 차를 타올게요.”
요른은 콧노래를 부르며 찬장으로 향했다.
‘같은 사람이 맞나?’
레이나가 아카데미에 출몰했을 때.
요른은 녹빛의 검을 들고 무지막지한 공격을 쏟아부었다.
결국 마지막에는 레이나의 척추를 잘라냈을 정도로 말이다.
그때의 검을 든 요른과 차를 타고 있는 요른이 동일인물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래서 더 무서운 거지만.’
서우진이 요른의 등을 지그시 바라봤다.
초극의 경지.
요른은 수호자들과 같은 경지에 올라 있었다.
물론 그들에 비하자면 조금은 부족한 듯싶었지만, 그래도 세상에서 손꼽을 정도로 강력한 존재인 것만은 확실했다.
하지만 그의 힘이 두려운 건 아니었다.
서우진 스스로도 초극의 경지에 올랐고, 그보다 약하지 않다고 자부할 수 있는 힘을 얻었으니까.
그럼에도 요른이 무서운 이유는,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심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저 웃는 얼굴 뒤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서우진은 긴장을 늦추지 않으며 요른의 행동 하나, 하나에 신경을 썼다.
“자, 다 됐습니다.”
서우진의 그런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요른은 뜨거운 김이 폴폴- 올라오는 찻잔을 들고는 돌아왔다.
“일레인이라는 이름의 차예요. 환상수의 잎을 달여 만든 거죠.”
“환상수요?”
서우진이 고개를 갸웃했다.
요른이 환상수 일족이라는 건 첫 만남에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땐 그냥 부족 이름 같은 건가보다 하고 넘겼는데, 실제로 그런 이름의 나무가 있는 듯했다.
“일족의 수호목이죠. 한 번 드셔보세요. 맛이 꽤 괜찮을 거랍니다.”
호로록-.
요른이 웃으며 먼저 한 모금 마셨다.
“그럼 잘 마시겠습니다.”
서우진은 살짝 망설이다 찻잔을 입에 가져다 댔다.
시큼한 향기가 코를 자극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쁜 향은 아니었다.
오히려 정신이 맑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괜찮네.’
차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 정도 향과 맛이라면 최상급인 게 분명한 듯했다.
“마음에 들지요?”
요른이 미소와 함께 물었다.
“그러네요. 감사합니다.”
서우진 역시 긴장이 조금 풀리는 것을 느끼며 감사를 표했다.
“뭘요. 서로 돕고 사는 처지인데, 이 정도쯤이야.”
말을 하며 한 모금 더 마신 요른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대강의 보고는 들어서 알고 있어요.”
이전에도 느낀 것이지만, 요른은 크루시엘과 모종의 관계가 있는 듯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정보 파악이 이렇게 빠를 순 없을 테니 말이다.
‘현장에 있던 나도 방금 아카데미에 도착했는데, 여기에만 있던 요른이 벌써 알고 있다는 게 그 증거지.’
서우진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찻잔에서 입술을 뗐다.
“이번에도 많은 일이 있었더라고요?”
레이나와 루운발리가 죽었고, 부르탈을 생포했다.
단순히 많은 일이라고 표현을 하기엔, 너무 큰 사건들이었다.
“제가 한 것도 아닌데요, 뭘.”
레이나를 죽인 건 반 슬레인.
부운발리를 죽인 건 ‘검은 존재’.
브루탈 역시 반 슬레인과 ‘검은 존재’의 합작이다.
그 과정에서 서우진이 내세울 만한 공은 전혀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백은기사단과 크루시엘을 대피시킨 정도지.’
결과만 놓고 보자면, 서우진은 백시우 처형의 임무를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폄하할 일은 아니죠. 듣자하니 꽤나 활약을 하셨다던데.”
무슨 보고를 들은 것인지, 요른의 눈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누가 봐도 호감이 가득 담긴 모습이었다.
하지만 서우진은 그 표정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잠시 풀어졌던 긴장감을 다시 천천히 끌어올렸다.
“그런데 저에게 온 두 가지의 보고가, 꽤나 상반된 평가를 내리고 있더군요.”
“…그런가요?”
상반된 평가라니?
아니, 애초에 자신에 대한 보고가 두 가지나 된단 말인가?
서우진이 고개를 갸웃하자, 요른이 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하나는, 서우진 씨가 믿을 수 있는 용사라는 보고였어요. 타인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용사라고 말이죠.”
누가 한 보고인지 대충 알겠다.
서우진과 함께했던 쪽의 크루시엘 대원이거나, 백은기사단이겠지.
“딱히 그럴 평가를 들을 만한 일을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서우진은 일부러 미숙한 척, 머리를 긁적였다.
누가 봐도 쑥스러워 하는 순박한 청년의 모습이었다.
“같은 보고를 한 게 한두 명이 아니에요. 그러니 자부심을 가져도 된답니다.”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용사라니.
자신의 행동이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니.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참 다행이었다.
“하지만.”
요른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은 같았지만, 왠지 모르게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다른 보고는 조금 이상하네요.”
“…이상하다면?”
서우진 역시 덩달아 표정을 굳히며 물었다.
“흠, 뭐라고 해야 하나.”
요른은 찻잔을 잠시 어루만지다 입을 열었다.
“의심스러운 점이 많은 용사.”
하마터면 얼굴을 찌푸릴 뻔했다.
‘아마 그놈이겠지?’
당시의 크루시엘 대원들을 이끌었던 6호.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서우진을 향한 미심쩍은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었다.
의심스럽다는 보고를 했다면, 6호가 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았다.
“의심?”
하지만 겉으로는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검은 존재.”
기습적으로 나온 단어.
하지만 서우진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도 했고, 육체의 컨트롤 능력이 인간을 아득히 벗어난 덕분이었다.
요른은 그런 서우진을 향해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지금까지 ‘검은 존재’가 나타난 건 두 번이에요. 처음엔 지나한에서 여룡을 죽였고, 이번엔 죽음의 숲에서 루운발리를 죽였죠.”
서우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뒷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이상한 건 말이죠. 그때마다…….”
요른의 손가락이 서우진을 가리킨다.
“서우진님이 그 자리에 계시더군요. 이게 우연일까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