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Survive As A Demon King RAW novel - Chapter (167)
166화.
“우연이겠죠.”
서우진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자신이 그 ‘검은 존재’라는 사실을 절대 밝혀낼 수 없을 거라 확신했다.
‘그걸 밝혀냈다면 이런 분위기도 안 만들어졌겠지.’
만약 그랬다면, 마중을 나온 것은 요른이 아닌 수호자들이었을 것이다.
아직은 단순한 의심.
“우연…….”
요른이 묘한 눈빛으로 서우진을 바라봤다.
“그런가요?”
입에 차를 머금는다.
하지만 여전히 시선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 안에 담긴 뜻은, 서우진으로서도 짐작하기가 힘들었다.
“좋아요.”
요른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사실 우연이라는 걸 잘 믿지 않는 편이에요. 아니, 엘프들은 대부분 그러하죠.”
아주 사소한 일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정해진 운명에 따른 것.
엘프들의 사상은 그러했다.
우연이란 또 다른 이름의 필연이라 믿는 종족.
그런 요른이 서우진의 말을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서우진님의 말은 왠지 믿고 싶군요.”
무슨 뜻일까?
서우진이 그의 말에 숨겨진 속뜻을 짐작하는 사이, 요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오늘은 이만 돌아가서 쉬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말을 해둘 테니 얼굴의 상처도 좀 치료하시고.”
요른은 더 이상 서우진을 추궁하지 않았다.
“신경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인사를 하는데, 요른이 아! 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를 잊고 있었다는 듯 입을 열었다.
“내일 스케줄은 비워두시는 게 좋을 거예요.”
“…무슨 일 있습니까?”
“다른 건 아니고. 황제 폐하께서 서우진님을 좀 보자고 하시더라고요.”
황제가?
서우진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설마 쩨쩨하게 카 라니엘을 회수하려는 건 아니겠지?’
얻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카 라니엘’은 이미 서우진의 또 다른 손이나 다름없었다.
그만큼 손에 익었고, 무엇보다 혼돈기라는 엄청난 기연을 안겨준 녀석이었으니까.
이제 와서 다시 잃고 싶지는 않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분의 배포는 전 대륙을 아우르고도 남을 정도로 거대하니까.”
서우진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챘는지, 요른이 웃으며 말했다.
“하, 하하.”
속내를 들킨 서우진이 어색하게 웃으며 몸을 돌렸다.
“내일 숙소로 사람을 보낼 테니, 그분을 따라가면 될 거예요.”
“감사합니다.”
“뭘요. 제가 더 감사하죠.”
서우진은 요른에게 작별 인사를 건넨 뒤, 곧장 총장실을 빠져나왔다.
“후아!”
답답했던 숨통이 뻥- 하고 뚫리는 느낌이었다.
어깨가 굳을 정도로 긴장하고 있었더니, 괜히 몸이 뻐근해지는 느낌이다.
“이제 돌아가자.”
다행히 별일 없이 넘어갔다.
물론 아직 의심을 완전히 떨쳐 낸 것은 아니겠지만, 당분간은 안전할 터.
서우진은 숙소를 향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그나저나 카 라니엘을 좀 어떻게 해야 할 텐데.’
허리춤을 내려다보았다.
흑색의 아름다운 검.
‘카 라니엘’이 신검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보랏빛 마력이 사라졌어.’
이건 큰 문제였다.
흑빛의 검신과 일렁이는 보랏빛 마력은 ‘카 라니엘’의 상징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물론 그게 사라진 덕분에, 반 슬레인에게 자신이 ‘검은 존재’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마력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이번에야 말로 걸릴 수밖에 없다.
‘검은 존재’가 사용하던 검을 서우진이 갖고 있고, 그것이 ‘카 라니엘’이라는 것까지 들킨다면…….
서우진과 ‘검은 존재’가 서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여실하게 드러날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서우진이 혼돈기를 끌어올렸다.
그러자 ‘카 라니엘’의 주위에, 회색의 혼돈기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쯧.’
이런 걸론 절대 속일 수가 없었다.
“야, 너 신검이라며? 무슨 방법 없냐?”
그저 답답함에 내뱉은 소리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우웅-
마치 서우진의 뜻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처럼, 혼돈기의 색이 보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어, 어?”
서우진이 눈을 끔뻑였다.
‘카 라니엘’이 완전히 전과 같은 모습으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아!’
서우진의 머릿속에 반 슬레인의 말이 떠올랐다.
‘카 라니엘에는 수많은 능력이 잠들어 있다고 했었지. 그것을 밝혀내는 건 내 몫이라고도 했고.’
그중에는 아무래도 이런 식의 ‘형태 변환’이나 혹은, 기운의 ‘성질 변환’ 같은 능력도 있었던 것 같았다.
서우진은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몇 가지 실험을 해보았다.
“야, 창으로 변해봐.”
머릿속으로 멋들어진 창의 이미지를 그리며 말을 해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카 라니엘’이 변하기 시작했다.
마치 액체 금속이라도 된 것처럼 흐물거리더니, 서우진이 상상했던 바로 그 창으로 화한 것이다.
“허…….”
서우진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아주 단순한 능력처럼 보였지만, 서우진은 이것을 활용할 방법이 무궁무진하게 떠올랐다.
‘길이를 조절할 수도 있고, 힘의 집중을 흐트러뜨릴 수도 있었다.’
지금 당장 생각나는 것만 잘 이용해도, 훨씬 다양한 전투가 가능해진다.
“원래대로 돌아와.”
서우진의 말에, ‘카 라니엘’은 본래의 검으로 돌아왔다.
“아, 보랏빛 마력은 그대로 유지하고.”
다시 회색의 혼탁한 혼돈기가 모습을 드러내자, 서우진이 급히 주문을 바꾸었다.
우우우웅-
그러자 혼돈기는 다시 보랏빛으로 바뀌었다.
‘이 정도면 웬만한 사람들은 속일 수 있겠다.’
물론 반 슬레인처럼 초극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은 예외였다.
그들은 외형이 아닌, 내면을 보는 존재들이었으니까.
아무리 겉으론 비슷하게 꾸며낸다 한들, 그 근본은 마력이 아닌 다른 기운이라는 것을 눈치챌 것이다.
‘뭐, 그래도 상관없긴 하지만.’
반 슬레인도 서우진의 변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수호자들 역시 마찬가지일 터.
서우진은 ‘카 라니엘’에 대한 걱정을 접고는,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숙소를 향했다.
“언제 한번 날 잡고 네 능력이나 파봐야겠다.”
몇 개나 되는지, 어떤 능력이 있는지.
그것들을 알아낼 생각을 하니 괜히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서우진은 어느새 어둑해진 아카데미의 교정을 가로질렀다.
* * *
“들어가시면 됩니다.”
아침 일찍부터 자신을 데리러 온 기사의 안내를 받아, 황실의 신궁에 다시 방문했다.
중간에 만난 이지아가 자신도 데려가라며 떼를 쓰긴 했지만, 어찌어찌 잘 떼어놓고는 혼자 왔다.
‘맛있는 거라도 사줘야겠네.’
오랜만에 봤는데 회포를 풀기는커녕, 도망치듯 자리를 피한 게 마음에 걸렸다.
이젠 주머니도 두둑하니, 그 녀석이 원하는 건 모두 사먹여야겠다고 다짐하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쿠구구궁-
이전에 본 것과는 다른, 화려함보단 위압감이 돋보이는 거대한 철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음…….’
문 너머의 광경은 서우진이 생각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뭐가 이렇게 많아?’
전처럼 황제와 간단한 독대할 것으로 예상했는데, 얼핏 보이는 귀족의 수만 수십 명이다.
그들의 시선이 모두 서우진을 향하고 있었다.
대부분은 처음 보는 이들이었지만, 간혹 눈에 익은 귀족의 모습도 보였다.
‘저 사람은 이름이 우서였지?’
자신을 포섭하기 위해 접근을 했었던 제국의 백작.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지 생각해 보라는 말과 함께 헤어진 뒤에는, 딱히 접점이 없어 만나지 못했는데 이곳에서 볼 줄은 몰랐다.
우서는 서우진과 시선이 마주치자,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공손한 태도였다.
‘하긴. 그때와는 상황이 조금 달라지긴 했지.’
당시의 서우진은 그저 D급 용사에 불과했었다.
그 누구도 중요하다 생각하지 않았고, 단순히 머릿수를 채우는 용도에 불과한 존재.
우서 역시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것과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SSS급의 백시우를 이겼으며, 13사도 중 세 명과 싸웠고, 여룡과도 전투를 치렀다.
D급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업적.
하지만 그 무엇보다, 수호자들과 같은 초극의 경지에 도달했다는 것이 더 중요했다.
고작 1년.
그 짧은 시간 만에 인간을 초월한 존재가 되었다니.
대륙의 역사를 통틀어도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당연히 귀족들의 관심이 쏟아질 수밖에 없었다.
서우진은 열정적이다 못해 뜨겁기까지 한 그들의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알현실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응?’
황제의 옆쪽에서 낯익은 얼굴이 하나 더 보였다.
‘드류나크… 였었지?’
제국의 재상.
도르만인지 도베르만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하급 귀족의 행패를 막아내 준 귀족이었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꽤나 큰 호감을 표시하기도 했었다.
서우진은 드류나크에게도 눈인사를 건네고는 황제의 앞에 섰다.
“어, 그러니까…….”
뭐라고 인사를 해야 되지?
예전에 사극에서 봤던 장면들이 떠올랐지만, 그대로 행동하기에는 조금 부끄러웠다.
서우진이 우물쭈물하고 있자, 황제가 허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예는 되었느니라. 이전처럼 짐을 편히 대하라.”
“감사합니다.”
서우진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 모습에 불편해하는 귀족들이 몇몇 보였지만, 감히 나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이번 원정에서도 큰일을 겪었다 들었도다. 과연 얼굴의 상처를 보아하니, 그 험난함을 능히 짐작하고도 남겠노라.”
요른도 아는 것을 황제가 모를 리가 없었다.
오히려 서우진조차 알지 못하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폐하 덕분에 크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자신을 배려해 준 만큼, 이 정도의 말은 해줘도 될 것 같았다.
다행히 황제는 그 말이 마음에 든 듯했다.
특유의 너털웃음을 지은 황제는 다시 말을 이었다.
“헌데 적의 기세가 강맹하여, 원하던 바를 이루지 못했다 들었느니라.”
짧게 해석하자면 ‘너 임무 실패했더라?’ 정도인 듯했다.
서우진은 송구스럽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카 라니엘’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받아놓고도, 황제의 부탁 아닌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다.
미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이건 뺏어가지 맙시다.’
서우진이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황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고개를 들라.”
황제가 지엄한 음성으로 서우진에게 명했다.
거부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에,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앞을 쳐다봤다.
황제와 그를 수호하는 기사들이 눈에 들어왔다.
“허나 짐의 기사들을 구하고, 마왕의 사도들을 참한 공은 더없이 높이 사는 바!”
‘…뭐?’
백은기사단을 구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사도들을 참하다니?
서우진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하지만 황제는 그에 대한 대답을 해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그에 대한 말을 하지 말라는 듯, 단호한 눈빛으로 서우진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혹여 원하는 것이 있느냐?”
그 말에 서우진의 의문이 쏙- 하고 들어갔다.
황제가 오해하고 있는 것이든, 아니면 의도한 것이든 상관없었다.
‘보상을 준다는데.’
처음으로 황제에게 받았던 보상은 ‘카 라니엘’이다.
이번엔 과연 무엇을 줄지…….
서우진은 기대감에 가슴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오